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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26화 (26/202)

26화 모르면 맞아야지 (3)

후웅!

성현은 높은 담장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가볍게 착지한 그는 담장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주위를 눈에 담았다.

드넓은 마당과 함께 화백 길드의 건물이 디귿자 형태로 놓여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 이 정도 부지라니.

당연히 청성 본사와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헌터 길드답게 돈벌이가 쏠쏠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미리 알아본 구조 그대로네. 길드 금고야 본관 건물 지하에 있을 테고.’

어둠 속으로 숨어든 성현은 기척을 감춘 채 움직였다.

섣불리 건물 안으로 바로 들어가기보다는, 바깥을 돌며 상황을 살폈다.

“젠장, 군대도 아니고 오밤중에 불침번이라니. 웬 미친놈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어쩔 수 없잖아. 차라리 한 놈 소행이면 다행이지. 길드 단위로 전쟁을 하려는 걸지도 모르니까.”

툴툴거리는 두 남자가 성현을 못 보고 그대로 지나쳐 갔다.

아니나 다를까, 화백의 헌터들이 순찰을 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길드 건물에 다수의 헌터들이 남아 있었다.

보이는 인원과 돌아다니는 동선으로만 봐선 최소 수십여 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아예 집으로 퇴근하지 않고 건물 안에서 자거나 순찰하고 있는 헌터들.

나름 비상이 걸렸다고 자각은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뭐, 이 정도 숫자면 딱 적당하네.’

성현은 피식 웃었다.

만약 주목적인 오킬리아의 눈을 얻는 게 전부였다면, 던전의 공격대를 전멸시키기 전에 먼저 이곳으로 침투해 보석을 훔치는 편이 더 간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현의 목적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공격대를 처리한 것은 화백의 헌터들을 한곳에 잔뜩 끌어내 청성에게 메시지를 던져 주기 위함이었다.

달그락.

쓰고 있던 가면을 다시 매만진 성현은 몸을 움직였다.

미리 파악해 둔 CCTV의 위치상, 던전 입구를 드나든 자신의 모습 정도야 확인했을 터.

이 가면을 본다면 적이라는 걸 금방 눈치챌 것이다.

‘저쪽인가.’

시스템이 제공하는 퀘스트 마커는 어느 정도 위치가 가깝지 않으면 생성되지 않는다.

암시장에서 흑련 길드의 보석에 대한 퀘스트 마커 역시 집으로 돌아오자 느껴지지 않았던 걸로 봐선 거리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그리고 화백의 건물에 접근한 지금은 또 다른 퀘스트 마커가 그의 눈에 선명히 보였다.

‘덕분에 헤맬 일은 없어서 좋군.’

본관 안으로 들어간 성현은 어렵지 않게 방향을 잡고 금고가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퀘스트 마커가 저 너머에 표시되어 있는 걸로 봐선 확실했다.

하지만 모퉁이를 돌자, 금고 앞을 지키고 있는 헌터가 있었다.

“너, 넌 뭐냐!”

콰직!

당황한 남자가 검을 뽑아 들려는 사이.

성현은 단숨에 그의 머리를 벽으로 처박았다.

산산조각이 난 벽에서 남자의 머리가 주르륵 미끄러졌다.

“음… 다 들렸을라나.”

아무리 지하라고 한들 주변에 있던 헌터라면 들렸을지도 모르는 소음.

하지만 성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단단해 보이네.’

커다란 금고의 문 앞에 선 성현.

아무리 방심을 하고 있는 길드라고 해도, 보통 전리품이 보관되어 있는 금고만큼은 철저하게 관리되었다.

때문에 철저하게 사전 준비를 하지 않는 이상, 요행으로 어찌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일을 몰래 처리하기 위해선 미리 열쇠나 암호를 구하고, 제법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야만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준비하는 건 좀 귀찮아서 말이지.’

스릉!

성현은 두 손으로 쥔 검을 들어 올렸다.

그가 앞에 선 지하 금고의 문은 던전에서 구한 소재들로 만든 특수한 철문이었다.

두말할 필요 없이, 굉장히 단단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었고, 아무리 헌터라고 해도 이를 뚫어 내기란 매우 어려웠다.

허나 금고의 앞에 선 성현은 힘껏 검을 휘둘렀다.

콰직!

키기기긱!

순식간에 검을 박아 넣은 성현은 그대로 금고의 문을 뜯어내며 통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성현이 지닌 검의 강력한 절삭력.

아무리 던전의 자원으로 만든 금고라고 한들, 어지간한 소재로는 성현의 검을 버텨 내기엔 무리였다.

콰앙!

“간단하게 가자고. 간단하게.”

그렇게 문짝 일부를 뜯어낸 성현은 여유로운 얼굴을 한 채 금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안으로 들어선 성현을 반기는 여러 아이템이 놓여 있었다.

‘역시 노다지가 따로 없군.’

전시하듯 비싼 케이스 안에 늘어서 있는 각종 장비들.

모두 보스들에게서 얻은 전리품들이었다.

화백 길드가 맡아 처리한 각 던전의 전리품들을 처분하기 전에 한데 보관해 놓은 것이다.

경매 등에 올려 판매할 아이템들인 만큼, 값이 어느 정도 이상 되는 것들뿐이었다.

‘승급에 필요한 다른 재료들의 구입비를 이걸 팔아서 구하면 되겠어.’

수십억까진 아니더라도 마석이나 룬스톤 등의 비용도 제법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때맞춰 나타나 준 짭짤한 부수입.

이번에 거래를 튼 흑련 길드에 넘기면 출처 세탁도 간단할 테고 여러모로 딱 맞아떨어졌다.

파앗!

성현은 인벤토리창을 활성화하였고, 내부에 있던 진열대를 박살 내며 아이템들을 모조리 쓸어 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게 남아 있지.’

성현은 휙 고개를 돌렸다.

퀘스트 마커가 둥둥 떠 있는 하나의 진열대.

은은한 마력을 띠며 빛나고 있는 ‘오킬리아의 눈’이었다.

저번에 보았던 것처럼, 확실히 아름다운 자태였다.

‘부자들이 이런 걸 왜 모으고 싶어 하는지 알겠어. 하지만, 내가 조금 더 좋은 곳에 써 주지.’

성현은 오킬리아의 눈을 챙겨 인벤토리 안에 쑥 집어넣었다.

현금이야 당연히 은행에 있으니 챙길 건 없었고, 이것으로 화백의 금고를 완전히 털어 버렸다.

인벤토리창을 슥 치운 성현은 금고에서 빠져나왔다.

“침입자다!”

“본관 지하에서 소리가 났어!”

아니나 다를까, 화백의 헌터들이 바깥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헌터 하나를 제압하고 금고를 잘라 내느라 발생한 소음이 외부에 새어 나간 것이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에 성현은 생각했다.

‘당장 다가오고 있는 건 열 명 정도. 건물 전체로 따진다면 C나 D급의 전력이 수십 명은 될 테지.’

성현 혼자서 헌터 수십 명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츠츠츠츳!

성현의 발아래 검은 그림자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뒤늦게 도착한 헌터들은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저놈은 뭐지? 아니, 그 전에 지하가 왜 이래?”

가면을 쓰고 있는 정체불명의 남자.

그리고 그의 뒤엔 지하를 잠식한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수많은 기척과 함께, 새까만 어둠 속에서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다.

“적당히 쓰러뜨려만 놔. 굳이 죽일 건 없고.”

키이이이익!

“모, 몬스터다!”

“우아아악!”

계단을 가득 채우며 쏟아져 나오고 있는 몬스터들의 무리에 헌터들은 허둥지둥 뒤로 물러났다.

어찌나 기겁을 했는지 건물 밖까지 뛰쳐나왔다.

하지만 몬스터들은 창문과 벽까지 박살 내면서 사방으로 쏟아졌다.

와장창!

“키에에엑!”

“이런 미친! 싸워야 해!”

헌터들은 그제야 무기를 뽑아 들고 대응하려 했다.

하지만 사납게 달려드는 고블린과 좀비들은 고작 열 명 정도의 인원으로 막아 낼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숫자가 너무 많아!”

“그것뿐만이 아니야, 이 자식들 고블린하고 좀비 주제에 왜 이렇게 강한 거야!”

헌터들은 분명 일반적인 고블린을 생각하고 무기를 휘둘렀으나 그건 큰 실수였다.

일반 몬스터와는 확연히 다른 성현의 소환수다.

자신들이 따르는 보스의 레벨을 따라가는 만큼, F랭크대 몬스터에 불과한 일반 고블린들하곤 수준이 다른 것이다.

“이대론 못 버텨!”

“끄아악!”

“세상에,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그러고 있지 말고 어서 와서 도와!”

건물 안에서 자고 있던 헌터들까지 부랴부랴 장비를 챙겨 들고 나왔지만, 이미 전장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수십 명이 전투에 가세해도 여전히 감당하기 어려웠다.

쏟아지는 몬스터는 수백이 아니라 이미 네 자릿수를 넘는 숫자가 되어 있었다.

당장 오늘 낮에만 해도 직원들이 오가던 길드 부지가 이제는 몬스터들로 가득 찬 던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젠장! 이게 대체……!”

“커헉!”

압도적인 숫자의 차이로 쓸려 나가는 헌터들.

하나둘 의식을 잃은 채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때, 여러 마리의 고블린을 일격에 베어 버리며 나타난 헌터가 있었다.

“기, 길드장님!”

“한심하기는.”

화백의 길드장, 최철환이 혀를 찼다.

혹시 몰라 길드에 남아 있었던 그는 현재의 상황을 눈에 담았다.

스스슷.

검은 그림자가 스멀거리는 몬스터들의 모습.

지니고 있는 힘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보통의 몬스터가 아니었다.

“나와라! 이딴 잡몹들 따위로 날 쓰러뜨릴 순 없으니.”

“…확실히 그런 것 같네.”

최철환이 소리치자, 성현은 건물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그의 모습에 최철환은 인상을 찌푸렸다.

“가면을 쓴 건가.”

“내가 부끄럼이 좀 많아서.”

성현이 굳이 그의 앞에 나선 이유가 있었다.

그가 알기론 최철환은 B랭크의 고위 헌터다.

같은 랭크라도 실력의 차이는 있기 마련이지만, 청성의 헌터들과 비슷한 레벨대의 실력자인 것이다.

일반 소환수들만으로 저지하기는 어려운 상대.

성현의 입장에서도 너무 큰 전력 손실은 반갑지 않았다.

“역시 공격대를 습격했던 그 네크로맨서로군.”

“헌터 짬밥이 있어서 그런지 눈치는 있네.”

“끝을 보기 전에 하나 묻지. 어째서 우리에게 접근한 거지? 사주한 세력이라도 있는 거냐?”

“그냥 개인 사정이야. 청성하고 뭐 같은 악연이 있거든.”

“화백이 아니라 청성이라고?”

“왜, 억울한 척이라도 하게? 청성의 이름을 등에 업고 온갖 짓들을 해 먹어 왔으면서.”

청성의 산하 길드들이 어떻게 굴러가는 지, 내부에 있던 성현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단순히 하청이라고 선긋기에는 그들의 수족이나 다름없었다.

각 지역을 맡아 청성을 대신해 온갖 더러운 일들에 손을 대었고, 청성의 이름을 들먹이며 이득을 챙기는 끄나풀이었다.

애초에 이 더러운 업계에 발을 들인 이상, 깨끗한 헌터나 길드라는 게 어디 있겠냐마는.

성현 역시 그저 강남 지역에 넘쳐나는 청성의 끄나풀 중 하나를 미리 쳐내는 것뿐이었다.

앞으로의 복수에 필연적인 걸림돌이 될 녀석들이었으니까.

“물론 억울할 거야 없지.”

최철환이 피식 웃었다.

“애초에 청성이 산하 길드를 두는 이유부터가 바로 너 같은 녀석을 쳐내라는 거다. 귀찮게 직접 나설 필요가 없도록 말이야. 이런 시답잖은 일 따윈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니고, 그 결말은 언제나 똑같았지.”

최철환이 살벌한 살기를 뿌리며 검을 치켜세웠다.

그러자 성현은 경고하듯 말했다.

“미리 말해 두는데, 난 나한테 칼을 들이민 녀석을 살려 둘 만큼 착하지가 못하거든.”

“네크로맨서라고 해도 이만한 숫자의 언데드를 부리려면 상당한 실력자겠지.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무슨 꿍꿍이로 길드에 접근했는지는 조금 뒤에 천천히 들어주지. 먼저 양팔을 잘라 낸 뒤에 말이야……!”

터엉!

최철환은 단숨에 지면을 박차고 내달렸다.

여기 나타난 모든 몬스터들은 저 가면인의 소환수가 분명했다.

그렇다면 소환사인 저 남자만 죽이면 모든 상황은 종료된다.

시체를 조종하는 네크로맨서가 전면에 나선 순간, 이미 큰 실수를 저지른 셈이었다.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걸 후회하게 될 거다!”

“아니.”

카아앙!

두 검이 맞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한 힘에 성현의 발이 주르륵 밀려나긴 했지만, 자세가 무너지거나 칼을 놓치진 않았다.

“어, 어떻게?”

일격을 받아 낸 성현의 모습에 최철환의 눈이 커졌다.

소환수나 동료들의 뒤에서 마법이나 사용하는 네크로맨서가 자신의 검을 받아 내다니.

일반적으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괜히 네 앞에 나섰다고 생각해? 난 다른 네크로맨서들하고는 조금 다르거든.”

“닥쳐라! 그래 봐야 네크로맨서, 주제 파악을 시켜 주마!”

노성을 토해 낸 최철환이 한껏 검을 휘두르며 매섭게 몰아붙였다.

카가가각!

“큭……!”

검을 받아 내는 성현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연달아 몰아붙이는 무지막지한 힘에 팔이 덜덜 떨려 올 지경이었다.

녀석이 보이는 움직임 역시, 여태 마주했던 다른 헌터들과는 차원이 다른 기민함을 보였다.

확실히 길드장의 수준은 달랐다.

‘거기다 아직은 무기도 끄떡없어 보이고.’

성현의 시선이 최철환의 검으로 향했다.

B랭크의 헌터답게 내구성이 뛰어난 무기를 쓰는지, 전처럼 검을 부러뜨리며 요행으로 이겨 내는 건 무리였다.

카앙!

날 선 소리와 함께 뒤로 주르륵 밀려난 성현.

그는 짧게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후…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네. 나보다 훨씬 강해.”

이대로는 제대로 된 싸움이 성립되지 않는다.

상대는 분명 자신보다 강했다.

아직 성현의 힘으론 B랭크의 헌터와 대등하게 싸우는 건 무리였다.

“항복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아니, 내가 왜?”

“내가 더 강하다는 걸 방금 인정했을 텐데.”

“아, 그건 일대일로 붙었을 때 이야기고.”

성현이 피식 웃었다.

그가 마력을 운용하자, 발밑의 검은 그림자가 몸집을 불리며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세 존재들.

“내 주특기를 내버려 두고, 굳이 일대일을 싸워 줘야 할 이유가 없잖아.”

고블린 족장 게아드.

철갑 거미 여왕 니아드라.

누더기 군주 올렉.

세 마리의 보스 몬스터가 동시에 한자리에 소환되었다.

“크아아아!”

“보, 보스 몬스터? 대체 어떻게!”

눈을 크게 뜬 최철환은 제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아무리 뛰어난 네크로맨서라도 보스 몬스터를 일으킨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한데 그것도 모자라, 한꺼번에 세 마리나 되는 보스 몬스터를 불러내다니.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호들갑 떠는 와중에 미안하지만… 아직 안 끝났거든.”

그가 미처 다 놀라기도 전에, 성현은 그림자 속의 존재들을 한 번 더 불러내었다.

까드드득!

성현의 등 뒤로 쏟아져 나오는 수백의 철갑 거미 무리.

최철환은 어느새 세 마리의 보스와 수백의 몬스터들에게 고립된 채 둘러싸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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