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전투 (5).
명진 쉘터.
“.......”
“.......”
“.......”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는 대지가 흔들리고 하늘이 무너지는 전투에 그 누구도 숨소리 외에는 입 밖으로 아무것도 내뱉지 못했다.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눈앞에 벌어지는 전투를 설명하기에는 한참 부족했으니까.
그리고 동시에 전투를 지켜보는 모두는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전투가 모든 것의 종지부를 찍는 그런 전투라는 것을.
그만큼 홍주영의 패배는 지구의 패배일 수밖에 없었고 반대로 홍주영의 승리는 지구의 승리라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그래서.
자근자근.
부들부들.
몇몇은 이빨로 손톱을 물어뜯었고 또 몇몇은 가만히 서있지 못하고 몸을 떨어댔다.
분명 박빙에 가까웠고 아직까지 어느 쪽으로 승부의 추가 기울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웠지만 그것 자체로 문제였으니까.
말인즉슨 항상 이겨왔던 홍주영.
함정은 물론이고 수만 명, 수십만 명도 홍주영을 어쩌지 못했었다.
홍주영도 그런 수많은 적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한가운데로 파고들어 무적에 가까운 신위를 뽐냈었고.
그런데 그런 홍주영과 1 대 1로 호적수를 이루는 상대방의 모습은 지켜보는 자들에게 불안감을 유발시킬 수밖에 없었다.
분명 처음이니까.
여하튼 명진 쉘터에 거주하는 대부분은 아니, 모두는 ‘절망의 대지’에 이어 ‘흔적’ 거기에 ‘절망의 기운’까지 족쇄는 것이 너무 많아 홍주영에게 도움은커녕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기에 그렇게 두 손을 꼭 부여잡고 홍주영의 승리를 기원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게 전부였으니까.
***
명진 쉘터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점.
“아이스 필드. 중첩 살얼음.”
파사사삭.
용암 지옥이 펼쳐진 곳에 아이스 필드와 살얼음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 사용은 분명 이유가 있는 사용이었다.
왜냐하면.
스르르륵.
째캉. 째캉. 째캉.
용암 지옥위에 모습을 드러냈던 용암용들.
그 한방 한방의 대미지가 크지 않더라도 분명 걸리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오롯이 모든 신경을 쏟아 불을 대상이 눈앞에 있는 상황이기에 더더욱.
그래서 살얼음이 중첩된 아이스 필드를 사용했다.
그러자 용암 지옥 위에 모습을 드러냈던 용암용들이 얼어붙기 시작했고 곧장 금이 가며 그대로 부서져 내렸다.
더욱이 용암 지옥에는 밀리긴 했지만 어쨌든 녀석의 용암 지옥도 한차례 내 살얼음이 중첩된 아이스 필드를 파괴하느라 위력이 약해진 상황.
이번에는 내 아이스 필드가 녀석의 용암 지옥을 완벽하게 얼려버림으로써 우위를 점했다.
우선 그 모습에.
“블링크.”
곧장 얼음의 대지 위로 이동을 했다.
다른 상대라면 어디에서 공격을 하든 상관없지만 눈앞에 있는 녀석을 상대로는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이용을 해야 했으니까.
얼음의 대지 위에서 공격시 적용되는 약간의 대미지 증가마저도.
그 후 곧장.
“아이스 토네이도! 서릿빛 혹한의 창!”
스킬 쿨타임이 돌아온 강력한 공격부터 퍼부었다.
휘이이잉!
콰아앙!
정확히 녀석에게 박혀드는 공격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녀석이 일부러 방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대신.
[쏟아져라! 번개 폭풍!]
우르르르. 쾅! 쾅!
[죽음의 소나기!]
후두둑. 후두두둑.
나에 비해 대미지는 물론이고 전혀 부족하지 않은 피해 범위를 가진 녀석의 공격들.
물론 녀석과 달리 나는 피할 자신이 있었다.
한 번에 지구 전체를 뒤덮는 그런 공격이 아니라면 결국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 앞에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니까.
실제로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를 얻었을 때도 공격보다 이런 식의 활용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에 더 기뻤고.
하지만.
퍽. 퍽. 퍼버버벅. 퍽.
녀석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몇 차례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로 녀석의 공격을 피한 적이 있었다.
굳이 안 피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럴 때마다 녀석의 눈길이 향하는 곳이 있었다.
바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명진 쉘터.
물론 멍청하게 명진 쉘터를 지키는 모양새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건 나 스스로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니까.
그래서 실제로 녀석이 소환한 언데드 군대가 나를 지나쳐 명진 쉘터로 움직이는 것을 막지 않았다.
아무리 언데드 군대가 숫자가 많고 강력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명진 쉘터를 둘러싸고 있는 뿌리도 강력했고 그 뿌리 뒤에서 ‘절망의 대지’라는 디버프를 받지 않는 자들이 수만 명, 수십만 명은 됐고.
하지만 계속된 나의 회피로 녀석도 참을성이 바닥난 것 같았다.
즉, 피할 수 있음에도 일부러 녀석의 공격을 허용했다.
녀석을 나한테 붙잡아 두기 위해서.
그리고 그런 내 행동에.
[그렇지. 그렇게 나와야지. 나도 솔직히 이번에도 피할 생각이었다면 우선순위를 바꿀 생각이었거든.]
“...뭔 개소리인지 모르겠군. 이게 원래 내 전투 스타일이야. 쿠하나에서 나에 대해 많이 들어봤을 것 아냐?”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전투가 내 전투 스타일이긴 했다.
굳이 없는 컨트롤을 쥐어짤 생각도 없었고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모든 공격을 허용해도 별 피해를 받지 않는 마당에 이리저리 날뛸 필요가 분명 없었으니까.
다만 문제라면 지금 내 앞에 있는 녀석이 그전에 상대했던 모든 자들을 통틀어 가장 강력했다.
아니, 단순히 강했다는 말로 치부하기 부족할 정도로 엄청나게 강력했다.
생명력도 쭉쭉 줄어들어갔고.
더욱이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바로.
[한정 스킬 ‘특출나게’의 유지시간 종료까지 11분 35초 남았습니다.]
약 11분 뒤면 현저히 약해지는 상황.
그래서 마음을 바꿔먹었다.
정말 방어를 배제한 채 오로지 공격일변도로 나아가야할 처지에 놓인 자는 녀석이 아니라 나니까.
나의 장단에 녀석이 알아서 맞춰준다는데 거절할 필요는 없었고.
여하튼.
“쏟아지는 우박! 아이스 스피어!”
후두둑. 후두두둑.
쾅!
[날벼락! 내리찍어라! 용암 거인의 일격!]
퍽. 퍽. 퍼버벅. 퍽.
콰앙!
나도 피하지 않고 녀석을 향해 계속 공격을 집어넣었고 녀석 또한 나를 향해 계속 공격을 집어넣었다.
한참을 계속.
***
잠시 후.
[한정 스킬 ‘특출나게’가 종료되었습니다.]
11분이 이렇게 짧은지는 처음 알았다.
그만큼 분명 몇 분 지나지 않았겠거니 했지만 갑작스레 메시지가 울렸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녀석을 향해 계속 공격을 퍼부었다.
한정 스킬 ‘특출나게’가 종료됐으니 10일 뒤에 다시 싸우자고 말할 사이는 아니니까.
솔직히 온전히 ‘특출나게’게 유지되는 30분간 싸운다 해도 이길 수 있을지 가늠도 되지 않았고.
그리고 그때 내 공격을 허용한 녀석이 갑자기 반격을 멈추더니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뭐지? 갑자기 너무 차이가 심한데?]
“아이스 스톰! 다연발 아이스 애로우!”
퍽. 퍽. 퍼버벅. 퍽.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33만에 달하던 지력이 그 반토막이 됐으니까.
[오호. 그래. 맞아! 홍주영 너 정도라면 당연히 뭔가가 있었겠지! 그런데 그 뭔가가 방금 종료가 됐고. 크크크.]
비웃음을 터트리는 적.
그러나 여기서 어떤 말을 해도 약해진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기에 대응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둘러댈 말도 없었고.
하지만 약해진 공격력에 비해 여전히 10만이 훌쩍 넘는 체력과 약 7만에 달하는 정신력은 변함이 없었다.
즉, 몸빵 능력은 전과 동일했기에 여전히 녀석의 공격을 버텨내며 공격을 퍼부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니까.
동시에.
“블링크.”
푹. 푹.
그 자체로도 어마어마하지만 무려 9레벨의 아이스 웨폰이 적용된 15강화 얼음황제 수호검.
거기에 힘과 민첩도 모두 4만을 넘어섰다.
얼음황제 수호검이 8강화에서 순식간에 15강화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다른 것도 어마어마하게 증가했지만 힘과 민첩도 엄청 증가 했으니까.
우선 그렇게 벌써 전세역전이 된 듯 자신만만해하는 적을 상대로 원거리, 근거리 할 것 없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전투를 계속 진행했다.
***
약 40분 후.
“후우. 후우.”
숨을 몰아쉬며 인벤토리에서 하나의 아이템을 꺼내 가슴팍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메시지 하나가 울렸다.
[별자리 뱃지 사냥꾼의 착용 제한을 충족하였습니다.
-별자리 사냥꾼의 뱃지를 착용하시겠습니까?]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인도 시다트 길드의 라쉬마카 길드장에게 받은 별자리 사냥꾼의 뱃지.
총 3번 사용이 가능한 아이템으로 첫 번째는 시다트 길드 편에 서서 중국을 막기 위해서 사용했고 두 번째는 기생충을 막기 위해서 사용을 했었다.
마지막 남은 한번은 인도 시다트 길드를 위해 사용하기로 지금 당장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
그래서 즉각 사용을 했다.
마나는 여전히 여유가 철철 흘러넘쳤지만 생명력은 그렇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별자리 사냥꾼으로의 변신이 현재의 수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별자리 사냥꾼으로의 변신이 진행되지 않습니다.
-민첩 1000이 증가합니다.
-별자리 사냥꾼의 뱃지의 착용 효과를 받지 못함으로써 민첩이 추가적으로 3000이 증가합니다.]
[별자리 사냥꾼의 뱃지 아이템이 파괴됩니다.]
원래라면 민첩 1000이지만 총 4000의 증가.
아니, 직전에 두 번의 사용으로 그때도 각각 1000씩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총 6000의 증가.
하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떨떠름한 표정이군.]
“.......”
분명 전투중.
그래서 표정관리를 한다고 했는데 제대로 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분명 결과가 드러날 때까지 아니, 설사 죽는 그 순간까지도 적을 상대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러기에는 생명력이 간당간당했으니까.
쓰윽.
우선 내 뒤에 서있는 명진 쉘터를 바라봤다.
여전히 넘실넘실 대는 뿌리 벽으로 위압감이 넘치는 모습.
하지만 뿌리로는 눈앞에 있는 녀석을 막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다.
[오호. 감회가 새롭나봐? 하긴 나도 그랬거든. 평생을 살아왔던 터전인 쿠하나가 부서지고 파괴될 때 말이야.]
“개소리를 하는군.”
[크크크. 그래. 개소리라고 치부하고 싶겠지. 좋아. 홍주영 너는 특별히 느끼게 해주겠어. 네 뒤에 있는 저것이 무너지고 파괴되는 것을 보는 것을. 물론 꼭 사지 멀쩡한 채로 볼 필요는 없잖아? 솟구쳐라! 용암 분출!]
콰아앙!
우선 비장의 카드 한 장이 날아갔지만 낙담만 하고 있을 수는 없기에 2차전이 다시 시작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바로.
[‘위기에 대비하는 발판 3번’ 가호를 보유중입니다.
-생명력이 줄어들수록 전투력이 증가한다.
생명력이 10% 하락할 때마다 전투력이 1%씩 증가한다.
-최대 보유 생명력이 10% 이하로 하락하면 그 즉시 1회에 한해 어떤 공격을 받아도 피해량이 무조건 0이 된다.
: 쿨타임 30일.]
[피해를 받지 않습니다.
-‘위기에 대비하는 발판 3번’은 30일간 비활성화 상태로 변합니다.]
생명력이 10% 이하로 내려갔다는 경고에 가까운 메시지.
동시에.
두근두근.
심장이 세차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그럴만한 것이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린 것은 처음이었다.
더욱이 뒤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명백히 여기가 끝이었다.
여기서 뒤로 물러난다는 것은 나 스스로 명진 쉘터를 포기한다는 것이고 그 말인즉슨 가족들을 포함해 내 울타리 안으로 받아들인 자들 전부를 포기한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솔직히 정말 솔직히 나중을 기약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어쩌면 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말의 희망조차 보이지 않았다.
[왜 도망치게? 물론 가능할 거야. 나는 솔직히 너를 따라잡을 자신이 없거든. 하지만 저 뒤에 있는 자들은 고통속에 천천히 죽어갈 거야. 물론 처음에는 홍주영 네가 아닌 나를 원망하겠지. 그러나 그게 계속 그럴까? 아니지. 절대 아니야. 결국 홍주영 너를 원망하고 증오할거야. 내가 그
렇게 만들 거거든.]
“.......”
녀석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물론 희생? 헌신? 영웅? 이런 생각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약한 것이 억울했다.
더 강하지 못한 것이 분했다.
그런데 그때 정확히 내 뒤쪽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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