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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20화 (20/202)

20화 개척은 돈이 된다 (4)

쿠웅!

성현은 손에 쥐고 있던 철갑 거미의 머리통을 내던졌다.

벽과 바닥은 물론, 그의 온몸이 거미들의 피로 물들어 있었다.

엄청난 숫자의 거미 사체들.

이 모든 것이 고작 헌터 한 명이 벌인 일이었다.

[레벨 - 45]

성현은 자신의 상태창을 바라봤다.

그는 이미 폐광 내부에 바글거리던 거미들을 절반 넘게 해치웠고, 45레벨을 달성했다.

수 시간을 쉬지 않고 사냥에 전념한 결과였다.

“드디어 나타나셨군.”

느껴지는 살벌한 기척에 성현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성현의 머리 위로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

그의 뒤편엔 단단한 철갑으로 둘러싸인 거구의 괴물이 있었다.

철갑 거미들의 여왕이자, 폐광의 보스 몬스터인 ‘니아드라’였다.

온 폐광을 들쑤시고 다니며 거미들을 학살한 성현의 행동.

침입자를 자신의 둥지로 유인하려던 니아드라였지만, 결국 참다못해 밖으로 뛰쳐나오게 된 것이다.

“그래, 항상 우리가 찾아가는 것도 이상하잖아. 가끔은 보스들도 마중을 나와 줘야지.”

성현이 피식 웃어 보였다.

하도 노골적으로 기운을 풀풀 풍겨 대길래 되레 밖에서 버티고 있으면 나와 줄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정답이었다.

녀석이 원하던 전장을 피한 것만으로도 이미 시작부터 절반 이상은 먹고 들어갔다.

쿠웅!

심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 대며 한 발자국 더 다가오는 녀석.

다가오는 니아드라의 낌새가 심상치 않았다.

이 폐광 안에 있는 모든 거미들은 니아드라의 알에서 나온 새끼들이다.

그런데 처참히 학살당한 자식의 사체들이 인간의 발치 아래 뒤죽박죽 진탕이 되어 있는 꼴을 보게 된 것이다.

“퀴이이이익!”

니아드라는 걷잡을 수 없이 분노했고, 동굴을 쩌렁쩌렁 울리는 포효를 토해 냈다.

그를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녀석.

성현은 재빨리 몸을 던지며 피했다.

콰아아앙!

동굴의 기둥 하나를 폭삭 무너뜨린 니아드라는 곧장 잔해들을 털어 내고는 씩씩거렸다.

이미 반쯤 이성을 잃은 듯한 녀석의 움직임이었다.

‘화가 잔뜩 났군.’

또다시 그를 향해 달려드는 니아드라.

성현은 옆으로 한 발 비켜서며 녀석의 옆구리에 한 방을 먹였다.

콰악!

니아드라의 철갑을 뚫어 내며 성현의 검이 박혔다.

거인 사냥꾼, 벌레 혐오자, 거미 학살자 칭호를 지닌 성현은 총 30퍼센트의 추가 대미지를 가할 수 있었다.

거기에 그가 지닌 검의 위력까지 더해져, 녀석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입힐 수 있었던 것이다.

“키에에엑!”

하지만 놈은 보스 몬스터였다.

공격 몇 대가 위력적으로 들어갔다고 한들, 곱게 죽어 줄 상대가 아니었다.

콰과광!

니아드라는 무지막지한 괴력을 선보이며 동굴을 뒤흔들었다.

철갑 거미들의 습성이 어디 가지는 않는지 참 요란하게도 싸우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단순 무식하게 날뛰면서 싸우는 게 아니야.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 역시 D랭크의 보스 몬스터라는 건가.’

니아드라의 움직임은 생각 이상으로 민첩했다.

복잡하고 촘촘하게 이뤄진 지형 속 곳곳에 쳐져 있는 거미줄들은 니아드라의 움직임을 도왔다.

덕분에 녀석은 저 덩치와 무게에 맞지 않게 재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나마 놈의 둥지 안에서 싸운 것도 아닌데 이 정도였다.

만약 녀석의 완전한 홈그라운드에서 싸웠다면 더욱 상대하기 까다로웠을 것이다.

‘젠장, 이게 자꾸 걸리잖아.’

성현은 자꾸만 몸에 엉키는 거미줄들을 검을 휘둘러 잘라 냈다.

하지만 그 순간, 니아드라의 입이 쩍 벌어지며 산성액이 뱉어졌다.

“미친!”

치이이익!

성현은 급히 몸을 피했지만, 놈이 뱉어 낸 산성액에 땅이 부식되었다.

살벌하게 녹아내리는 대지에 성현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저건 한 번 맞으면 뼈도 못 추리겠는데.’

산성액만으로 끝이 아닌지, 녀석은 입에서 끈적이는 거미그물까지 토해 냈다.

날뛰면서 온 사방에 산성액과 거미줄을 흩뿌려 대는 통에 골치가 아팠다.

순식간에 뒤편의 벽을 통째로 박살 내며 돌진해 온 니아드라.

간신히 그를 피한 성현은 한 차례 바닥을 굴렀다.

‘정말 요란하게도 부숴 대네. 하지만 그 덕에… 녀석을 불러올 수 있겠어.’

니아드라가 부숴 놓은 이 공간들.

복잡한 폐광의 지형 특성상, 장애물이 많고 공간이 좁아 게아드를 억지로 부른다고 해도 제대로 전투를 수행하긴 어려울 듯했다.

하지만 방해가 되는 벽과 기둥들을 니아드라가 요란히 부숴 주었으니, 더 이상 그럴 일은 없는 것이다.

츠츠츠츳!

“나와라.”

뻗어진 검은 그림자 속에서 고블린의 군주 게아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게아드는 이미 성현을 향해 달려들고 있던 니아드라의 앞을 가로막았다.

콰앙!

게아드가 놈의 머리를 정통으로 내려쳤다.

몽둥이가 직격으로 꽂히자 주위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그 강렬한 충격에 니아드라가 비틀거리는 것은 물론이고, 단단한 철갑 안으로도 그 충격이 전달되었다.

분명한 대미지가 들어갔다.

“퀴이이익!”

“크아아아!”

두 보스 몬스터가 서로 뒤엉키며 혈투를 벌였다.

니아드라가 게아드의 팔을 강하게 물어 피가 터져 나왔지만, 게아드는 그 상태에서 잘도 버티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게아드 역시 보스 몬스터인 만큼, 공격을 받아 낼 수 있는 체력이 일반 몬스터들과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이때 어서 거들어야지……!’

성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게아드와의 협공을 시작했다.

게아드가 놈을 붙잡고 있는 사이, 훌쩍 뛰어올라 니아드라의 등에 올라탄 뒤 검을 내리꽂았다.

콰악!

방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아주 깊숙이 들어간 그의 칼날.

갑피를 절단 내며 들어간 검에 니아드라는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비틀었다.

콰아앙!

니아드라는 온몸을 비틀며 벽으로 들이받았다.

그 반동에 성현은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꽂아 넣었던 검이 빠지지 않아서 니아드라에게선 꽤나 많은 양의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미 상황은 반전되었다.

도망칠 수조차 없도록 양옆에서 녀석을 포위한 성현과 게아드.

갑작스레 등장한 게아드와 함께 협공해 몰아붙이자, 니아드라는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키이이익!”

쩌렁쩌렁 울리는 니아드라의 울음소리.

그러자 온 사방에서 무수히 많은 기척들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이건…….”

폐광 안 철갑 거미들의 움직임.

위기에 처한 어미가 부르자, 거미 떼들이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는 것이었다.

“키익!”

“퀴이이익!”

주변에 위치한 모든 통로에서 철갑 거미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수하 몬스터들을 끌어들이는 능력.

보스 사냥을 할 때 주의해야 할 패턴 중 하나였다.

일반적으로 공략에 나선 중일 때, 이만한 숫자의 수하 몬스터들이 보스와 함께 쏟아진다면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이런 거였나.’

밀폐된 공간에서 공략대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숫자가 몰려드는 상황.

하지만 성현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미안하지만, 부하들이 있는 건 너만이 아니거든.”

성현의 발치 아래, 새카만 그림자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수하를 지닌 보스 몬스터는 녀석뿐만이 아니었다.

칠흑 같은 그림자 속.

엄청난 수의 고블린 군단이 나타났다.

“키에에엑!”

무기를 치켜든 1천의 고블린 무리가 포효했다.

그들의 포효는 거미들을 압도하며 광산을 뒤흔들었다.

* * *

성현의 아래에서 고블린들이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고 한들, 개인 전력 자체는 아직 철갑 거미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고블린의 공격력으론 단단한 방어력을 갖춘 철갑 거미를 홀로 상대하긴 어려웠다.

콰득!

“키에에엑!”

하지만 정작 전투는 그 반대 양상으로 흘러갔다.

성현이 소환한 고블린들이 숫자상으로 명백한 우위에 있었기에 철갑 거미들을 밀어내며 서서히 압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수적 열세를 만회할 만큼 실력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 물량엔 장사가 없는 법.

거기다 우위를 점하고 있는 쪽은 수하들뿐만이 아니었다.

양옆에서 이루어지는 게아드와 성현의 협공에 니아드라는 결국 무너져 내렸다.

[철갑 거미 여왕 ‘니아드라’를 처치하였습니다!]

쿠우웅!

피를 쏟아 내며 니아드라가 쓰러지자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후아, 꽤 애를 먹이는 녀석이었어. 물론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소리지만.”

더 강한 적은 더 강한 수하가 되어 주기 마련.

쓰러진 니아드라의 사체 앞에 선 성현은 팔을 뻗어 그림자 군주의 특성을 발동시켰다.

스멀스멀 뻗어진 짙은 그림자가 녀석의 몸을 잠식했다.

우드드득!

부러진 갑피와 온몸의 상처들이 메워졌다.

그림자와 함께 두 번째 생명을 얻게 된 니아드라는 새로운 주군의 앞에 섰다.

[철갑 거미 여왕 ‘니아드라’]

[등급 - 우두머리]

[레벨 - 40]

[보스의 위압감], [단단한 갑피], [산성 부식]

“퀴이이익!”

우렁차게 외치는 니아드라의 울음소리.

그러자 고블린들과 뒤엉켜 있던 모든 철갑 거미의 움직임이 우뚝 멈춰 섰다.

[니아드라의 모든 자식들이 당신의 그림자를 받아들입니다.]

이것으로, 성현은 폐광 안의 모든 것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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