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히든 옵션 (2)
“예, 예. 황 헌터님, 접니다.”
성현이 들어선 대장간 앞.
수상한 거동의 한 남성이 골목 사이에 숨어 통화를 하고 있었다.
“말씀하신 녀석이 웬 대장간에 들어가 있습니다.”
-음? 뭐야, 벌써 따라붙은 거야?
“예. 조금 전에 외출에서 돌아왔다가 바로 집을 나오더군요. 마침 미행하려던 참에 타이밍 좋게 나타나 줬길래 그대로 뒤를 쫓았습니다.”
-좋아, 잘했어. 소개받은 대로 일처리가 빠릿빠릿하네.
핸드폰 너머로 황일우의 흡족한 음성이 들려왔다.
며칠 전 강일훈에게 모욕을 당했던 그였다.
그때의 앙금을 이성현에게라도 대신 풀기 위해 사람을 붙인 것이었는데, 금방 결과를 가져올 것 같았다.
“애들도 불러왔고, 바로 진행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 내가 그 새끼 때문에 억울하게 당한 게 있거든? 짜증 좀 풀리게 제대로 손 좀 봐줘야겠다.
“혹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을까요?”
-말했잖아. 비각성자라 좆도 없어. 괜히 또 강일훈, 그 인간 귀에 들어가지 않게 동네 양아치인 척 잘 처리해라. 여차하면 죽여도 되고. 조용하게만 처리해.
“예, 명심하겠습니다.”
한태식은 깍듯하게 허리를 굽히고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이번 일의 의뢰자가 무려 청성의 헌터인 만큼 비위를 살살 맞춰 줘야 했다.
“하하, 그런데 이렇게 돈을 공으로 먹어도 되나? 존나 쉽네.”
실소를 터트린 그는 느긋한 표정으로 다음 일처리를 준비했다.
어차피 D급의 헌터인 그에게 일반인 하나 손봐 주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성현이라는 녀석이 대장간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일은 순식간에 끝날 것이다.
* * *
[견고한 장창]
[등급 - 중상급]
[무기 공격력 91~116]
[칠흑빛의 도검]
[등급 - 상급]
[무기 공격력 151~214]
…….
성현은 대장간 안에 있는 여러 무기들을 하나하나 집어서 살펴봤다.
수치화된 데이터들이 한눈에 보이니 수많은 무기를 훑어보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역시 같은 대장장이가 만든 것이라도 어느 정도 성능 차이는 있군. 하지만 그중에서도 미감정 물품이라는 건 하나도 없었어.’
아무리 직접 만든 장비라고 해도 무기에 대한 모든 걸 꿰뚫어 보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상태창의 능력을 지닌 성현은 아니었다.
직접 망치를 두들겨 검을 만들어 낸 대장장이보다도 장비의 성능을 더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숨겨져 있는 무기의 잠재력조차 꿰뚫어 볼 정도로 말이다.
[한기가 도는 허름한 장검]
[등급 - 중하급]
[무기에 알 수 없는 잠재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S급 특성 ‘상태창’으로 감정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오히려 여기 있는 무기들 중에서 제일 떨어지는 것 같은데 말이야……. 시스템이 말하는 거니 헛소리는 아닐 테고.’
검을 유심히 살펴보던 성현이 침음성을 흘렸다.
정확히 어떤 잠재력을 품고 있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무기들은 그런 메시지가 전혀 나타나지 않은 걸 봐선 일반적인 경우는 아닌 것 같았다.
[잠재력을 깨우기 위해 사용자의 마력을 각인시키십시오.]
‘좋아, 해 보면 알 수 있겠지.’
성현은 망설임 없이 녀석에게로 팔을 뻗었다.
약간의 한기를 품고 있는 검을 꽉 움켜쥐었고, 그 안으로 자신의 마력을 밀어 넣었다.
[감정이 완료되었습니다!]
[무기의 숨겨진 잠재 능력이 개방됩니다!]
[해방된 ‘???’의 검]
[등급 - 최상급]
[내구도 - 파괴 불가]
[무기 공격력 741~1056]
[???], [마력 감응], [???]
[운과 실력을 갖춘 장인에게 일생에 단 한 번 찾아온다는 최상의 명검입니다.]
[해당 장비는 사용자의 마력에 감응합니다. 사용자의 마력 스탯에 따라 검의 위력이 증가합니다.]
[아직 발현되지 않은 특성이 있습니다.]
‘이, 이건……!’
진정한 모습을 드러낸 푸르스름한 칼날.
은은한 빛을 띠며 한기를 발하는 명검의 모습에 성현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아무리 검에 대해 문외한이라고 한들, 뛰어난 무구라는 걸 절대 모를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당혹감에 굳어 있던 성현은 바로 검을 움켜쥐었다.
마침 작업을 끝냈는지 밖으로 나온 노인이 다가왔다.
“아직도 고민 중인가?”
“아, 이제 막 고른 참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성큼 다가간 성현이 노인에게 검을 보여 줬다.
그러자 노인의 표정이 약간 찌푸려졌다.
“이걸 갖겠단 건가?”
“예.”
“자네도 무기 보는 눈은 없군. 이건 실패작이야.”
“…실패작이라고요?”
“그래, 나도 처음 다루는 물질을 제련해 만들어 본 것이지. 영석이라는 이름의 한기를 잔뜩 머금은 금속이네. 내 제련 방식과 맞아떨어져 뛰어난 검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전혀 반응을 하지 않았지.”
검을 내려다보던 노인은 쯧 하고 혀를 찼다.
공을 들이고 뛰어난 재료를 쏟아부었던 걸 생각하면, 실험작이라는 걸 감안해도 실패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특성을 통해 감정해 보기 전까진 상태창에서조차 낮은 성능으로 표기하어 있었으니, 노인의 입장에서 실패작으로 여기는 게 당연할 터였다.
“내 실력이 아직 부족한 탓일 게야. 어쨌든 이런 골칫덩이를 자네에게 넘길 수야 없지. 다른 무기를 골라 보게.”
“하지만 이 검이 아니면 안 됩니다.”
“실패작이라는 걸 알고도 원한단 말인가? 혹시 돈이 충분치 못해서 그런 것이라면 괜찮네.”
“아뇨. 값과 상관없이 이 검을 원합니다. 꼭 가지고 싶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럴 순…….”
“부탁드립니다!”
성현이 고개를 푹 숙였다.
당황한 노인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확고한 성현의 뜻에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 느낌이 왔나 보군. 가끔씩 그런 손님들이 찾아오곤 하지. 사람과 검 사이에도 인연이 있는 법이거든.”
노인은 검을 그에게 다시 넘겼다.
그러자 성현의 입가엔 진심 어린 미소가 지어졌다.
“감사합니다. 값은 얼마나 치르면 될까요?”
“아니, 이런 걸 돈 받고 팔수는 없네.”
“예? 아무리 그래도 공짜로 받을 수는…….”
“그럼 나더러 팔려고 내놓은 것도 아닌 실패작을 돈까지 받으란 말인가? 싫다면 검을 내려놓게. 아니면 각성자가 된 기념으로 선물 받았다고 생각하든가.”
너무도 확고한 노인의 태도에 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휙 등을 돌린 노인은 툴툴거리며 다시 작업실 안으로 들어갔다.
“괜히 어디 가서 죽지나 말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던 시절은 잊었는지, 요즘 헌터들은 목숨 아까운 걸 모른단 말이지.”
* * *
무기를 얻은 성현은 대장간 밖으로 나왔다.
분명 그의 손에 쥐어져 있고, 언제든 상태창으로 확인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정말 내가 이런 검을 손에 넣었단 말이야?’
상태창에서 표기된 ‘최상급’ 등급의 검.
무기 등급이 괜히 매겨진 것은 아닌지, 자꾸만 시선을 빼앗기게 되는 자태였다.
‘적혀 있던 무기의 공격력이 이전 등급에 비해 몇 배나 더 뛰었어. 거기다 내 마력에 따라 무기가 더 강해진다니.’
[마력 감응 실패]
[사용자의 마력이 지나치게 미약해 아직 무기에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음… 역시 아직은 반응을 안 하는 모양이지만.’
아무래도 최상급의 검이다 보니 이제 막 각성한 성현의 마력량으로는 턱도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무기에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 해도 파격적인 일이었고, 성현이 강해진다면 자연히 해결될 문제였다.
만족한 표정의 성현은 기분 좋게 걸음을 옮겼다.
“아까 그놈 괜히 자존심 세우다 몇 대를 더 처맞고 간 거야?”
“하하하! 그러게나 말이야.”
한데 골목에 들어선 그의 앞, 웬 건들거리는 남자들이 골목길을 차지한 채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었다.
남 일엔 딱히 관심 없는 성현은 별생각 없이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하지만 가까이 서 있던 남자가 갑자기 뒷걸음질을 치더니, 성현의 어깨와 툭 하고 부딪혔다.
“어? 넌 뭐야?”
“아, 죄송…….”
“조심해야 할 거 아냐, 이 자식아!”
콰악!
불쑥 뻗어져 온 손이 단숨에 성현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손아귀로 느껴지는 강한 힘.
일반인이 아닌 헌터였다.
‘…뭐지?’
성현은 눈을 깜빡이며 상대를 쳐다봤다.
난데없이 시비를 걸어오는 남자들.
혹시나 자신에 대해 알고 온 것은 아닐까 싶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하지만 성현은 놈들 중 한 명이 뺏은 지갑 서너 개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 그냥 양아치였나…….’
각성자면서 일반인 등이나 처먹고 사는 양아치들.
몬스터를 상대하는 리스크는 피하고 싶지만, 편하게 돈은 벌고 싶어 저런 짓을 하는 것이다.
다른 헌터들은 최소한 던전을 처리하며 어느 정도 공헌을 하는데, 이런 놈들은 헌터라고 불릴 자격도 없었다.
“에헤이, 또 왜 그래. 죄송하다잖아.”
“아, 좀 놔 봐. 이 새끼가 열 받게 하잖아.”
동료들이 말리자, 남자가 건들거리며 멱살 쥔 팔을 흔들었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한, 다분히 허세 섞인 행동이었다.
“…….”
성현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헌터가 아니었을 때조차 이런 동네 양아치들에게 멱살을 잡힌 적이 없었다.
아무리 내부에서 무시하고 직원들을 수족처럼 부려 먹어도, 일단 청성의 식구인 이상 외부인 따위가 건드렸다간 피를 보게 된다.
사회에서 절대 을인 비각성자라고 해도, 청성의 소속인 이상 다른 헌터들에게 해코지 당할 걱정은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 점은 일반 직원들에게 청성이라는 간판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메리트 중 하나였다.
아무리 직장 생활이 엿 같아도 성현이 길드에서 계속 일하던 이유이기도 했고.
“이거 놓지?”
“어쭈, 이것 봐라.”
예상 못 한 대답에 아니꼬운 듯한 눈빛이 그에게 꽂혔다.
하지만 성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런 녀석에게 멱살을 잡혔는데, 허리를 굽히고 넘어갈 만큼 자존심이 없진 않았다.
타악!
성현은 단숨에 멱살을 쥔 남자의 손을 쳐 냈다.
내쳐진 남자의 손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자 그의 표정은 잠깐 동안 당혹감이 스치더니 곧 분노로 차올랐다.
“이 새끼가……!”
그뿐만이 아니라, 녀석의 다른 동료들까지 순식간에 성현의 주위를 둘러쌌다.
순식간에 험악해진 분위기.
방금 손에 실린 힘으로 성현도 헌터라는 것쯤은 알았을 터.
하지만 실력에 자신이라도 있는 건지 물러서지 않는 남자였다.
“지금 해 보자는 거지?”
“네가 정 원한다면?”
“좋아. 너희들은 빠져 있어. 이 새끼는 내가 손봐 줄 거니까.”
남자의 말에 불량배들은 몇 발자국씩 물러났다.
하지만 여전히 성현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고, 흉흉한 눈초리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쩐지 비각성자 주제에 배짱을 부린다했더니… 뒤늦게 각성이라도 한 거였나? 멍청한 놈.’
한태식은 비열하게 입가를 비틀었다.
들었던 것과 다르게 헌터라는 사실에 잠시 놀라긴 했지만, 이제 와서 각성해 봐야 수습 헌터 수준일 터.
오히려 짓밟는 맛이 더 있을 것 같았다.
“헌터랍시고 자존심 부리는 건 이해한다만, 상대를 잘못 골랐어. 이래 봬도 D랭크에서 은퇴한 몸이거든.”
“네가 D랭크 헌터였다고?”
“왜, 이제 와서 후회돼?”
검을 뽑아 든 한태식이 히죽였다.
자신감 넘치는 그의 모습에 성현의 머릿속은 조금 복잡해졌다.
‘D랭크 헌터가 뭐 하러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 일반인 지갑이나 뜯고 다닐 레벨이 아닌데.’
D급 헌터라면 충분한 경험이 쌓였을 단계이고, 어딜 가도 애송이 소리는 듣지 않을 터였다.
수습 단계만 넘으면 되는 E랭크와는 달리, 재능의 한계에 발목이 잡힌 수년 차 베테랑도 꽤나 포진해 있는 단계이기도 했다.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인지, 동네 양아치치고는 과분할 정도의 높은 수준이었다.
‘아무튼 조금 곤란하게 됐어.’
D급 헌터라면 그의 입장에서도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아무리 성현이 S등급 특성을 두 개나 얻었다고 한들, 헌터에게 경험이란 빼놓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각성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성현으로선 상대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는 녀석.
거기다 지켜보고 있는 주변 헌터들도 언제 검을 뽑아 들지 몰랐다.
‘사실 게아드와 고블린들까지 소환한다면 얼마든지 압도할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시선을 끌어선 곤란해.’
성현의 눈동자가 재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당장 보는 눈은 없다고 해도 대로변과 멀지 않아 과도한 소란이 일 수 있었다.
그가 지닌 S급 특성 ‘그림자 군주’가 워낙 전무후무한 특성이다 보니,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온갖 날파리와 길드 놈들이 꼬일 터.
그때부턴 일은 걷잡을 수 없이 꼬이게 된다.
‘그래도 일대일 대결이라면…….’
스릉!
성현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마주 선 한태식의 입가가 가소롭다는 듯 비틀어졌다.
“하, 대체 무슨 자신감인가 했더니 그딴 싸구려 검으론 뭘 하겠다는 거지?”
“뭐? 싸구려……?”
코웃음 치는 상대의 반응에 조금은 당황한 성현이었다.
하지만 곧 어떻게 된 일인지 눈치챘다.
‘이게 제대로 보이지 않는 건가?’
성현은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남들의 눈에는 그저 허름한 검으로 보일 뿐.
마력을 각인시킨 성현에게는 이 검의 본모습이 보였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감정되지 않은 이전의 상태 그대로 보이는 것이었다.
“하, 재미있네.”
“재미있긴 뭐가 재미있어, 이 새끼야!”
한태식은 힘껏 지면을 박차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망설임도 없이 성현을 죽여 버릴 기세로 휘두른 검격이었다.
카앙!
허나 섬광이 번뜩이며 그의 검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두 동강이 난 채 바닥에 떨어진 검 조각들.
“어… 뭐야……?”
두 동강이 난 검 앞에서 한태식은 꼼짝 없이 몸이 딱 굳어 버렸다.
몬스터를 베어야 하는 헌터의 무기들은 남다른 내구성을 지닌다.
두꺼운 비늘과 갑피들까지 갈라야 하는 만큼, 보통 헌터들 간의 대결 정도로는 흠집조차 나지 않는 게 정상이었다.
퍼억!
“컥……!”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한태식이 바닥에 엎어졌다.
새하얗게 질려 창백해진 그의 얼굴.
그 얼굴을 잘근잘근 밟아 준 성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제 재미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