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거래처 구합니다
폐광 내부에 있는 모든 철갑 거미들에게 그림자가 전이되었다.
아직 살아 있는 녀석들은 물론이고, 이미 성현의 손에 죽어 쓰러져 있던 사체들까지 남김없이 그림자를 뒤집어쓴 채 일어났다.
족히 수백은 되어 보이는 철갑 거미 무리.
심지어 아직 부화하지 않아 둥지 안에 있는 니아드라의 알까지 모두 성현의 수하가 될 녀석들이었다.
“크르르륵.”
“키이익!”
성현의 양옆에 서 있는 니아드라와 게아드.
인간이자 헌터인 자신이 두 마리의 보스 몬스터들 사이에 평화롭게 끼어 있자니 뭔가 어색하기도 했다.
“니아드라, 앉아 봐.”
“퀴익?”
“상태창 보기 불편하니까 앉아 보라고.”
“키익…….”
그의 말에 니아드라는 얌전히 다리를 굽혔다.
[철갑 거미 여왕 ‘니아드라’]
[등급 - 우두머리]
[레벨 - 40]
[보스의 위압감], [단단한 갑피], [산성 부식]
“음…….”
성현은 니아드라의 상태창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가 보스 몬스터를 수하로 들인 건 이번이 두 번째다.
하지만 게아드의 경우와는 몇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소환수의 등급이 ‘군주’가 아닌 ‘우두머리’라는 것.
‘보아하니 군주보다 한 단계 낮은 등급인 느낌인데. 하지만 힘 자체는 니아드라 쪽이 더 강했잖아.’
그뿐만이 아니었다.
니아드라에겐 이름 뒤에 붙어 있던 등급도 없었다.
게아드의 경우, C랭크라는 표시가 붙어 있던 것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아, 혹시 잠재력에 대해 말하는 건가? 당장의 강함보다 잠재 등급을 표기한 거라면 그럴 만도 해.’
머릿속을 번뜩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성현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이제 막 소환수가 된 시점에 40레벨인 것만 봐도 당장은 니아드라의 힘이 더 강한 것이 맞았다.
하지만 니아드라는 이 작은 폐광의 주인일 뿐.
반면 게아드는 숲 전체를 아우르던 필드 보스였다.
숲 전역에 미치고 있던 영향력은 물론이고, 거느리고 있던 수하들의 숫자도 분명 게아드의 우위였다.
레벨 자체는 낮지만, 보스로서의 위상이 다르다는 것.
‘니아드라는 대충 중간 보스급 몬스터라 생각하면 되는 것 같고… 이름 뒤에 붙어 있던 랭크나 승급 시스템은 군주급만 지니고 있는 건가 보네.’
이 지하실의 던전에서 필드 보스로 군림할 정도는 되어야 시스템상 군주 등급의 기준을 통과하는 듯 보였다.
사실 이 폐광만 해도 어지간한 던전의 크기 못지않았지만, 워낙 거대한 던전 안에 있다 보니 존재감이 흐릿한 것이었다.
평범한 D랭크대의 중형 던전이었다면 여기 있는 니아드라도 최종 보스급 몬스터로 취급받으며 군림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러면 퀘스트는 클리어된 셈이로군.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띠링!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철갑 거미 여왕 ‘니아드라’를 처치하여 퀘스트 보상을 수령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힘 스탯이 10만큼 증가합니다!]
[민첩 스탯이 10만큼 증가합니다!]
‘이 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니까.’
성현의 입가가 피식 올라갔다.
레벨업과 각종 보상 메시지들이 겹치며 나오는 소리의 향연들.
연달아 들려오는 소리에 걸맞은 커다란 보상들이었다.
[이름 - 이성현]
[레벨 - 55]
[주요 능력치]
힘: 108 민첩: 96 체력: 91 마력: 83
…….
‘30레벨대에서 단숨에 55레벨이라. 겨우 반나절 사이에 엄청나긴 하네.’
사냥과 퀘스트, 보스 레이드를 포함하여 그는 이번 폐광 공략에서 엄청난 양의 경험치를 얻어 냈다.
단숨에 55레벨까지 오른 데다 20이라는 추가 스탯까지 얻어 냈다.
덕분에 힘 스탯은 벌써 100을 넘어서며 세 자릿수 단위가 되었다.
“좋아. 그럼 이 폐광을 다시 부흥시켜 볼까.”
이제는 일을 할 시간이었다.
물론, 나 말고 마을에서 놀고 있던 백수 언데드들이 말이다.
* * *
카앙! 카앙!
곡괭이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폐광 안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고블린들.
이는 성현이 불러왔던 고블린들 중 사백여 마리가량을 남게 해 철광석을 캐내도록 시킨 것이다.
‘광산 규모가 있다 보니 고블린 몇백 정도는 더 배치시켜도 효율이 좋겠어. 여기저기 수리해야 할 곳도 많고.’
성현은 여기저기를 오가며 현장을 체크했다.
오랫동안 방치된 폐광인 만큼, 통로가 무너졌거나 시설이 파괴된 부분이 많았다.
고블린들을 더 배치해 재건 작업을 거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미 배치된 고블린들이 산출해 내는 철광석의 양 역시 상당했다.
‘그사이에 벌써 이 만큼을 캐낸 건가?’
멈춰 선 성현은 고블린들이 캐낸 대량의 철광석 앞에 섰다.
광산 한쪽에 마련해 둔 창고에 무더기를 이루며 쌓아올려 있었다.
최소 수십 톤 이상은 되어 보이는 양이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아닌데, 벌써 이 정도라니.’
기본적으로 고블린들은 움직임이 민첩하고 손놀림이 빠른 편이었다.
지능이 좋진 못하지만, 그래도 몬스터치고 할당된 몫을 제대로 수행해 낼 정도는 되었다.
덕분에 녀석들은 생각 이상으로 시킨 일을 잘 수행했다.
거기다 성현의 수하들은 보통의 고블린보다 훨씬 강인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 만큼, 더 효율적으로 생산이 가능했다.
‘광산의 보수와 개발이 다 끝나면 생산량이 훨씬 더 늘어나겠어. 우선 여기 있는 물건들부터 챙겨 볼까.’
성현은 창고에 쌓여 있는 철광석들을 모조리 인벤토리로 쓸어 담았다.
끝도 없이 물건들을 집어삼키는 그의 인벤토리.
어느 정도나 담을 수 있는지 시험도 겸한 것이었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철광석 무더기를 담아 버렸다.
“이건 무슨… 무게 제한 같은 건 없는 건가?”
“키익!”
그때, 고블린 한 마리가 캐낸 철광석들을 든 채 뒤뚱뒤뚱 걸어왔다.
성현은 녀석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철광석을 인벤토리에 마저 담았다.
그러자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일을 하러 가는 고블린.
‘그러고 보니 왠지 악덕 사장이 된 느낌이란 말이지…….’
고블린의 뒷모습을 보던 성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저래 봬도 녀석들은 한 번 죽고 되살아난 언데드 몬스터였다.
몸이 고약하게 썩지도 않고, 지속적인 마력 공급 없이도 움직인다고는 해도 분류상으로는 그러했다.
자신들의 군주인 게아드, 그리고 그 위에 선 성현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권속이기도 했다.
때문에 녀석들은 정신적인 피로를 느끼는 일도 없었고, 이런 노동에 아무런 거부감도 느끼지 못했다.
단, 육체가 존재하는 이상 피로를 느끼긴 했기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충분한 휴식 시간과 교대 근무 정도는 배려해 주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역시 근로자의 입장이었기에 그 정도는 양심상 보장해 줄 수밖에 없었다.
본능적으로 인간을 죽이려 들던 몬스터들에게 이러는 것도 웃기는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일은 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네. 남는 인원으론 탐사대도 꾸려서 진행 중이니 숲속의 다른 자원들을 찾을 수도 있고. 겸사겸사 독초나 약초도 보이는 게 있으면 캐 오라고 일러뒀으니.’
그가 장악한 이번 철광산과는 달리, 듬성듬성 자라나는 약초들의 경우에는 큰돈을 만지기엔 무리가 따랐다.
하지만 숲 전체를 뒤지다 보면 새로운 자원이나 희귀한 식물을 찾아낼지도 몰랐다.
간혹 아주 희귀한 약초의 경우, 연금술이나 회복제에 최고급 재료로 사용되어 굉장한 고가에 팔리기도 했다.
‘어차피 청성 놈들에게 몇억 원씩 곧이곧대로 퍼 줄 생각은 없지만,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선 돈 필요한 일이 많아질 테니까.’
벌 수 있는 돈은 최대한 벌어 두는 편이 좋았다.
그의 경험상, 돈이 부족해서 아쉬운 일은 있어도 돈이 너무 많아서 불편한 상황 같은 건 없었다.
‘다만 지금 내가 신경 쓸 문제는… 물건을 건넬 만한 판매처를 구해야 한다는 거겠지.’
아무리 물건들을 잔뜩 쌓아 놔 봐야 팔지 않으면 무용지물일 뿐.
지금 성현이 필요로 하는 것은 돈이었다.
하지만 그는 집 아래 거대 던전이 있다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던전을 공략한 이력도 없이 대량의 철광석이나 다른 자원들을 시중에 내놓았다간 크게 의심을 살 수 있었다.
때문에 물건의 출처들을 적당히 세탁해 주고 고객의 정체엔 관심이 없는, 믿을 만한 거래처가 필요했다.
“그런 곳이라면… 딱 한 곳 알고 있긴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