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잿빛 땅 (2)
광산 앞을 서성이고 있는 수백의 스켈레톤 전사 무리.
누가 보면 던전의 입구인 줄 착각할 만큼 상당히 많은 숫자였다.
하지만 수많은 고블린들이 쏟아지며 놈들을 급습했다.
“키이이익!”
난데없이 벌어진 몬스터들 간의 난투극.
스켈레톤 전사들은 무기를 치켜들고 응전했다.
인근에 존재하지도 않는 고블린 무리들이 갑작스럽게 습격해 오니 당황할 법도 하지만, 언데드이다 보니 감정의 동요 없이 대응하고 있었다.
콰직!
하지만 저들이 동요하건 하지 않건 변하는 건 없었다.
고블린 하나하나가 해골 전사들을 상대로 강한 우세를 보이며 그들을 찍어 눌렀다.
게아드의 레벨이 오르며 함께 성장함은 물론, 승급까지 거치며 D랭크 몬스터 정도는 손쉽게 상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최근 단련하고 있는 훈련의 성과 덕도 있었다.
수습 헌터들이나 상대하는 F랭크급의 몬스터였던 시절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의 변화였다.
“끝난 건가.”
깔끔히 정리된 전장 앞에 성현이 섰다.
보스급 수하들은 다른 곳에서 몬스터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별문제 없이 가볍게 처리할 수 있었다.
애초에 필드 보스 몬스터를 잡으러 온 것이 아니라, 광산 지역을 얻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기에 이 정도 병력만으로도 충분했다.
‘전처럼 광산 안에 던전이 있는 건 아닌 모양이네.’
내부에 들어선 성현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광산 내부엔 몬스터 하나 없이 깔끔했다.
다만 제대로 개발이 되어 있는 상태는 아닌지라, 인위적인 손길을 거쳐 개발할 필요가 있을 듯 보였다.
그래도 크기로 봐선 매장량은 제법 되어 보였다.
“좋아. 훌륭하네.”
충분히 안을 살펴본 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어 메탈 광산을 확보하다니 대만족이었다.
고블린 숲에서 확보한 철광산 수준의 규모까지는 아니었지만, 금속의 희소성을 생각했을 때 이 정도만 해도 대단했다.
‘뭐, 당장 레어 메탈로 고블린들의 무기를 도배하는 건 무리겠지만.’
광산을 개발하고 생산해 내는 데 걸리는 시간.
거기다 레어 메탈을 제련하는 방법은 일반적인 던전의 철보다 훨씬 까다로웠다.
고블린들도 이걸 제련해 내려면 제법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본격적인 무기의 보급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말.
‘나중에 전문 서적이라도 몇 권 구해다 줘 볼까. 이해할 수 있길 바라야겠지만.’
그래도 이런 자원을 손에 넣은 것부터가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비싼 값을 하니 돈이 필요할 때 팔 수도 있었다.
‘다만 문제없이 보급이 이뤄진다고 해도, 아쉬운 부분이 딱 한 가지 있긴 있지.’
성현이 아쉬워하는 한 가지.
제련법을 익힌다고 한들 레어 메탈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인 마법 부여는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무기에 마법을 부여하려면 인챈트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마력 운용과 연금술에 능통한 각성자가 함께 손을 써 줘야 했다.
승급을 통해 지능이 올라갔다곤 해도, 태생적으로 마법이나 연금술에 관련해선 문외한인 고블린이었다.
그런 쪽의 재능을 기대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일반 철제 무기로 무장하는 것보다야 훨씬 나아지긴 하겠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가 없어. 레어 메탈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이 죽어 버리는 거니.’
고블린이 지닐 무기들이라면 말 그대로 엄청난 물량이 필요했다.
비용이야 말할 것도 없고, 불필요한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외부의 장인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음, 혹시 몬스터 중에 마법 부여가 가능할 만한 녀석은 없으려나.’
성현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무기에 마법을 부여하려면 까다로운 과정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선 숙련된 기술과 지식을 요하는데, 지능이 떨어지는 몬스터들로선 사실상 무리였다.
사람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지능이 필요한 일.
‘확실히… 그 정도 지능의 수하들도 있으면 편하긴 할 텐데, 문제는 그 정도로 지능이 높은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는단 거겠지.’
입맛을 쩝 하고 다신 성현은 광산의 밖으로 나왔다.
몬스터들의 지능과 성향이 천차만별이라곤 하나, 사람에 가까울 정도로 지적인 몬스터라면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다.
그런 걸 바라기엔 무리라는 말이다.
“키익!”
“뭐야, 다 와 있었네?”
성현이 광산을 둘러보는 사이.
정찰 임무를 맡겨 둔 고블린들이 모두들 다시 돌아와 있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조가 몇 팀 있었지만, 그래도 숫자를 봐선 대부분은 무사히 귀환한 듯 보였다.
“킥, 키익!”
“음… 그랬단 말이지?”
성현은 돌아온 고블린들의 정보를 모두 귀담아들었다.
필드 서쪽에 위치한 호수 주위로 나이트셰이더, 언루트 등 희귀 약초들이 자생하는 장소가 있다고 한다.
둘 모두 연금술에 사용되는 고급 재료다.
망자의 기운을 흡수하며 자라난다는 식물들이었는데, 원체 언데드로 넘쳐나는 땅이다 보니 자라나기 쉬워 대량으로 서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거기에 또 다른 정찰조의 말에 따르면, 멀지 않은 곳에 룬스톤 동굴도 있다고 한다.
돈이 되는 자원임은 물론, 게아드의 승급 퀘스트에 대량으로 요구되었던 재료다.
앞으로도 쓸모가 있을 가능성이 있기에 모두 확보해 두는 편이 좋았다.
‘이 정도면 대략적인 지리들도 거의 파악됐고… 앞으로 움직이는 데에 지장은 없겠어.’
고블린 정찰조 덕에 성현은 잿빛 땅의 지리를 대강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필드 보스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는 것.
“킥! 키익!”
“음?”
그때, 뒤늦게 도착한 정찰조가 있었다.
두 마리의 고블린이 터덜터덜 성현의 앞에 섰다.
꽤나 험난한 여정이었는지 전반적으로 너덜너덜해진 모습.
심지어 삼인 일조로 조를 짰던 걸 생각하면, 한 마리는 낙오라도 됐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이야?”
“키이익!”
두 고블린은 자신들이 얻어 낸 정보를 성현에게 몸짓까지 섞어 가며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잿빛 땅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 거대한 공동묘지.
바로 그곳에 스켈레톤 계열의 필드 보스가 있다고 한다.
“중심부의 묘지라… 고생 많았다. 수고했어.”
고개를 끄덕인 성현은 돌아온 두 고블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돌아오지 못한 나머지 한 마리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럼 바로 가자. 다들 준비해.”
다른 장소에 대한 정보들도 막 얻은 참이었지만, 그가 가장 먼저 향해야 할 곳이라면 뻔했다.
잿빛 땅 내에 있는 스켈레톤들만 최소 일만 마리 이상이었다.
굉장한 힘이 되어 줄 수 있었고, 필드 보스를 잡고 나면 잿빛 땅을 장악하는 게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뭣보다 놈의 손에 쓰러진 고블린의 복수도 해 줘야 하니 말이다.
* * *
“다 쓸어버려.”
“키이이익!”
당당하게 정문을 통해 묘지 안으로 진입한 성현.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림자 속에서 막대한 몬스터 무리들이 쏟아졌다.
고블린과 좀비, 철갑 거미들까지.
묘지 안엔 굉장한 수의 스켈레톤이 있었지만, 성현이 가장 앞으로 치고 나가며 놈들을 모두 베었다.
“조금 더 속도를 내 볼까.”
“구오오오!”
이번엔 성현의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올렉이 맹렬하게 돌진하며 놈들을 날려 버렸다.
보스의 등장에 속수무책으로 뚫리는 묘지의 몬스터들.
필사적으로 그들을 저지하려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스켈레톤 전사의 공격 따위 재생력 특성을 지닌 올렉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입히기엔 무리였다.
앞을 막아서는 스켈레톤 무리들은 그저 올렉의 경험치가 되어 줄 뿐이었다.
콰과과광!
앞장서는 보스의 기세와 위압감에 주변의 스켈레톤들도 위축되는 것은 보너스였다.
반대로 성현의 군단은 더욱 기세가 하늘을 찌르며 놈들을 무섭게 몰아쳤다.
덕분에 성현은 금방 뚫린 길을 통해 묘지의 중심에 닿을 수 있었다.
“여긴가.”
묘지의 중심부에 닿은 성현이 검을 다시 잡았다.
기다리고 있었단 듯이 커다란 석좌 위에 앉아 있던 거체의 괴물.
뼈의 왕 자고스, 스켈레톤 계열의 보스 몬스터였다.
‘저놈이로군.’
두 번째 필드에서 가장 폭 넓게 퍼져 있는 스켈레톤 전사들의 주인.
녀석이 바로 이곳 잿빛 땅의 필드 보스일 것이다.
구구구!
녹색 영혼으로 빛나는 자고스가 안광을 뿜어 대며 몸을 일으켰다.
육중한 갑옷과 철퇴로 무장한 녀석.
보스 몬스터답게 일반 몬스터들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아아아!”
자고스가 입을 딱 벌리며 포효를 토해 냈다.
그러자 퉁퉁퉁 소리와 함께 양옆에 줄지어 놓여 있던 석관들의 문이 떨어져 나갔다.
석관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스켈레톤들.
최소 C랭크대의 몬스터인 해골 기사로 서른이 넘는 숫자가 나타났다.
“음… 해골 기사라.”
놈들을 본 성현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여기까지 길을 뚫어 준 성현의 수하들은 묘지 안의 스켈레톤들이 싸움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상대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조금 다른 전력이 필요하다.
“너희 정도면 충분하겠지.”
스스스슷!
그림자가 펼쳐지며 성현의 양옆으로 홉고블린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정확히 해골 기사와 같은 숫자였다.
“해치워.”
“크아아아!”
시작된 양 괴물들의 싸움.
그사이, 성현은 자고스에게로 뚜벅뚜벅 다가갔다.
본래 자고스를 지켜야 할 해골 기사들은 홉고블린과 싸움을 벌이느라 꼼짝도 하지 못했다.
같은 레벨이라도 보스와 일반 몬스터가 다르듯.
기본적인 특성과 스펙의 차이가 있었기에 홉고블린은 고블린들보다 강한 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때, 자고스의 형체가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눈 깜짝할 새에 성현의 등 뒤편에서 나타난 자고스.
콰앙!
‘미친……!’
몸을 던진 성현은 녀석의 철퇴를 간신히 피했다.
살벌하게 찍힌 바닥은 처참하게 박살이 나 있었다.
‘뭐지? 방금은 좀 위험했어.’
한발 물러선 성현이 검을 바로잡았다.
방금은 순간적이었지만, 그조차 자고스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지 못했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움직임이 상당히 빨랐다.
저게 일반적인 속도일 리는 없고, 놈이 지니고 있을 특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후웅!
또다시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녀석.
일렁이는 놈의 녹색 안광에 더해 마치 착시 현상이라도 보는 듯했다.
그나마 경계하고 있었기에 성현은 놈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하며 몸을 움직였다.
얼굴 앞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철퇴.
‘이거 공략하려면 시간을 꽤 잡아먹을 녀석인걸.’
상당히 까다로운 패턴의 보스 몬스터다.
혼자서 놈을 상대하려면 녀석의 공격 방식에 익숙해지고, 반격 타이밍을 잡을 만큼 분석할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그건 나 혼자 상대할 때의 이야기지.’
촤아악!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니아드라가 거미줄을 뱉었다.
갑작스런 녀석의 등장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자고스는 그대로 맞아 버렸고, 질긴 거미줄에 온몸이 칭칭 감기고 말았다.
거미줄에 묶인 상태에선 방금과 같은 능력을 못 쓰는지 움직임이 현저하게 느려졌다.
콰아아앙!
어느새 자고스의 등 뒤를 점하고 있던 게아드가 몽둥이를 내려찍었다.
몸이 묶인 녀석을 상대로 커다란 몽둥이가 강타하며, 연달아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그아아아!”
휘청거리다 무릎을 꿇은 자고스가 분노에 찬 포효를 토해 냈다.
하지만 분노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녀석이 다시 일어서기도 전에 니아드라가 뱉은 산성액이 자고스의 갑옷과 뼈를 녹였다.
‘바로 지금!’
달려든 성현이 힘껏 검을 휘둘러 녀석의 목을 베었다.
그렇지 않아도 녀석의 방어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그의 검이 지닌 위력이 더해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쿵 소리와 함께 자고스가 쓰러졌다.
기분 좋은 8배의 경험치와 함께, 성현은 그림자를 뻗어 녀석을 네 번째 부하로 만들었다.
[뼈의 왕 ‘자고스’]
[등급 - 우두머리]
[레벨 - 54]
[보스의 위압감], [망령의 혼]
“그어어어…….”
자고스가 성현의 수하로 되살아났다.
잘린 목이 다시 붙으며, 그림자를 몸에 두른 채 일어난 녀석.
[자고스의 모든 수하들이 당신의 그림자를 받아들입니다!]
자고스로부터 그림자가 다시 퍼지며, 묘지 안의 모든 스켈레톤 전사들이 성현의 통제 아래로 들어왔다.
하지만 성현의 정신은 잠시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뭐, 뭐야… 군주급이 아니라 우두머리라고?”
깜짝 놀란 성현이 메시지창을 바라봤다.
상태창에 뚜렷이 쓰여 있는 것처럼 녀석은 우두머리급 소환수였다.
즉, 자고스는 잿빛 땅의 필드 보스가 아니란 소리였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 앞에 그는 잠시 몸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그럼 대체 누가 잿빛 땅의 필드 보스인 거야?’
부스럭!
그때, 옆에서 이상한 기척이 느껴졌다.
묘지의 작은 수풀 사이로 느껴지는 미세한 기척.
하지만 성현의 고개가 그리로 돌아가자마자, 수풀 속에 있던 존재의 기척이 사라졌다.
뒤늦게 수풀 속에 다가간 성현은 이미 떠나간 무언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방금 녀석은 뭐지? 움직임이 엄청 빨랐는데.’
묘지 안에 있는 자고스의 수하였다면, 그의 그림자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만약 다른 몬스터였다고 해도 인간인 그를 본 이상, 본능적으로 공격을 해 오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놈은 수풀 속에 숨어 싸움을 지켜보기만 하다가 사라져 버렸다.
‘몬스터가 그런 행동을 한다고? 내가 잘못 느낀 것도 아닐 텐데.’
뭔가 이상한 느낌에 성현의 고개가 갸웃 돌아갔다.
‘뭣보다 일반적인 몬스터라기보단… 왠지 사람의 형체에 가까워 보였어.’
이런저런 의문이 생기던 바로 그때.
성현의 눈앞에 메시지가 번쩍 떠올랐다.
[돌발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당신을 목격했습니다. 당신에 대해 알리지 못하도록 목표를 추적해 제압하십시오.]
[성공 시, 보상과 함께 연계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목표에 대한 퀘스트 마커가 생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