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24화 (24/202)

24화 모르면 맞아야지

“어디 보자. 화백, 화백 길드가…….”

컴퓨터 앞에 앉은 성현은 열심히 인터넷을 뒤지고 있었다.

청성 내부의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은 쫓겨나면서 잃어버렸기에 전처럼 깊숙한 정보를 얻을 순 없었다.

‘하지만 대강 기억엔 남아 있어. 찾아보니 어느 정도는 정보들이 공개되어 있고.’

화백 길드라면 이름이 꽤 알려진 중견 길드였다.

제법 널찍한 구역을 맡아 던전을 처리하는 청성의 산하 길드.

이삼십 명의 C랭크를 주력으로 해 D급 헌터의 길드원들이 그 아래에 다수 포진되어 있었고, 길드장은 B랭크의 고위 헌터로 만만치 않은 전력이었다.

‘소속 헌터만 300여 명에 가까운 규모 있는 길드. 나 혼자 덤벼들었다간 무조건 깨지겠지.’

무려 길드 단위의 숫자다.

압도적인 격차의 고위 헌터가 아닌 이상, 헌터 한 명이 맞서기엔 당연히 무리가 따르는 상대.

하지만 성현은 놈들에게 겁을 먹을 필요가 없었다.

‘근데 어차피 300명 다 몰려다니는 것도 아니잖아? 무슨 길드 건물 안에 기숙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헌터들은 길드에 출퇴근했다가 상황이 생기면 현장에 모이는 방식이었다.

그가 노리는 ‘오킬리아의 눈’이라면 길드 금고 안에 보관되어 있을 테고, 성현은 그것만 노리면 됐다.

청성에게 엿도 먹여 줄 겸, 승급 퀘스트를 위해 보석을 빼돌릴 것이다.

‘아니, 아니지……. 얌전히 보석만 훔치고 물러나기엔 당한 게 너무 많잖아?’

가만히 생각하던 성현이 고개를 저었다.

얌전히 보석만 훔치고서 물러나려던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당한 건 배로 돌려줘야 직성이 풀린다.

‘보통 길드라면 모를까, 청성의 산하 길드인데 얌전히 물러나 줄 수는 없지.’

청성의 산하 길드는 일반 지역 길드하고 달랐다.

청성의 직접적인 세력권 안에 있는 길드로, 사실상 한인호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세력이다.

청성의 영향권 아래에서 움직이긴 해도, 엄연히 독립적인 집단인 지역 길드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청성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녀석들. 기왕이면 조금 더 깽판을 쳐 줘야지.’

대형 길드에게 산하 길드는 지역 장악을 위한 기초적인 기반이기도 했다.

산하 길드가 흔들리면 그 위의 길드도 흔들린다.

물론 청성 길드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길드 몇 곳이 사라진다고 해서 타격을 받을 덩치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건 작은 것부터 시작해 나가는 것이다.

대형 길드 간의 싸움에서도 대대적인 전면전을 치르기 이전엔 서로의 산하 길드부터 갈려 나가기 시작한다.

지역의 지지 기반이 흔들리면 아무리 강대한 세력이라도 서서히 흔들리기 마련이니까.

‘최근 수도권이 조용하다지만… 그건 사람들 눈에만 그럴 뿐,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 불과해.’

양대 길드라고 불릴 만큼 청성의 세력은 강대하다.

하지만 대한민국 전체를 지배하는 절대자의 위치는 아니었다.

당장 같은 서울 내에서도 화신이라는 강력한 경쟁 길드가 존재한다.

인천의 백룡 길드는 공격적으로 확장을 시도하며 외부 진출을 노리고 있고, 경기권의 태산과 파천 길드까지 위아래로 거칠게 분쟁 중이다.

언제 대형 사건이 터질지 모르는 폭풍 전야와도 같은 상황이라는 것.

청성의 입장에서도 이런 흐름 속에서 내부에 골칫거리가 생기는 것을 결코 원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놈들에게 그 원치 않을 걸 해 줘야겠다.

* * *

“저기 무슨 일이야?”

“던전이라도 생긴 모양인데?”

펜스가 쳐진 거리에 시민들이 숙덕였다.

대낮의 도심 한복판에 던전이 생겨났다.

도로 아래로 뻥 뚫린 구멍은 금방이라도 몬스터를 뱉어 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탓에 주변 거리까지 함께 통제되며, 주위에 있던 차량들은 옴짝달싹 못 하게 되었다.

몇몇 진상들이 소리치며 짜증을 낼 법한 상황이었지만, 지금의 현장에서는 아무도 불만을 내뱉지 못했다.

어느새 헌터들이 현장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이제 다들 모인 건가?”

커다란 도끼를 지고 있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의 주위론 한데 모인 화백의 헌터들이 서 있었다.

“D급 던전이라고 했지? 미리 보고받은 걸 보면 별 다를 건 없어 보이고. 오늘도 쉽겠네.”

“그래도 언데드 몬스터 상대로 방심은 하지 마. 방심했다가 발목 잘리기 딱 좋은 상대니까.”

“하긴, 던전 이름이 누더기 굴이라고 했나. 지저분한 좀비 놈들 상대할 거 생각하니 벌써 욕이 다 나오네.”

짜증 나는 듯 인상을 확 찌푸린 헌터가 고개를 돌렸다.

마침 주위를 지나고 있던 직원이 있었다.

“이런 개 같은 던전을 물어오는 건 대체 뭐야? 우리 엿 먹으라는 거지?”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야 이씨, 내가 말대꾸하지 말랬지. 어!”

헌터가 직원의 머리를 툭툭 때리며 말했다.

괜히 직원을 갈구며 시작하는 남자의 행태에 옆 헌터들은 잠시 시선을 주고받았다.

“쟤 또 왜 저래?”

“몰라. 어제 기분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보지.”

비각성자인 일반 직원에게 화풀이를 하는 남자.

허나 현장에 있는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광경이었다.

“어이, 그만 가자. 시간 다 됐어.”

도끼를 진 남자가 말했다.

공격대장인 그의 지시가 떨어지자, 헌터들은 각자 무기를 챙겨 들었다.

“여기로 들어가는 거 맞지? 좀 깊은데?”

“쫄았냐?”

“하하, 지랄.”

“잡담은 그만하고 다들 출발해.”

뻥 뚫린 던전의 입구로 다가선 아홉 명의 헌터들은 그 안으로 훌쩍 뛰어들었다.

일반인이라면 두 다리가 부러지고도 남을 높이였지만, 멀쩡히 착지한 헌터들은 문제없이 내부로 진입했다.

던전의 공략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시작인 건가.’

한편, 그 모습을 전부 눈에 담고 있던 성현이 있었다.

거리의 바로 옆 건물 옥상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성현은 아래의 상황을 처음부터 내려다보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이런 옆 건물도 통제해 두는 게 정석이지만… 중견급 길드 현장에서 그렇게까지 신경 쓸 리가 없지.’

호로록.

성현은 컵라면을 한 차례 흡입해 주었다.

입 안을 우물거리면서도 여전히 시선을 떼지는 않았다.

‘주변 거리까지 통째로 통제되어 있는 덕에 일반인들의 시선은 신경 쓸 필요 없군. 따돌려야 하는 인원은 10명 정도인가.’

그가 보는 거리 아래엔 화백 길드의 관계자들만이 오가고 있었다.

현장을 통제하고 헌터들을 지원하기 위해 나온 길드의 직원들.

‘여차하면 모조리 기절시키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도 없겠는걸.’

마침 점심시간이 다가온 참이었고, 직원들은 다 같이 자리를 마련하고서 구석에 모여 앉고 있었다.

정석대로라면 한 명 정도는 입구 앞을 계속 시야에 두며 지키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장일이라는 게 다 그렇듯 FM대로만 흘러가진 않는다.

사실 헌터들이 던전에 진입했을 때가 현장의 길드 직원들 입장에선 가장 긴장이 풀릴 때였다.

스윽.

성현은 인벤토리에서 뼈 가면을 꺼내 들었다.

이 녀석, 쓸모없을 줄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자주 쓰게 생겼다.

‘혹시 몰라 고블린들에게 다른 디자인으로 하나 더 만들어 달라고 했으니, 암시장 쪽에서 움직였던 걸로 꼬리 밟힐 일은 없겠지. 그럼 바로 가 볼까.’

가면을 얼굴에 쓴 성현은 재빠르게 건물 아래로 내려갔다.

직원들이 주린 배를 채워 넣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

기척을 바짝 죽인 성현은 던전의 입구에 다가갔다.

헌터가 작정하고 기척을 숨기면 일반인으로선 직접 눈으로 보지 않는 이상 알아차리기가 어려웠다.

타악!

도로 한가운데 뚫린 구멍 아래로 몸을 던진 성현은 가볍게 착지하며 고개를 들었다.

“오케이, 잠입 성공.”

휘파람을 분 성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던전 안에 바글거리던 좀비 시체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

먼저 진입한 화백의 헌터들이 처리해 놓은 것이었다.

“나 대신 많이도 처리해 주고 있네.”

성현이 피식 웃었다.

보석을 빼돌리러 온 것도 아니고, 난데없이 화백 길드가 담당 중인 던전에 그가 잠입한 이유는 간단했다.

엿을 먹일 거면 제대로 먹여 줘야 했다.

‘그럼 천천히 뒤를 따라가 보자고. 나 대신 녀석들이 실컷 몬스터를 정리해 주고 있을 테니까.’

어차피 바깥 던전은 그에게 영양가가 없었다.

8배의 경험치 보너스를 주는 던전이 집 아래에 있는데, 굳이 여기서 힘을 뺄 필요는 없었다.

지금쯤 저 앞에선 9인으로 구성된 D급 헌터 공격대가 좀비들과 신나게 싸움박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난 어차피 가장 영양가 있는 거 하나만 먹으면 돼.’

성현은 관광이라도 하듯, 느긋하게 던전 안을 걸어 들어갔다.

* * *

“크아아악!”

사방에서 솟구친 좀비들이 마구 튀어나오며 몰려들었다.

“뭐야, 잡몹들 전부 처리한 거 아니었어?”

“방금 또 나온 거야!”

“젠장, 당장 저쪽부터 막아!”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투.

기겁한 헌터들은 달려드는 좀비들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하필 보스를 상대하고 있는 와중에 나타난 몬스터들이라 더욱 골치가 아팠다.

“구어어어!”

비대한 몸집을 지닌 좀비가 매섭게 포효했다.

고약한 악취를 지닌 녀석은 헌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조심!”

“크윽… 저 보스 자식 더럽게 질기잖아?”

누더기 군주 올렉.

D랭크의 보스 몬스터이자, 누더기 굴의 주인이었다.

생명력이 상당히 강한 데다 재생까지 되는 탓에 대미지를 빠르게 누적시키지 않으면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돼!”

“잡몹들한텐 최소 인원만! 다들 보스한테 화력 집중해!”

“구오오오!”

헌터들은 공격을 올렉에게로 쏟아부었다.

아홉 명의 헌터들로 구성된 공격대의 화력은 충분했고, 결국은 올렉의 몸뚱이가 기우뚱 고꾸라졌다.

쿠웅!

“아오, 젠장. 진짜 더러운 놈이네, 이거.”

“휴… 겨우 해치웠어.”

숨을 헐떡이는 화백의 헌터들.

잡몹들까지 잔뜩 숨겨 놓은 골치 아픈 패턴의 보스 몬스터라 체력을 많이 빼앗기고 말았다.

그래도 끝내 녀석을 토벌해 냈고, 헌터들은 전리품을 얻기 위해 다가갔다.

“여기서 좋은 거 한번 떠 줬으면 좋겠는데.”

“그러게 옆 팀에선 웬 보석이 두 개나 나와서 대박 쳤다던데, 우리도 그런 거 한번 못 얻나.”

전리품을 얻기 전에 들뜬 대화를 나누는 헌터들.

하지만 그들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올렉의 시체 주위엔 정체 모를 검은 그림자가 스멀거리고 있었다.

“어? 뭐야, 이거? 루팅이 안 되잖아?”

“미안하지만, 그 녀석 내가 먼저 찜해 둔 거거든.”

“모, 목소리? 어디냐!”

난데없이 들려온 정체불명의 목소리.

깜짝 놀란 헌터들이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타악!

모습을 감추고 있던 성현이 착지하며 나타났다.

비대한 올렉의 시체 위에 올라탄 성현.

“너, 넌 뭐냐!”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지!”

화백의 헌터들이 무기를 뽑아 들며 소리쳤다.

하지만 성현은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쑤욱!

그는 손에서 꿈틀거리는 그림자를 단숨에 올렉의 시체 안으로 집어넣었다.

역시, 뭐든지 날로 먹는 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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