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22화 (22/202)

22화 거래처 구합니다 (2)

-태산과 파천 길드의 충돌이 또다시 빚어지고 있습니다. 충돌 지역 인근의 경기 주민들이 불안감에 떨고 있는 한편, 청성 길드의 한인호 대표는 비각성자 보호 방침을 강화하며 각성자 범죄 예방에 더욱 힘을 싣겠다는 의지를…….

상가 안에 전시된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밖에서 구경하고 있던 교복 차림의 남학생들이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강남에서 활동하는 게 청성이라 다행이지. 솔직히 이런 거 보면 다른 길드들에 비해 양반 아니냐?”

“그야 길드장부터가 괜찮잖아. 일반 직원들한테도 엄청 잘해 준다고 하고, 기본적으로 성격이 좋으니.”

“음, S급 헌터 중에 그만한 사람 거의 없긴 하지. 안재현이나 진서연은 완전 미친놈들이라던데.”

“야야, 밖에서 그런 말 하고 다니다 큰일 난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 뭐래. 하여간 쫄보 쉑.”

멋모르는 중학생들이 낄낄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저 나이대의 남학생들에게 헌터 세계란 동경의 대상이었고, 특히 그 세계의 정상에 서 있는 S급 헌터들이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소식을 주워듣는 일반인들이 내부 사정을 제대로 알 리가 없었다.

그 때문인지 떠들고 있던 학생들의 건너편 인도엔 잔뜩 심통이 난 남자가 있었다.

‘성격이 뭐……? 제일 미친놈더러 뭐라고 하는 거야?’

성현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이럴 땐 귀가 밝아진 게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하여간 청성 놈들 이미지 메이킹 하나는… 한인호, 그 새끼 양심 있으면 홍보팀 연봉이나 더 올려 줘야지.’

어이가 없다 못해 짜증이 확 오르는 바람에 성현은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후, 신경 끄고 내 일이나 하자.”

맨몸으로 길거리를 걷고 있는 성현.

이번엔 그의 집과 제법 떨어져 있는 목적지로 향하는 것이었음에도, 차를 끌고 나오지 않고 도보와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혹시라도 뒤를 밟힐 위험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암시장이라. 내가 이런 곳에 직접 올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성현이 들어선 장소는 서울의 한 뒷골목.

거리상 도심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니었는데, 일반적인 길거리와는 분위기부터가 사뭇 달랐다.

규제나 세금을 피해 온갖 물품들이 거래되는 블랙마켓.

오가는 사람들만 봐도 거의 헌터들이나 업계의 관계자들밖에 없었다.

애당초 일반인들은 존재 자체도 모르는 장소였다.

‘물건의 출처를 세탁해야 하는 나에겐 이만한 판매처가 없지.’

성현은 으슥한 건물의 화장실 안으로 비밀스럽게 들어갔다.

그러곤 인벤토리창을 열어 가면을 꺼내 들었다.

“음…….”

성현은 가만히 뼈 가면을 내려다봤다.

게아드가 쓰고 있는 것과 거의 비슷한 모양새였다.

물론 덩치에 따른 크기 차이야 확연했지만, 누가 봐도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나더러 군주랍시고 이런 걸 만들어 주길래 어디다 써야 하나 했더니만… 마침 활용할 곳이 있긴 있네.’

덜그럭!

성현은 고블린 부족의 뼈 가면을 얼굴에 썼다.

‘역시 디자인이 좀 독특한가……? 괜히 더 시선을 끄는 건 아니겠지?’

거울을 본 성현이 이리저리 얼굴을 살폈다.

고블린들이 온 정성을 쏟아부은 물건인 만큼, 잘 만들긴 했지만 무난한 가면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었다.

‘뭐, 여기서는 상관없겠지. 어차피 암시장이니까.’

성현은 건물 밖으로 나왔다.

본격적인 암시장 거리로 나오니, 그처럼 가면 쓴 이들이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오히려 이곳에선 각자의 가면을 쓰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런 곳에 모이는 이들의 특성상, 정체를 내보이는 게 달가울 리 없었으니 자연스레 이런 문화가 정착된 것이다.

‘보통 이런 암시장에서 방심했다간 온갖 더러운 꼴들을 보게 되기 마련이지만, 다행히 믿을 만한 상대도 있지.’

온갖 술수가 판치는 뒷골목에서 신뢰할 수 있는 집단이 있는 곳.

성현은 외진 건물의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 안으로 들어섰다.

덜컹!

거친 쇠문을 열자,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울 전역의 암거래 유통망을 6할 가까이 장악하고 있는 집단, 흑련 길드가 관리하고 있는 지하 시설이었다.

그가 들어선 곳은 수많은 입구 중 하나일 뿐.

한눈에 보기에도 거대한 규모의 시설이었다.

‘직접 와 본 건 처음인데… 인상적이군.’

다른 암시장처럼 시장 바닥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체계화된 시스템 아래 상당한 물류들이 오가며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앞으로 던전에서 캐낼 성현의 자원들 정도야 거뜬히 소화하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일이 내 계획대로 잘 흘러가 줬을 때의 이야기지.’

당장 그가 지닌 철광석이야 얼마든지 무리 없이 팔아 치울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성현이 던전에서 뽑아낼 자원의 종류나 물량을 생각하면 일반적인 거래로는 곤란했다.

입단속이 철저한 흑련이라고 한들 일반 직원을 상대로 하는 거래로는 한계가 있다.

개인이 이상할 정도로 큰 규모의 거래를 이어 간다면 쓸데없는 소문이 돌거나 불필요한 시선을 끌 수도 있었고, 거래에 있어서도 즉각적으로 소화해 내기 어려웠다.

‘잔챙이급하곤 이야기가 통할 리가 없을 테니 머리 근처에 있는 녀석을 만나야 하는데.’

성현은 다른 곳은 눈에 담지도 않았다.

그는 곧장 지하 시설 중심부에 놓인 흑련 길드의 본거지로 향했다.

커다란 문을 열고 들어선 성현에게 흑련 길드의 직원이 다가왔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흑련과 직접 거래를 하고 싶어서.”

“아, 그럼 저와 말씀 나누시죠.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꼭 당신과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건가?”

“예?”

당황한 직원이 순간 머뭇거렸다.

“아뇨,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다면 난 저쪽 길드원하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성현의 손가락이 곰 가면을 쓴 남자를 가리켰다.

그러자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던 남자는 자신을 향한 시선을 눈치채고는 성현에게 다가왔다.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그래, 맞는 것 같네.”

방금 그 대화 소리를 들었다니.

역시 일반인이 아닌 헌터다.

“뭐, 안 될 건 없지.”

곰 가면의 남자가 손짓하자, 직원은 고개를 꾸벅이고는 사라졌다.

자리에 둘만이 남게 되자, 남자는 입을 열었다.

“굳이 나를 지목한 이유가 뭐지?”

“기왕이면 흑련의 간부와 이야기하고 싶었거든.”

“마치 내가 간부라는 걸 알고 있었단 듯이 말하는군.”

그의 말에 성현은 소리 없이 웃어 보였다.

양대 길드인 청성의 촘촘한 정보망은 뒷세계라고 해도 예외가 없었다.

흑련의 간부들에 대한 정보라면 당연히 빠질 리가 없다.

거기다 현장 지원을 맡고 있던 성현은 평소 다른 청성 직원들에 비해 훨씬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직접 헌터들과 마주하는 일이 잦다 보니, 알아 둬야 할 것도 자연히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감이 좀 좋아서 말이야. 아무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내가 팔고 싶은 물건은 이거야.”

성현은 미리 챙겨 둔 샘플을 건네주었다.

“던전의 철광석이라…….”

광석을 받아 든 곰 가면은 능숙하게 물건을 이리저리 살폈다.

흑련에서 취급하는 물건이 한두 가지도 아니고, 전문가에게 맡길 줄 알았는데 직접 살펴볼 줄은 몰랐다.

각성자라는 건 대강 예상하고 있었는데, 감정이나 통찰에 관련된 특성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보통 이런 물건들은 개인이 들고 와 봐야 죄다 형편없기 마련인데… 이건 품질이 굉장히 좋군. 값을 꽤 쳐줄 수 있겠어.”

“생각보다 솔직한데? 어느 정도는 후려치려 들 줄 알았는데.”

“우리 길드장님의 방침이다. 하루 장사하고 접을 게 아닌 이상, 이 바닥에 신뢰는 생명이니까. 오히려 하는 짓만 보면 양지에 있는 길드 놈들이 더 양아치 같을 거다. 그놈들은 대놓고 쓰레기 짓거리를 하거든.”

“하핫.”

성현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였다.

힘을 쥐고서 눈치 볼 게 없으니 거리낄 것도 없어진다.

“그럼 거래할 건가? 수량은 얼마나 가지고 있지?”

“적지는 않아. 이번에 건네주는 것 말고도 지속적으로 물건이 들어와서 거래할 거고.”

“쓸 만한 공급처라도 있나 보군. 계속 거래를 한다면 우리야 환영이지.”

“다만 구체적으로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조건이 있다.”

“조건?”

곰 가면의 남자가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서 더 이야기가 진전되려면, 그쪽보다 한 단계 위의 사람이 필요해.”

“그건 무슨…….”

덥석!

성현은 우연히 뒤를 지나던 사람의 팔을 낚아챘다.

하얀색 여우 가면을 쓰고 있는 여성은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놀랐는지 제자리에 멈춰 섰다.

“예를 들면 흑련의 길드장이라든가…….”

“이, 이봐! 지금 뭐 하는 거냐!”

곰 가면의 남자가 당황하며 성현의 어깨를 잡았다.

하지만 성현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입을 열었다.

“잠깐 시간 좀 비우지? 당신하고 할 이야기가 있는데.”

길 가던 이를 갑자기 잡아 세운 성현의 생뚱맞은 행동.

허나 당황한 줄만 알았던 하얀 여우 가면 안에선 묘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후후, 이거 재미있는 손님이 찾아왔네.”

가면의 여성.

아니, 흑련의 길드장이 입을 열었다.

“따라와. 내 방으로 안내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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