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화. 전투 (6).
명진 쉘터.
분명 명진 쉘터에 거주하는 모두가 전투에 일가견이 있는 자들도 그렇다고 전문가도 아니긴 했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가 우세한지 혹은 누가 좋은 흐름을 갖고 있는지 정도는 알기 마련이었다.
다른 모든 것이 그렇듯 전투라는 것도 은연중에 그런 분위기가 드러나는 법이니까.
그래서 명진 쉘터에 거주하는 자들은 한마디씩 할 수밖에 없었다.
“홍주영님이... 밀리고 있는 것 맞지?”
“.......”
“.......”
“적이... 적이 전과 달리 너무 여유로워 보여.”
“나도. 내 눈에도 그렇게 보여.”
“내가 봤어. 저놈이 방금 전에 홍주영님을 상대로 웃는 것을. 홍주영님은 그 모습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고.”
쉴 새 없이 적을 몰아치는 홍주영.
그리고 그것을 허용하는 적.
딱 그것만 봤을 때는 홍주영이 우세를 점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게 느낀 자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발악.
모두는 홍주영의 그 행동에서 발악을 느꼈다.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가 없기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그런 발악을.
분명 적도 홍주영의 그 파상적인 공격을 여유롭게 받아치는 것을 넘어 어디 해볼 수 있는 데까지 마음껏 해보라는 듯이 두 팔을 쫙 벌리고 받아줬고.
“.......”
“.......”
“.......”
순간 명진 쉘터에 자리한 침묵.
그리고 그 침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무겁게 명진을 짓눌렀다.
30분, 40분, 50분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세 살배기 어린아이가 봐도 누가 우세한지 알 정도로 변해버렸으니까.
문제는 그 우세한 자가 홍주영이 아니라 적이라는 것이었고.
그래서 모두는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바로.
[패배.]
당연히 패배는 단순히 패배가 아니라 죽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고.
여하튼 명진 쉘터에 거주하는 모두는 아연실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멍하니 전방을 주시했다.
***
그 시각 명진 쉘터 상황실.
“.......”
“.......”
“.......”
상황실이라고 분위기가 다를 수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심각했다.
분명 상황실에 있는 자들은 상대적으로 경험은 물론이고 안목, 식견 등이 남들보다 더 뛰어놨으니까.
그리고 그때 홍상만 회장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명진은 준비를 해라.”
어떤 준비를 하라는지 알 수 없는 말.
하지만 홍기영과 홍수영 그 외 석인수 실장을 비롯한 명진의 수뇌부는 물론이고 미래 길드, 투갈 길드 거기에 안타라고스 정보 길드의 수뇌부마저도 그 말이 어떤 뜻인지 모르지 않았다.
딱 하나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바로 죽을 것을 알면서도,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적을 향해 달려들 준비라는 것을.
그리고 그런 홍상만 회장의 명령에.
“네. 10분 안으로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홍기영이 단 1의 망설임도 없이 가장 먼저 대답을 했다.
물론 그 명령에 홍기영만 대답을 한 것은 아니었다.
분명 그 명령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불 보듯 뻔했지만 홍기영에 이어 홍수영과 석인수 실장, 안동영 비서 실장, 임정대 경비 대장까지 모두 한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우선 명진의 그런 움직임에 갑자기 분주해진 상황실.
그리고 아무래도 그 움직임에 미래, 투갈, 안타라고스 정보 길드는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분명 주인은 명진이고 자신들은 손님인데 주인이 죽으러 간다고 하니까.
그런데 그때 미래 길드의 연정환 회장이 앞으로 나서며 석인수 실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 마이크가 명진 쉘터 전부에 연결이 되어 있나요?”
“네.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럼 부탁 좀 하겠습니다.”
연정환 회장의 그 말에 석인수 실장이 슬쩍 홍상만 회장을 쳐다봤고 그 후 곧장 마이크를 조작한 후 자리를 비켜줬다.
그 빈자리로 연정환 회장이 움직였고.
톡. 톡.
마이크를 살짝 손으로 두들겨 확인을 한 연정환 회장.
그리고 곧장 입을 열었다.
[모든 미래 길드원에게 말한다. 우리는 곧 명진을 따라 적을 향해 달려들 것이다. 물론 그로인한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있지도 않은 희망찬 이야기도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야 한다. 이건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의 문제니까.]
연정환 회장은 잠시 목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차피 홍주영의 패배는 우리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패배다. 하지만 홍주영이 생존하면 실낱같은 확률일지라도 가능성은 존재한다. 나는 그 가능성에 투자할 것이다. 그게 나의 승리이고 더 나아가 인류의 승리니까. 그러니 미래는... 준비해라. 정확히 10분 뒤에 명진의 뒤를 따를 것
이다. 그리고 미래의 선두에는 내가 설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연정환 회장은 마이크를 내려놨다.
당연히 상황실은 또다시 침묵이 자리했고.
그리고 그때 홍상만 회장이 그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연정환 회장님.”
홍상만 회장은 진심이었다.
왜냐하면 홍상만 회장은 공격 준비를 시키긴 했지만 연정환 회장처럼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이런저런 이유를 대도 결국 자신의 아들인 홍주영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는 뜻이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현재 명진 쉘터 내에서 의도치는 않았지만 어쨌든 명진 다음으로 가장 세력이 강한 미래 길드에서 홍주영을 구하는 것이 그나마 인류의 승리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포장 아닌 포장을 해버렸다.
즉, 홍주영을 구하는 것이 지극히 사적인 일이 아니라 거대한 인류 전체의 일로 바뀌어 버렸다.
그렇기에 홍상만 회장은 연정환 회장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그런 홍상만 회장의 감사 표시에 연정환 회장이 고개를 살짝 저으며 입을 열었다.
“절망의 대지나 흔적, 절망의 기운에 영향을 받지 않는 주영군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결국 승리해 맨 마지막에 주영군 홀로 남아 있어도 인류의 승리. 전 그것에 투자했을 뿐입니다. 다만 승리를 해도 홀로 남아 있다면... 주영군이 잘 버텼으면 좋겠군요.”
“...주영이는 잘 버틸 겁니다.”
여하튼 명진에 이어 그 다음으로 가장 세력이 큰 미래가 그것도 연정환 회장이 직접 가장 앞에 선다는 선언을 한 상황.
그로인해 뒤따르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홀로 발을 뺀다는 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더욱이 홍주영의 패배는 정말로 인류 전체의 패배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말인즉슨.
“투갈 길드도 참전을 하겠습니다.”
“안타라고스 길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그렇게 명진 쉘터 1번 메인 기지 앞의 넓디넓은 공터에 무수히 많은 자들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도 이 행동의 결과를 모르지는 않았다.
뿌리 벽을 넘는 순간 절망의 대지라는 디버프로 인해 전투력이 평소의 10% 이하로 뚝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 뚝 떨어진 전투력으로 홍주영도 어쩌지 못한 강자를 상대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만큼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니, 계란보다 약한 두부 그것도 순두부로 바위치기.
하지만 아무도 그것에 불만을 내비치지 않았다.
명진 쉘터 전체에 울려 퍼진 연정환 회장의 말처럼 인류의 승리를 위해서는 꼭 살려야 할 자가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바로 홍주영.
잠시 후.
명진 쉘터 1번 메인 기지 앞 공터.
“내가 가장 앞에 설 것이며 그 누구도 내 앞에 자리하지 마라. 이건 내 마지막 명령이다!”
“.......”
“.......”
“.......”
홍상만 회장은 그 말 외에 어떠한 명령도 하지 않았다.
적을 상대하기 위한 전략과 전술?
당연히 하지 않았다.
그것도 어느 정도 통할 가능성이 있는 상대에게나 하는 거지 눈앞에 있는 적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이들 전부를 사지로 끌고 가는 대신 자신이 가장 먼저 그 사지로 들어가겠다고 선언을 했다.
당연히 홍상만 회장의 그 말의 의미를 모를 자들은 없기에 그저 꽉 다문 입술로 대신 호응을 해줬고.
환호성을 내지를 일은 분명 아니니까.
그 후 홍상만 회장을 필두로 약 12만 명이, 명진 쉘터 내에 존재하는 현실 구현률을 올린 자들 전부가 뿌리 벽을 넘어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
1번 로얄 구역의 주인과의 전투 현장.
퍽. 퍽. 쾅. 쾅.
“.......”
진즉에 생명력이 10% 이하로 떨어진 상황.
원래라면 피해야 했다.
도망쳐야 했다.
그럴 능력도 있었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 뒤에 있는 명진 쉘터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인즉슨 아빠, 엄마, 형, 누나, 형수를 비롯해 석인수 실장과 임정대 경비 대장 등 그간 내 울타리 안에 있던 자들 전부가 죽는다는 뜻이고.
아니, 이제는 더 있었다.
바로 내가 불러들인 미래 길드와 투갈 길드 그리고 안타라고스 정보 길드까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
물론 그 와중에도 여러 생각이 떠오르긴 했다.
가령 여기에 가만히 있으면 나도 죽고 내 뒤에 있는 모두도 죽는 상황.
최악중의 최악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럴 바에 나 라도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도 분명 존재했다.
그래야 최소한 복수라도 노려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이 이성적인 판단이라는 가면을 뒤집어 쓴 두려움의 발로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크크크. 복잡한가 보군. 얼굴에 생각이 너무 많아. 크크크.]
대놓고 나를 조롱하는 상대방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안 되는 것을 뻔히 앎에도 공격을 날리는 것 외에는.
그런데 그때.
쿵. 쿵. 쿵. 쿵. 쿵.
정확히 뒤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꽤 큰 소리가.
그래서 살짝 고개를 돌려 확인했고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뿌리 벽을 넘는 수많은 자들의 모습이었다.
더욱이 그 수많은 무리의 맨 앞에는 바로 아빠가 자리했고 그 아빠의 바로 뒤에는 형과 누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 안돼...”
저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나도 모르게 절망에 찬 음성이 새어나왔다.
더욱이 형수에 이어 엄마마저도 그 무리에서 모습을 드러냈기에 더더욱.
그리고 그때.
[홍상만 : 뒤로 빠져라. 그리고 이곳을 벗어나라.]
[홍기영 : 그간 수고했다. 주영아. 이제 여기는 형에게, 가족에게, 명진에게 맡겨라.]
[초절정미녀 : 흐흐흐. 이건 내 선택이고 우리 모두의 선택이야. 그러니까 질질 짜지 말고. 뭐... 꼭 복수해 달라고는 안 할게. 물론 할 수 있으면 해주고.]
[아들둘딸하나 : 아들. 엄마가 사랑하는 것 알지? 그러니까 이번에는 엄마 말 좀 꼭 들어줬으면 좋겠어. 제발 멀리 벗어나. 주영이 너는 할 수 있잖아.]
가족들의 귓속말이 연달아 울렸다.
동시에.
“모두 적을 향해 달려들어라!”
“와아아아!”
우선 그 모습에 곧장 가장 앞장서서 움직이는 아빠 옆으로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를 사용했다.
분명 곧이곧대로 들을 명령은 절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홍주영! 이성적으로 판단해라! 어차피 다 죽을 필요는 없다. 너는 살아라. 그래서 기회를 노려라! 그만큼 만약 우리 중에 홍주영 너보다 더 나은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나는 홍주영 너를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너밖에 없다. 너마저 여기서 쓰러지면 완전히 끝이다. 그러니
도망쳐라! 죽을 듯이 도망쳐라! 만약 여기서 너마저 죽는다면 난 죽어도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아빠는 자신의 옆에 모습을 드러낸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서 쏜살같이 그 말만 내뱉고는 앞으로 쭉 나아갔다.
입가에 미소를 띠는 형과 누나 그리고 석인수 실장과 임정대 경비 대장까지도.
동시에.
“막내도련님! 여기는 걱정 마세요.”
“오히려 과한 짐을 맡겨서 죄송합니다.”
“적을 오래 붙잡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어서 빨리 여기서 벗어나세요.”
나를 지나쳐 가는 그 누구도 나를 향해 원망의 말을 쏟지 않았다.
오히려 미안하다는 말만 있을 뿐.
더욱이.
[kali :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먼저 들이댈걸. 아니, 홍주영 너도 좀 그래. 어렸을 때부터 같이 소꿉장난하며 놀 때 네가 먼저 나중에 꼭 결혼을 하자고 했었잖아. 멋진 보석에 멋진 프러포즈를 할 거라면서. 쳇. 너 때문에 처녀 귀신으로 죽게 됐으니까 나중에라도 꼭 책임져.]
연보라도 그 한마디 말을 내뱉고 내 곁을 스쳐지나갔다.
물론 부정할 생각은 없다.
분명 이런 생각을 하긴 했었다.
바로 모두를 버리고 나 혼자라도 사는 생각을.
하지만.
“이건... 이건 내가 바란 것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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