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새로운 세계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
찌뿌듯한 몸을 일으키며 늘어지게 하품하던 성현은 화들짝 놀랐다.
“젠장, 완전히 강도가 침입해 뒤집어 놓은 꼴이나 다름없네.”
어제 벌어졌던 홉고블린의 습격으로 인해 집 안 꼴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새삼 놀라고 말았다.
‘어제 대강 치워 놓긴 했지만 역시 무리였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성현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느긋하게 누워 있을 새도 없이, 그는 일어나자마자 곧장 지하실로 내려갔다.
어제 생겨난 던전의 입구를 다시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몬스터가 오고간 흔적은 없어. 다행이다.’
성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자던 사이에 몬스터가 밖으로 나왔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당장 급한 불은 끈 건가.’
퀘스트가 가리켰던 고블린 무리를 모두 처치해 낸 성현.
놈들을 모두 제거하자, 던전 입구와 근접한 거리에선 더 이상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그 이상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더 깊이 들어갔다간 어떤 몬스터가 나올지 모르는 데다 고된 하루로 인해 꽤나 지쳐 있었던 탓이었다.
‘퀘스트 보상은 확실히 받았다.’
파앗!
그의 앞에 상태창이 열렸다.
[이름 - 이성현]
[칭호 - 없음]
[레벨 - 8]
[직업 - 무직]
[주요 능력치]
힘: 22 민첩: 16 체력: 17 마력: 16
[보유 특성]
상태창(S)
시스템이 준 퀘스트를 해결해 그의 힘 스탯이 6만큼 올랐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성현이 성장할수록 그것이 반영이 되어 스탯이 올라갔고, 다른 스탯들도 조금씩 올라간 상태였다.
상태창에서 볼 수 있듯, 고블린을 처단한 ‘경험’이 쌓이면서 성현의 신체도 한층 강해졌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이 능력의 진가를 이제야 알겠어. 어떻게 S등급을 받은 건지도.’
그의 특성인 상태창은 단순히 그의 상태를 보여 주는 게 다가 아니었다.
다른 헌터들은 이해조차 못할 새로운 시스템 요소들을 추가시켜 주었고, 새로운 요소들의 잠재력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엄청났다.
어제 겪은 ‘퀘스트’의 존재만 보더라도, S급이라는 등급이 되레 낮게 측정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고블린을 제압하고 퀘스트를 깨면서 레벨이 8로 올랐어. 스스로 체감이 될 정도로 빠른 성장이야.’
성현은 자신의 손을 움켜쥐었다.
퀘스트의 보상에 더해 8배의 경험치가 폭발적으로 쌓이고 있는 것을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늦게 각성한 페널티를 상쇄하고도 남아. 어쩌면 우리 집 지하에 던전이 생겨난 게 위기가 아니라 또 다른 기회일지도 모르겠네.’
등급에 맞게 파격적인 던전의 특성.
내세울 만한 소속 길드가 없는 수습 헌터들의 경우는 던전에 진입해 성장할 기회를 얻는 일조차 하늘의 별 따기였다.
하지만 자기 집 지하에 초대형 던전이 있는 성현으로서는 최소한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셈이었다.
물론 언제 말도 안 되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튀어나와 죽을지 모른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던전의 존재가 들키지 않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군.’
성현은 다시 계단을 타고서 1층으로 올라왔다.
여전히 던전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일투성이였기에, 힘이 닿는 한 내부를 꼼꼼하게 조사해 봐야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는 게 우선이었다.
어제와는 달리 긴 시간이 될 테니 제대로 배를 채워야 했다.
‘반찬거리도 얼마 안 남았네……. 가구들도 박살 나고, 수중에 돈도 얼마 없는데 말이지.’
성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먹을거리도 다시 사 놓아야 하고, 망가진 가전제품이나 가구들도 교체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당장이야 모아 둔 돈이 있어 굶을 리는 없겠지만, 그 돈들은 사실상 온전히 성현의 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
‘얼마 가지 않아 곧 돈을 내놓으라며 독촉이 들어올 텐데… 그 전에 어서 돈을 마련해야 해. 절대 집을 팔아넘기지 않고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은 청성 길드의 독촉장.
물론 9억 5천이라는 돈은 개인에겐 아주 큰 액수일지 몰라도, 청성 길드의 입장에서는 바닥에 떨어진 100원짜리 동전 정도의 가치였다.
강력한 헌터들을 거느리고, 드넓은 영역을 확보한 청성 길드는 그야말로 돈을 쓸어 담는 초거대 기업 이상의 존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놈들은 받아 낼 돈을 어떻게든 받아 내는 독종이었다.
되지도 않게 버텼다간 손가락이 다 잘려 나간 상태로 길바닥에 나앉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지하 던전의 존재 때문에 이 집에 압류 딱지라도 붙는 순간, 성현의 인생은 끝장이었다.
어떡하든 돈은 마련해야 한다는 것.
‘그럼 그 돈을 어떻게 모은다…….’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으면서 성현의 머릿속은 온통 그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 * *
“좋아. 가자!”
식사를 마친 성현은 힘차게 일어섰다.
식후의 담배 생각 따윈 나지 않았다.
청성 길드에서 일하면서 배운 담배다.
이번 기회에 과거와 함께 완전히 끊어 버릴 생각이었다.
타악!
지하실로 내려간 성현은 곧장 던전의 입구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 안으로 들어가자, 일직선상이던 동굴의 통로가 끝이 나고 새로운 입구가 나타났다.
‘어제는 여기까지만 도달하고서 물러났지.’
은은한 빛이 들어오고 있는 정체 모를 입구의 모습에 성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결계라도 쳐져 있는 것인지 자신이 있는 바깥에선 저 안쪽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서야 건너편의 공간을 볼 수 있는 구조.
하지만 혹시 저 안에 보스 몬스터라도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어 어제는 섣불리 들어가지 못했다.
컨디션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보스 몬스터와 마주쳤다간 하나뿐인 목숨이 위태로웠으니 말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어. 직접 부딪혀 봐야지.’
성현은 창을 꽉 움켜쥔 채 입구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파아앗!
몸을 휘감는 은은한 빛 속에 인상이 절로 찡그려진 것도 잠시.
곧 그의 눈앞에는 생각도 못 한 광경이 펼쳐졌다.
후우우웅!
성현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지나가는 시원한 바람.
[새로운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여, 여긴……?”
성현은 멍하니 주위를 바라보았다.
일단 동굴 안은 맞는 듯했다.
머리 위로는 천장이 있었고, 내리쬐는 태양빛의 존재도 없었다.
하지만 천장이 하늘만큼이나 어마어마하게 드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말도 안 되는 넓이와 크기는 이곳이 지하라는 사실을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
‘저쪽으로는 벽이 보이지도 않아. 대체 이 던전은 얼마나 깊게 이어져 있는 거야……?’
성현의 시선 아래, 이 방대한 세계는 삼면이 동굴의 거대한 벽으로 둘러싸여 막혀 있었다.
하지만 그가 통로에서 나온 방향으로는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제법 높다란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음에도 이 동굴의 끝이 어딘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내가 여태 알고 있던 던전들과는… 완전히 달라.’
바깥처럼 밝지는 않았고, 조금은 어둑한 색감을 띠는 세상.
그럼에도 어둠으로 가득한 장소는 아니었다.
은은한 빛들이 촘촘하게 공간들을 채우고 있었고, 마치 낮인 것처럼 사방이 환하고 선명하게 보였다.
도저히 자신의 집 지하라곤 생각되지 않는 세상이었다.
던전을 넘어선 또 다른 세계…….
그 말로밖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내가 여기로 나온 건가?’
뒤를 돌아보자, 그가 나온 것은 언덕 위에 위치한 커다란 동굴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성현이 처음 던전이라고 생각했던 동굴은 그저 두 세계를 이어 주는 작은 통로에 불과했던 것이다.
지평선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세상.
이런 걸 예상치도 못했던 성현은 상당히 당황했다.
‘보스 몬스터라도 나타날 줄 알았더니만… 이런 게 나타날 줄이야.’
잠시 정지 상태였던 성현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가까운 지형들을 살펴봤다.
언덕을 둘러싼 숲 지형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일단 주변을 둘러봐야겠어.’
성현은 언덕 아래로 내려가, 숲을 탐사하며 걷기 시작했다.
사실 숲 자체는 그리 이질적인 풍경이 아니었다.
특유의 은은한 빛들은 대부분의 던전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특징이었고, 숲의 생태계도 흔히 발견되는 ‘이차원에서 넘어온 던전의 것들’이었다.
단지 이 정도로 높고 넓고 거대한 던전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을 뿐.
마치 자신이 서 있는 게 던전이 아니라 지상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말이다.
‘이건…….’
선명하게 찍힌 몬스터의 발자국과 부러진 나뭇가지들.
탐사에 나선 성현은 숲 곳곳에서 고블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굴 주위로 고블린들이 모여 사는 숲이 있었던 거야. 그래서 녀석들이 여기로 흘러 들어온 거였군.’
성현은 곳곳에 남겨진 고블린의 흔적을 쫓아갔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세계와 마주하게 되었지만, 어쨌든 주변 몬스터를 제거해 둬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흔적을 쫓던 성현의 뒤편.
“키이이익!”
고블린이 날 선 음성을 내며 불쑥 나타났다.
성현은 곧바로 창을 움켜쥐며 대응했다.
서걱!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고블린의 목을 베었다.
나가떨어진 고블린이 풀썩 쓰러졌지만, 바로 뒤에 또 다른 고블린이 수풀에서 뛰쳐나왔다.
‘남은 건 여섯 정도인가.’
콰악!
내지른 창이 고블린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의 생각대로 방금 쓰러진 녀석을 제외하면 다섯이나 되는 고블린이 수풀 속에 숨어 성현을 둘러싸고 있었다.
레벨이 오르며 감각 또한 이미 일반인의 범주를 훌쩍 넘어선 성현이었다.
‘곳곳에서 미세한 소리들이 들린다. 숲 전체가 고블린들로 넘쳐나는군.’
확실히 고블린의 영역이 맞는 듯한 지역이었다.
곧 달려들기 시작한 다섯의 고블린들을 성현은 하나하나 베어 모조리 숨통을 끊어 놓았다.
콰득!
‘느껴진다. 강해지고 있는 게.’
놈들을 모두 해치운 뒤에도 성현은 멈추지 않았다.
흔적을 쫓아 숲속을 더 나아가며, 발견한 녀석이나 자신을 쫓아온 녀석들을 무자비하게 베어 넘겼다.
지금보다 레벨이 낮을 때도 홉고블린을 해치운 마당에 이제 고블린 여럿을 상대하는 것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성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콰직!
“쿠에엑!”
[레벨이 올랐습니다!]
고블린을 베면서 11레벨을 달성한 성현.
숲속에 들어선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레벨이 3이나 오르게 된 그의 힘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헌터는 원래 이렇게 빨리 강해지는 건가? 아니, 다른 녀석들은 이러지 못했지.’
레벨이 오를수록 성장하기 위해 베어야 하는 고블린의 숫자가 늘어나긴 했다.
하지만 무려 8배라는 경험치의 양이 워낙 위력적이다 보니, 다른 헌터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성장이 빨랐다.
지금 90마리째 고블린을 사냥한 참이었는데, 실제론 720마리 이상을 잡은 것과 같은 효과를 얻으며 경험치가 급속도로 차오르고 있었다.
‘저건… 고블린들의 마을인 건가?’
숲 안쪽으로 더 나아간 성현은 움막들이 모여 있는 고블린 부락을 발견하였다.
여태까지 몇 마리씩 짝지어 다니던 녀석들과 다르게, 부락이라 그런지 꽤 많은 숫자가 모여 있었다.
‘조금 전’이었다면 부담스럽게 느껴졌을 수 있는 숫자.
허나 11레벨을 달성한 지금은 아니었다.
‘간다.’
“키이이익!”
뛰어든 성현의 주위로 부락의 고블린들이 몰려들었다.
감히 홀로 뛰어든 겁 없는 침입자의 등장에 성난 고블린들이 그를 갈기갈기 찢어 놓으려 했다.
허나 침입자에 대한 놈들의 분노는 금세 공포로 바뀌었다.
서걱!
푸욱!
창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한 마리씩 고블린들이 나가떨어졌다.
그렇게 성현이 놈들을 150마리쯤 처치했을 때,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칭호, 고블린 슬레이어를 획득하였습니다!]
[고블린 계열 몬스터를 대상으로 20%의 추가 대미지를 입힙니다.]
[획득한 모든 칭호는 중복 적용이 가능합니다.]
“칭호 시스템이라… 쓸 만한걸.”
성현은 슬쩍 헛웃음을 흘렸다.
다른 헌터들은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새로운 시스템의 유일한 수혜자가 된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허나 전투 중 보인 그의 웃음은 고블린들에겐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주춤 물러난 고블린들의 눈빛에 두려움이 일었다.
“키에에엑!”
처절한 고블린들의 비명 소리가 숲을 가득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