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히든 옵션
키이이익!
수백의 고블린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며 전장을 휩쓸었다.
분명 맞붙은 이들의 숫자 자체는 스켈레톤이 더 많았다.
허나 성현의 수하가 된 고블린들은 더 이상 F랭크 던전에나 나오는 일반 고블린이 아니었다.
무려 21레벨대의 고블린들.
겉모습은 크게 달라진 바가 없어도, 알맹이는 전혀 달라졌다.
반면 스켈레톤들의 수준은 고작 한 자릿수 레벨에 불과했고, 게아드의 스펙에 따라 함께 강해진 고블린들에게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콰아앙!
홉고블린들이 앞장서며 스켈레톤들을 분쇄하고 있는 모습.
집을 지킬 병력을 남겨 놓은 것은 물론, 보스 몬스터인 게아드는 부르지도 않았다.
여긴 8배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던전이 아니었다.
한창 사냥 중일 녀석을 불러 봐야 성장에 방해만 될 것이다.
“음, 벌써 끝난 건가?”
“키에에엑!”
스켈레톤을 모조리 전멸시킨 고블린들이 무기를 치켜들었다.
혼자서 처리했다면 족히 1시간은 넘게 걸릴 만한 숫자를 눈 깜짝할 새에 정리해 버린 위력.
이것이 바로 머릿수의 힘이었다.
‘…이걸로 확실해진 것 같네. 앞으로의 방향성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혼자서 던전 속의 몬스터들을 모조리 토벌하는 건 많은 시간이 걸리고 정신적, 체력적으로도 지치는 일이었다.
때문에 동료 없이 혼자서 활동하는 헌터들은 많지 않았다.
S급 헌터들이야 혼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극소수일 뿐이었다.
하지만 성현은 그런 팀원을 구할 필요가 없었다.
수많은 몬스터들이 그의 그림자 속에 있었고, 그와 함께 끝없이 강해질 수 있었다.
뒤통수를 걱정할 필요도 없는 확실한 동료이자 부하들.
“키익!”
성현은 옆에서 촐싹거리는 고블린의 머리를 지그시 눌러 주었다.
‘오히려 얼빵한 대다수 헌터들보다 훨씬 나아. 최소한 내 지시는 철저히 따르니까.’
S랭크의 능력을 숨겨야만 하는 성현의 입장이다.
혼자서도 문제없이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은 꽤나 중요한 점이었다.
스르르륵!
성현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고블린들은 다시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원래 있던 장소인 지하실의 던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콰득!
검을 뽑아 들고 다가선 성현은 던전의 마력 기둥을 산산이 부쉈다.
이것으로 던전의 결계는 파괴되었다.
내부의 토벌을 끝낸 성현은 던전 밖으로 슬쩍 빠져나왔다.
‘예상했던 대로… 바깥은 거의 다 정리가 되어 있네.’
성현이 던전을 빠져나오는 사이, 결계가 깨지며 시민들은 속속들이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덕분에 이쪽으로 크게 시선이 쏠리지 않았다.
“이쪽이야!”
“결계는 없어진 건가?”
뒤늦게 연락을 받은 헌터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이런 일에 청성이 직접 움직였을 리는 없고, 인근 지역의 길드에서 급하게 뛰쳐나온 모양이었다.
미안하지만, 한발 늦었다.
‘어차피 돈이 될 만한 던전도 아니었으니… 적당히 뒤처리만 해 줘.’
덜컥!
차에 올라탄 성현은 유유히 현장을 떠났다.
귀찮은 던전의 폐쇄 절차는 저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맨날 하던 뒤처리를 안 하자니 왠지 날로 먹는 느낌이었지만, 헌터가 된 마당에 그런 걸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 * *
“참나, 무슨 그런 일을 다 겪어 가지곤…….”
성현이 투덜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갑자기 생겨난 체감상 8분의 1짜리 던전 탓에 쓸데없이 시간만 잡아먹고 말았다.
‘그래도 제대로 바깥바람 쐬고 다니니 좋네. 근심 없이.’
성현은 자신이 도착한 거리를 둘러보았다.
헌터와 관련된 물품들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거리답게 온갖 상가들이 줄지어 있었다.
거리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는데, 오가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각성자였다.
무기를 구하러 온 성현에겐 최적의 장소다.
‘실장직 달기 전에 헌터들 심부름 다니느라 여러 번 왔었지.’
그가 걷는 길가엔 여러 상가들이 있었지만, 성현은 거들떠보지도 않고서 거리의 한쪽 구석으로 향했다.
대로변과는 떨어진 외진 곳답게 조금 전과는 달리 오가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허나 성현은 망설임 없이 한 대장간 안으로 들어섰다.
머리가 희끗한 노년의 남성이 땀을 식히며 서 있었다.
“자네는……?”
들어선 성현을 발견한 대장장이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성현은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르신.”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따로 청성에게 의뢰받은 물건은 없는 걸로 아는데.”
“이번엔 길드 일 때문이 아닙니다.”
성현은 눈앞의 대장장이를 바라봤다.
분명 여기저기에 이름이 알려져 있는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다.
허나 유명세를 싫어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뿐 굉장히 실력 있는 장인이었다.
그 깐깐한 청성의 헌터들 중에서도 몇몇은 여기에 주문 제작을 맡겨 가져오도록 심부름을 시키곤 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성현도 이곳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고.
“제 무기를 구하러 온 거죠.”
“허허, 뒤늦게 각성이라도 한 건가?”
“예. 길드도 그만뒀습니다.”
정확히는 쫓겨난 거였지만, 거기까지 이야기할 필요야 없겠지.
농담으로 던진 말에 진지한 대답을 내놓은 성현이었고, 대장장이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대장장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각성자가 되었단 말이지……. 그래, 늦은 감이 있지만, 잘된 일이군. 그럼 편히 구경하게.”
“이제 막 각성한 풋내기 헌터에게 무기를 내주시는 겁니까?”
“자네도 그럴 줄 알고서 찾아온 것 아닌가? 괜한 소리 말고 찾아보기나 하게. 자신에게 맞는 무기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콧방귀를 뀐 대장장이는 안으로 들어갔다.
어김없이 대장간 안에선 망치질 소리가 들려왔다.
“좋아, 그럼 느긋하게 구경해 볼까.”
만족스러운 표정을 한 성현이 허리에 손을 얹었다.
주위에 진열되어 있는 수백 개의 무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값을 아무리 내어준다고 한들 아무에게나 장비를 건네주는 노인이 아니었지만, 이미 허락을 맡은 성현은 이 중 마음에 드는 걸 고르면 그만이었다.
‘물론 값은 제대로 치러야겠지만.’
헌터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굉장한 고가를 자랑한다.
지구에서는 나지 않는 광물과 재료들을 특수한 방식으로 제련해 만든 무기니 당연했다.
거기다 다른 차원의 물질을 다룰 수 있는 건 오직 생산직 재능이 있는 각성자들 뿐이었다.
방금의 노인 역시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는 아니었지만, 대장장이의 특성을 지닌 각성자였다.
이렇듯 희소성과 장인의 몸값까지 합쳐져 헌터용 무기는 어마어마한 몸값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나름 모아 둔 돈이 있으니 감당할 수 있겠지. 조금 무리한다고 치고… 가급적이면 2천만 원 안에서 해결을 봐야 할 텐데 말이야.’
엄청난 빚에 발목이 잡혀 있는 와중에 일류 무기를 구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어차피 지금 성현의 수준에선 그 정도 무기까진 필요하지도 않았다.
당장 쓸 적당한 무기 정도만 있으면 됐다.
‘도검? 단검? 아니면 쓰던 대로 창을 계속 밀어 볼까.’
성현은 이것저것 들여다보며 무기들을 구경했다.
하지만 제법 시간이 흘러도 그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으음… 역시 쉽지가 않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어떤 게 좋은 무기인지 가려낼 길이 없으니.’
대장장이의 재능을 가진 각성자가 아닌 이상, 무기를 고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같은 각성자라 해도 몬스터를 잡는 헌터였지, 무기에 대한 지식이 생겨나는 건 아니니 당연했다.
그나마 성현은 이쪽 업계에 몇 년이나 몸을 담고 있었기에 형편없는 쓰레기들은 구별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어디 가서 거하게 사기를 당할 일은 없겠지만, 그것과 좋은 무기를 가려내는 건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였다.
‘설령 좋은 무기를 골라낸다고 한들 자기한테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거니까. 후, 이대로 고민만 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일단 아무거나 한번 휘둘러나 볼까?’
성현은 손을 뻗어 기다란 검 하나를 덥석 집었다.
[한기가 도는 허름한 장검]
[등급 - 중하급]
[내구도 - 단단함]
[무기 공격력 51~76]
[칼날을 뽑으면 형편없는 외양이 드러납니다. 장인의 실력에 비해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검입니다.]
‘허… 뭐야, 이런 것도 보이는 거였어?’
성현이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상태창 특성이 무기에 대한 정보까지 알려 줄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런 것에 놀라는 것도 잠시.
또 다른 메시지가 그의 앞에 주르륵 나타났다.
[미감정 물품 발견!]
[무기에 알 수 없는 잠재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S급 특성 ‘상태창’으로 감정할 수 있습니다.]
“숨겨진 잠재력… 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