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전투 (1).
강원도 고성군 앞바다.
“가야 했을까요? 제안을 거절한 것이 실수일까요?”
연보라는 구축함에 서서 정확히 명진 쉘터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을 내뱉었다.
분명 멀지 않은 거리기에 거대한 명진 쉘터의 윤곽이 보이기도 했고.
그리고 그 질문에 연보라 뒤에 서 있던 유성엽 실장이 입을 열었다.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겠습니까?”
“결과라... 그렇겠네요.”
유성엽 실장의 대답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 연보라는 그 뒤로도 쭉 명진 쉘터가 있는 곳을 주시했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열었다.
“현재 절망의 대지는 어디까지 왔죠?”
“정확히 10분이면 명진 쉘터에 닿을 것으로 보입니다.”
“명진의 움직임은요?”
“현재까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꽤나 많은 길드나 단체에서 드론 등을 활용해 명진 쉘터를 관찰하고 있습니다. 분명 절망의 대지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홍주영이지 명진 길드도 명진 쉘터도 아니니까요.”
“분명 수가 있을 거예요. 주영이가 자신의 가족을 뒤에 남겨놓고 빈말을 할 성격은 아니니까요.”
“네. 전략부에서도 그렇게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홍주영이 괜히 홍주영이 아니니까요. 다만 이제 남은 시간이 너무 짧은지라...”
“기다려 보죠. 10분은 금방이니까요.”
“네.”
그 말을 내뱉고 연보라는 계속 시선을 전방에 주시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정환 회장을 비롯해 미래 길드의 수뇌부들도 명진 쉘터가 잘 보이는 그 구축함으로 이동해 함께 전방을 주시했다.
분명 절망의 대지를 앞에 두고 홍주영과 명진이 어떤 대응을 할지는 모두의 관심사였으니까.
잠시 후.
꿈틀꿈틀.
넘실넘실.
“.......”
“.......”
“.......”
연보라와 연정환 회장을 비롯해 미래 길드의 수뇌부는 정확히 명진 쉘터가 위치한 곳에서 솟구쳐 오른 무수히 많은 갈색 더미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욱이 그 중에 유독 다른 갈색 더미들에 비해 거대하고 큼지막한 하얀색의 그것.
모두들 단번에 그것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일명 뿌리라 불리는 그것들은 홍주영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것이었으니까.
홍주영이 자리를 비운 사이 명진 쉘터를 지킨 것이기도 하고.
우선 그 모습에 곧장 연정환 회장이 입을 열었다.
“명진 쉘터 내부를 비추는 영상이 있겠지?”
“네!”
그 뒤 곧장 연정환 회장 앞에 태블릿 같은 기기가 놓여졌고 모두들 그 태블릿을 통해 확인을 할 수 있었다.
뿌리가 명진 쉘터를 삥 두름으로써 일종의 차단막이 세워졌고 그 차단막 안에는 평소의 맨 땅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습에 연보라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주영이는 남들과 달리 땅에서 방주를 만들었네요.”
연보라의 그 말에 자신들이 탑승한 배보다 더 튼튼하고 안전해 보이는 뿌리 벽에 아무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저 ‘역시 홍주영인가.’ 라는 생각만 할 뿐.
***
7일 뒤.
명진 쉘터 회의실.
“현재 절망의 대지는 모든 대륙을 잠식하고 북대서양의 일부분만을 남겨둔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 혹은 이틀이면 온 지구가 절망의 대지로 뒤덮일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
“네.”
정확히 지구를 절망의 대지로 뒤덮어 제2의 쿠하나로 만들면 모습을 드러내겠다고 한 적.
그게 이제 길어야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에 오히려 반가웠다.
분명 이 다음 챕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꼭 진행되어야 할 전투니까.
피하는 것도 불가능했고.
그래서 그럴 바에 어서 빨리 결론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분명 과거에는 모든 것을 건 전투라면 최대한 뒤로 미루겠다는 생각이 컸지만 이제는 미룰 만큼 미뤘고 더 이상 뒤로 미루는 것이 불가능 했으니까.
절망의 대지를 막기 위해 항상 소환 상태로 두는 뿌리 때문이라도 더 이상 ‘Revival Legend’에 접속도 불가능했고.
물론 두렵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분명 얼음황제 수호검을 15강화로 만들었고 스킬도 정비를 끝냈으며 직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우선 그렇게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
이틀 뒤.
호주.
슝. 슝. 슝. 슝. 슝.
정확히 처음 절망의 대지가 모습을 드러낸 지점을 시작으로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들은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바로.
[절망의 대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쿠하나 소속입니다.
: 모든 스탯포인트가 50%씩 증가합니다.
: 생명력과 마나가 50%씩 증가합니다.
: 패시브 관련 스킬의 성능이 50% 증가합니다.
: 액티브 관련 스킬의 위력이 50% 증가합니다.
: 스킬 사용 후 재사용을 위한 쿨타임이 500% 하락합니다.
: 전투력이 지속적으로 증가합니다. (최대 50%까지 증가.)
: 생명력과 마나의 자동 회복량이 큰 폭으로 증가합니다.]
“크크크. 절망의 대지가 완성이 됐다. 이제 이곳은 우리의 새로운 터전이 될 것이다!”
“와아아아!”
“쿠하나! 쿠하나!”
리더로 보이는 자의 외침에 뒤따라 모습을 드러낸 자들이 연신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어느 정도 그 환호성이 가라앉자 리더로 보이는 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선 아무것도 모른 채 새와 물고기가 된 자들은 버린다. 어차피 그분들이 오시면 알아서 하늘에서, 물가에서 기어 나올 테니까. 그전에 땅에 남아 있는 버러지들을 정리한다!”
“네!”
“알겠습니다!”
그 후로 쿠하나에서 건너온 자들은 이동을 시작했다.
물론 호주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긴 했지만 어쨌든 현재는 지구 전체가 절망의 대지로 뒤덮인 상황.
그래서.
미국 시카고.
슝. 슝. 슝. 슝. 슝.
독일 베를린.
슝. 슝. 슝. 슝. 슝.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 타운.
슝. 슝. 슝. 슝. 슝.
지구 곳곳에서 쿠하나의 소속의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들은 어마어마한 버프를 등에 업고 기세등등하게 움직였다.
***
다음날.
붉고 검은색의 절망의 대지는 인류뿐만 아니라 몬스터마저 집어삼켜버렸다.
물론 그 와중에 종종 현실 구현률을 올린 자들이 그 절망의 대지를 밟으며 이동을 하기는 했다.
어쨌든 일반인과 다르게 즉사를 하지는 않았으니까.
단, 거대 길드나 단체 등에서 구비한 방주에 탑승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약자라는 뜻.
그래서.
“컥!”
“크억!”
“나는... 나는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
털썩.
털썩.
분명 원래도 약자들.
그런데 절망의 대지라는 디버프까지 받는 상황.
속된말로 일반인보다 못한 수준이 그들이었다.
하물며 쿠하나에서 건너온 자들은 기본적으로 강한 상대들이었다.
평균적인 전력에서 어마어마한 차이가 존재했고.
그런데 그들은 같은 절망의 대지지만 디버프가 아닌 버프효과를 받고 나타난 상황.
마치 어른과 어린아이의 싸움일 수밖에 없었다.
추풍낙엽.
아니, 추풍낙엽이라는 표현도 부족한 죽음이 지구 곳곳에서 펼쳐졌다.
그리고 그런 죽음 앞에.
“크크크. 모두 죽여라!”
“제 2의 쿠하나인 이곳에 쓰레기를 내버려두는 것은 수치다! 깨끗하게 정리를 하라!”
“와아아아!”
반대로 쿠하나에서 건너온 자들은 마치 복수라도 하듯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지구에 속한 자들을 죽이고 또 죽이며 계속 움직였다.
갈색의 거대한 무언가가 넘실넘실 춤추는 마치 성벽처럼 보이는 곳에 당도할 때까지.
***
명진 쉘터 내 1번 메인 기지 옥상.
절망의 대지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전려 거리낌이 없는 자들.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는 자들.
딱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쿠하나에서 건너온 자들.
그렇지 않다면 절망의 대지 위에서 저렇게 희희낙락 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우선 명진 쉘터로 다가오는 그들 앞에 딱히 나서지 않았다.
내가 기다리는 자들이 아니니까.
더욱이 내가 나서지 않더라도 대신 나설 자가 아니, 더 정확히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푹. 푹. 푹.
“크억!”
“뭐... 뭐야!”
“젠장! 지금 우리는 절망의 대지라는 버프를 받고 있는데...”
“뭐가 이렇게... 강력해?”
아무래도 적들은 뿌리의 위력에 상당히 놀란 것 같았다.
전부를 한방에 쓰러트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태반을 한방에 쓰러트렸으니까.
더군다나 절망의 대지로 인해 받는 디버프를 반대로 버프로 받고 있는 상태에서.
하지만 나는 얼추 예상을 했다.
그래서 조금 아쉬웠다.
이 메시지가 조금만 더 일찍 울렸다면 그러니까 절망의 대지가 명진 쉘터를 감싸기 전에 울렸다면 방주를 더 크게 만들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인즉슨.
[뿌리가 데나얀의 나무 조각을 흡수하였습니다.
-뿌리가 뿌리로서 가진 한계를 벗어나 한 차원 위의 존재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뿌리가 큰 폭으로 성장합니다.]
더욱이 메시지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뿌리가 ‘근원의 조각Ⅲ’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한 차원 위의 존재로 성장하는데 일정부분 영향을 끼칩니다.]
뿌리하면 꽃이나 나무를 비롯해 여러 가지 식물이 떠오르지만 그래도 나무일 수밖에 없었다.
뿌리를 긴 뿌리 고목나무라는 정확히 나무 형태의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얻은 거니까.
더욱이 이번 메시지는 ‘데나얀의 나무 조각’을 흡수하고 울린 메시지이기도 했고.
물론 당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갑자기 나무를 키워낸 것도 아니고.
하지만 직전보다 하얀색 뿌리는 더 커지고 단단해졌으며 다른 갈색 뿌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숫자도 많아졌고.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그로인해 드러난 결과였다.
방금 전까지는 위풍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자들이 혼비백산 하는 것으로.
우선 그 뒤로도 뿌리는 다시 겁도 없이 명진 쉘터에 다가온 녀석들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크억!”
“이게... 이게 뭔데!”
털썩.
털썩.
한 번의 공격은 버텨낸 자들.
하지만 두 번의 공격을 버텨내는 자들은 없었다.
그 후 다시 원래의 위치로 이동한 뿌리.
당연히 믿음직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명진 쉘터는 뿌리에게 맡겨두고 로얄 구역의 주인들을 내가 먼저 찾아 움직일까라는 생각도 했다.
겸사겸사 적들의 숫자도 줄이고.
그러나 아무리 강력한 뿌리라도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혹여나 로얄 구역의 주인들이 한 번에 들이닥치면 뚫릴 수밖에 없었다.
로얄 구역의 주인들은 괜히 로얄 구역의 주인들이 아니니까.
더군다나 그들도 쿠하나에 속한 자들로 절망의 대지라는 디버프까지 받는다는.
“그래. 어차피 올 수밖에 없으니까.”
우선 그렇게 명진 쉘터에 머무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
23일 뒤.
사우디아라비야의 수도 리야드.
슝. 슝. 슝. 슝.
한 번에 최소 수천 명에서 수만 명까지 쿠하나의 존재들을 지구에 토해내던 절망의 대지.
그런데 이번에는 정확히 4명의 존재만 토해냈다.
그리고 지구에 모습을 드러낸 그 4명을 주위를 살피며 한마씩 말을 꺼냈다.
“여기가 홍주영 아니, 이지원이 소유한 곳인가?”
“좋군. 나쁘지 않아.”
“하지만 이건 명백히 손해다. 승리하면 공짜로 얻을 곳을 우리의 터전인 쿠하나를 제물로 바치고 얻은 거니까.”
“그건... 어쩔 수 없다. 홍주영이라는 변수는 우리 계획에 없었으니까.”
“됐다. 어차피 홍주영만 처리하면 말끔히 이곳과 이지원의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다. 그러면 그간 본 피해는 전부 복구가 가능하다. 아니, 복구가 아니라 이득이지.”
“맞다.”
우선 그렇게 로얄 중의 로얄이라는 2번 구역과 3번 구역의 주인 거기에 남은 8번과 9번 구역의 주인들이 이동을 시작했다.
이미 모습을 드러낸 순간 먼저 이곳에 왔던 자들에게 절망의 대지위에 존재하는 난공불락의 요새에 대한 보고가 들어왔으니까.
당연히 그 난공불락의 요새는 홍주영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더라도 홍주영일 수밖에 없었고.
***
4명의 로얄 구역의 주인들이 드디어 지구에 모습을 드러낸 상황.
그리고 그 순간 극소량 절망의 대지 안에서 살아남은 자들과 각자의 방주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자들 모두는 메시지 하나를 들을 수 있었다.
바로.
[절망의 대지가 절망의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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