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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36화 (36/202)

36화 우연 혹은 필연 (2)

“나 곧 있으면 파견 나가야 하는 거 알지? 미행 붙였다는 녀석한테는 연락 왜 안 와?”

황일우는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조금은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죄송합니다. 지금쯤 연락이 들어왔어야 하는데.”

“혹시 이 실장한테 당한 거 아냐?”

“그, 그럴 리가요.”

남자가 당황하며 말했다.

아직도 연락이 오지 않고 있긴 했지만, 우연일 뿐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하지만 황일우의 머릿속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설마 그 녀석, 정말 힘을 숨기고 있었단 건가?’

외부에서 고용한 한태식이 실패한 것까지야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이라고 넘어갈 수 있었다.

허나 이번에도 연달아 실패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제 막 E급 헌터가 된 이성현이 D급 헌터 둘을 연달아 엿 먹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뭔가 느낌이 쎄한데… 아예 길드에 말을 해 봐? 아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오버하는 건가.’

황일우는 내심 갈등했다.

단순하게 우연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두 번의 사건과 헌터로서의 감이 더해지며 진지하게 성현이 의심되기 시작했다.

정말 그만한 잠재력을 숨기고 있는 거라면, 청성 길드 차원에서 확실히 조사해 보도록 말을 해 볼 수 있었다.

찜찜한 건 딱 질색인 그의 성향상, 강일훈이란 리스크까지 없앨 수 있는 좋은 방안이었다.

띠리리링!

하지만 그가 진지하게 고민을 하려던 찰나, 황일우의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기다리고 있던 부하 녀석의 연락이었다.

“야 이 새끼야! 뭐 하다 이제 연락해?”

-죄, 죄송합니다! 도중에 녀석을 한 번 놓칠 뻔해서 정신이 없었던지라… 그래도 동선은 모두 꼼꼼하게 확인했습니다.

바짝 긴장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몇 시간이나 연락이 늦었으니 황일우의 앞에서 긴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황일우는 갈구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궁금한 것부터 물어보았다.

“따로 특이한 점은 없고?”

-예, 오늘 일과라고 해 봤자 E급 던전 한 곳을 처리한 게 전부입니다. 던전 안까지 몰래 따라 들어가 지켜봤는데, 다른 헌터들과 별 다를 것도 없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보스 공략까지 지켜봤는데, 힘을 숨기는 듯한 낌새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하긴… 다른 놈도 아니고 난데없이 이 실장이 그런 능력을 얻은 게 말이 되나.’

황일우는 내심 안도하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괜히 찜찜하다며 길드에 말을 했다가 크게 망신만 당할 뻔했다.

“그나저나 이 실장은 던전 하나 돌고 끝이야? 빚이 엄청나다고 들었는데, 여유가 있나 보네.”

-아닙니다. 돈이 꽤 급한 듯이 보였습니다. 던전 하나를 처리한 다음에 업체와 대화하는 걸 엿들었는데, 짐꾼 일까지 자처하더군요.

“뭐? 짐꾼?”

들려온 남자의 말에 황일우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의 입가가 심상치 않게 꿈틀거렸다.

“푸하하핫! 그거 진짜야?”

황일우가 빵 웃음을 터트리며 폭소했다.

“하기야 그 양반 돈이 급하긴 하겠지. E급 헌터 짓거리로 그 빚을 다 갚긴 무리일 테니. 아이고, 용쓰고 있구먼. 열심히도 사네.”

조소가 가득 섞인 황일우의 말.

그도 그럴 게 헌터 업계에서 짐꾼이란 던전의 뒤처리를 위해 동원되는 하급 헌터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보통 그런 일들은 길드나 업체 직원들이 처리하기 마련이지만, 일반인 관계자가 진입하기 어려운 위험한 환경의 던전에서 주로 고용되었다.

짐꾼은 주로 C급 이상의 던전에서 구르는 만큼,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고생하며 E급 던전을 직접 도는 것보다 당장의 돈 몇 푼을 더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헌터에게는 전혀 좋은 일이 아니었다.

몬스터를 직접 처치하며 경험을 쌓아 나가야 하는 헌터의 입장에서 짐꾼이란 사실상 미래를 파는 일과 다름없었다.

“용케 이런 정보까지 물어왔어. 잘했네.”

황일우가 기분이 확 좋아진 듯 말했다.

이 정도로 영양가 있는 정보라면, 보고가 조금 늦어진 것 정도야 용서해 줄 수 있었다.

“아, 마침 잘됐군. 덕분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너, 이 실장한테 접근해서 짐꾼 일이나 한번 제안해 봐라.”

-제가 말입니까?

“그래. 거절 못 하게 보수도 좀 높게 쳐주고. 대충 잘 말해서 내 쪽으로 데려와. 던전 하나 마련해 놓을 테니까.”

-아…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음, 수고하고.”

황일우는 흡족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찜찜했던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일이 술술 풀려 나가기 시작했다.

“필재야. 다 들었지? 던전 하나 준비해야겠다.”

“어떤 던전이면 되겠습니까?”

“정식으로 허가 맡은 거 말고 C급으로 미신고된 던전 하나만 구해 놔. 이번엔 나도 직접 갈 테니까. 간만에 재미 좀 봐야지.”

황일우는 비열한 웃음을 씨익 지어 보였다.

조금 즉흥적인 감이 없잖아 있지만, 일처리는 빠를수록 좋았다.

간만에 맛보는 취미 생활인 만큼, 제대로 가지고 놀 만한 판을 짰다.

‘길드 일로 파견 나가기 전에 확실히 스트레스를 풀고 갈 수 있겠군.’

* * *

외진 공사장 안에 생겨난 던전의 입구.

열이 넘는 헌터들이 던전의 공략을 앞두고 모여 있었다.

“황일우 헌터님……?”

“이야, 이런 우연이 다 있나. 여기서 반가운 얼굴을 다 보게 되네.”

멈칫한 성현에게 황일우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마치 기막힌 우연이라는 듯 웃음을 흘리는 그의 표정.

급히 돈을 벌기 위해 짐꾼 일을 맡은 성현이었지만, 그곳의 헌터들이 누구인지 미리 알려 줄 리는 없었기에 당혹스러울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성현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경황이 없어 연락도 못 드리고.”

“아니, 아니야. 나도 못 했는데 뭐.”

황일우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그는 성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얼마 전의 일은 유감이야. 솔직히 난 이 실장 잘못이라고 생각 안 해. 뭔가 착오가 있었겠지. 원래 이런 쪽으로 좀 꽉 막혔잖아, 길드 놈들.”

굳이 잊고 싶은 일을 꺼내는 황일우의 말에 성현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한데 뭐라 말을 이으려던 황일우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성현의 뒤를 따라온 다른 헌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음? 이쪽은 누구야?”

“얼마 전부터 같이 일하기 시작한 동료입니다. 저랑 같은 E급 헌터고요. 마침 좋은 일거리가 생겼다고 해서 함께 왔습니다.”

소개하는 성현의 말에 이즈나도 고개를 까닥였다.

성현을 대하는 황일우의 태도에 그녀의 표정이 살짝 꿈틀하긴 했지만.

바깥에서의 행동에 대해 여러 차례 당부를 들어 놓은 터라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으음…….”

황일우는 그녀를 아래위로 훑었다.

동료가 한 명 있다는 건 부하를 통해 듣긴 했지만, 이런 미녀를 옆에 끼고 다니다니.

고작 하급 헌터 주제에 팔자 좋은 짓을 하고 다니는 것 같아 더욱 마음에 안 들었다.

점점 불순해지는 황일우의 눈길에 성현은 입을 열었다.

“짐꾼은 두 명뿐입니까?”

“그래, 두 명이면 충분해. 중소형 던전이라 그리 크진 않거든. 내부 탐색도 1차적으론 다 끝났어. 물론 짐꾼이 필요한 던전답게 일반인이 들어갈 순 없지만.”

이번 던전인 비명 협곡엔 미세한 독안개가 퍼져 있었다.

각성자들에겐 아무 영향이 없을 정도로 옅은 독이었지만, 연약한 일반인의 몸으로 들어가 노출되면 몸을 크게 상할 수 있었다.

“청성 길드와 관련된 일이 아닌 건 알지?”

“예. 계신 분들을 보니 그런 것 같군요.”

주위를 쓱 둘러본 성현이 말했다.

당연히 청성의 헌터였으면 그가 못 알아볼 리가 없었고, 황일우와 그 똘마니들이었다.

성현은 이미 소문으로 들어 황일우가 길드 활동에 전념하지 않고, 종종 바깥에서 헌터들과 나돌아 다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길드 안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보니, 여기 보이는 패거리들을 데리고 대장 노릇을 하고 다니는 것이다.

“나랑 다니는 동생들이야. 뭐 다들 통성명이라도 하면 좋겠지만,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진행하자고. 자자, 다들 출발 준비!”

황일우가 말하자, 헌터들은 각자 무기를 챙겨 들었고, 짐꾼 역의 성현과 이즈나도 커다란 가방을 등에 멨다.

그렇게 채비를 마친 12명의 헌터들은 C급 던전, 비명 협곡에 들어섰다.

안개가 끼어 있는 음산한 장소였다.

“키에에엑!”

소름 끼치는 비명 소리가 협곡 안을 울렸다.

공격대는 본격적인 공략을 위해 진입하기 전, 던전의 정찰을 미리 해 놨기 때문에 저들의 정체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이 실장, 위험하니까 뒤로 빠져 있어. 밴시한테 한번 잘못 걸리면 우리도 못 구해 주는 거 알지?”

“예. 조심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성현은 한 발 물러섰다.

제법 높은 등급대의 던전인 만큼 짐꾼이 나설 만한 곳이 아니었다.

후우웅!

협곡의 지형 사이로 유령들이 미끄러지며 나타났다.

C랭크의 몬스터, 밴시였다.

“키이이익!”

“온다! 전투 준비!”

공중에서 날아드는 밴시의 무리에 황일우와 헌터들은 곧바로 진형을 갖추고 놈들을 상대했다.

밴시는 기본적으로 물리 공격에 내성이 있어 골치 아픈 상대였다.

하지만 내성일 뿐 아예 면역인 것은 아니었다.

서걱!

헌터들이 무기를 휘두르며 밴시들을 베어 냈다.

C랭크 던전의 공략에 나선 공격대답게, 전원이 C급 헌터들로 구성된 멤버들이었다.

덕분에 매섭게 몰려드는 밴시를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형님, 조심하십시오!”

“조심은 무슨!”

콰직!

그중에서도 나름 청성 소속이긴 하다는 건지, 황일우의 활력이 돋보였다.

분류상 같은 등급이라도 기준의 정상과 바닥은 천지 차이이기 마련이었고, 황일우는 나름 C급 중에선 평균보다 위쪽에 있는 편이었다.

물론 이는 황일우가 잘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형인 황석일의 눈부신 후광과 청성이라는 간판이 있었기에 다른 헌터들보다 훨씬 유리한 고지에서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오케이, 끝났네.”

“다시 출발합시다.”

어찌 됐건 황일우와 헌터들은 달려들던 밴시들을 어렵지 않게 모두 베어 냈다.

다시 던전을 나아가는 그들은 굳이 길을 헤맬 것 없이 곧게 이어진 협곡의 길을 나아갔다.

하지만 곧 그들의 앞엔 커다란 두 갈래의 길이 나타났다.

“벌써 여긴가. 이제 인원을 나뉘어서 간다.”

“인원을 나눈다고요?”

“그래. 왼쪽 길로 가야 보스가 나오긴 하지만, 오른쪽에도 볼일이 있거든. 어차피 이번 보스 공략엔 열 명이나 필요 없어. 두 명은 따로 움직인다.”

“오른쪽에 뭔가 있는 겁니까?”

“저쪽 길목의 호수에 크림슨 리마가 잔뜩 있었어. 양이 꽤 많아서 우리가 보스를 공략하는 동안 여러 번 오가면서 옮겨 줘야겠어.”

황일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크림슨 리마라면 하나에 수백만 원씩 하는 희귀 식물이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오히려 보스의 전리품보다 수십 배는 더 돈이 될 것이다.

“물론 우리 짐꾼 아가씨가 중간에 밴시한테 물려 죽으면 곤란하니, 미리 몬스터도 정리할 겸 헌터 두 명이 같이 가는 거고. 그리고 이 실장은 나랑 왼쪽 길로 갈 거야. 전리품도 옮겨야지.”

“예, 알겠습니다.”

꽤나 적절해 보이는 그의 지시에 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일행은 아홉 명과 세 명으로 인원이 나뉘었고, 서로 맡은 길목을 향해 갈라졌다.

“젠장, 부러운 자식들. 저 정도일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신중하게 하는 건데. 뽑기 연습을 더 하던가 해야겠네.”

“그러게. 먼저 재미 볼 거 생각하면 배 아파 죽겠다.”

왼쪽 길로 향하는 헌터 몇몇이 뒤편에서 구시렁거렸다.

확실히 오른쪽 길로 향한 이들은 보스 공략에 빠질 수 있었고, 훨씬 고생을 덜 하는 것은 맞았다.

하지만 성현이 듣기엔 그런 뉘앙스로 나온 말이 절대 아니었다.

‘정말… 답도 없는 놈들이로군.’

성현은 짤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이야 했던 일이었지만.

놈들에겐 일말의 자비도 필요 없어 보였다.

* * *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이즈나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오른쪽 길목으로 동행하던 두 남자가 난데없이 멈추더니 그녀의 양옆을 막아서고 있었다.

인원이 갈라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여기서 더 가 봤자 아무것도 없어.”

“사실 이 던전엔 크림슨 리마 같은 거 없거든.”

헌터들이 킬킬대며 말했다.

그러자 이즈나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럼 내가 여기 올 이유가 없을 텐데?”

“푸하하, 까칠한 척하기는.”

“괜히 반항하진 마라. 얌전히 있으면 죽이진 않을 테니까.”

능글맞은 표정의 두 남자가 다가왔다.

짐꾼 역시 헌터라고는 해도, 고작 E급 따위가 C급의 헌터인 그들에게 저항하기란 불가능했다.

반항할 낌새가 보인다면 곧바로 제압하면 그만이었기에 방심한 채 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이성현인지 뭔지 하는 놈은 여기서 죽겠지만, 한 번 만에 죽이기엔 아깝잖…….”

콰직!

남자는 말을 미처 다 끝내지도 못했다.

말 그대로 찌그러져 버린 그의 머리.

움켜쥔 그녀의 손 사이로 피와 뇌수가 후두둑 흘러나왔다.

“뭐, 뭐야! 컥……!”

동료의 죽음을 머리가 받아들이기도 전.

목을 잡힌 헌터의 몸이 붕 하고 떠올랐다.

덜덜 떨리는 시선을 움직인 남자는 그제야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츠츠츠츳!

억눌렀던 검은 기운이 온몸에 흐르는 이즈나의 붉은 눈동자가 놈을 응시했다.

“버러지 같은 놈들이… 감히 누구의 존함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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