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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한 클로즈베타-261화 (261/271)

261화. 분명 암울한 미래.

처음부터 함께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뿌리와 함께한 시작이 결코 짧지는 않았다.

그래서 뿌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안다고 자부할 정도는 댔다.

가령 뿌리는 욕심쟁이 아니, 더 정확히는 먹보라는 것을.

그럴만한 것이 가장 최근에는 5번 로얄 구역의 주인이었던 거대한 활을 잡고 획득한 이것을 뿌리는 맛있게 먹어 치웠다.

바로.

[데나얀의 나무 조각 (등급 없음)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래서 일명 ‘가장 오래된 나무’라 불리는 데나얀 나무의 일부분이다.]

그리고 그전에는 로얄 중의 로얄이라는 1, 2, 3, 4번 중에 4번 로얄의 구역의 주인이었던 검은 액체 인간을 잡고 ‘근원의 조각Ⅲ’이라는 것도 먹어치웠고.

물론 이것뿐이라면 먹보라 칭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히 더 있었다.

명진 쉘터에 끊임없이 몬스터를 소환시켰던 ‘몬스터를 다루는 고대의 기운’과 뿌리가 직접적으로 먹진 않았지만 의도치 않게 간접적으로나마 내가 흡수했던 ‘기생충’까지.

그 외 현실 구현률 100% 달성자를 뜻하는 검은색 표식도.

그만큼 뿌리는 많이도 먹어치웠다.

물론 그래서 별로냐고?

천만에.

무척이나 좋았다.

왜냐하면 뿌리가 현실 구현률 100% 달성자를 뜻하는 표식을 가져감으로써 몸에 검은색 문신을 덕지덕지 붙일 필요도 없을뿐더러 다른 것도 그렇지만 특히나 뿌리가 먹어치운 몬스터를 다루는 고대의 기운은 나에게 어마어마한 능력을 선사했다.

바로 몬스터 각인이라는 것을.

거기에 ‘근원의 조각Ⅲ’은 몬스터 각인을 그 전과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좋은 강화된 몬스터 각인으로 업그레이드를 시켜줬고.

그래서 현재 지력 6000, 정신력 3000, 모든 아이스 계열의 스킬 대미지 7.5% 증가라는 엄청난 버프 아닌 버프를 받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굳이 나에게 그런 류의 도움을 주지 않아도 뿌리가 강해진다는 것만으로도 이득이었다.

분명 앞으로도 계속 나의 등을 맞길 같은 편이고 같은 편이 강해진다는 것은 절대 나쁜 것은 아니니까.

보르네슈 탐험대 때 1만 명이 넘는 일반인을 2달 넘게 지켜준 것이나 내가 쿠하나에 있을 때 명진 쉘터를 루시아 길드로부터 지켜준 것처럼.

여하튼 그만큼 이젠 나의 가장 강력한 조력자라해도 무방한 뿌리가 내 공격에 흠집조차 나지 않았던 절망의 대지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 뿌리의 끝에는 방금 전까지 나를 향해 조롱을 멈추지 않았던 적을 메달고서.

꿈틀꿈틀.

그 상태에서 평소처럼 몸을 꿈틀꿈틀 대는 뿌리.

평소 모습과 별다를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대충 그 꿈틀꿈틀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안다.

분명 기분이 좋을 때 하는 꿈틀꿈틀과 원하는 것이 있을 때 하는 꿈틀꿈틀 그리고 언짢은 상태에서 하는 꿈틀꿈틀은 다르니까.

그런데 이번 꿈틀은 정확히 세 번째 즉, 언짢은 상태에서 하는 꿈틀꿈틀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이.

휘익.

[크억!]

하얀색 뿌리는 그대로 나를 농락했던 적을 하늘 높이 날려버리고 다시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다니.

불쑥.

정확히 내 뒤쪽.

그러니까 절망의 대지가 아직 뻗치지 않은 맨땅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하늘 높이 날렸던 적을 공중에서 다시 낚아챘고.

꿈틀꿈틀.

분명 직전과 엇비슷한 꿈틀꿈틀.

하지만 이번에는 언짢음을 나타내는 꿈틀꿈틀이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굳이 꼽자면 평상시 하는 그런 꿈틀꿈틀.

우선 그 모습에 시선을 거둬들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그게 아니니까.

말인즉슨.

스윽.

고개를 돌려 내 뒤를 쳐다봤다.

그러자 나에게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지만 나 또한 영향을 끼치지 못한 절망의 대지가 계속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뿌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 맨땅까지 붉고 검은색의 절망의 대지가 영역을 확장했다.

물론 그게 무슨 대수냐고?

대수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뿌리가 절망의 대지를 뚫고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가능했지만 언짢고 불편한 기색과 함께 곧장 다시 몸을 땅속으로 집어넣음으로써 결국 절망의 대지에는 뒤쳐진다는 것을 드러냈으니까.

즉, 뿌리의 첫 패배.

그만큼 이번에도 패배가 당연시 되지만 분명 전과 달리 뿌리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시발점이 맨땅이라는 차이점이 있는 상황.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유심히 뿌리와 그 뿌리가 솟구친 자리까지 꾸역꾸역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절망의 대지를 바라봤다.

그리고 곧 뿌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맨땅마저 완벽히 절망의 대지로 뒤덮인 상황.

하지만.

꿈틀꿈틀.

분명 뿌리가 새로 솟구쳐 오른 주변 전부는 붉고 검은색의 절망의 대지로 변했지만 뿌리는 전과 달리 전혀 불편하지도 언짢아하는 기색이 없었다.

처음과 달리 곧장 땅속으로 파고들지 않고 그대로 몸을 유지했고.

“호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살짝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뿌리가 절망의 대지에 패배를 했을 때만해도 입맛이 썼지만 이번의 결과로 뿌리가 먼저 자리를 잡으면 절망의 대지에 지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으니까.

그리고 그때.

[이건... 불가능해! 절망의 대지는 분명 근원의 힘이 섞여 있는데...]

직전까지 자신감을 물론이고 나를 향한 조롱을 퍼부었던 자의 허탈함이 가득 섞인 외침.

그러나 적의 그 허탈한 외침으로 드디어 알 수 있었다.

분명 뿌리는 ‘근원의 조각Ⅲ’이라는 것을 먹어치운 적이 있으니까.

그것도 나 몰래.

하지만 굳이 그걸 말해줄 필요는 없는 상황.

그래서 전과 달리 조금 당당한 아니, 껄렁한 모습으로 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잘난 척 할 때는 언제고 너무 쉽게 태도가 변하는 것 아냐? 어디 한번 계속해봐. 잘하더만. 나도 진짜로 빡칠 정도로.”

[.......]

부들부들.

쿠하나에 있었던 기간이 정확히 36일.

그중 강제로 머물러야 했던 30일 다음의 6일은 적의 방심을 이끌어 내기 위해 조용히 지냈었다.

귀환 전에 로얄 구역의 지배자를 최소 한명은 더 잡을 수 있는데 그냥 남들처럼 귀환을 하자니 상황이 아까웠으니까.

그리고 조용히 지냈다는 것이 눈과 귀를 막고 있었다는 뜻이 아니기에 저절로 꽤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는 있었다.

바로 무자비한 침략자, 포식자, 악마, 파멸자 등등.

로얄 구역의 주인도 주인이지만 30일 만에 약 200만에 달하는 적의 숫자를 처리한 것은 확실히 그러려니 하고 넘길 일은 아니니까.

즉, 이자도 나를 알 것이다.

그렇기에 저렇게 부들부들 떠는 거고.

우선 손짓 하나로 적을 처리할 수 있지만 그전에 물어볼 것이 있기에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 로얄 구역의 주인이든 뭐든 죄다 넘어온다고 쳐. 그 다음은? 그러니까 선발대라며. 더욱이 쿠하나라는 삶의 터전을 제물로 바치고 얻은 절망의 씨앗이라는 것을 갖고 넘어온. 그럼 뭐 좀 더 알 것 아냐?”

전에는 ‘Forgotten Legend’와 ‘Revival Legend’가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지 몰랐지만 지금은 눈앞에 있는 쿠하나에 속한 자들과의 전투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안 상황.

그래서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전투의 승자에게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당연히 나를 알지 못했다.

아니, 지구에 속한 자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로얄 구역의 지배자들과의 대화로봤을 때 그들은 뭔가 아는 눈치였다.

그 중심에는 여전히 짐작조차 가지 않는 지구 소속으로 보이는 ‘이지원’이라는 자가 중심에 있는 것 같고.

그런데.

[...그게 왜 궁금하지? 어차피 홍주영 너는 몰라도 되는, 몰라도 상관없는 패배자일 텐데. 자폭.]

쾅!

“.......”

솔직히 무언가 기대를 갖고 한 질문은 아니었다.

그래서 아쉬움 같은 것은 없었다.

아니, 한 가닥 아쉬움은 있었다.

차라리 녀석이 스스로 자폭하기 전에 내가 먼저 죽일 걸이라는 그런 아쉬움.

하지만 이미 온몸이 산산 조각나 사방으로 흩뿌려진 상황.

그 모습에 뒤로 몸을 돌렸다.

이미 대충 확인은 다 끝났으니까.

물론.

“특출나게 사용.”

[현재 lumen, 아시란테님이 보유한 힘, 민첩, 체력, 정신력, 지력 중에서 가장 특출난 스탯은 지력입니다.

-현재 보유한 지력 수치: 164,751

-30분간 지력 수치가 329,502으로 변경됩니다.

-특출나게의 유지 시간이 종료되면 10일의 쿨타임이 발생합니다.]

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앎에도 ‘특출나게’를 사용했다.

이 절망의 대지라는 것이 갈수록 영역을 넓히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지구 전체를 감싸는데 10일로는 택도 없으니까.

그 말인즉슨 로얄 구역의 주인들을 포함해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특출나게’의 쿨타임이 돌아온다는 말이고.

즉, 분명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앎에도 그냥 가기에는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확인은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특출나게’를 사용 후 아이스 필드와 살얼음 사용하고 직전에 사용했던 내 가장 강력한 연계기에 5중첩 아이스 브레스까지 똑같이 사용했다.

그러나.

[.......]

“그래. 어차피 기대도 안 했어. 다만 일말의 가능성을 놓고 가기 싫었을 뿐.”

그 말을 끝으로 뒤로 몸을 돌렸다.

공중을 떠다니는 드론은 물론이고 아까부터 나를 지켜보던 수많은 자를 뒤로 하고.

***

다음날.

곧장 명진 쉘터로 복귀했다.

왜냐하면 결국 어떤 수를 쓰더라도 절망의 대지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어제 확인을 했다.

그리고 백 마디 말보다 한번 보여주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알기에 처음 절망의 대지를 향한 공격을 시작할 때부터 사용한 기억의 구슬을 꺼내들었다.

당연히 그 속에는 절망의 대지는 이 지구를 완전히 감싸 제 2의 쿠하나로 만들 거라며 나를 조롱했던 그자도 담겨 있었고.

그 후 영상이 끝나자.

“.......”

“.......”

“.......”

회의실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맨 마지막에 ‘특출나게’까지 사용을 했음에도 절망의 대지에는 티끌만큼의 타격도 입히지 못하자 침묵을 넘어 암울함까지 자리했고.

물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절망의 대지를 피하는 방법은 플라이 등을 사용해 평생을 공중에 떠있거나 혹은 배 같은 것을 이용해 바다에 사는 방법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전자는 나를 제외하고는 절대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생명력도 그렇지만 마나라는 것은 절대 무한한 것이 아니니까.

그럼 남는 것은 후자.

그래서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호주의 카나본 길드에서 흘러나온 말로 쿠하나에서 온 자가 절망의 대지에 죽어가는 자를 보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살고 싶어? 그럼 이참에 새와 물고기가 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 거야.’ 라고요. 물론 새와 물고기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니 대충 비행기와 배가 남는데...”

뒷말을 끝까지 내뱉지는 않았다.

비행기는 평생 하늘에 떠있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럼 결국 배라는 건데 남아 있는 인류 중에 배를 통해 살아남을 자는 많이 쳐줘야 채 5%도 되지 않을 테니까.

나머지는?

당연히 죽을 것이다.

일반인부터 즉시.

그리고 현실 구현률을 올린 자들은 절망의 대지로 인해 평소 전투력의 10%도 발휘하지 못함으로써 적의 손에 허무하게.

아니, 굳이 절망의 대지가 없다 하더라도 평균적인 전력을 비교해보면 쿠하나가 절대적인 우세였다.

그만큼 지구 평균은 로얄과 메이저, 레귤러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고작 루키 수준 그것도 루키 수준에서 하위 20%에도 미치지 못하니까.

그런 상황에 절망의 대지라는 디버프까지 받는다면 추풍낙엽으로 쓸릴 거라는 것은 눈에 보듯 뻔했다.

“배... 최대한 큰 배를 수소문 해보겠습니다. 만약 불가능하다면...”

석인수 실장이 가장 빨랐다.

그러나 석인수 실장도 끝까지 말을 내뱉지 못하고 나를 쳐다봤다.

물론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지는 않았다.

이미 호주의 상황이 지구 전체에 알려졌고 나도 그것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나름대로 거대 길드나 단체 등은 모두 확인을 했으니까.

일부러 스파이와 드론 등이 지켜보는 것을 막지 않았고.

즉, 그들도 멍청이가 아닌 이상 알 것이다.

배.

그것도 큰 배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런 상황에 배를 구한다는 것은 결국 목숨줄을 내놓으라는 것.

당연히 주지 않을 것이다.

지금 석인수 실장이 나를 쳐다보는 것은 그 상황에 내 힘이 필요하다는 뜻이고.

물론 그런 석인수 실장을 힐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결국 저 생각의 시발점은 충성심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니까.

그래서 석인수 실장을 비롯해 경직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모두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분명 다른 자들은 나와 명진을 향해 자신들만 살 생각이냐고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을 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타개할 방법이 있었다.

그걸 확인하느라 명진 쉘터로 복귀하는데 하루가 걸린 것이고.

< 분명 암울한 미래. > 끝

< 각자의 방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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