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아르헨티나.
‘누구보다 빠르게 1800레벨 사냥터에 도달하라.’ 이벤트에서 1등을 차지한 아시란테.
물론 그 소식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놀란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말만 내뱉을 뿐.
왜냐하면 지금껏 항상 그래왔으니까.
만약 아시란테가 1등을 하지 못했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게 비춰질 정도로.
여하튼 그렇게 하나의 이벤트가 아시란테의 1등으로 종료가 됐고 나머지 모두는 다시 자신의 레벨에 맞는 사냥터에서 사냥에 박차를 가했다.
‘Revival Legend’가 예전보다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을 모르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당연히 아르헨티나에 속한 모든 유저들도.
***
어마어마한 땅 크기를 가진 아르헨티나.
그래서 나름대로 거대 길드라 부를 수 있는 곳들은 각자 자신들이 원하는 곳에 자리를 잡는 것이 가능했다.
홀로 또는 같이.
그런데 서로 원치 않았지만 같은 곳에 자리를 잡은 길드가 있었다.
바로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5대 길드에 포함되는 사옌스 길드와 탈라가파 길드.
물론 그들이 자리 잡은 곳은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
그래서 충분했다.
아무리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길드들이라 인원수가 많다지만 그렇다고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절대 작은 곳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래도 사이가 썩 좋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치고받고 할 정도로 둘이 멍청이는 아니었고.
그런데 길드장과 그 후계자 거기에 길드의 기둥이 되는 자들 다수가 한순간에 사라진 탈라가파 길드.
당연히 탈라가파 길드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고 이때가 기회다 깊은 사옌스 길드는 더 사정없이 탈라가파 길드를 흔들어 댔다.
그리고 점차 주저앉는 탈라가파 길드에서 떨어져 나온 자들은 물론이고 그간 탈라가파 길드가 차지하고 있던 것을 야금야금 먹어 치웠다.
물론 그제야 다른 3대 길드는 물론이고 나름대로 꽤나 덩치가 있다는 곳도 혹여나 사옌스 길드가 먹다 흘린 떡고물이 있지 않을까 하고 달려들었지만 이미 알맹이는 사옌스 길드가 전부 먹어치운 상황.
그래서 나머지 3대 길드와 덩치가 있는 길드는 그 일에서 관심을 거둬들였다.
탈라가파 길드가 살아날 껀덕지라도 있어야 사옌스 길드의 부당함을 등에 업고 뭐라도 할 텐데 한눈에 봐도 탈라가파 길드는 완전히 망해버렸으니까.
소생 가능성이 단 1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 후 몇 개월 만에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탈라가파 길드.
당연히 탈라가파 길드가 본거지로 사용했던 옛 건물도 쓸쓸하게 버려졌다.
그런데 그때.
콰아아앙!
정확히 버려진 탈라가파 길드의 본거지에 내리친 검은색 벼락.
당연히 그것은 무척이나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검은색 벼락이라니.
하지만 요즘 시대에 검은색 벼락보다 더한 일도 수두룩하게 벌어지기에 한번쯤은 충분히 그러려니 할 수 있는 범주에 속하긴 했다.
그런데.
쾅! 쾅! 쾅! 쾅!
한 번의 벼락으로 끝나지 않고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그 후로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의 검은색 벼락이 내리쳤다.
당연히 진즉에 과거 탈라가파 길드가 본거지로 사용한 거대한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뭐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이 지랄인데...”
“지금이라도 여기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 아냐?”
“장난해? 위에서 무슨 일인지 확인을 하라는데. 그냥 도망쳤다가는 무슨 말을 들으려고.”
“젠장! 여기는 저주 받은 곳이라고!”
당연하지만 일반 번개도 아닌 검은색 번개가 그것도 한곳에 수백 번 내리치는 것은 모두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온전히 지배한다고 평가를 받는 사옌스 길드는 더더욱.
그래서 사옌스 길드는 곧장 인원을 파견했다.
콕 집어 과거 탈라가파 길드의 본거지에 발생한 일이기에 전 탈라가파 길드원을 포함해서.
당연히 전 탈라가파 길드 소속 길드원들은 더 찝찝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 그때.
스멀스멀.
물론 어두운 밤.
하지만 그곳에 있는 자들은 그 수백 번의 검은색 벼락이 내리친 자리에서 검은색 액체 같은 것이 기어 나오는 것을 모를 정도로 덜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뒤... 뒤로 빠져!”
“저 검은색 액체와 닿지 마라!”
“네!”
한눈에 봐도 꺼림칙해 보이는 검은색 액체의 모습에 사옌스 길드원들 전부는 곧장 뒤로 몸을 물렸다.
물론 그렇게 뒤로 빠져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지는 않고 여전히 느리지만 점차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검은색 액체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윈드 스피어!”
“소환 대지의 정령! 대지의 정령!”
:
“춤추는 불꽃!”
“솟구쳐라. 대지의 장벽!”
“불의 장벽!”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벽도 세웠고.
하지만.
퐁. 퐁. 퐁. 퐁.
아주 깊고 넓은 호수에 작은 돌멩이를 던지는 것과 같은 모습.
공격 스킬들이 그 검은색 액체와 부딪친 모습이 그것과 판박이였다.
즉, 아무리 봐도 전혀 타격을 입히지 못한 모양새.
더욱이.
와그작. 와그작.
우뚝 솟은 대지의 장벽과 마치 얼음은 녹이고 물은 증발시킬 듯이 활활 타오르는 불의 장벽에 검은색 액체는 거리낌 없이 다가섰다.
그리고 무언가 갉아먹는 소리와 함께 검은색 액체는 점차 그것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금세 허물어지고 꺼져가는 방벽들.
사옌스 길드원들은 그 모습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그때 모두는 볼 수 있었다.
지근거리에 위치했다가 채 피하지 못하고 검은색 액체에 왼쪽 발이 닿은 일반인을.
스르륵.
“.......”
“.......”
“.......”
만약 검은색 액체에 닿는 순간 마치 용암에 직접 맨살이 닿은 것처럼 순식간에 피부가 녹아 들어갔다면 모두들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징그럽더라도 그게 당연한 거였으니까.
하지만 채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3센티미터도 안될 정도로 얇게 펴진 상태의 검은색 액체로 몸이 완전히 빨려 들어가는 모습은 공포를 안겨줄 수밖에 없었다.
“도... 도망쳐!”
“피해라!”
결국 공격도 검은색 액체의 진입을 막기 위한 방벽도 무용지물인 상황.
그래서 사옌스 길드원들은 뒤로 몸을 뺐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저 검은색 액체의 진격을 막을 엄두가 나지 않았으니까.
우선 그렇게 느리긴 했지만 검은색 액체는 스멀스멀 부에노스아이레스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갔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인양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
1800레벨 사냥터 고대 정령의 대지.
블링크. 푹.
블링크. 푹.
블링크. 푹.
이곳에서의 사냥 방식은 매우 간단했다.
정확히 파란색 고대의 정령을 향해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를 사용해 다가가 얼음황제 수호검을 내질렀다.
그럼 끝.
아무리 이 녀석이 1800레벨의 몬스터라지만 두 번의 공격은 필요치 않았다.
내 손에 쥔 것은 흔하디흔한 그런 무기가 아니라 신화 등급의 무려 8강화짜리 무기였으니까.
더욱이 기본적으로 3레벨 아이스 웨폰이 내제된 얼음황제 수호검.
거기에 아이스 쉴드에 버금갈 정도로 낮은 사용 빈도를 자랑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보유중인 스킬이 있었다.
바로 3레벨 아이스 웨폰.
즉, 원래라면 중첩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괜히 신화 등급이 아니라는 듯이 이 녀석은 중첩이 가능해서 최대 6레벨의 아이스 웨폰의 사용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정말 사용 빈도가 낮지만 여전히 아이스 웨폰을 보유중인 것이고.
물론 고대의 정령이 타이탄처럼 생명력과 방어력이 높은 유형이 아닌 것도 한몫했지만.
여하튼 그렇게 파란색 고대의 정령만 골라 사냥을 이어갔다.
이 녀석의 각인만 끝내면 광역 스킬로 시원시원하게 정리해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런데 그때 갑자기 귓속말이 울렸다.
바로 누나에게.
[초절정미녀 : 홍주영! 잠깐 나올 수 있어?]
무척이나 다급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왜?’라는 질문을 날리지 않고 곧장 알았다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1800레벨 사냥터를 빠져 나와 세이프티 구역에서 로그아웃을 했다.
***
잠시 후.
명진 쉘터 소회의실.
‘Revival Legend’에서 로그아웃을 하자마자 누나의 손에 이끌려 소회의실로 이동했다.
이미 그곳에는 아빠와 형은 물론이고 석인수 실장을 비롯한 명진의 중요 간부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리고 누나와 함께 자리에 앉자마자 석인수 실장이 일어나 하나의 영상을 작동시키며 입을 열었다.
“실시간 연결로 현재 아르헨티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석인수 실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쪽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곧 하나의 영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선 잠자코 그 영상을 지켜봤다.
괜히 시시껄렁한 영상을 보자고 명진의 중요 인물을 전부 모아놓은 것이 아닐 테니까.
“막아라!”
“더 이상 저것이 진입하지 못하게 벽을 세워라!”
“공격! 어떤 방식이든 좋다! 자신의 가장 강력한 공격을 아낌없이 퍼부어라! 분명 효과는 있다!”
“네!”
“알겠습니다! 파이어 필드!”
“두터운 대지의 창!”
:
:
“솟아라! 두터운 대지의 벽이여!”
“소환. 불의 정령. 불의 정령.”
“불어라. 칼바람.”
“가두고 얼려라! 얼음 장벽!”
어지간한 전투 따위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치열함이 엿보이는 전투 현장.
더욱이 거기에는 현실 구현률을 올린 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말인즉슨.
“뭐하는 거야! 탱크! 헬기! 전투기! 쓸 수 있는 것은 전부 불러들여!”
“전함도 해안가로 불러들여라! 거기서 쏘는 공격이 여기에 닿을 것 아냐!”
“네!”
“알겠습니다!”
현실 구현률을 올린 자들 뒤에는 탱크는 기본이고 군복 차림의 군인들도 수두룩했다.
슬쩍 비친 하늘에는 수십 대의 전투기가 날아다녔고.
당연히 그들도 끊임없이 전방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바로 한눈에 봐도 짙은 검은색의 액체 같은 것에.
우선 그렇게 쭉 이어진 영상.
그 후 얼추 그 전투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석인수 실장이 입을 열었다.
“저기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들어온 보고에 의하면 정확히 7시간 전에 저 검은색 액체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석인수 실장이 언급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순간 하나의 길드가 머릿속에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바로 몇 개월 전에 나와 함께 ㅇㅇㅇ라는 곳으로 가자고 제안을 했던 탈라가파 길드.
그리고 그 생각을 나만 한 것이 아닌 듯이 석인수 실장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탈라가파 길드. 저것의 최초 진원지도 정확히 구 탈라가파 길드의 본거지였습니다. 영상은 없지만 들려오는 말로는 검은색 번개가 수백 번은 그 건물을 향해 내리쳤다고 합니다. 그 후 저 검은색 액체가 거기에서 흘러나왔고요.”
우선 그 모습에 내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저렇게 필사적으로 검은색 액체가 퍼지는 것을 막는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겠죠?”
“네. 이것입니다.”
내 물음에 그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석인수 실장이 다시 한 번 스크린을 가리켰고 그곳에는 다른 영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반인 거기에 개와 고양이 같은 동물.
그것들이 검은색 액체와 닿자.
스르륵.
스르륵.
검은색 액체는 그것을 그대로 집어 삼켰다.
그 후.
“현실 구현률을 올린 자도 저 검은색 액체와 닿는 순간 그대로 흡수되어 사라집니다. 물론 사라졌다는 것이 무조건 죽음으로 연결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죽었을 확률을 99%로 잡고 있습니다.”
“설마... 지구를 다 뒤덮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죠?”
이번에는 누나의 질문.
하지만 이번에는 석인수 실장이 입을 열지 않았다.
물론 왜 그런지 모르지는 않았다.
석인수 실장도 모를 테니까.
우선 그 뒤로 속속 들어오는 정보를 토대로 계속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러다.
“현재 아르헨티나 옆의 브라질, 우루과이, 칠레를 시작으로 미국과 유럽, 러시아 등에서 지원군을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가장 공신력 있는 정보 길드인 인터라고스에서 흘러나온 정보로는 저 검은색 액체가 동물이든 사람이든 혹은 ‘Revival Legend’를 하고 있는 유저를 집어삼키면 그 힘이 더더욱 커진다고 합
니다. 그래서 조기에 진압을 꼭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끝을 흐리는 석인수 실장.
물론 그 뜻을 모르지 않기에 아무도 반문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석인수 실장도 굳이 그 말을 잇지 않고 정확히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현재 아르헨티나는 물론이고 세계 곳곳에서 콕 집어 막내 도련님의 도움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
NPC라고 착각했던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경쟁자 혹은 적은 지구 내에서 같은 ‘Revival Legend’를 하는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의 요청에는 무조건 대가 혹은 톡톡한 보상을 뜯어냈다.
결국 잠재적 경쟁자이자 적인 그들이 약해져야 내가 강해지니까.
하지만 오사카에 나타난 그들을 보며 그리고 그런 자들이 더 빈번하게 모습을 드러낼 거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 진짜 적은 그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지면 나는 물론이고 내 가족과 내 울타리 안에 있는 자들 전부도 죽을 것이고.
그래서 석인수 실장의 말에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가겠습니다.”
어쩌면 차후 아르헨티나에 있는 저들의 힘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결국 같은 지구에 속한 자라는 이유 하나로 공동의 적을 갖고 있으니까.
< 아르헨티나. > 끝
< 검은 액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