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역체감 (2)
콰직!
두개골에 정확히 꽂힌 성현의 주먹.
스켈레톤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한참을 나가떨어졌다.
이것으로 던전 밖으로 빠져나왔던 스켈레톤을 마지막 한 마리까지 모조리 처치했다.
“아니, 어떻게 저걸 맨손으로…….”
“E급 헌터입니다. 스켈레톤 한두 마리 정도는 맨손으로도 처리할 수 있습니다.”
다가온 성현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하지만 질문을 던진 수습 헌터는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아무리 E급 헌터라도 권투사도 아닌데 몬스터를 단 한 방의 일격으로 쓰러뜨리다니.
여기 있는 세 명보다도 더 많은 수의 스켈레톤을 쓰러뜨린 성현이었다.
“아까 대답을 못 들어서 그런데, 혹시 남는 무기 있습니까?”
“아, 아, 예! 있습니다. 현석아, 차 트렁크!”
마침 수습 헌터들의 차 안에는 여분의 검이 남아 있었고, 그걸 허겁지겁 성현에게 건네주었다.
검을 건네받은 성현은 검을 살짝 쥐어 보았다.
수습 헌터들이 사용하는 저가용 검이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허접한 품질이었다.
‘음, 나쁘지 않네.’
하지만 성현은 어제까지만 해도 고블린들이 쓰는 창까지 주워다 쓰던 입장이었다.
이 정도 검이면 급하게 쓰기엔 나쁘지 않았다.
“그럼 잠깐만 빌리겠습니다.”
“아, 네. 물론이죠.”
남자가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목숨이 걸린 와중에 저런 검이야 아예 달라고 해도 기꺼이 줄 수 있었다.
“…….”
성현이 검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사이.
잠깐의 침묵이 감돌았고,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성현에게로 향했다.
방금까지야 수습 헌터 셋이 주도했다지만, 이젠 E급 헌터인 그의 말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일단 몬스터가 나타난 게 이것으로 끝났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던전 안으로 직접 진입하는 편이 나아 보이고요.”
“예? 하지만 그냥 여기서 구조를 기다리며 최대한 버티는 게 더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성현의 말에 놀란 헌터가 물어왔다.
“아무리 E급 던전이라고 해도 이런 류의 결계를 뚫으려면 두세 시간은 걸릴 겁니다. 시민들까지 지키면서 그 시간 동안 버티긴 어렵고요.”
“그래도 던전 안에서 싸워 주는 것보다야 입구를 최대한 막고 버티는 편이…….”
“아뇨. 분명 던전이 생긴 지 몇 분도 되지 않았죠. 그런데 벌써부터 밖으로 쏟아져 나온 걸 보면, 던전의 성향 자체가 몬스터를 내보내는 쪽에 특화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런 것 정도는 교육받지 않았습니까?”
“아…….”
헌터들은 그제야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성현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럼 세 분은 혹시 모르니 입구를 지키고 계시죠. 저 혼자 던전을 공략하고 오겠습니다.”
“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안 됩니다!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요!”
“맞습니다. 아무리 E급 헌터라고 해도, 던전을 혼자서 토벌하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입니다. 다 같이 죽자는 이야기밖에 안 돼요.”
이번엔 꽤 강경한 반대 의견들이 돌아왔다.
더군다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시민들도 웅성거렸다.
역시 쉽게 받아들여질 이야기가 아니었다.
‘음…….’
성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히 일반적으로 생각한다면 저들의 말이 백번 옳았기 때문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면 계획을 조금 바꾸어야 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따라오시죠. 오늘 다른 중요한 용건도 있으니, 빠르게 처리합시다.”
* * *
우우웅!
성현과 헌터들은 던전의 입구 안으로 진입했다.
중소형의 규모.
성현의 집 지하실에 있는 미친 던전에 비하면 개미 눈곱만도 못한 크기였지만, 수습 헌터들이 접할 만한 던전 중에선 제법 큰 던전일 것이다.
꿀꺽.
바짝 긴장한 수습 헌터들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외부의 도움 없이 철저히 이곳 헌터들만의 전력으로 해결을 해야 하니 더욱 중압감이 심했다.
“저기 옵니다. 다들 집중하세요.”
아주 미세한 소리를 듣고서 제일 먼저 눈치챈 성현이 검을 들었다.
따다다닥!
아니나 다를까, 스켈레톤들이 모퉁이에서 우르르 몰려왔다.
성현은 먼저 달려가 밀려드는 해골에 맞서 맹렬하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수습 헌터들도 정신을 차리고서 함께 전투에 참여했다.
콰직!
끝도 없이 몰려드는 스켈레톤의 무리들.
원래대로라면 감당하지 못할 숫자였지만, 성현이 중심에서 물량을 받아 주다 보니 수습 헌터들도 나름 잘 따라왔다.
성현은 나머지 세 헌터가 잡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많은 몬스터들을 처치해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던전을 나아간 지 10여 분째.
‘와, 원래 이 정도쯤 잡았으면 레벨업 한 번쯤은 해야 하는데…….’
기다리는 메시지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8배라는 경험치 보너스가 없는 던전에서 사냥을 진행하자니 숨이 턱 막히는 답답함이 동반되었다.
이 속도라면 던전을 홀로 싹 밀어 버려도 레벨업은 턱도 없을 것이다.
전에는 불편함 없이 사용했다고 한들, 수십만 원짜리 이어폰을 한 번 써 본 뒤엔 싸구려 이어폰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던전의 역체감이 엄청났다.
“하다 하다 내 집 던전이 그리워질 줄이야.”
“예……?”
“아니, 아닙니다.”
조용히 중얼거리던 성현이 급히 손을 내저었다.
설마 이런 전투 중에도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다니.
수습이긴 해도 저들도 헌터라는 사실을 잠깐이지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나마 제대로 듣지 못한 게 다행이었고, 성현은 더욱 속도를 내며 몬스터들을 잡아 나갔다.
콰앙!
그렇게 해서 도달한 던전의 마지막 장소.
석문을 발로 차 부순 성현은 텅 비어 있는 거대한 방 안에 진입할 수 있었다.
“어? 뭐야. 여긴 아무것도 없는데?”
“아무래도 보스 몬스터가 없는 모양인가.”
“하긴 낮은 등급에선 그런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고 하니까.”
“휴, 다행이다. 죽는 줄 알았어.”
바짝 긴장하며 들어간 마지막 공간이었지만, 그곳엔 아무 몬스터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덕에 수습 헌터들의 긴장감도 탁 풀렸다.
하지만 그때 성현이 한 마디 거들었다.
“방심하진 마세요. 보스 몬스터가 없으면 다른 패턴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다른 패턴이요? 뭘 말하는 거죠?”
“…다음에 설명해 드리죠.”
어느 길드에서 교육받고 있는지는 몰라도, 교육 수준이 영 엉망이다.
‘뭐, 그래도 정말 이게 끝인 걸 수도 있으니까. 이제 저것만 부수면 끝이겠군.’
방 한가운데에 위치한 커다란 마력 기둥.
저것이 바로 결계를 유지하는 동력원이었다.
저걸 파괴하면 갇혀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던전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끝내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콰득!
콰드득!
그들이 방의 중심부로 다가간 순간.
땅속에 파묻혀 있던 스켈레톤들이 일제히 일어서며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런 패턴이었던 건가.”
커다란 방을 가득 채운 해골의 무리.
방금까지와는 다르게 탁 트여 있어 엄폐할 공간도 없었고, 그들이 들어온 입구 밖에서도 몬스터가 나타나며 안으로 들어섰다.
“수, 숫자가 너무 많아요!”
“이걸 어떻게 해야……!”
사방으로 포위된 수습 헌터들의 눈엔 절망감이 서려 있었다.
보스 몬스터가 없는 던전이라고 해도 놈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불어나는 속도도 빠르고… E급 헌터로 짜여진 5, 6인 공격대는 되어야 해결할 수 있을 정도네.’
확실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아무리 성현이 있다고 해도 이 속도로 불어나는 몬스터의 숫자는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이… 이걸 어떻게 해야 하죠?”
위기 앞에서 수습 헌터들의 시선은 일제히 성현에게로 쏠렸다.
여기서 기댈 사람이라곤 그밖에 없었다.
그러자 성현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조금 아플 텐데 너무 원망하진 마세요. 그쪽을 포함해서 여기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려 하는 거니까.”
“에, 예?”
퍼억!
“컥……!”
성현의 주먹이 남자의 복부를 강타하였다.
무식할 정도 강하게 타격한 그의 주먹.
저래 봬도 헌터의 신체였으니, 기절시키려면 확실히 쳐야 했다.
눈을 까뒤집은 채 기절한 남자가 바닥에 고꾸라졌고, 기겁한 두 헌터는 주춤주춤 물러났다.
“이, 이게 갑자기 무슨 짓입니까!”
“그냥 조용히 입 닫고 비밀로 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난 그런 거 안 믿어서요.”
“그게 대체 무슨……?”
“기왕이면 여기서 나 봤다는 말도 하지 맙시다. 제대로 된 커리어 하나 없는 수습 헌터 입장에서 E급 던전 클리어를 자기 공로로 하면 좋잖아요?”
퍽, 퍼억!
성현은 단숨에 남은 두 명을 기절시켜 버렸다.
잔뜩 경계하고 있었음에도 그들로서는 성현의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철퍼덕!
성현은 바닥에 널브러진 이들을 구석에 던져두었다.
무른 이들은 말로 부탁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는 괜한 위험을 무릅쓰긴 싫었다.
“어차피 경험치도 안 되는 거… 굳이 내가 다 처리할 필요야 없지.”
그사이 숫자가 더욱 늘어나 주위를 빙 둘러싼 스켈레톤의 무리.
빠져나갈 조금의 틈도 없이 바글바글했다.
하지만 보는 눈이 없어진 성현은 한결 편안한 표정이었다.
“어디 한번 실력 좀 볼까?”
츠츠츠츳!
성현의 그림자가 길게 이어졌다.
벽과 바닥을 뒤덮은 어둠 속 수많은 괴수의 눈동자들이 그림자 속에서 나타났다.
이미 성현의 등 뒤엔 수백의 몬스터가 함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