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그림자 군주 (3)
게아드는 숲속의 모든 고블린들이 따르는 족장이었다.
숲의 지배자로서 보스 몬스터의 압도적인 힘 앞에 절대적으로 복종한 것이다.
한데 그런 족장이 인간에게 패배해 수하가 되었다.
그들이 따르던 족장을 소환수로 얻은 성현은 고블린들의 입장에선 두 단계 서열 위의 군주나 다름없었다.
쿠웅!
게아드가 몽둥이를 바닥에 내리찍자, 고블린들은 성현을 향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그를 향해 복종의 뜻을 내비치는 것이었다.
[고블린 무리가 족장을 따라 스스로 당신의 수하가 되길 원하고 있습니다.]
[S급 특성 ‘그림자 군주’가 발동됩니다!]
‘이건……?’
촤아아아악!
게아드에게서 검은 그림자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정체 모를 그림자들은 고블린 무리 전체를 감쌌고, 곧 그들의 몸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게아드가 성현에게서 받았던 그 그림자가 다른 고블린들에게 퍼지며 전이된 것이다.
“키에에엑!”
털썩!
검은 그림자에 씐 수백 마리의 고블린 무리가 일제히 쓰러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블린들은 검은 기운을 품고서 비틀비틀 다시 일어났다.
“크르르륵!”
모두를 언데드 군사로 만들어 낸 성현의 힘.
분명 성현은 일반 몬스터를 부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권속이 된 보스 몬스터, 게아드는 아니었다.
[보스급 소환수는 자신의 수하를 가질 수 있습니다.]
[수하들은 스스로 강해질 수 없지만, 해당 군주의 레벨과 등급에 연동되어 함께 강해집니다.]
한 마디로 보스 몬스터인 게아드에게 영향을 받아, 그 부하인 고블린 병사들까지 함께 강해진다는 소리.
‘하… 이래서 S등급이었던 건가.’
성현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소환 계열의 직업들은 엄청난 실력자가 아닌 이상, 다룰 수 있는 소환수의 숫자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네크로맨서는 소환 가능한 개체수의 상한이 사실상 없어, 다수를 조종하는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단, 그런 네크로맨서조차도 그만한 수의 시체들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고, 대군을 한 번에 조종하려면 어마어마한 마력이 필요했다.
허나 S급 특성인 ‘그림자 군주’ 덕에 성현은 그런 부담과 제약들을 벗어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소환수의 숫자에 대한 부담이 없었고, 수하들의 소환을 유지하는 데 드는 부담도 전혀 없었다.
여기 모인 수백의 고블린들을 다루는 것은 온전히 게아드의 몫.
일반적인 네크로맨서들과는 기본적인 메커니즘부터가 다른 것이다.
‘거기다 여기 있는 모든 녀석들이 마력도 없이 영구적으로 유지되는 소환수라는 건 덤이지.’
당장 이 고블린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성현의 집 지하에 생겨난 어마어마한 크기의 던전.
그리고 그 안에 도사리고 있을 수많은 보스와 수하 몬스터들.
쓰러뜨릴 수만 있다면 그 모든 존재들을 모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었다.
쿠웅!
충성을 맹세하는 수백의 고블린 무리.
마지막으로 녀석들의 보스, 게아드가 성현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단숨에 몬스터 수백 마리의 군주가 된 성현의 입가엔 미소가 지어졌다.
“이거 일이 재밌게 됐는데.”
지금의 상황에 꼭 필요했던 능력.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특성이 딱 알맞게 나타나 주었다.
* * *
“다들 움직여! 너무 다닥다닥 붙지는 말고.”
“크륵, 크륵?”
“그래, 여긴 한 50명 정도 지내면 맞겠네.”
성현의 지시에 따라 고블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짚과 목재들을 옮기며 숲속에 건물을 짓고 있는 모습.
고블린들의 부락을 새롭게 세우는 중이었다.
일반적인 네크로맨서의 소환수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성현의 고블린들은 달랐다.
이만한 규모의 고블린 무리를 항상 끌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이들이 평상시에 지낼 장소가 있어야 했다.
수하가 되기 전에 지내던 고블린들의 부락이 곳곳에 흩어져 있기는 했지만 그건 기각이었다.
띄엄띄엄 떨어져 있으면 관리가 번거로워지는 데다 다른 중요한 목적도 있었다.
“음… 좋아. 이 정도라면 전처럼 불안에 떨 일은 없겠지. 최소한 허접한 몬스터들이 우연히 접근할 순 없을 거야.”
성현이 언덕 위에서 훤히 내려다보이는 숲을 바라봤다.
주위로 밀집해 있는 고블린 부락들이 곳곳에 보였다.
이는 철저히 성현의 지시를 따른 것이었다.
수하들 중 홉고블린 몇 마리는 따로 뽑아 통로의 입구 앞을 지키도록 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통로 인근의 숲을 지키도록 중앙 지역에 거주지를 밀집시켰다.
집으로 향하는 던전의 입구와 그 주변 지역에 고블린들을 촘촘하게 배치한 이유는 간단했다.
성현이 자리를 비웠을 때, 몬스터로부터 통로를 지켜 줄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성현이 자리를 비우는 순간, 통로가 텅 비어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던 이전과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전처럼 불안에 떨 필요 없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고, 등 뒤를 누군가 지키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든든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방심할 수는 없어. 고블린이 아주 강한 몬스터는 아니니까.’
숲속에서 고블린들만 상대하느라 어느 정도 잊게 된 사실이지만, 지금 그가 들어와 있는 곳은 무려 SSS+등급의 던전이었다.
언제 상식 밖의 무시무시한 몬스터가 나타날지 몰랐다.
그리고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강해져야만 했다.
“게아드.”
“크륵?”
게아드가 성현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위협적인 거구를 지닌 난폭한 몬스터처럼 생긴 녀석.
녀석은 실제로도 성현을 뭉개 버리려 했었다.
하지만 특성의 힘 덕분인지 되살아난 이후론 충성심 넘치는 부하가 되었다.
지금도 성현의 뒤를 마치 보디가드처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가자. 해야 할 일이 있어.”
* * *
“키이이익!”
숲속 곳곳에 매복해 있던 고블린들이 달려들었다.
성난 고블린들의 무기가 성현의 목을 노리고서 뻗어 왔다.
하지만 가볍게 몸을 놀린 성현은 놈들의 공격을 피해 냈다.
동시에 창을 휘둘러 놈들의 목을 베어 버렸다.
‘많을 거란 건 알고 있었지만… 하루 이틀 정도로 끝날 것 같진 않네.’
고블린의 시체들 위에 선 성현이 창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제법 많은 녀석들을 처치한 탓에 옷에도 온통 핏자국이 번져 있었다.
성현이 고블린들과 싸우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아직 모든 고블린들이 그의 편에 선 건 아니었다.
그의 밑으로 들어온 고블린들을 제외하고도, 숲 곳곳에 고블린의 잔당들이 남아 있었다.
자발적으로 다가와 그의 수하가 되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인간인 성현에게 반발하며 저항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어째서인지 원인이 밝혀지진 않았으나, 모든 던전의 몬스터들은 본능적으로 사람에게 거부감을 느끼고 해치려 들었다.
“키에에엑!”
갑작스레 등 뒤에서 나타난 고블린이 기습을 가했다.
하지만 성현은 급히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의 뒤편엔 이미 듬직한 덩치가 지키고 서 있었다.
콰득!
고블린 족장 게아드의 몽둥이가 내려쳐졌고, 뼈와 함께 으스러져 버린 고블린들의 시체가 납작해졌다.
[소환수, 게아드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고블린 족장 ‘게아드’(C)]
[등급 - 군주]
[레벨 - 21]
[보스의 위압감], [충격파], [독에 취약]
“오, 레벨이 올랐네.”
눈앞에 나타난 새로운 메시지에 성현이 반색했다.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경험치가 오르는 것은 성현뿐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단순히 성장이 가능한 수준이 아니라 게아드에게도 8배의 경험치가 적용되었다.
이는 게아드도 성현의 소환수가 되면서 같은 던전의 시스템 적용을 받기 때문이었다.
‘아주 좋아.’
게아드가 강해지면 녀석이 거느리는 수하들도 강해진다.
벌써 수백의 고블린 병사들이 게아드의 휘하에 있었다.
‘제대로 성장시켜야겠어. 강력한 전력이 되도록.’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의 직업.
하지만 네크로맨서가 된 이상, 능력을 썩혀 둘 필요는 없었다.
츠츠츠츳!
게아드로부터 검은 그림자가 뻗어 나가 널브러진 고블린들의 사체에 스며들었다.
검은 그림자가 깃든 고블린들은 게아드 휘하의 병사가 되어 되살아났다.
“너희는 우선 동족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 있어. 다른 몬스터가 얼쩡거리면 처리하고.”
“크륵!”
성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고블린들이 움직였다.
보스 몬스터 게아드와는 달리, 수하인 일반 고블린들은 사냥을 해도 경험치가 오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숲속의 고블린들을 처리하는 데 함께하지 않는 것이었다.
‘당장 숲을 빠르게 청소하는 데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시간에 쫓기는 것도 아닌데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지.’
무려 8배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사기적인 던전의 몬스터들이다.
성장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험치를 뽑아 먹는 편이 좋았다.
뚜욱!
“어라……?”
그때, 성현이 쥐고 있던 창이 부러졌다.
고블린에게서 빼앗아 사용하던 그의 창이다.
애초에 그렇게 정교하게 만들어진 물건이 아닌 데다 연달아 격한 전투를 치르자 그만 창이 버텨 내지 못한 것이다.
‘이거 무기를 새로 장만해야겠는데. 하긴 언제까지 이런 창으로 싸울 순 없으니까.’
다른 차원의 물질로 이루어진 무기인 만큼, 단순히 몬스터의 뼈와 살을 가르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몬스터를 사냥해야 하는 헌터가 들고 있기에는 그리 좋은 무기는 아니었다.
‘원래 보스를 잡고서 무기를 얻었으면 했는데. 그 계획은 틀어졌으니… 쓸 만한 무기를 구하러 나가 봐야겠군.’
성현은 부러진 창을 휙 내던졌다.
“잠깐 나갔다 올게. 넌 계속 사냥하고 있어.”
“크륵!”
고개를 끄덕이는 게아드를 뒤로하고서, 성현은 던전의 통로로 향했다.
아마도 간만에 하는 마음 편한 외출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