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일촉즉발.
어마어마한 보상이 걸린 ‘선발대’ 이벤트.
특히나 여타 다른 이벤트나 퀘스트처럼 꼭 1등을 하거나 혹은 순위권에 든 자에게만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30일간 그곳에서 머물다만 오면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다 그 역대급 보상이 주어지는 이벤트였기에 현실 구현률을 올린 자라면 누구나 혹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여겼는지 이벤트를 클리어 하지 않고 참여를 묻는 질문에 수락만 선택해도 일정 보상이 주어졌고.
하지만 그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모르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경고하듯이 ‘선발대’ 이벤트에 관한 메시지에 이동한 ㅇㅇㅇ에서 사망시 그대로 사망한다는 문구가 떡하니 적혀 있었으니까.
거기에 ㅇㅇㅇ라는 곳은 홍주영이 아니었다면 절대 그 누구도 막지 못했을 거의 재앙 수준에 가까운 존재인 검은 액체 인간이 온 곳이었고.
더욱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0일.
하지만 명백하게 30일은 긴 시간이었다.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들 엄청난 보상도 결국 목숨보다는 귀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나름대로 거대 길드나 단체는 ‘선발대’ 이벤트를 포기했다.
목숨을 담보로 도박을 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능력도 안 되면서 욕심이 많은 자들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운에 기대 일확천금을 노리는 자들도.
그리고 그들 중에 몇몇은 이번 이벤트는 자신들을 위해 하늘에서 내린 동아줄이라 여겼다.
‘설마 나겠어? 나는 괜찮겠지. 이렇게 많은데 나는 살 수 있을 거야.’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면서.
그러나 그 안일한 생각이 통용될 정도로 ‘Revival Legend’는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결국 그들은 고작 하루 만에 몰살에 가까운 죽음을 당했다.
문제는 그 죽음이 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와중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당장 오늘치 할당량을 채우기에도 급급한 마당에 편가르기와 이합집산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에 당한 죽음이라는 것?
그만큼 그들이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부리나케 적을 찾아 움직였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즉, 허망할 수밖에 없는 개죽음.
물론 약 1만 4천명에 달하는 참여자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각오를 다지고 계획을 자서 적절하게 팀까지 구성해 도전을 한 자들도 분명 있었다.
가령 호주의 카나본 길드 같은 곳이.
“들었어? 홍주영님이 레귤러도 루키도 아닌 메이저 구역 하나를 완전히 지워버렸다는 것.”
“응. 들었어. 와... 진짜 미쳤다. 이건 거의 하나의 국가를 혼자서 쓸어버린 거잖아.”
“그렇지. 그 메이저 구역뿐만 아니라 그곳을 지배하던 왕이라 할 수 있는 파샨트마저 홍주영님이 처리했으니까.”
“그나저나 도대체 얼마나 강한거야? 7번 로얄 구역의 주인이면 속된말로 여기 쿠하나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라는 뜻이잖아? 그런데 그런 강자를...”
“야. 뭘 그렇게 놀라. 이미 홍주영님은 지구에서 7번 구역의 주인인 파샨트보다 더 강한 검은 액체 인간도 죽였는데.”
“놈들의 말 못 들었어? 4번 구역의 주인이었던 검은 액체 인간은 지구로 향하는 작은 구멍을 통과해서 모든 능력을 쓰지 못했다잖아.”
“그게 뭐가 중요해. 어쨌든 홍주영님이 다 잡았는데.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안전을 보장받는 거고. 솔직히 우리 실력에 루키 구역은 그렇다 쳐도 레귤러 구역은 별 피해 없이 침범이 가능할 것 같아?”
“.......”
“.......”
“.......”
한 명의 말에 서로 의견을 교환하던 자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생각보다 이곳은 강자들이 우글우글 거리는 곳이었고 그만큼 홍주영이 날뛰어주지 않았으면 진즉에 죽은 목숨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확실히 7번 로얄 구역을 시작으로 파샨트의 지배하에 있던 모든 메이저, 레귤러, 루키 구역이 조용해 졌어. 그만큼 적들도 줄었고.”
“하긴... 그렇긴 하지.”
“그런데 나 같아도 도망을 갈 거야. 이미 자신들의 왕이 죽었는데 누가 거기에 있겠어. 홍주영님을 막을 자도 없는데.”
“이러면 우리가 점수 획득에 좀 불리한데...”
이들도 아무리 많은 준비를 했다지만 결국 목숨을 걸고 왔기에 보상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때 조용히 앉아 있던 이들의 리더인 테일러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과한 욕심은 버려라. 어차피 우리의 최종 목표는 생존이었다. 그리고 남은 21일도 우리는 생존이라는 목표 하나만 바라본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홍주영에게 고마워해라. 그가 모든 시선을 잡아 끌어줬고 결국에는 거의 하나의 나라에 가까운 구역을 박살냈기에 우리에 관한 관심이 사라졌으니까. 더욱이 적들
이 많이 사라졌어도 하루의 할당량을 채우기에는 여전히 풍부한 숫자. 오히려 지금 상황이 더 좋다. 적이 더 많으면 결국 우리 내에서도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으니까.”
“.......”
“.......”
“.......”
현 상황에 대해 이래저래 대화를 나누던 카나본 길드원들은 리더 테일러의 말에 아무도 반박을 하지 않았다.
정말로 홍주영이 그렇게 날뛰어주지 않았으면 여태 별다른 피해 없이 생존한다는 것은 무리였을 테니까.
그리고 오히려 적들이 줄어든 만큼 별다른 피해 없이 하루 할당량을 채우는 데는 더 수월해졌고.
여하튼 그렇게 카나본 길드는 아주 현명하게 움직였다.
그 외 남아 있는 대부분의 자들도.
***
이곳 쿠하나에 온지 9일 차.
그간 파샨트 휘하의 7번 로얄 구역은 물론이고 몇 개의 메이저 구역과 레귤러 구역을 완벽하게 박살냈다.
마치 승리자가 패자의 전리품을 획득하듯이.
그런데 이제는 그런 내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서인지 아직 방문치 않은 몇 개의 메이저 구역과 레귤러 구역이 무척이나 황량하게 변했다.
“흠... 이정도면 충분히 정리가 끝난 것 같은데.”
물론 남은 자들도 전부 가산점을 주는 존재들.
하지만 이제는 일일이 그 적은 인원을 처리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시간대비 효율성이 떨어졌다.
더욱이 여기서 더 움직였다가는 아예 씨가 말라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현재 나처럼 ‘선발대’ 이벤트에 참여중인 자들이 자신들의 하루 할당량을 채우기가 버거워질 테고.
“뭐... 굳이 그들을 챙겨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막다른 골목으로 몰 필요는 없으니까.”
여하튼 얼추 챙길 전리품도 다 챙겼고 이곳에서 볼일은 다 본 상황.
그래서 다른 곳으로 넘어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물론 이미 다음 목표는 세워 놨다.
아니, 파샨트가 죽고 하나의 메시지가 울린 순간 다음 목표는 딱 거기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10번 로얄 구역.
더 정확히는 10번 로얄 구역의 지배자.
왜냐하면 7번 구역의 지배자인 파샨트를 처리하고 무려 3000개의 잔여 스탯포인트를 얻었고 5%의 현실 구현률이 증가했다.
우선 3000개의 잔여 스탯포인트도 어마어마한 양이긴 했지만 5%의 현실 구현률은 눈이 뒤집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 수준에 5%의 현실 구현률은 코인 1~2만개로는 택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전리품 획득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8, 9, 10번 로얄 구역의 지배자에게 곧장 달려갈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빨라도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는 소문보다는 빠를 수가 없었다.
즉, 내가 그들을 마주하는 순간 이미 그들은 나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물론 어지간한 함정은 내 앞에선 거의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인 상황.
하지만 나에게 죽은 4번과 7번 로얄 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2개 이상의 로열 구역의 지배자들이 함께 파놓은 함정은 명백히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로얄 중의 로얄이라는 1, 2, 3번 구역의 지배자들은 더더욱.
그 정도 수준의 강자라면 단순히 1 더하기 1은 2가 아니니까.
그래서 전리품을 챙기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조급하게 먹는 밥이 체하는 법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좋아. 그럼. 어디 한 번 가볼까?”
우선 목표는 남은 시간 동안 어떤 로얄 구역이 됐든 최소 1명의 지배자는 더 잡는 것으로 정했다.
이미 그 정도만으로 이곳에 와서 할 것은 다 한 거니까.
물론 기회가 생긴다면 모든 것을 다 쓰더라도 악착같이 물어뜯을 생각이지만.
여하튼 곧장 플라이와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를 활용해 공중 높이 뛰어 올라 서쪽 방향으로 계속 움직였다.
굳이 강자를 잡을 필요는 없기에 가장 약한 10번 로얄 구역이 있는 곳으로.
***
‘선발대’ 이벤트가 시작된 지 9일차.
강원도에 위치한 명진 쉘터.
오늘도 명진 쉘터는 평온했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명진 쉘터에는 무지막지한 괴물 아니, 괴물로도 설명 불가능한 어마어마한 강자가 사는 곳이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그 괴물이 잠시 자리를 비운 상황.
하지만 그렇다고 명진에 시비를 걸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누구도 조만간에 괴물이 명진 쉘터로 안전하게 돌아올 거라는 것에 의문을 가진 자들이 없었으니까.
함께 갔던 모두가 죽더라도.
그러나 그 평온한 명진 쉘터와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일단의 무리가 쏙쏙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그들이 워낙 은밀하게 움직이기도 했고 사전에 땅속 깊은 곳에 큼지막한 지하 공동을 만들어 놨으니까.
그리고 그 지하 공동 한쪽에 어울리지 않게 놓인 고급 의자에는 한명의 인물이 앉아 있었다.
바로 루시아 길드의 길드장 움베르토가.
우선 움베르토는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자를 향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다 모였나?”
“아직 17명이 오지 않았습니다.”
“어지간히 싫은가보군.”
“.......”
움베르토의 말에 옆에 서 있던 수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자신도 탐탁지 않았으니까.
그 뒷감당도 두려웠고.
하지만 이미 목숨줄을 길드장인 움베트로가 쥐고 있는 마당에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매한가지기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
그래서 수하는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결국에는 오지 않겠습니다. 저처럼요.”
“크크크.”
수하의 그 말에 움베르토가 낮게 웃음을 토해냈다.
그러다 웃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걱정마라. 이번 일만 끝나면 그 목숨줄을 풀어 줄 테니까.”
“하지만 후에 귀환한 홍주영에게 죽은 목숨 아니겠습니까?”
“싹싹 빌어봐. 혹 알아? 홍주영이 살려줄지. 아니면 숨어 살든가. 그래도 그게 평생 나에게 목줄이 쥐어진 채 사는 것 보다는 더 낫지 않겠어? 지금껏 그걸 원해 왔고.”
“.......”
이번에도 수하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그들 사이로 갑자기 공간을 헤집고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길드장 움베르토는 이미 알고 알았다는 듯이 그저 살짝 시선만 줬고.
그러자 모습을 드러낸 자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억만금을 주어도 하겠다는 자가 없었습니다.”
“쯧쯧. 용병 주제에 겁이 너무 많군.”
“상대가 상대니까요. 대신 입단속은 철저히 했습니다. 우리가 움직이기 전까지 쥐새끼마냥 조용히 있기로요.”
“알았다. 대기하라. 17명의 겁쟁이들이 모습을 드러내면 곧장 명진 쉘터를 친다.”
“네!”
움베트로는 늦장을 부리는 17명도 곧 모습을 드러낼 거라는 것을 확신했다.
남은 시간 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순간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테고 결국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매한가지라면 1%라도 더 살 가능성이 있는 쪽에 무게를 두는 것이 사람이었으니까.
이번 명진 쉘터를 치는데 뛰어난 활약을 하면 목숨줄을 풀어 주기로 약속도 했고.
물론 움베르토는 그것을 지킬 생각은 없었다.
한번 개는 영원한 개니까.
그리고 그때 움베르토는 일단의 무리가 지하 공동으로 들어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곧장 입을 크게 열었다.
“모두 이동한다!”
아무리 입단속을 시켰다지만 용병시장의 관리자 놈들의 주둥아리가 금세 열릴 거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명진 쉘터에 공격을 감행하기 10분 전에 의뢰를 하기도 했고.
여하튼 그렇게 루시아 길드의 길드장인 움베르토를 비롯해 117명의 인원이 곧장 명진 쉘터로 움직였다.
움베르토를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경직된 혹은 살짝 찌푸린 얼굴로.
< 일촉즉발. > 끝
< 위험한 구경꾼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