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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17화 (17/202)

17화 개척은 돈이 된다

“킥!”

“키익!”

고블린들은 기합과 함께 창을 내질렀다.

누군가와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조잡한 모양의 짚 허수아비들을 상대로 무기를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몬스터, 그것도 고블린들이 한데 모여 훈련을 하는 중이라니.

굉장히 기이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저들은 보통의 고블린이 아니었다.

검은 그림자를 품고 있는 성현의 소환수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소환수의 수하들이었지만 말이다.

“팔 조금 더 높이! 제대로 찔러!”

그 한가운데엔 성현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그는 손수 고블린들의 자세를 고쳐 주며 녀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심지어 자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쪽에선 고블린들끼리 서로 실전을 방불케 하는 대련까지 해 나가고 있었다.

이 모든 훈련 과정은 전부 성현이 시킨 것이다.

‘좋아. 생각보다 수월하네. 네크로맨서의 소환수라 명령에 절대 복종해서 그런지 농땡이를 부리거나 말썽 피울 일도 없으니까.’

성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블린들을 지켜보았다.

자신과 싸웠을 때처럼 막무가내로 힘만을 이용해 무기를 휘두르던 것과 달리, 제법 자세가 나오기 시작했다.

훈련의 성과가 꽤나 빠르게 나타나고 있었다.

‘저번 스켈레톤들을 상대할 때 확실히 느꼈어. 내 중요한 전력이 되었으니 던전 입구를 지켜 주는 데 든든한 전력으로 만들어야지.’

사냥을 나간 게아드는 계속해서 반항하는 고블린들을 죽이고 자신의 수하로 만들고 있었고, 점점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게아드는 벌써 이삼천이 넘는 고블린들을 휘하에 거느리고 있었다.

중심부의 영역 주위로 부락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고, 이 정도 숫자의 전력을 그저 방치해 썩혀 두기엔 아까웠다.

‘기왕이면 저 조잡한 무기들도 바꿔 주고 싶지만… 아무래도 지갑 사정상 당분간은 무리겠지. 헌터 무기라는 게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니까.’

일반 날붙이와는 다른 헌터들의 무기.

이삼천이나 되는 숫자의 장비들을 바꿔 주다간 전력 증강이고 뭐고 먼저 파산하고 말 것이다.

“킥!”

그때, 성현을 향해 한 고블린이 뒤뚱뒤뚱 걸어왔다.

팔을 뻗은 녀석의 손엔 우편물이 꾸깃꾸깃 쥐어져 있었다.

“문틈 사이에 끼어 있던 거 맞지?”

“키익.”

“그래, 내가 어쩌다 허락해 줬어도 절대 집 밖으로 나가는 건 안 돼. 혹시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어, 잠깐, 이건?”

흑색 고리를 감싼 푸른 독사의 문양.

기분 나쁜 상징물이 찍혀 있는 우편물이다.

청성 길드에게서 날아든 독촉장이었다.

‘본사에 찾아간 게 어제였는데 벌써 이런 걸 보내다니, 일처리는 쓸데없이 빠르네.’

성현은 받아 든 봉투를 열었다.

안에 든 내용을 읽자, 성현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시작부터 5천이라니, 양심 없는 놈들.”

성현이 혀를 쯧 하고 찼다.

다음 달까지 청성 길드에 내야 할 금액은 무려 5천만 원이다.

이제 막 헌터로 각성한 햇병아리가 감당하기엔 어림도 없는 액수.

사실 예상을 못 했을 만큼 말도 안 되는 액수는 아니었다.

‘달에 5천만 원이라면 1년에 6억… 총액이 95억 원인 걸 생각하면 놈들 성격상 서두른 것까진 아니지.’

매달 5천만 원을 토해 내고도 갚는 데만 15년 넘게 걸리는 거액이다.

이제 막 각성한 헌터에게 5천만 원을 청구하는 것부터가 어이없는 일이긴 하지만, 애당초 그런 걸 배려해 줄 작자들이 아니었다.

놈들이 생각하는 건 오직 자기들에게 유리한 사정뿐이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차라리 잘됐어. 오히려 기한을 늘려 준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이전 청구금인 9억 5천만큼을 토해 내기도 전에 놈들을 돈도 못 받을 상태로 만들어 줄 것이다.

자신이 지닌 능력들과 이 던전과 함께라면 청성을 엿 먹이는 게 가능할지도 몰랐다.

‘어찌 됐건 돈은 필요해. 성장할 시간을 벌기 위해 한두 달 정도는 돈을 내놓아야 할 테니까. 지금 시점에 청성에 맞서려고 하는 건 미련한 짓일 뿐…….’

성현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소속 길드가 없는 개인 헌터의 주된 돈벌이는 보스 몬스터를 처치해 전리품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현은 보스 몬스터를 잡아도 자신이 보유한 특성으로 인해 전리품을 획득할 수 없었다.

‘놀고 있는 고블린들한테 숲속의 약초나 독초를 캐 오라고 할까. 꾸준히 모은다면 제법 돈은 되겠지. 다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텐데…….’

잠시 고민하던 성현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훈련장을 떠났다.

‘일단 몸이나 움직이면서 생각하지, 뭐.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무기를 챙겨 든 그는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어느 쪽을 선택한다고 한들 일단 더 강해져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고, 천천히 고민도 할 겸 몬스터 사냥에 나서기 위함이었다.

아직도 이 드넓은 숲속에 남아 있는 몬스터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컹컹컹!”

어느 정도 깊이 들어가자, 성현의 주위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늑대 몬스터의 울음소리.

아니나 다를까, 부스럭거리던 수풀 속에서 늑대 대여섯 마리가 일제히 튀어나왔다.

정면에서 사납게 달려드는 녀석들을 봐도 성현은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콰과과광!

달려들던 늑대들이 일제히 쓸려 나갔다.

고블린 족장, 게아드가 몽둥이로 놈들을 곤죽으로 만들어 버렸다.

성현은 움푹 파인 땅을 슬쩍 내려다보았고, 늑대들은 원형을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지독한 꼴이 되어 있었다.

“나이스 타이밍.”

“크르륵!”

뒤를 돈 성현이 씨익 웃어 주자, 게아드가 기쁜 듯 반응했다.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에도 계속해서 사냥을 시켜 뒀던 게아드였다.

“동쪽 숲은 좀 어때? 정리됐어?”

“크르륵.”

“하긴 워낙 넓다 보니 혼자서 청소하는 건 무리겠지.”

성현의 명을 따랐던 게아드는 흩어졌던 고블린들의 대부분을 수하로 만들어 낸 듯했다.

하지만 부락을 짓고 살지도, 게아드의 통제하에 있지도 않았던 다른 종류의 몬스터들은 아직도 숲속에 바글바글했다.

물론 그럼에도 게아드가 처리한 몬스터의 수는 굉장했다.

성현이 무기를 구하고, 한숨 자고 있는 동안에도 녀석은 계속해서 사냥을 이어 나갔다.

겉으론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언데드인 만큼 잠을 잘 필요가 없었다.

중간중간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휴식 정도야 취했지만, 사실상 쉬지도 않고서 계속 사냥을 한 셈이다.

“그럼 얼마나 성장했는지 볼까?”

파앗!

성현은 게아드의 상태창을 띄웠다.

[고블린 족장 ‘게아드’(C)]

[레벨 - 24]

[등급 - 군주]

[보스의 위압감], [충격파], [독에 취약]

[소환수는 소환사의 레벨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획득 경험치가 0%의 상태로 고정됩니다.]

‘이런, 레벨을 역전당할 뻔했던 건가? 시스템상 불가능한 모양이지만.’

하룻밤 사이에 성현의 레벨까지 따라잡은 게아드의 레벨.

초과된 경험치는 쌓이지 않은 게 조금은 아쉬웠다.

[레벨을 대한 경험치는 누적되지 않으나, 소환수의 승급에 필요한 경험치량은 그대로 누적됩니다.]

[다음 승급까지 남은 경험치량 - 71%]

‘뭐야, 승급이라는 시스템도 있는 거였어?’

소환수의 승급 시스템이라니.

아무래도 게아드의 이름 뒤에 쓰여 있는 (C)라는 랭크에 관한 이야기인 듯했다.

정확히 뭔지는 알 수 없어도 필요 경험치가 충분히 쌓이면 다음 단계로 승급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이런 게 괜히 존재하는 건 아닐 테고, 지금보다 한 단계 더 강해질 수 있는 시스템이겠지. 아무튼 나도 빨리 성장해야겠어. 소환수 발목이나 잡을 순 없는 노릇이니까.’

헌터가 된 시점이 늦은 만큼 더욱 빠른 성장이 필요했다.

상위 던전을 홀로 클리어해 수억을 벌어들일 수 있을 정도로 성장만 한다면 돈과 시간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뭣보다 청성에게 본격적으로 엿을 먹여 주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

“가자.”

스릉!

검을 뽑아 든 성현은 게아드와 함께 숲속 깊숙이 들어섰다.

그들은 동쪽의 늑대 무리들을 사냥하며 숲을 청소해 나갔다.

콰득!

“키이잉!”

숲 곳곳에서 나타나는 늑대들을 끝도 없이 잡아 대는 성현과 게아드.

둘 중 하나만 하더라도 늑대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는데, 둘이서 함께 사냥을 이어 가니 마주치는 족족 쓰러질 뿐이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분명 성현에 비해 낮은 레벨대의 몬스터라 한 마리의 경험치는 많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8배의 경험치가 적용되는 데다 출몰하는 수가 워낙 많은 덕에 레벨은 생각보다 빠르게 상승했다.

“후, 사냥감이 많은 덕에 성장이 빠른 건 좋은데, 줄어든 티가 거의 안 나.”

널브러진 늑대들의 시체 위.

잠시 숨을 고르던 성현이 생각에 빠졌다.

아무리 숲이 넓다고 한들, 게아드가 하루 종일 동쪽 숲에서 사냥을 했던 걸 생각하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이 녀석들, 아무래도 리젠이 되고 있는 것 같은데.’

생각만큼 줄어들지 않는 몬스터들의 숫자.

전부는 아니었지만, 몇몇은 어제 청소를 마친 곳에서도 또다시 비슷한 숫자의 늑대 무리가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몬스터는 자연 번식하며 늘어난다.

하지만 드물게 몇몇 던전의 경우엔 ‘리젠 장소’라는 게 존재하기도 했다.

특정 장소에서는 몬스터를 죽여도, 시간이 흐르면 비슷한 숫자의 몬스터가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게아드와 둘이서 경험치를 다 뽑아 먹어 가며 천천히 숲을 정리해 나갈 생각이었는데, 만약 리젠이 이루어지는 던전이라면 이런 방식으론 어림도 없겠는걸.’

리젠 장소의 특성상, 많지는 않겠지만 숲 곳곳에 분산되어 놓여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숲을 완전히 청소하기 위해선 각 리젠 장소마다 고블린들을 배치해 둬야 했다.

허나 지금 성현이 많은 고블린들을 거느리고 있다고 해도, 던전의 규모가 워낙 방대해 모든 리젠 장소를 틀어막기엔 턱도 없을 것이다.

그가 서 있는 고블린 숲의 너머에도 엄청난 크기의 던전이 펼쳐져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때, 한 가지 생각이 성현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잠깐, 리젠이 가능한 던전이라는 건… 고블린도 리젠이 된다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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