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한 클로즈베타-262화 (262/271)

262화. 각자의 방주.

미국 뉴욕.

홀드렛지 총본부.

“그러니까 그 절망의 대지라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네. 대서양 일부분을 통째로 얼린 홍주영마저 실패를 했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 예상을 하긴 했지만 홍주영 본인은 절망의 대지라는 것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고요.”

전투력 하락도 하락이지만 한번 절망의 발을 내딛으면 흔적이라는 것이 발생하고 그 흔적으로 인해 최소 5시간은 절망의 대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내용.

그런데 스파이를 통해 촬영한 기억의 구슬로 홍주영이 분명 절망의 대지에 발을 디뎠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그곳을 빠져 나가는 모습은 모두의 부러움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건 누구나 바라는 바니까.

여하튼 그렇게 5인의 최고 간부 내에서 흘러나온 질문에 정보부 수장 어스틴이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고 곧장 다시 5인의 최고 간부 내에서 질문이 새어나왔다.

“그럼 대비책은?”

“홍주영이 아닌 이상 딱 하나 밖에 없습니다. 쿠하나에서 절망의 대지를 가져온 자들도 그렇게 말을 했고요.”

“그게 뭐지?”

“새 혹은 물고기가 되라고요. 그러나 새는 불가능한 상황. 즉, 물고기가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현재 저희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항공모함을 비롯해 전함과 순양함 거기에 컨테이너선 같은 상선까지 모조리 뉴욕 앞바다에 끌어 모아놓은 상태입니다.”

“흠...”

“크흠...”

어스틴의 말에 5인의 최고 간부 내에서 탐탁지 않은 침음이 흘러나왔다.

결국 그것이 미봉책이라는 것을 아니까.

배를 이용해 바다에서 평생을 산다는 것 자체도 불가능할 수밖에 없고.

즉, 뻔히 결과가 보이는 암울한 미래.

그리고 그때 5인의 최고 간부 내에서 다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홍주영과 명진은?”

“...딱히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명진 쉘터가 위치한 곳은 강원도라는 곳이고 바다가 멀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배를 모으지 않고 있다고?”

“네. 물론 배를 수소문 한다는 이야기는 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적극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럼 무슨 방도가 있다는 건가? 땅에 머물 수 있는?”

“그건... 모르겠습니다.”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하는 정보수 수장 어스틴.

하지만 그런 어스틴에게 질책을 가하는 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이제는 궁금하다고 대뜸 대답을 구하기에는 홍주영과 명진이 무척이나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으니까.

어쩌면 인류의 멸망이라는 모래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모래시계를 다시 뒤집을 자는 홍주영뿐이기도 했고.

우선 그렇게 홀드렛지는 답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앎에도 회의를 계속 이어갔다.

그리고 여러 개의 안건을 상정했고 그 중에 가장 첫 번째로 뽑힌 안건은 이것이었다.

바로 홍주영을 비롯해 명진의 모두를 홀드렛지가 준비한 배에 태우는 것.

홍주영을 같은 배에 태운다는 것만으로도 분명 어느 정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뜻이니까.

***

그 시각 중국 베이징.

“돈도 돈이지만 이해관계에 따라 정보 관리를 철저히 했던 안타라고스 정보 길드에서 아무런 대가도 없이 절망의 대지에 대한 정보를 계속 내놓는다고?”

“네. 오히려 현재까지 파악된 것으로 봤을 때 단순히 정보를 내놓는다는 수준이 아니라 일부러 널리 퍼트리는 수준으로 봐야할 정도입니다.”

“흠...”

시 주석은 수하의 말에 침음을 내뱉었다.

다른 곳도 아닌 지구 내에서 원탑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안타라고스 정보 길드가 평소라면 꽁꽁 감춰둘 정보를 아무런 대가도 없이 푼다는 것은 딱 하나일 수밖에 없으니까.

바로 더 이상 감춤으로써 얻을 실익이 없다는 것.

그 말인즉슨 어쩌면 이번 일로 인류가 종말을 맞이할 수 있다는 뜻이고.

그래서 시 주석의 침음은 한참을 이어졌다.

그러다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현재 안타라고스 정보 길드와 명진은 어떻게 하고 있지?”

“안타라고스 정보 길드는 원체 밖으로 드러난 것이 없어 움직임이 파악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대비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벌써 해놨을지도 모르고요. 안타라고스 정보 길드가 그 위치까지 어부지리로 오른 것이 아니니까요. 반대로 명진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명진이?”

“네.”

우선 그 대답에 시주석의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듯이 고개를 잠시 뒤로 숙였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다른 곳은?”

“딱 하나 아니겠습니까? 배. 그것도 커다란 배를 구해 어떻게든 절망의 대지가 미치지 않는 바다로 나가는 것이요.”

“...아무래도 그런가?”

“네.”

물론 아직까지도 별다른 명령을 내리지 않은 시 주석.

하지만 시 주석의 명령이 없었지만 시 주석 휘하의 중국 정부는 진즉부터 움직였다.

베이징 바로 앞에 있는 톈진 해안가로 항공모함을 비롯해 수십 대, 수백 대의 배를 집결시키는 것으로.

여하튼 그렇게 호주 본토에서 도망쳐온 자들과 안타라고스 정보 길드의 적극적인 정보 제공으로 지구 곳곳은 무척이나 바삐 움직였다.

자신만의 방주를 만들기 위해서.

혹은 남의 방주를 빼앗기 위해서.

그리고 그 와중에 피가 튀는 마찰이 일어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하다못해 나무로 만든 조악한 배를 포함해 지구 내에 존재하는 모든 배를 통틀어도 분명 탑승할 수 있는 인원은 채 5%도 되지 않으니까.

더욱이 배에 탑승만 하고 끝이 아니라 그 인원이 최소한 먹고 자고 할 수 있는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배에 꽉꽉 인원을 채운다는 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절망의 대지라는 이름답게 지구 곳곳에 절망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죽고 싶은 자는 없으니까.

***

일주일 뒤.

명진 쉘터.

1번 메인 기지 옥상에 올라 먼 하늘에 시선을 뒀다.

그리고 그때 내 뒤로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석인수 실장이라는 것을 알기도 했고.

우선 그런 석인수 실장이 가까이 다가오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떤가요?”

두루뭉술한 말.

하지만 내가 내뱉은 말의 뜻을 모를 석인수 실장이 아니기에 곧장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든 명진에 오려는 자들을... 철저히 막고 있습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 분명 성인군자인 자들이 있었다.

성인군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자들도 있었고.

수월한 지배를 위해서든 혹은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서든 분명 훨씬 많이.

그리고 나는 그걸 아니꼽게 쳐다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쨌든 그들이 그렇게 성인군자라는 가면을 착용함으로써 분명 그나마 지옥 같은 이 세상을 덜 지옥 같은 세상으로 만들었으니까.

즉, 오히려 응원하는 입장이었다.

그렇기에 바로 코앞에서 내 목숨을 노렸던 김기정 대통령을 살려주는 것이고.

그런데 문제는 전과 다른 실체적인 위협이 눈앞에 닥친 상황.

대다수의 성인군자인 척하는 자들이 더 이상 성인군자라는 가면을 쓸 수가 없게 돼버렸다.

분명 자신의 목숨이 더 중요할 테니까.

그만큼 버려지는 자들이 우후죽순 생겨날 수밖에 없었고 그 버려지는 자들 태반은 일반인일 수밖에 없었다.

잔인할지라도 막을 수 없는 절망의 대지가 이 지구를 뒤덮으면 그 즉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은 자들이기에 더더욱.

그리고 그런 자들이 전부는 아니지만 꽤 많이 명진 쉘터를 향해 몰려들었다.

현실 구현률을 올리지 못한 일반인이라도 ‘홍주영’이라는 내 이름 석자를 못 들었을 리 만무했으니까.

하지만 명진 쉘터라고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욱이 불쌍함이든 연민이든 한번 받아들이면 어쩌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일반인들이 명진 쉘터로 향할지도 몰랐다.

아니, 무조건 향할 것이다.

그 후 자신들도 받아달라고 아우성칠 것이다.

왜 저들을 받아들이고 자신은 받아들이지 않냐며 욕설과 비난은 기본이고.

물론 그것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그게 인간이라면 당연했으니까.

당연한 것을 욕할 정도로 나 스스로 무지하지 않고.

그 말인즉슨 딱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원천적으로 그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

하지만 그 와중에 받아들일 자들은 있었다.

바로 미래 길드와 투갈 길드.

그러나 통째로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명진에 몸을 담고 있는 수족이 수십만이듯 그 둘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미래 길드와 투갈 길드는 어떻게 한다고 하던가요?”

“미래 길드는 저희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더욱이 그 몇 십만을 태울 배도 마련을 했고요. 하지만 투갈 길드는 저희의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요지는 미래 길드와 투갈 길드에게 1만 명 이하로 줄여서 명진 쉘터로 들어오라는 제안을 했다.

그럼 받아주겠다고.

하지만 그런 제안을 거절한 미래 길드와 받아들인 투갈 길드.

물론 당연할 수밖에 없긴 했다.

분명 미래 길드는 배를 구할 능력이 충분히 됐지만 내륙 자리 잡은 몽골의 투갈 길드는 애초에 배 같은 것을 타본 자가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

오히려 비행기를 타본 자가 더 많을 정도로.

그리고 그때 석인수 실장이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미래 길드에서... 명진의 앞바다에 자리를 잡아도 되는지 질문을 해왔습니다.”

“.......”

당연히 그 질문의 뜻이 뭔지 모르지는 않았다.

그래서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러라고 하세요.”

“네.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그 뒤로 짤막하게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여전히 시선을 먼 하늘에 뒀다.

오늘 아침 일본 오키나와에 상륙한 절망의 대지로 봤을 때 한국까지 이젠 약 삼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

다음날.

명진 쉘터 소회의실.

일단의 인물의 방문으로 나도 소회의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먼저 와있는 손님을 향해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주 보는군. 요새 많이 바쁜 것 같던데.”

“하하하. 그런가요?”

바로 안타라고스 정보 길드의 새로운 길드장 브란돈.

“그래. 무슨 일이지? 요새 좋은 일 한다고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이제는 확실히 지구에 속한 우리 모두가 같은 편이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그럼 힘을 합쳐야지요.”

“별 시답잖은 이야기는 집어치우자고. 하루에도 수십만, 수백만 명이 죽어나가는 이 타이밍에 말이야.”

벌써 일본의 절반이 절망의 대지로 물들었다는 것은 진즉에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베트남, 필리핀 그 외 중국의 남쪽 일부분까지 절망의 대지로 변했다는 뜻일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인즉슨 벌써 수억 명에 달하는 자들이 죽었다는 뜻이고.

당연히 일반인 위주로.

아무리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현실 구현률을 올린 자들 없이 일반인들끼리 몬스터 무리를 뚫고 이동하는 것은 무리였으니까.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토끼 떼는 토끼이듯이.

그리고 이제는 아프리카 대륙과 남미를 시작으로 북미 대륙까지 절망의 대지의 사정권에 든 상황.

즉, 앞으로는 하루에 수십만에서 수백만이 아니라 수천만 명이 죽을 날도 멀지 않았다.

어쩌면 수억 명까지도.

여하튼 그런 와중에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를 할 생각은 없기에 브란돈을 향해 어서 본론에 들어가자고 닦달을 했고 그러자 브란돈이 그전의 미소를 지우며 입을 열었다.

“정확히 어제부로 안타라고스 정보 길드 휘하의 37만 명을 죽였습니다.”

“...굳이 죽이지 않아도 어차피 죽을 자들. 괜히 스스로 손에 묻히지 않아도 될 피를 묻힌 것이 아닌가 싶군.”

물론 요새 죽는 자들이 워낙 많아서 37만 명이 적은 숫자로 보일수는 있었다.

하지만 명백히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그러나 브란돈의 그 말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최소한 겉으로는.

그리고 그런 내 말에.

“물론 괜한 짓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명진에 누를 끼치지 않을 테니까요.”

“명진에 누라...”

“네. 누요. 현재 명진 쉘터 밖에는 여전히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며 욕설과 비난 거기에 저주까지 퍼붓는 자들이 수두룩한데 거기에 더 숫자를 포함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

우선 브란돈의 그 말에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그의 눈을 똑바로 주시했다.

브란돈도 그런 내 눈을 피하지 않았고.

그러다 나를 똑바로 바라본 채로 다시 말을 내뱉었다.

“정확히 5000명을 맞춰서 왔습니다. 홍주영님이 미래 길드와 투갈 길드에 제안한 1만 명의 50%입니다. 미래 길드가 홍주영님의 제안을 거절했으니 5천명을 수용할 자리는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더욱이 정예 중의 정예. 홍주영님과 명진에 폐를 끼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안타라고스 정

보 길드 소속으로 이곳까지 뒤따라와 자신도 살려달라고 할 자들도 없고요.”

“좋아. 그 정도의 결단이라면 받아 줘야지.”

물론 명백히 결단은 아니었다.

결단이란 그럴 때 쓰는 단어가 절대 아니니까.

하지만 모든 것을 건 싸움을 앞둔 상황에 그런 생각을 그리고 그런 행동을 할 정도라면 분명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여하튼 그 뒤로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비밀리에 5천 명의 안타라고스 정보 길드와 1만 명의 투갈 길드원을 명진 쉘터 안으로 받아들였다.

그 와중에 수십만의 수족을 이끌고 명진 쉘터를 지나쳐 고성군 앞바다에 위치한 배로 이동하는 미래 길드도 확인을 했고.

***

이틀 뒤.

퐁. 퐁. 퐁. 퐁. 퐁.

스멀스멀.

명진 쉘터 1번 메인기지 위에서 플라이를 사용해 남쪽을 주시했고 아주 멀리서 붉고 검은색의 절망의 대지가 움직이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벌써 억 단위가 넘는 수를 꿀꺽 삼킨 절망의 대지.

그만큼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철철 뿜어냈다.

하지만 우두커니 그 모습을 지켜보다 나름대로 꽤 가까이 다가오자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부탁해.”

그리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쑤욱. 쑤욱. 쑤욱. 쑤욱.

하얀색 뿌리를 시작으로 셀 수 없이 많은 뿌리가 그대로 땅에서 솟구쳐 올랐다.

명진 쉘터를 감싸듯이 원을 만들면서.

물론 명진 쉘터 전체를 감싸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미 테스트를 했고 명진 쉘터의 1, 2, 3번 메인기지를 포함해 일정 영역은 감싸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곧 명진 쉘터를 감싼 그 뿌리 앞까지 도달한 절망의 대지.

그러나 절망의 대지는 그 뿌리를 넘지 못하고 그 외곽으로 삥 돌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즉, 이게 내가 만든 방주였다.

물론 아직 홍수는 시작도 안 한 상황.

왜냐하면 진짜 적은 아직 모습도 드러내지 않았다.

“얼른 오라고. 이 끝은 나도 궁금하니까.”

우선 그렇게 뿌리로 만든 방주 확인을 끝내고 명진 쉘터 안쪽으로 움직였다.

이제는 기다리는 것만 남았으니까.

< 각자의 방주. > 끝

< 전투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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