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그것도 엄청 큰
“으아아악!”
몽둥이를 휘두르는 고블린 때문에 기겁한 성현은 허둥지둥 달아났다.
“키에에엑!”
집 안을 달리고 있는 성현의 뒤를 고블린은 집요하게 쫓아왔다.
녀석과 처음 마주했을 때, 마음 같아선 들어왔던 문으로 바로 나가 버리고 싶었지만 이미 문을 잠근 뒤라서 어쩔 수가 없었다.
저런 몬스터를 코앞에 두고서 도어록 버튼을 누르고 있다간 미처 빠져나가기도 전에 뒤통수가 깨져 죽을 것이다.
콰앙!
테이블이 험악한 모습으로 찌그러졌다.
무시무시한 몬스터의 힘.
‘미친……! 어째 덩치가 크다 했더니, 보통 고블린이 아니잖아!’
일반 고블린에 비해 두 배는 될 법한 덩치, ‘홉고블린’이었다.
홉고블린은 E급 수준의 던전에 나오는 몬스터다.
그냥 고블린 한 마리도 성인 남자가 무기를 든 채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판인데, 홉고블린이라면 일반인이 상대하기엔 당연히 무리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죽음의 위기 앞에서 성현의 머릿속이 팽팽 돌아갔다.
잽싸게 문을 잠가도 부수고 들어올 녀석이었기에 무턱대고 도망만 다니다간 결국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딴 몬스터한테 죽을 순 없어! 뭔가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해!’
일반인이라면 홉고블린 정도 되는 몬스터를 코앞에서 마주한 순간,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봐야 했다.
그러나 성현에겐 헌터 업계에 관한 폭넓은 지식과 청성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었다.
직접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는 아니더라도 나름 국내 최고의 길드에서 일했던 만큼 현장 상황에 대해 제법 익숙했다.
‘저 녀석 피부색이…….’
고개를 돌린 성현은 홉고블린의 모습을 재빨리 눈에 담았다.
기본적으로 칙칙한 녹색이라 구별하기 쉽지 않지만, 어렴풋이 푸른빛이 감돌고 있는 홉고블린의 피부.
추운 기후에 적응한 고블린 계통 몬스터의 특징이었다.
‘그리고 그런 고블린들의 약점은 바로 불이지……!’
신체 능력으로 몬스터를 저지하기엔 어림도 없었지만, 불이라면 상대를 가리지 않는 법.
성현은 잽싸게 품속에서 라이터를 꺼내 던졌다.
파악!
“어… 어라?”
불이 켜진 라이터가 날아들자, 홉고블린은 잠깐 움찔하긴 했지만 금세 라이터를 간단히 쳐 냈다.
아무리 불이 약점이라고 한들 저런 조그만 라이터 따위에 당해 줄 리가 없는 것이다.
하도 정신이 없다 보니 이런 간단한 것조차 생각해 내지 못했다.
“이런 멍청한!”
성현은 다시 날아드는 몽둥이를 피해 몸을 내던졌다.
작년에 선물 받아 애지중지 키웠던 화분이 바닥을 나뒹굴며 깨졌다.
아오, 작작 좀 부술 것이지.
‘그래, 맞아……!’
다급한 순간, 성현의 머리를 번뜩 스쳐간 생각.
우당탕탕 방으로 달려간 성현은 방구석에서 매끈한 검은 구체를 집어 들었다.
원래 폐기 처분될 청성의 직원용 장비였지만, 어리바리한 부하 직원의 실수로 몇 개가 누락되어 자신의 집에 대강 짱 박아 뒀던 특수 화염탄이었다.
“먹어라!”
성현은 자신의 뒤를 따라온 홉고블린에게 화염탄을 힘껏 내던졌다.
폭발과 함께 뜨거운 불길이 드높이 치솟아 올랐다.
“키에에에엑!”
화르르륵!
불길 속에 휩싸인 홉고블린이 마구 날뛰었다.
청성 길드에서 직원용으로 사용되는 화염탄답게 시중에 팔리는 일반인 전용 호신 장비와는 비교도 안 될 위력이다.
털썩!
“돼… 됐다.”
바삭하게 익어 버린 홉고블린이 바닥에 쓰러졌다.
몬스터에게만 정확히 작동되는 방식의 장비이긴 했지만,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는지 주변에 작은 불들이 옮겨붙었다.
성현은 허겁지겁 소화기를 가져와 잔불을 껐다.
“하, 아주 개판을 쳐 놨네. 이거를 언제 다 치우냐고.”
새까맣게 그을린 바닥을 내려다보며 성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몽둥이로 온 집안을 작살낸 데다 불타 죽으면서 난동까지 피운 탓에 피해가 더 커졌다.
마음 같아선 죽은 고블린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직 뜨거워서 참긴 했지만.
“하긴… 그래도 살았어.”
저도 모르게 무릎을 짚은 성현.
위협이 사라지자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쫙 풀리는 느낌이었다.
폐기 절차가 귀찮아 대충 던져둔 길드의 장비 덕에 목숨을 구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 인생을 말아먹은 길드 덕에 살아남다니… 기분 뭐 같네.”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은 성현은 투덜거리며 벽을 짚었다.
겨우 일반인의 신분으로 홉고블린을 잡았다니, 다음 날 신문사 1면을 채우며 대서특필되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허나 그래 봤자 언론을 이용해 억울한 사정이나 부당 해고에 대해 떠들어 대는 일 따윈 불가능했다.
그랬다간 정말 청성의 헌터들이 찾아와서 쥐도 새도 모르게 자신의 목을 따 버릴 테니까.
[시스템 동기화가 시작됩니다.]
그때, 성현의 눈앞에 반투명한 메시지가 나타났다.
“뭐, 뭐야? 아니, 잠깐 이건……!”
눈을 비빈 성현은 놀라 입을 딱 벌렸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지만, 모를 수가 없었다.
그간 수도 없이 이야기로만 들어 온, 헌터들에게만 보인다는 ‘시스템 메시지’ 창이었다.
[각성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잠시 후, 헌터로 각성합니다.]
“내, 내가 각성을 한다고?”
* * *
성현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느라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메시지를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명확해졌다.
자신이 헌터가 될 운명이라는 것.
[시스템 동기화 37.1%]
“젠장, 꿈이 아니야… 정말이잖아?”
헌터로 각성할 경우, 지금 성현의 눈에 보이는 것과 같은 메시지창이 나타난다.
마치 가상현실 속 홀로그램과 같은 메시지.
바로 그 순간부터 각성한 이에겐 ‘시스템’이 적용되고, 인간의 한계를 가뿐히 초월한 성장이 가능해진다.
이 잠깐의 동기화 과정을 거치고 나면 헌터로서 각성할 것이다.
‘그럼 난 조건부 각성자인 건가?’
헌터의 각성엔 두 가지의 경우가 있었다.
첫째로 선천적으로 특정 나이만 되면 알아서 능력이 발현되는 경우.
둘째로 특정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능력이 발현되는 ‘조건부 각성’의 경우.
현재 활동하는 헌터의 절대다수는 선천적 각성자였다.
조건부 각성의 경우, 그 수가 극히 적었다.
만족시켜야 할 조건이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어서 각성하기 전까진 그 조건을 알 수가 없었기에 능력을 타고났다고 해도 평생 그 사실을 모르고 사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조건부 각성자라면…….’
비율도 낮고 어려운 만큼 특별한 메리트가 있었다.
선천적 각성자들과는 달리, 헌터로 각성하자마자 보너스 특성을 얻게 되는 특전이 주어진다는 것.
띠링!
[시스템 동기화 중]
[‘??’급 특성 ‘???’를 획득합니다.]
‘정말이네.’
아직 동기화가 완료되지 않아 정확히 어떤 특성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조건부 각성자에게 주어지는 특성들은 대체로 특별한 것이 많았다.
훨씬 적은 숫자에 비해 상위권 헌터에 조건부 각성자들이 제법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난 아무래도 몬스터를 죽이는 게 조건이었던 건가?’
성현은 새까맣게 타 버린 홉고블린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유력한 전후 사정이라면 이 녀석뿐이었기에 자신의 각성 조건을 몬스터의 처치로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아무 몬스터나 잡으면 되는 건지, 아니면 홉고블린 정도의 몬스터를 잡아야 각성이 가능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미친, 그딴 조건을 걸어 두면 대체 어떻게 각성하라고.’
그간 청성에서 일해 온 성현조차 이런 기막힌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죽기 전까지 절대 만족시키지 못했을 조건이다.
하물며 이쪽 업계에 몸을 담지 않은 일반인이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허나 어쨌든 그는 조건을 충족시켰고, 조건부 각성자로서 헌터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럼… 이대로 인생 역전 각을 볼 수 있는 건가?’
벼랑 끝에 몰렸던 그에게 떨어진 기연.
그동안 일하며 머리가 깡통인 별별 양아치 같은 놈들에게도 그들이 단지 헌터라는 이유만으로 꼼짝하지 못했다.
주어진 능력을 저렇게 멍청하게 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 녀석이 한 트럭… 아니,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제 성현이 그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헌터 업계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는 그였기에 주어진 능력을 제대로 써먹을 자신이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사실이 있었다.
‘지금부터라면… 시작이 좀 늦었어.’
선천적 각성자들 중 빠른 이들은 10대부터 현역으로 뛰기 시작하고, 늦어도 20대 초중반에는 능력을 각성하였다.
하지만 성현은 보다시피 20대 후반의 중고 신인이었다.
헌터들에게는 몬스터를 처치하며 경험을 쌓아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이는 단순히 직장 생활이나 수험에서의 경험치 같은 평범한 경험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시스템’의 적용을 받는 헌터들은 몬스터를 처치하며 전투 경험을 신체에 누적시킨다.
누적된 경험은 실제로 더 강한 능력이 되고, 그렇게 인간을 초월한 힘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헌터 길드들은 자신이 키울 루키를 볼 때 각성을 한 나이를 굉장히 중요한 지표 중 하나로 평가했다.
최소한 그 점에 있어서 성현은 완전히 나가리인 셈이었다.
“젠장, 경험치 두 배 이벤트 같은 거 한번 안 하나? 후발 주자들도 신경 좀 써 줘야 할 거 아니야.”
성현은 괜한 푸념을 늘어놓았다.
물론 의미 없는 헛소리라는 건 자신도 잘 알았다.
지난 몇 년 동안 뼈저리게 느낀 것이었지만, 게임과 다르게 이 뭣 같은 세상의 인생은 아주 불공평했다.
‘아니, 뭐 그거야 일단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이 미친 홉고블린이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알아야 하는데…….’
일단 미리 감지되어 헌터들이 조치를 취한 던전에서 이 녀석이 몰래 빠져나왔을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인류가 던전의 몬스터와 싸운 지 벌써 십수 년이 흐른 뒤였고, 길드들의 던전 관리 시스템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았다.
만약에 뚫렸다면 이미 눈치를 채고 헌터들이 온 동네를 뒤지고 있었을 거다.
그 말인즉, 발생 자체를 눈치채지 못한 미확인 던전에서 나온 녀석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홉고블린이 조용히 잘 숨어 다니는 녀석도 아니고, 길거리를 나돌아 다녔다면 금방 소란이 생겼을 텐데. 잠깐, 혹시… 바로 옆집에 던전이 발생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터무니없는 생각에 성현은 그만 헛웃음을 지었다.
* * *
다행히 옆집에 던전이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생성 범위 내에 있던 벽면을 통째로 으깨 버리며, 던전이 불쑥 생겨난 곳은 옆집이 아니라 바로 우리 집 지하실이었으니까.
[새로운 던전이 발견되었습니다!]
[???]
[던전 등급 - SSS+]
[규모 - 초대형 이상]
“아니… 미친놈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