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정령왕의 화신 파샨트 (2).
이벤트 ‘선발대’에 참여한지 5일차에 홍주영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바로 107번 레귤러 구역.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107번 레귤러 구역의 실질적인 지배자이자 7번 로얄 구역의 주인이며 정령왕의 화신이라 불리는 파샨트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렇게 둘의 전투가 시작됐다.
그리고 원래 107번 구역의 거주자들은 물론이고 속속 정보를 전해 듣고 107번 구역에 당도한 자들은 멀찍이서 그 전투 현장을 주시했다.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들의 왕인 파샨트는 단 열 개밖에 없는 로얄 구역 중 한곳의 주인이며 여태껏 그 자리를 괜히 꿰차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전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구경꾼들 대다수는 마음이 살짝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분명 겉으로 보면 막상막하인 것 같았지만 모두들 명백하게 알 수 있었다.
조금씩 뒤로 밀리는 것은 침략자가 아니라 자신들의 왕인 파샨트라는 것을.
“침략자가... 저렇게 강하다고?”
“말도 안 돼.”
“그런데 왜 파샨트님이 대지의 정령은 사용치 않는 거지?”
“그야 파샨트님이랑 저 침략자 모두 공중에 있으니까 그렇지.”
“장난해? 공중에 있다고 대지의 정령을 못 부른다고? 그럼 과거 파샨트님이 사용하신 대지의 거인이랑 대지의 창 같은 것은 뭔데?”
“그건...”
확실히 공중에 떠 있다고 4개의 정령 중에 대지의 정령을 봉인한다는 것은 살짝 이해가 가지 않기에 웅성웅성 거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상대방을 몰아붙여 우위를 점하고 있다면 그러려니 이해라도 하겠지만 지금 상황은 그게 아니라 명백히 뒤로 밀리고 있다 보니 더더욱.
그래서 전투가 더 진행이 될수록 웅성거림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건 확실치 않은 건데 4번 구역의 지배자인 바셀님이 침략자의 손에 죽었다는 말이 있더라고.”
“장난해! 침략자가 그렇게 강할 리가 없잖아!”
“맞아!”
“특히나 1, 2, 3, 4번 구역의 주인들은 더 강하다고!”
“나도 알아. 그런데 바셀님이 주인으로 있던 4번 구역 휘하 메이저 구역들이 요즘 엄청 시끌시끌하다고. 그런데 바셀님 성격에 그걸 가만히 두고 볼 것 같아?”
“.......”
“.......”
“.......”
한명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4번 구역의 지배자 바셀의 지랄 맞은 성격은 한두 번씩 다 들어봤으니까.
“젠장! 설마 파샨트님이 패배하시는 것 아니겠지?”
“바셀님이 졌다면... 파샨트님도 위험한 거잖아?”
“그런데 파샨트님이 그걸 몰랐을까? 우리야 건너건너 소문으로 전해 듣지만 파샨트님 같은 분은 진즉에 바셀님의 이야기를 들었겠지. 그런데도 저 침략자에 맞선다는 것은 자신이 있다는 뜻이고.”
“그렇기 한데...”
“젠장! 이게 뭔 난리야!”
웅성웅성.
우선 그렇게 구경꾼들은 처음의 편안한 마음과 달리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침략자와 자신들의 왕인 파샨트의 전투를 주시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 전투에 끼어들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끼어들어봤자 대세에는 단 1의 지장도 줄 수 없다는 것을 모두 다 알았으니까.
실제로 그 전투는 과거 로얄 구역의 주인들끼리 붙었던 7차 항쟁 당시와 엇비슷하기까지 했고.
***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 가운데.
“쏟아지는 우박! 징벌 아이스!”
후두둑. 후두두둑.
쾅!
[얼음 정령이여 이곳에 강림하여 적에게 혹한의 추위를 선사하라. 눈 폭풍! 불어라. 바람 정령의 매서운 칼바람!]
휘이이잉.
퍽. 퍽. 퍼버버벅. 퍽.
내 공격도 그대로 녀석의 몸에 박혀 들어갔고 녀석이 소환한 눈 폭풍도 칼바람과 뒤섞이며 연신 내 몸을 두들겼다.
그러나 피하지 않았다.
놈이 피하지 않았으니까.
우선 그렇게 무식한 싸움의 연속.
물론 그 와중에 녀석의 머리에 직격한 징벌 아이스로 녀석의 머리통이 수박 터지듯 터져 나가기는 했다.
하지만 몸통이 터져나갔을 때처럼 녀석의 목 위로 얼음이 생성되기 시작하더니 금세 원래의 모습으로 복구가 됐다.
그리고 보통이라면 그 모습에 징글징글하다는 생각과 함께 사기가 뚝 떨어지겠지만 나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이미 그것 자체만으로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것을 아니까.
또한 몇 번이고 몇 십번이고 또다시 박살낼 능력이 있었고.
더욱이 이번 전투는 1대1의 전투가 아니었다.
말인즉슨.
[대지의 정령이여. 그 두터운 몸을 일으켜 적에게 강력한 일격을 선사하라!]
[.......]
이미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몇 번이나 경험했음에도 또다시 대지의 정령을 불러내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쉽사리 믿기지 않는 것 같았다.
하긴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특히나 이유를 모른다면 더더욱.
하지만 여전히 땅은 고요했고 그 위에 펼쳐진 내 아이스 필드는 굳건함을 간직했다.
즉, 땅속에서 싸우는 뿌리는 포함하면 이 전투는 2대1의 전투였다.
씨익.
그 모습에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수적 우위를 안고 전투를 벌이는 것이 처음이니까.
그만큼 상대방보다 많은 인원을 보유한 상태에서 전투를 벌였던 적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항상 이겨왔고.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수적 우위까지 있는 상황.
무조건 이겨야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압도적으로.
더욱이 이번 전투가 직전의 검은 액체 인간 때보다 더 편안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말인즉슨.
적으로서 가장 좋아하는 속성은 아이스 계열과 파이어 계열이었다.
반대로 적으로서 가장 싫어하는 속성은 바람 계열과 대지 계열이었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특성 ‘아이스 맨’의 옵션에는 아이스 계열의 모든 성능 30% 증가 외에도 몇 개의 옵션이 더 존재했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상대방의 아이스 계열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는 30% 감소하여 받는다는 것이었다.
즉, 나에게 아이스 계열의 능력을 다루는 상대방은 고양이 앞의 쥐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파이어 계열은.
[태양신도 녹이지 못한 얼음황제의 결의로 파이어 계열의 모든 스킬에 20%의 피해 감소와 우위를 가진다.]
얼음황제 수호검에 붙어 있는 옵션이었다.
더욱이 저것은 0강화일 때 옵션이었고 지금은 8강화까지 만들면서 35%까지 증가했다.
그만큼 아이스 계열과 파이어 계열은 원천적으로 나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가 없었다.
30%와 35%는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니까.
그와 반대로 별다른 저항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 바람 계열과 대지 계열.
그런데 뿌리로 인해 대지 계열이 완전히 봉쇄된 상황이었다.
그 말인즉슨 정령왕의 화신이라 불리는 파샨트의 공격 중에서 그나마 제 역할을 하는 것은 바람 계열 딱 하나라는 뜻이고.
물론 그래서 바람 계열에 나에게 치명상을 입히느냐?
그러기에는 내 정신력이 너무 높았다.
특히나 강화된 몬스터 각인에 파란색 고대의 정령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지력과 아이스 계열의 몬스 스킬 대미지 증가 외에도 무려 3000의 정신력까지 증가한 상태고.
거기에 그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방어구까지.
즉, 이 전투는 내가 이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봐. 안쓰러우니까 대지의 정령은 그만 부르라고. 오늘은 엄청 바쁜가보지.”
[이이이! 죽어라! 불의 정령의 꺼지지 않고 영원히 타오르는 지옥불!]
퍽! 퍽! 쾅! 쾅!
더 분노하게끔 녀석의 화를 돋구었다.
이제 느낌상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물론 그 와중에.
“블링크. 블링크.”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로 그 지옥불을 피했다.
분노한 녀석과 달리 나는 아주 냉정했으니까.
***
전투가 시작된 지 약 30분이 흐른 시간.
그 정도 시간이면 대충 감이 온다.
상대방이 진짜 전력으로 맞붙어 오는지 아니면 그런 시늉만 하는 건지.
혹은 진짜 분노했는지 아니면 분노한척 하는 건지.
그리고 여실히 느껴졌다.
지금은 후자라고.
그 말인즉슨 녀석이 흥분을 가라앉혔다는 것이고 그 이유는 딱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전과 달리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뜻.
즉, 내가 기다리고 기다렸던 시간.
그래서 곧장 공격을 시도했다.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서 말을 건네는 등의 괜히 뜸 들이는 행동을 하다가는 모든 것을 망치게 되니까.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는 둘 다 놓치는 경우도 있고.
“블링크.”
우선 곧장 여전히 아이스 필드가 펼쳐진 얼음의 대지로 이동했다.
그리고.
“블리자드! 아이스 토네이도!”
퍽. 퍽. 퍼버버벅. 퍽.
휘이이잉.
가장 강력한 광역 스킬 두 개를 연달아 펼쳤다.
그 순간 녀석도 뭔가 꺼림칙한 것을 느꼈는지 전과 달리 나에게 달려들기 보다는 피하려고 했고.
하지만 이미 늦었다.
피하려면 진즉에 피해야 했다.
그래서.
“징벌 아이스! 아이스 브레스!”
맨 처음 녀석을 상대할 때부터 계획했던 그리고 꽁꽁 아껴뒀던 것을 연달아 퍼부었다.
쾅!
콰아앙!
[크어억!]
연달에 녀석의 몸에 거대한 한줄기 얼음과 드래곤이 평생 3번을 사용할 수 있다는 그 전설의 브레스를 연상케 할 정도로 은하수 같은 얼음 더미가 녀석의 몸에 쏟아졌다.
특히나 투명한 것이 보통인 얼음.
징벌 아이스의 거대한 한줄기 얼음이 그랬다.
블리자드와 아이스 토네이도는 물론이고 여타 다른 아이스 계열의 스킬이 그랬고.
직전의 9레벨 아이스 브레스까지도.
그런데 10레벨 아이스 브레스에는 그 투명한 얼음 더미 사이로 반짝이는 특히나 황금색의 얼음 덩어리가 존재했다.
그리고 왠지 그것이 특성 ‘아이스 맨’에 적혀 있는 그 외 온갖 스킬 중에 유일하게 아이스 브레스에 적혀 있는 얼음의 정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그 위력은 말할 것도 없고.
여하튼 그렇게 녀석의 몸에 사정없이 꽂힌 정말 내 필살기.
물론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만 보고 있지는 않았다.
혹여나 정말 만에 하나의 가능성으로 녀석이 살아 있을지 모르고 만약 그렇다면 확실히 끝을 내야 하기에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로 녀석이 있단 자리 옆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녀석에 관한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어마어마하게 깊이 파인 구덩이를 제외하고.
물론 메시지는 있었다.
[5일차 할당량 10명을 처리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할당량 외에 총 25,877명의 적을 더 처리함으로써 가산점이 축적됩니다.
지구에 성공적인 복귀시 추가적인 보상이 제공됩니다.
-할당량 외에 25,878명의 적을 더 처리함으로써 가산점이 축적됩니다.
지구에 성공적인 복귀시 추가적인 보상이 제공됩니다.
:
:
-할당량 외에 26,011명의 적을 더 처리함으로써 가산점이 축적됩니다.
지구에 성공적인 복귀시 추가적인 보상이 제공됩니다.]
내 10레벨 아이스 브레스는 아주 멀찍이 서서 구경중인 자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혔다.
당연히 피해 범위 안에 있던 자들은 한명도 살아남지 못했고.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닌 상황.
더 신경을 집중했다.
검은 액체 인간도 몇 시간이 흐른 뒤 손톱만한 크기로 재생을 했으니까.
그런데 그때 메시지가 울렸다.
[선발대로서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그들의 안방에서 강력한 존재를 처리하였습니다.
-잔여 스탯포인트 3000개를 획득합니다.
-현재의 현실 구현률에 상관없이 즉시 5%의 현실 구현률이 증가합니다.]
“흐흐흐.”
여기서 말한 강력한 존재는 당연히 한명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7번 로얄 구역의 주인이자 정령왕의 화신이라 불리는 파샨트.
하지만 그 웃음을 길지 않았다.
여전히 내 주변에는 멍한 눈빛으로 공중에 떠 있는 나를 쳐다보는 자들이 무척이나 많았으니까.
그래서 곧장 녀석들에게 달려들었다.
물론 휴식?
여전히 쌩쌩했다.
분명 강한 상대이긴 했지만 내가 더 강했으니까.
생각보다 늘어난 컨트롤 덕분인지 피해도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여하튼.
“도... 도망쳐!”
“젠장! 파샨트님이 녀석에게 죽었다!”
“피해!”
처음으로 줄행랑을 놓는 녀석들을 한명이라도 더 처리하기 위해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이 이후로는 분명 강자 중의 강자인 파샨트를 처리함으로써 나에 대한 경계 태세가 훨씬 올라갈 것이 분명했으니까.
< 정령왕의 화신 파샨트 (2). > 끝
< 일촉즉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