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1화 (1/202)

1화 던전이 생겨났다

“오늘도 참 개 같은 하루네.”

성현은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주말의 끝, 월요일 출근을 반기는 직장인이 있을까.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이라기엔 사실 그는 남부럽지 않은 대단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청성(靑星).

한국에서 최정점에 서 있는 양대 거대 길드 중 하나였다.

전 세계에 던전이 생겨나고 헌터들이 각성하기 시작한 지 십수 년이 지난 시점.

정부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큰 역할을 해내지 못했고, 한국은 정재계를 막론하고 이 거대한 길드들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성현’ 역시 이 청성 길드의 일원이었다.

물론 전면에 나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헌터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뒤에서 헌터를 서포트하는 길드의 직원.

말이 좋아 서포트지 영업이란 이름 아래 술시중부터 헌터들이 벌여 놓은 사고의 뒷수습까지 온갖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자리였다.

“시, 실장님!”

“왜 또 죽상이야?”

“그게, 황일우 헌터님께서 난동을 부리고 계셔서…….”

“후… 어째 조용하다 했다. 알았어. 내가 직접 갈 테니까 현장 마무리 지어 놔.”

성현은 욕지거리를 속으로 삼키며 발걸음을 옮겼다.

원래 자기 목숨을 걸고서 일하는 헌터들의 특성상, 현장에서 사소한 문제로도 지랄을 부리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던전 공략이 이미 끝난 시점이었다.

청성의 헌터들이 진입해 몬스터를 모두 처리하고 난 뒤 길드 직원들이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단계.

그 시점에 개판을 치며 뒤엎고 있는 것이다.

이런 놈들은 예민한 게 아니라 그냥 성격이 지랄 맞은 거였다.

문제는 이런 자식들이 헌터들 중 한두 명이 아니라는 거지만.

퍼억!

험악한 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미리 한숨을 한 차례 뱉어 둔 성현은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크흡…….”

이마에 피까지 흘리고 있는 남자가 무릎을 꿇은 채 벌벌 떨고 있다.

일주일 전에 들어온 신참 직원이었다.

약간 어리바리한 녀석이라 걱정을 했건만, 이쪽 업계의 신고식을 호되게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나가 있어.”

“예? 하지만…….”

성현의 말에도 직원은 우물쭈물했다.

자리에 앉은 남자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뭐 해, 이 새끼야! 나가라잖아!”

쨍그랑!

사납게 날아든 술병이 바닥과 부딪히며 산산조각이 났다.

그제야 직원은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빠져나갔다.

덜컥 문이 닫히고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이 실장, 정말 이러기야?”

“…죄송합니다.”

“기껏 일 다 끝내 놓고 마지막에 이 지랄을 해야겠어? 어떻게 씨발 담배 심부름도 제대로 못 하는 새끼를 붙여 놓느냐고. 이거 그냥 날 좆으로 본다는 거 아니야?”

“아닙니다.”

성현은 뒷짐을 쥔 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황일우의 두툼한 손이 날아들었다.

퍽!

퍼억!

왼쪽 뺨을 서너 대 연달아 두들겨 맞았다.

휘청거린 성현은 벽을 짚고서야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헌터인 그로서는 나름대로 힘을 잔뜩 뺀 것이었지만, 얻어맞는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머리가 진탕 뒤흔들렸다.

“이 실장아, 제발 일 좀 똑바로 하자. 어? 애들 관리 좀 제대로 하라고! 별 잡것들이 어리바리하는 꼴, 난 열 뻗쳐서 못 보겠으니까.”

“제대로 교육시키겠습니다.”

입술에서 피가 터져 나왔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상대는 C급 헌터.

고위 헌터들로 가득한 한국의 양대 거대 길드, 청성 내에선 말단이나 다름없는 위치였다.

허나 그건 헌터들 사이에서의 이야기일 뿐이다.

일반인이자 지원직인 길드 직원들의 입장에선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위치였다.

“후… 내 성격 알지? 그래도 이 실장이니까 이쯤 하고 넘어가는 거야. 내 똥 여러 번 닦아 줬잖아?”

‘그래, 그랬지.’

가장 최근의 일만 해도 이 자식이 여자들을 끼고서 술을 퍼마시다 다른 취객과 시비가 붙어 박살을 내놓은 사건이 있었다.

온몸의 뼈가 다 부러진 채 넝마가 된 민간인들의 신세야 말할 것도 없었고, 더 일이 커지기 전에 나서서 소란을 수습하느라 한참 진땀을 뺐었다.

기자들을 조용히 입막음시켜 놓은 것도 바로 성현이었다.

“다음부턴 조심 좀 하고. 이제 가 봐.”

양주병을 집어 든 황일우가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러자 성현은 군말 없이 밖으로 나왔다.

“하, 시발. 나이도 어린 새끼가.”

가건물을 나온 성현이 담뱃불을 붙였다.

군대에서도 안 배운 담배를 이 뭣 같은 일을 하다가 배웠다.

벌써 7년째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이런 일엔 도통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까라면 까야지.’

성현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E급 헌터조차도 마음만 먹으면 일반인 정도는 단숨에 머리를 날려 버릴 수 있는 괴물들이다.

심지어 청성 같은 거대 길드의 힘이라면, 아무 이유 없이 그런 짓을 벌이고도 스리슬쩍 넘어가는 게 가능할 정도였다.

몬스터와 던전이라는 위기를 겪으며 헌터들의 세계가 된 이후,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었으니까.

생존의 문제 앞에 약육강식의 법칙은 더욱더 노골화되었다.

“후… 돈만 생각하자. 돈만.”

성현은 이번 주에 들어올 급여를 생각하며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꾹 눌러 담았다.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던전은 그 어떤 작업 환경보다도 위험한 현장이었고, 이쪽 업계는 생명을 담보로 한 덕에 돈을 꽤나 받는 편이었다.

거기다 청성 길드 정도라면 돈을 그야말로 쓸어 담으니, 직원들에게도 큰 액수가 수중에 떨어졌다.

물론 안에서 본 온갖 더러운 꼴을 밖에다 누설하지 말라는 뜻이긴 하지만 말이다.

* * *

현장은 완전히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재차 이루어진 확인 작업이 끝났고, 전리품들도 모두 밖으로 빼냈다.

이제 도심 지하에 생겨났던 던전을 완전히 폐쇄하는 작업만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 현장을 맡고 있던 성현은 느닷없이 호출을 받고서 불려갔다.

무려 청성의 길드장이 이곳을 직접 찾아온 것이다.

‘독사’라는 별칭을 가진 S급 헌터, 한인호.

그것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엄청난 거물이었다.

꿀꺽.

바짝 긴장한 채 자리에 앉은 성현은 건너편에 앉은 30대 남성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남자답게 생긴 얼굴에 듬직한 체격, 그를 뒷받침하는 압도적인 실력까지.

뛰어난 실력만큼이나 대중의 평판과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최고의 헌터였다.

물론 회사 내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조금 달랐지만 말이다.

“대표님께서 이런 곳에 직접 찾아오시다니… 혹시 저번 사건 때문입니까?”

“그래, 정확히 짚었군.”

한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 사건’이라면 며칠 전 B급 던전의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은폐형 몬스터가 다수 잠복해 있는 던전이기에 헌터들이 진입하기 전에 사전 작업이 이루어졌었는데, 거기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청성 길드의 분석팀이 저지른 실수로 인해 파악되지 않은 몬스터가 남아 있었고, 그것이 큰 사고로 이어지고 만 것이었다.

무려 B랭크 헌터의 두 팔이 잘린 대형 사고.

그것도 대중에 주목을 받고 있던 젊고 유망한 헌터의 수명이 한순간에 끝장이 난 사고였고, 이로 인해 길드의 입장이 다소 난처해진 상황이었다.

성현도 그 자리에 있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이 실장.”

“예. 대표님.”

“저번 사건 말이야. 혹시 외부에 이야기한 적 있나?”

“그야 당연히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함구령이 있었으니까요.”

“잘했군.”

한인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사내에서 들려오던 소문이 거짓말인가 싶을 만큼 다정한 모습이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감지 계열 능력자는 청성 정도 되는 거대 길드나 겨우 팀으로 굴릴 수 있을 만큼 희귀해. 그래서 어이없는 실수를 했어도 계속 품고 가야 하지. 하지만 이게 우리 쪽 과실이 되면 곤란해지거든. 분석팀, 더 나아가 우리 길드의 신뢰성에 금이 가면 안 되니까 말이야.”

“예. 그럼 당장이라도 작업을…….”

“아니, 젊은 10대 헌터 중 최고의 유망주라며 홍보팀이 요란 떨던 것 기억 안 나나? 그렇게 주목을 받던 헌터가 갑자기 종적을 감춘다… 말이 안 되지. 아무리 우리라도 완전히 감추는 건 불가능해.”

“아… 그렇겠군요.”

“하하,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건 없어. 조금 더 간단하게 가자고.”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물론이고말고. 자네가 뒤집어써 주기만 한다면 금방 해결될 문제니 말이야.”

“예, 예……? 그게 무슨……?”

성현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해가 안 되나? 자네 실수로 벌어진 사고로 하자는 거네.”

“그, 그럴 순 없습니다!”

“아니, 그래야만 해.”

한인호가 고압적인 태도로 말했다.

S급 헌터가 조성하는 강압적인 분위기에 성현은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이마에선 진땀이 삐질삐질 흘러나왔다.

“일처리가 어떻게 될지 정도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이번 일이 제 책임이 된다면 업계에서 완전히 쫓겨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맞아. 그래야겠지.”

“제가 지난 몇 년을 얼마나 길드에 헌신했는데……!”

“잘 알고 있네. 하지만 길드의 신뢰가 달린 문제야. 경쟁 길드 놈들이 벌써 냄새를 맡은 모양인데, 어중간한 중간 직원 몇 명 자른다고 묻힐 만한 사안이 아니지. 어차피 선택권은 없어. 미리 알려나 주러 온 거니 그냥 받아들이게.”

성현의 얼굴은 절망으로 가득 찼다.

이렇게 직접 말할 정도라면 증거 조작과 후속 조치까지 다 끝냈다는 소리다. 자신이 아무리 절대 안 된다고 소리를 쳐 봤자 누군가 들어줄 일은 없었다.

“그리고 이건 계약했을 때의 조항이네.”

물론 여기서 끝난다면 청성이 아니었다.

한인호가 테이블 위에 서류를 내밀었다.

“이, 이건…….”

그가 가리킨 항목에 성현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개인 실책으로 길드에 손실이 발생한 경우, 계약상 모든 책임을 지고 전액을 물어내게 되어 있는 조항.

이런 말도 안 되는 불공정 조건은 예전과 같은 사회였다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허나 현재 거대 길드들에서는 오히려 당연하게 여겨지는 조항이었다.

정말 이 항목이 자신의 목을 죌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네. 금액이 훨씬 크기는 하지만, 그래도 길드를 위해 일하던 사람이니 형편은 봐주지. 저번 던전에서 발생한 피해액의 10분의 일… 그러니까 9억 5천만 갚게.”

“그,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잔혹하게 들리겠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야. 인생을 배우는 수업료라고 생각하게. 혹시나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녔다간 우리 쪽 헌터들이 찾아갈 테니 입은 조용히 닫고 사는 거 잊지 말고.”

“웃기지 마! 그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성현이 소리쳤다.

무려 9억 5천만 원이란 막대한 빚이 별안간 머리 위로 떨어진 참이었다.

대표고 S급 헌터고 눈에 뵐 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성현의 행동에 한인호의 표정은 싸늘하게 바뀌어 있었다.

“저거 내 앞에서 치워.”

“아, 안 돼! 제발! 대표님, 대표님!”

* * *

성현은 결국 현장에서 완전히 쫓겨났다.

화도 내 보고 빌기도 해 보았지만, 한인호의 얼굴을 다시 볼 수는 없었다.

“이런 미친 새끼들… 누명을 씌워서 내쫓았으면 적어도 퇴직금은 쥐어 줘야 될 거 아냐! 거기서 돈까지 싹 토해 내게 해?”

욕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9억 5천이라면 여태 모아 둔 돈에 대출 낀 집까지 팔아넘겨도 어림없는 액수였다.

심지어 누명으로 이런 대형 사고를 쳐 버린 게 되었으니, 동종 업계엔 발도 들일 수 없게 돼 버렸다.

빚을 갚을 방법조차 없는 막막한 상황.

“이렇게 당하고도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모든 걸 잃은 성현은 복수심에 활활 타올랐다.

빌어먹을 한인호와 청성 길드에 어떻게든 엿을 먹여 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잠깐 타오른 복수심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일개 개인이 거대 길드 청성에 대항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동안 놈들의 밑에서 일을 해 왔기 때문에 더욱 잘 알고 있었다.

막대한 돈과 최강의 무력까지 가진 집단.

이 거대한 세력을 적대하던 자들의 최후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말이다.

‘하… 그냥 죽을까.’

무력감과 상실감, 그리고 묘한 충동과 함께 성현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작지만 마당까지 딸려 있는 단독 주택.

과거 몬스터에게 살해당한 부모님이 큼직한 빚과 함께 남겨 주신 유일한 유산이었다.

물론 여기에 9억 5천이라는 빚이 더 얹혀진 이상, 얼마 못 가 정리해야 할 재산이긴 하지만 말이다.

덜컥!

성현은 자연스레 문을 열고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가슴에 바위라도 얹은 듯 속이 꽉 막히고 답답해 일단 몸이라도 누이고 싶었다.

‘음? 뭐지?’

어둑한 현관 앞에 정체불명의 형체가 꾸물거렸다.

미리 말해 두지만, 애완동물 같은 건 일평생 키운 적이 없다.

“크르르륵!”

“이, 이게 뭐야!”

기이하게 생긴 녹색 괴물.

고블린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성현에게 달려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놈의 등장에 혼절할 듯 놀란 그의 머릿속엔 단 한 가지 생각만이 떠올랐다.

몬스터가 우리 집 현관엔 왜 있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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