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7화 (7/202)

7화 새로운 세계 (3)

띠링!

[인벤토리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자유롭게 물건과 아이템을 수납할 수 있습니다.]

성현은 자신이 띄운 인벤토리창을 들여다봤다.

반투명한 화면 위에 수많은 칸들이 나뉘어 있는 인벤토리가 떠 있었다.

“몇 번 시험용으로 써 보긴 했지만… 역시 신기하단 말이야.”

성현이 손을 가져다 대자 화면 안으로 쑥 하고 들어갔다.

역시나 신비한 감각.

직접 눈으로 봐도 비현실적인 광경에 도통 익숙해지지 않았다.

가히 택배 업계에 엄청난 혁신을 가져올 능력이기는 했지만, 성현은 자신의 능력을 그런 곳에 쓸 생각은 없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와르르!

정신을 차린 성현은 집 안의 냉장고와 수납장들을 열어 먹을 식량들을 모조리 쓸어 담았다.

인벤토리 안으로 휙휙 들어가는 식량들.

비스킷이나 육포 같은 간편식은 물론이고, 원한다면 아예 가스버너나 냄비, 식기까지도 챙길 수 있었다.

‘역시… 엄청 편리한 능력이라니까.’

그 많은 물건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인벤토리 안으로 말끔하게 들어간 식량들.

그가 지닌 인벤토리의 용량은 굉장히 컸고, 과연 어디까지가 끝인지도 가늠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런 유용한 능력이 부가 효과 중 하나일 뿐이라니.’

그가 지닌 ‘상태창’이 괜히 S급 특성이 아니었다.

이 인벤토리 기능 하나만 해도 A급 특성은 될 것이다.

“그럼 슬슬 출발할 시간인가.”

시계를 슬쩍 확인한 성현이 중얼거렸다.

그가 난데없이 냉장고를 털며 식량을 챙기는 이유는 간단했다.

식사 때마다 던전에서 집까지 올라와야 하는 게 귀찮은 점도 있었고, 뭣보다 이젠 꽤 긴 시간을 던전에 투자해야 했기 때문이다.

파앗!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숲의 지배자가 침입자의 존재를 알아차렸습니다. 인간을 찾기 위해 수십의 고블린 무리가 움직입니다. 고블린 족장 게아드를 격파하십시오.]

[보상 : 대량의 경험치 및 새로운 특성 획득]

저번에 나타났던 메시지를 성현은 다시 자신의 눈앞에 띄웠다.

그는 메시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음… 솔직히 내심 기대하긴 했는데, 정말 나타나 줄 줄은 몰랐단 말이지.”

이 구역의 보스를 처치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혹여 관련 퀘스트가 나타나 주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했었다.

한데 거기서 주어지는 퀘스트의 보상이 ‘새로운 특성의 획득’이라니.

마치 자신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정말 절묘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튼 나를 찾기 위해 고블린들이 움직이고 있단 말이지?’

주목할 점은 퀘스트의 내용에도 있었다.

낯선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고 놈들의 우두머리가 고블린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

놈들은 분명 숲 전체를 샅샅이 뒤지고 있을 테니, 이대로 놔두었다간 동굴 안으로도 언제든 불쑥 들어올 것이다.

우두머리를 처치해 놈들의 집단적인 움직임을 와해시켜야 했다.

‘어떻게 보면 위기이자 기회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목표이고.’

창을 움켜쥔 성현은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녀석을 찾기 위해 숲 전체를 샅샅이 뒤질 차례였다.

그 과정엔 약간의 인내심과 끈기가 필요했다.

* * *

어두운 밤 번화가.

술집을 통째로 전세 내어 사용 중인 석영 길드의 헌터들이 있었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은 가운데, 다들 취한 얼굴로 떠들썩한 목소리들을 내고 있었다.

“요즘 들어 길드에 사람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지 않나?”

“구역 근처에서 깔짝대던 놈들도 제대로 손봐 줬고, 사업 규모도 점점 커지니 그럴 수밖에요. 이게 다 길드장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이 기세로 전국 9대 길드의 반열에까지 치고 올라가시죠.”

“으하하! 이 자식이, 그런 번지르르한 소리를 다 하고.”

드르륵!

그때, 예닐곱 명의 불청객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한껏 취해 무방비 상태로 떠들고 있던 석영 길드의 헌터들은 그들이 들어왔는지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

그러자 검은 코트 차림의 남녀 한 쌍이 앞으로 나섰다.

헌터들에게 다가간 그들은 입구 쪽의 두 테이블을 통째로 뒤엎어 버렸다.

와장창!

요란하게 엎어진 가게의 테이블과 식기들.

깜짝 놀란 석영 길드의 헌터들이 벌떡 일어났고, 다른 테이블에 앉은 길드장과 헌터들의 시선도 일제히 돌아갔다.

“뭐, 뭐야? 갑자기 이 새끼들은!”

“너희, 우리가 누군지 모르는 거냐?”

수십여 명의 헌터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장소.

그것도 이 근방 길목들을 주름잡고 있는 석영 길드의 헌터들이었다.

죽고 싶어 작정했는지, 얼마 되지도 않는 인원으로 이렇듯 깽판을 놓은 것이다.

“보아하니 헌터들 같은데, 고작 그 숫자로 쳐들어온 걸 보면 살아나갈 생각은 아예 마라.”

몇몇 길드원들이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어……? 자, 잠깐만!”

허나 취해 있던 길드원들 중 몇몇은 상대의 정체를 뒤늦게나마 알아보았다.

모두 제각각의 차림새였지만, 그 위에 걸치고 있는 길드복이 그들의 소속을 알려 주고 있었다.

흑색 바탕 위에 푸른 장식의 코트.

등 뒤엔 청성(靑星)이라는 길드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청성의 헌터들이다!”

“처… 청성 길드라고?”

기겁한 헌터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몸을 가누기조차 버거워하던 이들이었으나, 지금은 술기운 따위 훌훌 날아가 버린 상태였다.

“너희가 석영 길드의 헌터들인가?”

청성의 길드원 사이에서 훤칠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앞으로 나선 그의 모습에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

“가, 강일훈?”

청성의 A랭크 헌터, 강일훈.

A급 헌터라면 기본적으로 한국의 양대 길드 중 하나인 청성 내에서도 최정예로 취급되었다.

그중에서도 강일훈은 간부급 인사였고, 헌터 업계에선 상당한 유명 인사였다.

‘저런 거물이 갑자기 여긴 왜…….’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석영의 길드장.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절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강일훈뿐만 아니라 그 뒤에 선 헌터들조차 전원 B랭크에 달하는 실력자들일 터.

“청성의 높으신 분께서 갑자기 이런 곳엔 어쩐 일로…….”

“우리 돈을 빼돌리고 있으니 찾아올 수밖에.”

“빼, 빼돌리다니 그게 무슨……!”

“언제까지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미련한 놈들이군.”

이 일대에서 청성에 들어와야 하는 상납금의 일부를 석영 길드가 멋대로 손을 대 빼돌린 것.

상가에 거두는 보호세의 일부를 교묘하게 누락시키며 빼돌린 것이었지만, 그들의 알량한 비밀은 오래가지 못했다.

삼류 길드 따위가 청성을 상대로 기만하려 든다면 그 최후는 하나뿐이었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치워 버려.”

“자, 잠깐만……!”

촤아아악!

흩뿌려지는 붉은 핏줄기.

무자비한 청성의 검들이 번뜩였고, 잘려 나간 시체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압도적인 무력 앞에 석영의 길드원들은 제대로 된 발악조차 하지 못했다.

“사, 살려……!”

“끄아아악!”

가게 안을 울려 퍼지는 비명 소리가 거리에까지 새어 나갔다.

하지만 번화가를 오가던 사람들은 황급히 자리를 피할 뿐, 그 누구도 감히 신고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사이, 술집 안에서 들려오던 비명 소리가 뚝 멎었다.

가게 안에는 흥건하게 흘러넘친 피 웅덩이가 찰랑였다.

드르륵.

한바탕 살육을 치르고 밖으로 나온 황일우.

잠시 담배를 피우러 나온 그는 뒤처리를 위해 대기하던 길드의 담당 직원 중 한 명을 끌고 갔다.

“불.”

“예, 옙.”

직원은 준비하고 있던 라이터를 냉큼 꺼내 황일우에게 불을 붙여 주었다.

저번에 그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던 신참 직원인지라 바짝 굳어 있었다.

콜록 콜록!

담배를 건네받아 입에 가져다 댄 직원은 저도 모르게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황일우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지금 싫은 티 내냐?”

“아, 아닙니다!”

직원은 황급히 담배를 다시 입에다 가져다 댔다.

여태 담배라곤 입에 대 본 적 없던 비흡연자가 억지로 흡연을 하려니 고역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황일우의 말을 거스를 순 없었기에 애써 입가엔 미소를 지으며 기침을 꾹 참았다.

그나마 연기를 조금이라도 덜 마시기 위해 고개를 살짝 돌렸다.

한데 그런 그의 시선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화, 황일우 헌터님! 저기 경찰이……!”

“경찰?”

순찰 중인지 형광 조끼를 입은 경찰 두 명이 거리를 걸어오고 있었다.

황일우는 피범벅 상태였고, 가게 안은 시체들과 부서진 집기들이 한데 뒤섞여 난장판 그 자체였다.

이는 빼도 박도 못하는 현장 증거들이었다.

하지만 황일우의 반응은 시큰둥하기 짝이 없었다.

“그게 뭐 어쨌다고.”

“예, 예?”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 반응하는 황일우의 태도.

되레 황일우는 경찰관들을 빤히 바라보며 대담하게 행동했다.

“엇……?”

황일우와 눈이 마주치자, 젊은 경관이 움찔했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피를 뒤집어쓴 그의 당당한 태도에 순간 당황한 것이다.

“이봐,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이리 오게.”

하지만 자리에 멈춰 선 젊은 경관을, 머리가 하얗게 센 중년 경관이 다급히 끌고 갔다.

청성의 길드복을 알아본 경찰들이 눈치를 보면서 그 자리를 피한 것이다.

“어, 어라?”

“하이고, 뭐 경찰들이 우리를 잡아가기라도 할 줄 알았어?”

“예… 구속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이 복잡해질 줄 알았습니다.”

남직원이 우물쭈물하며 말하자, 황일우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야 이씨, 너 명문대 출신 아니야? 비각성자가 우리 길드 입사하려면 똘똘해야 할 텐데. 설마 낙하산이냐?”

“아, 아뇨. 명문대는 맞긴 하지만……”

“그럼 그냥 책상 앞에만 앉아 있느라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건가?”

“…죄송합니다.”

“하여간 시발, 공부벌레 새끼들은. 이 실장은 그래도 똘똘했는데, 지금이야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황일우가 직원의 뺨을 툭툭 쳤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볼 뿐, 기분이 상한 건 아닌 듯 보였다.

“던전이 생기면서 바뀐 이 세상을 좀 봐라. 바뀐 세상을 제대로 못 보면 뒤처질 뿐이야. 아니면 뒈지든가.”

황일우는 한 차례 담배 연기를 훅 내뱉었다.

오늘은 나름 기분이 좋은 편이었는지, 말을 주저리주저리 이어 갔다.

“기껏 인간의 힘을 초월한 헌터가 되었는데, 굳이 제약도 많고 박봉 받으며 공무원이나 할 호구 새끼가 몇이나 되겠어? 죄다 길드로 모이지. 뭐, 뒤늦게야 멍청한 정부 놈들도 제대로 헌터를 모으긴 했지만, 그땐 이미 늦은 뒤였지. 이미 길드들의 영향력이 정부를 넘어서 버렸으니까.”

분명 정부 소속 헌터들은 강력했다.

어지간한 길드들이야 국가를 상대로 함부로 날뛰었다간 정부 소속 헌터들에게 산산조각 나고 만다.

하지만 국가적인 측면에서 그 숫자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이전과 같은 공권력을 행사하기엔 절대적으로 무리라는 소리다.

일반인은 헌터를 당해 낼 수 없다.

헌터의 등급이 조금만 올라가도 총기의 존재는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그 탓에 헌터들이 모인 집단이라면 동네의 중소 길드조차 제대로 못 건드리는 게 지금의 경찰이었다.

그렇다고 중앙 정부의 헌터 인력만으로는 전국을 감당할 수는 없는 노릇.

그 빈자리를 빠르게 헌터들을 모아 독보적인 세력을 얻게 된 대형 길드들이 담당하게 되었다.

이는 최초로 던전이 발생했던 과거.

극심한 혼란 속에서 국가 시스템이 마비된 동안, 강자를 중심으로 길드들이 세력을 급속도로 확장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우선 담당 구역에 나타나는 던전들을 처리해 주는 게 첫 번째. 거기에 겸사겸사 각성한 범법자 놈들이 날뛰지 못하게 적당히 치안을 봐주고, 보호세도 걷는 거지. 비각성자들이 눈 돌아간 헌터나 몬스터를 어떻게 감당하겠어? 우리가 없으면 엿 될 걸 다들 아니까 반발도 없는 거고.”

대표적으로 강남의 청성, 강북의 화신.

서울을 양분한 채, 한국의 양대 길드로 군림 중인 두 길드였다.

물론 대형 길드라고 해도 인력엔 한계가 있는 만큼, 자질구레한 던전이나 치안 유지 등은 각 구역에 자리 잡은 지역 길드들에게 맡긴다.

청성 같은 대형 길드는 훨씬 넓은 지역을 커버하며 강하거나 돈이 되는 던전만 골라서 처리하고, 그 안에서의 영향력이 굳건하도록 큰 사건만 처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도가 잡힌 지 벌써 십수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온 국가들이 개박살 나며 인류가 끝장나니 마니 하는 위기는 오래전에 끝났지. 이젠 바야흐로 헌터들의 시대! 나 같은 인간들만 노난 거지.”

황일우가 시시덕거리며 떠들었다.

옆에 선 직원은 열심히 듣는 척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그가 듣건 말건 별 상관은 없어 보였다.

드르륵!

“여기 있었군.”

청성의 A랭크 헌터, 강일훈이 문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담뱃불을 급히 끈 황일우가 무릎을 펴고 일어났다.

“이것만 마저 피우고 들어가려 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이성현 실장의 마지막 담당이 자네였지?”

“이 실장… 말입니까?”

예상 밖의 이름이 등장하자, 황일우의 표정에 의아함이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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