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검은 액체 인간 (1).
깊은 구덩이 속에서 울린 이질적인 목소리.
그리고 그 이질적인 목소리에 이어 검은 액체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이번에는 사람의 형체를 하고서.
쿵.
약 5미터는 되어 보이는 검은색 액체 인간.
아니, 과연 저것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팔다리가 있고 얼굴에 눈코입도 달려 있으니 인간이 맞는 것은 같았다.
그럼에도 도저히 인간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여하튼 그렇게 구덩이에서 도약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검은 액체 인간은 사방을 쭉 둘러보더니 말을 내뱉었다.
[허. 표식이 있는 놈이 하나도 없는데... 막혔다고? 내가?]
웅성웅성.
검은 액체 인간의 입에서 튀어나온 표식이라는 단어.
그로인해 내 뒤에 있는 사옌스 길드 같은 원래 아르헨티나 소속은 물론이고 지원을 온 연합군 내부에서도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그 표식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분명 현실 구현률 100%를 달성하면 마치 그걸 보증이라도 해주듯 강제로 주어지는 것이 표식이었으니까.
뜬금없이 뿌리가 그것을 가져가지 않았다면 결국 나도 이마를 시작으로 표식이라는 검은색 문신을 갖고 있을 것이고.
[이것 참. 창피해서 어디에다 말도 못하겠군. 그런데 그걸 본 눈은 너무 많고...]
나를 포함해 수만 아니, 외곽에 있는 자들마저 포함하면 수십만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제 말만 내뱉는 검은 액체 인간.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묻고 싶은 말은 많았다.
가령 ‘네놈의 정체를 밝혀라.’ 같은 진부한 그런 질문이 아니라 어째서 너와 우리가 싸워야 하는지 같은 것으로.
분명 현 ‘Revival Legend’의 변화와 흐름은 그걸 유도하고 있으니까.
실제로 지금은 물론이고 직전의 오사카와 미국이 제공한 영상에서도 저들은 말보다 행동이 먼저였고.
타협의 여지는 단 1도 두지 않은 채.
물론 두려워서? 겁먹어서?
절대 아니다.
다만 왜 그러는지 이유는 알고 싶었다.
그래야 최소한 답답하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대놓고 우리 아니, 나를 무시하는 상대방에게 답을 갈구하는 그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나 스스로 상대방에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 아량을 구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이 자리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뒤로 수십만 명이 자리했고 그들이 보는 와중에 그런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물론 녀석을 무릎 꿇리고 멱살을 움켜잡아 당당하게 승자로서 패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은 다를 테지만.
그리고 그게 내 목표이고.
우선 결국 그런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전투라는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기에 준비를 하는 사이.
[좋아! 창피한 역사는 아무도 모르게 지우면 그만. 나에게 흡수되어 내 자양분이 될 축복받을 기회를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겠다. 대신 벌을 받아라. 받아라. 죽음의 빗방울!]
검은 액체 인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몸 표면에서 송골송골 땀방울 같은 검은색 물방울들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셀 수 없이 자잘하게 많이 생겨난 그 검은색 물방울 같은 것이 공중으로 치솟더니.
후두둑. 후두두둑.
곧장 사방으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뻔히 공격을 예고한 상대방.
그래서 멍하니 있지는 않았다.
나는 물론이고 내 주위의 모두도.
“피... 피해라!”
“저 검은 방물과 절대 닿지 마라!”
이미 저 검은 액체의 위력은 충분히 체감을 한 상황.
그래서 그런지 곧장 후퇴를 하는 자들이 있었다.
또한 방어를 하는 자들도.
“파이어 쉴드!”
“대지의 정령이여. 막아라!”
“그레이트 쉴드!”
:
:
“내 육체는 굳건한 강철이 되리라!”
“보호막 생성!”
그리고 그 순간 검은 액체 방울과 닿기 시작했다.
슝. 슝. 슝. 슝.
“크억!”
“제... 젠장!”
“살려줘!”
전에는 살아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흡수를 했었던 검은 액체.
하지만 이번에는 아예 총알마냥 모든 것을 꿰뚫어버렸다.
어깨에 닿으면 어깨를 머리통에 닿으면 머리통을 위에서 아래로.
더욱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검은 액체 방울에 몸이 꿰뚫린 자들은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펼쳐진 지옥도.
아니, 그 이상.
물론 그렇게 죽어가는 자들은 군인을 비롯한 일반인들에 해당했다.
1200레벨을 달성하고 현실 구현률을 올린 자들은 검은 액체 방울에 몸이 꿰뚫리지 않고 잠시나마 그것을 버텨냈다.
실드 계열의 보호막을 사용한 자들은 물론이고.
하지만.
“생명력이 너무 빨리... 컥!”
“쉴드에 금이 간다!”
“얼른 뒤로 빠져라!”
“방어막이 오래 버티지 못한다!”
한두 방.
분명 겉으로 볼 때는 자잘한 빗방울.
그러나 쉴드 같은 보호막은 물론이고 방어력을 극대화한 탱커들을 무력화시키는 데는 많은 빗방울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물론 나는?
팅. 팅. 팅. 팅.
그간 사용할 일이 거의 없었던 아이스 쉴드를 사용했다.
이럴 때 사용하기 위해서 삭제하지 않고 보유했던 것이고 무턱대고 몸에 대기에는 검은 액체는 꽤나 꺼림칙했으니까.
더욱이 남들의 쉴드 계열의 보호막과 달리 내 것은 완벽하게 검은 액체 방울을 막아냈다.
부서지기는커녕 금갈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우선 확실히 그 모습은 주변에서 펼쳐지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
그래서 그런지 녀석의 시선을 잡아 끈 것 같았다.
[너로군. 너 때문에 실패한 거였어.]
“응. 내가 그랬지. 검은 액체라니... 너무 더럽잖아. 같은 액체인 물을 바 봐. 투명한 것이 얼마나 좋아.]
[크크크. 표식도 없는 주제에 너무 기고만장하군. 아, 표식이 있어봤자 어차피 쓰레기는 쓰레기지만.]
“검은색 문신 같은 것? 에이, 몸에 그런 것을 다닥다닥 붙이고 다니는 것은 너무 지저분하잖아. 물론 멋지기라도 하면 괜찮은데 사람이 물건도 아니고 마치 바코드 같아서 나는 영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
[.......]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뱉은 내 말.
그 말에 검은 액체 인간의 말이 잠시 멈췄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나저나 다이어트하기에는 좋은 몸인데? 땀을 빼서 그런가 곧장 홀쭉해졌잖아.”
물론 내뱉은 말과 달리 검은 액체 인간이 눈에 띄게 홀쭉해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몸에 땀처럼 송골송골 맺혔던 검은 액체 방울이 떨어져 나가면서 분명 녀석의 키와 덩치가 줄어들긴 했다.
하지만.
스멀스멀.
분명 녀석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공중으로 치솟은 후 비처럼 땅으로 떨어진 검은 액체 방울들.
그런데 그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살아있는 생명체마냥 녀석을 향해 움직였다.
그 후 녀석의 발과 닿자마자 다시 녀석의 몸으로 흡수가 되었고.
그리고 당연히 그것을 수수방관하며 지켜볼 생각은 없기에 곧장 공격을 시도했다.
분명 재활용을 한다는 것은 좋은 거지만 녀석의 재활용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아이스 필드. 그리고 중첩 살얼음.”
파사사삭.
얼음의 대지를 만드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그게 나에게 매우 유리한 전장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이유도 존재했다.
바로.
퐁. 퐁. 퐁. 퐁. 퐁. 퐁.
소량이지만 스멀스멀 녀석을 향해 움직이던 수많은 검은 액체 방울들.
그런데 그 검은 액체 방울들이 주변을 얼음의 대지로 만들자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기포를 만들어내며 검은 기운을 토해내고 증발하듯이 사라져갔다.
그러자.
[감히 겁도 없이 내 것을! 뭉쳐 내 앞의 적을 꿰뚫어라! 죽음의 창!]
확실히 그것만으로 녀석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 것 같았다.
그리고 녀석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빗방울처럼 쏟아져 내리는 수많은 검은 액체 방울들이 한데 뭉쳐서는 거대한 창으로 변해 나를 향해 내리 꽂혔다.
쾅.
째캉.
그간 죽음의 빗방울을 잘 막아왔던 5레벨 아이스 쉴드.
하지만 이번에는 죽음의 창을 막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박살이 났다.
그와 동시에 죽음의 창은 곧장 내 머리통을 쪼갤 듯이 내리 꽂혔고.
그러나 나에게는 무척이나 빠른 아니, 빠르다는 말로 부족한 이동 수단이 존재했다.
바로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
그래서 녀석의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뒤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아이스 브레스!”
쾅.
현재 가장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스킬.
그것을 녀석에게 사용했다.
하지만.
[허... 이게 말이 돼?]
당연하지만 그 한방으로 녀석을 죽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아이스 브레스라도 녀석은 지금껏 봐왔던 상대와는 전혀 달랐으니까.
오사카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들과는 비교 자체도 불가능했고.
물론 그럼에도 조금 기대를 했지만 결국 녀석이 앞에 세운 검은 액체 방패를 뚫지는 못했다.
대신.
촤르륵.
녀석이 들었던 검은 액체 방패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검은 기운이 쏟아져 나왔고 그 순간 검은색 액체가 일반적인 투명한 물로 변해 바닥으로 쏟아졌다.
그 동시에 녀석의 덩치가 분명 조금은 줄어들었고.
그리고 그때.
[넌 도대체 뭐지? 어떻게 이런 위력이 가능하지?]
“궁금해? 그럼 서로 하나씩 비밀을 털어놓는 것으로 할까?”
차라리 죽을지언정 대화 자체를 거부했던 존재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정보를 얻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쓰레기 주제에 조금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고 감히 나와 동급으로 놀겠다고?]
“글쎄. 네 수준으로 봐서는 못 놀 것 같지는 않은데?”
분명 녀석은 강하긴 강했다.
7레벨로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는 1개의 스킬포인트가 필요해 여전히 5레벨 아이스 쉴드를 사용 중이지만 그것을 한 번에 박살낸 것은 녀석이 처음이었고.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약한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계속 녀석에게 공격을 성공시켜 검은 기운을 뽑아내면 승리할 수 있다는 길도 보였고.
물론 나는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로 녀석의 공격을 계속 피하면서.
그런데 아무래도 내가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본 것 같았다.
[푸하하. 좋아. 쓰레기지만 분명 다른 쓰레기들과는 달리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인정하지. 그래서 특별히 너는 내 자양분으로 삼겠다! 요동치고 증폭되라!]
화르르르.
녀석의 몸을 이루는 것은 바로 검은 액체.
그런데 그 순간 녀석의 몸을 구성하는 검은 액체에 물결이 일면서 점차 모습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분명 액체임에도 녀석은 불타오르듯 넘실넘실 거렸고.
[드리워져라. 죽음의 그림자!]
[‘올 버프, 올 디버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에 드리워지지 않습니다.]
[허...]
순간 헛기침을 토해내는 녀석.
하지만 그것에 연연하지 않고 곧장 입을 열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전투가 길어질지도 모르니까.
“아이스 토네이도! 징벌 아이스!”
휘이이잉.
쾅.
[젠장! 죽음의 손길!]
물론 녀석도 곧장 반격을 가해왔다.
하지만 나에게는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가 존재했기에 이번에도 곧장 녀석의 반대편으로 이동했고.
그리고는.
“블리자드. 쏟아지는 우박.”
퍽. 퍽. 퍼버벅. 퍽.
솔직히 피하지 않아도 됐다.
대체적으로 다른 자들은 녀석의 공격 한두 방을 견디는 것도 버거워했지만 나는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굳이 맞아줄 필요는 없기에 그렇게 피하면서 연식 공격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게 1분 가까이 지속되자 녀석이 분노를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이런 쥐새끼 같은 새끼! 솟구쳐라! 죽음의 링!]
쿠오오오.
순간 녀석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녀석과 나를 중심에 두고 동서남북으로 거대한 붉은색 기둥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메시지도.
[죽음의 링에 들어섰습니다.
-단 한명이 존재할 때까지 외부로 이동이 제한됩니다.]
우선 그 메시지에 곧장 사방을 둘러봤다.
꽤 좁은 공간.
그리고 그제야 녀석이 득의만만한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또 쥐새끼처럼 도망가 봐라. 죽음의 소용돌이!]
휘이잉.
죽음의 링을 가득 메운 녀석의 공격.
확실히 피할 공간은 없었다.
그래서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설마 내가 네 녀석이 두려워서 도망친다고 생각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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