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고블린은 진보한다
서걱!
검을 휘두른 최철환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철갑 거미들을 떨쳐 냈다.
니아드라의 레벨에 따라 더욱 강해진 데다 특유의 단단한 갑피 덕에 이전과는 달리 D급의 평균적인 헌터 수준으로도 뚫어 내기 어려운 방어력이었다.
하지만 최철환은 B급의 헌터였고, 철갑 거미를 단숨에 베어 가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퀴이이익!”
여러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어도 최철환은 떨쳐 내며 베어 냈다.
하지만 지금 최철환을 둘러싸고 있는 건 고작 수십 마리 수준이 아니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수백의 몬스터 무리.
거기다 비대한 팔이 그를 노리고 내리쳤다.
콰앙!
누더기 군주 올렉이 달려들며 땅을 뒤집어엎었다.
하지만 최철환은 높이 뛰어올라 올렉의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녀석의 살덩이를 크게 베어 냈다.
잘려 나간 올렉의 살덩어리들이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우어어어!”
하지만 올렉은 사납게 포효하며 더욱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재생력 특성을 지닌 보스 몬스터답게 어지간한 공격 정도론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빠른 회복력을 보이며 잘려 나갔던 살덩이가 다시 채워지고 있는 모습.
‘젠장… 저딴 녀석 따위 상대도 되지 않을 텐데.’
원래 최철환의 실력이라면 저 정도 몬스터야 순식간에 몰아쳐 끝장낼 수 있었다.
하지만 옆에서 달려드는 몬스터들의 존재가 문제였다.
보스 몬스터의 경우, 워낙 공격을 버텨 내는 체력 폭이 컸기에, 아무리 B급의 헌터라도 일격에 해치워 버리는 건 무리였다.
그런데 극심한 방해까지 받아서 도저히 마무리를 지을 만한 상황이 못 되었다.
치이이익!
“큭……! 산성인가?”
최철환은 몸을 던지며 니아드라의 산성액을 겨우 피했다.
그를 둘러싼 세 마리의 보스 몬스터.
거기다 수백의 철갑 거미들까지 함께했다.
최철환은 점점 지쳐 가는 중이었고, 체력이 눈에 띌 만큼 빠르게 고갈되었다.
그러던 와중, 날아든 니아드라의 거미줄을 피하지 못하고 발목이 묶여 버렸다.
“젠장!”
최철환은 급하게 거미줄을 뜯어내며 발을 빼냈다.
하지만 그 잠깐의 사이, 이미 게아드의 커다란 몽둥이가 그의 코앞까지 당도해 있었다.
콰아아앙!
“커헉……!”
날아든 몽둥이에 직격당한 최철환은 튕겨져 나갔다.
한참이나 바닥을 구른 그는 충격파를 동반한 게아드의 일격에 순간적으로 정신줄을 놓아 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철환은 거의 바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빠른 속도로 몸을 일으켰다.
B급의 고위 헌터로서 수많은 경험이 쌓아올린 본능과도 같은 행동.
하지만 일어선 그의 눈앞엔 성현이 다가와 있었다.
“노력하는 건 알겠다만, 이만 끝내자.”
빠악!
검 손잡이로 얼굴을 얻어맞은 최철환이 나가떨어졌다.
무기까지 놓쳐 버리며 쓰러진 그는 바닥에서 꿈틀거렸지만, 일어설 시간도 주지 않고서 게아드의 몽둥이가 한 차례 더 그를 덮쳤다.
“컥……!”
요란한 소리와 함께 뼈들이 완전히 부서져 버린 최철환.
그대로 뻗은 그는 더 이상 손가락 하나 까닥일 수가 없었다.
[돌발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큰 격차의 강자를 쓰러뜨려 퀘스트 보상을 수령합니다!]
[모든 스탯이 10만큼 증가합니다!]
‘최철환과 마주했을 때 갑자기 웬 퀘스트를 주더니만… 이것도 쏠쏠한걸.’
퀘스트의 보상을 확인한 성현이 웃음 지었다.
경험치는 주지 않았지만, 스탯 상승분이 그 이상으로 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칭호, 강자강을 획득하였습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 받는 피해량이 10% 감소합니다.]
‘이런 보너스를 얻게 되다니 효과가 상당히 좋은데?’
강자에게 한정되었다곤 하나 받는 피해를 10퍼센트나 경감시켜 준다니 매우 뛰어난 옵션이었다.
처음엔 보너스 수준일 뿐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했던 칭호 시스템도 하나둘 쌓여 가면서 점점 그 진가를 드러내고 있었다.
제각각의 옵션들이 무한정 중복 적용이 되며, 성현의 몸을 강화시키고 있었다.
“음… 일단 상황은 다 마무리된 것 같네.”
옆으로 시선을 돌린 성현이 말했다.
다른 쪽에서 싸우고 있던 화백의 길드원들은 이미 모두 쓰러져 있었다.
최철환이 성현에게 묶여 있는 사이, 쏟아지는 몬스터의 무리에 더 이상 버티질 못했던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갖고 있다니… 대체 넌 정체가 뭐냐.”
“글쎄,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지.”
성현은 검을 들고 최철환에게 다가갔다.
“길드장도 죽고, 금고도 털리고, 건물은 박살 나고. 사실상 화백은 끝났네.”
심각한 타격을 입은 화백 길드.
길드원들을 아예 죽인 것은 아니었지만 부상으로 인해 당분간 꼼짝도 하지 못할 터였다.
수십 명의 길드원의 행동 불능에 막대한 재산 피해까지.
길드가 이만한 피해를 입은 이상, 이 주변 지역에 예전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무리일 것이다.
청성의 산하 길드 자리도 당연히 위태위태할 테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경쟁 길드들이 바로 치고 올라올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구심점 역할을 할 길드장까지 죽었으니, 남는 인원이 뭉쳐 봐야 길드의 존속 여부도 불투명했다.
“멍청한 놈! 이런 짓을 벌이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넌 지금 청성을 건드린 거나 마찬가지다!”
분노에 찬 최철환이 남은 힘을 쥐어짜 소리쳤다.
단순히 소속 길드원 몇 명을 습격하거나, 도둑질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하루아침에 중견급의 산하 길드를 통째로 무너뜨려 버렸으니, 아마 청성이 직접 나설 것이다.
일개 헌터 한 명 따위 얼마든지 짓뭉개 버릴 수 있는 무자비한 거인이 말이다.
푸욱!
성현의 검이 최철환의 심장을 관통했다.
“그거 잘됐네. 내 목적이 바로 청성을 건드리는 거거든.”
피를 쏟아 낸 최철환이 털썩 쓰러졌고, 성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검을 회수했다.
아직은 놈들에게 정면으로 맞설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맞고만 있는 것도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이만 돌아가자.”
스르르륵!
그림자를 회수하며 몬스터를 모두 돌려보낸 성현은 이 모든 흔적들을 남기고서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이건 그가 청성에게 남기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이 시작됐다는 메시지 말이다.
* * *
하룻밤 사이에 초토화된 화백 길드.
워낙 요란하게 일을 벌인 만큼, 이에 대한 소식은 당장 다음 날부터 순식간에 퍼지기 시작했다.
온 채널의 뉴스들이 이 충격적인 습격 사건을 다뤘다.
일반 지역 길드 간의 분쟁도 아니고, 청성의 산하 길드 하나를 초토화시키다니.
처음엔 화신을 비롯한 경쟁 길드가 벌인 소행이지 않을까, 하고 많은 이들이 추측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화백 길드를 전멸시킨 건 집단이 아닌, 개인 헌터 한 명의 소행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혼자서 길드를 쓸어버렸다고?
-금고까지 싹 털어 갔댄다.
-ㅋㅋㅋ 미친, 청성 산하 길드를 자기 돈벌이로 쓴 거네.
-근데 뒷감당 어떻게 하냐? 대놓고 청성이랑 전쟁하자는 거 아님?
-전쟁은 무슨. 지금쯤 어디 으슥한 곳에 파묻혀 있을 거다.
뜨겁게 꼬리를 물며 달리는 댓글들.
강남 지역을 뒤흔드는 특종 뉴스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한바탕 난리가 나고 있었다.
청성에 선전포고를 한 개인 헌터.
홀로 길드를 부숴 버린 것을 보면 보통의 실력이 아닐 텐데, 대체 누가 벌인 짓인지 추측성 글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간혹 S급 헌터들의 이름까지도 언급되고 있는 상황.
당연하게도 이제 막 각성을 한 무명의 신참 헌터일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한편, 소파에 드러누운 채 TV 속 뉴스를 보고 있던 성현은 고소를 머금었다.
“하하, 자식들. 어디 평생 찾아봐라. 내가 잡히나.”
청성 놈들이 일하는 방식을 뻔히 아는 성현이었다.
요란하게 싸움의 흔적을 남기고 떠났다지만, 정작 자신이라고 추측할 만한 증거는 단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청성이 날고 기어 봤자 그곳의 증거만으론 결코 추적이 불가능했다.
“뭐, 당분간 온 사방을 뒤지며 날 찾겠지만… 어차피 나야 잠잠해질 때까지 지하실에 있으면 그만이거든.”
성현이 큭큭 웃었다.
그저 투입된 헌터들만 개고생하며 굴러다닐 뿐.
요즘 같은 시기에 허튼 곳에 인력 낭비를 할 청성 놈들을 생각하니 고소하기 그지없었다.
‘역시 이럴 땐 집 아래 던전이 있는 게 정말 좋긴 해.’
성현이야 어차피 바깥의 던전이나 골치 아픈 일들에 얽히지 않고도 무한한 성장이 가능했다.
놈들이 범인을 잡는답시고 뻘짓을 하는 사이.
성현은 그저 힘과 세력을 더욱 키워 가며 강해지면 되었다.
“그럼 쉬는 건 여기까지 하고… 말 나온 김에 슬슬 움직여 볼까.”
소파에서 일어난 성현은 집 지하실로 내려갔다.
던전으로 진입한 그는 고블린 부락 안에 잔뜩 쌓여 있는 물건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승급 퀘스트에 필요했던 중급 마석과 룬스톤. 흑련과 거래하면서 모두 사 왔지.’
성현은 화백 길드를 와해시킨 이후, 최대한 빠르게 암시장에 들러 흑련 길드와 거래했다.
중급 마석과 룬스톤이 대량으로 필요한 만큼 꽤 큰돈이 들었다.
하지만 화백에게서 빼앗은 무기들을 팔아 버린 덕에, 재료를 모두 구하고도 2천만 원이라는 돈이 그의 수중에 떨어졌다.
덕분에 기존 자금에 대한 지출도 없이 승급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마련할 수 있었다.
‘청성에서 두 눈 부릅뜨고 있는 와중에 빼앗은 장물들의 처분이야 신중해야 하지만… 흑련이라면 세탁과 관련해서는 따라올 곳이 없는 프로니까. 거기다 믿는 구석이 있기도 하고.’
흑련 길드는 서울 전역에서 주로 활동하는 암거래 집단이었다.
청성의 강력한 경쟁자인 화신 길드가 장악한 강북 지역 역시 흑련의 주 활동 지역 중 하나라는 소리다.
때문에 거래에 대해서 청성의 추적도 어느 정도 회피가 가능했다.
물론 아무리 서울 전역에서 활동한다고 해도, 거대 길드인 청성이 작정하고 추적하고자 한다면 꼬리를 밟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점도 성현은 다 고려해 둔 뒤였다.
‘이번에 금고에서 빼돌린 무기들이야 어차피 눈에 띌 만큼 특정 지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야. 그렇다면 청성이 날 잡기 위해서 가장 주시할 건 오킬리아의 눈이겠지.’
오킬리아의 눈.
성현이 화백에게서 강탈한 보석류 아이템이다.
아직 이 세상에 단 2개뿐인 아이템인 데다 수십억 원이나 하는 고가의 물건인 만큼 쉽게 눈에 띄어 추적이 손쉬웠다.
때문에 청성은 분명 시중에 풀릴 오킬리아의 눈을 역추적해 범인을 붙잡으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두 번째 오킬리아의 눈이 시중에 풀릴 일 따윈 없었다.
‘왜냐고? 내가 지금 여기서 써 버릴 테니까.’
달그락!
성현은 인벤토리 안에서 오킬리아의 눈을 꺼내 들었다.
애초에 성현은 오킬리아의 눈을 현금화하려고 챙긴 게 아니었다.
‘물론 승급 퀘스트를 포기하고서 이걸 팔아 버리면 모든 빚을 청산하고 청성과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겠지만…….’
하지만 성현은 그럴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어차피 청성과의 관계를 먼저 청산하고 싶은 생각 따윈 없다.
벌써 길드 하나를 박살 낼 수 있는 비정상적인 성장 속도를 보인 성현이었고, 이미 싸움을 건 이상 끝장을 봐야 했다.
그렇게 오킬리아의 눈을 포함한 모든 재료를 한곳에 모으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터져 나왔다.
[승급 퀘스트가 완료하였습니다!]
[제한 시간 내에 모든 재료를 모으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오킬리아의 눈 (1/1)]
[중급 마석 (100/100)]
[룬스톤 (1500/1500)]
[고블린 족장 ‘게아드’의 승급이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