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서두름.
명진 쉘터 내 응접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래도 카를로스나 멜리나는 내가 거절할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말해줬다.
“죄송하지만 함께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무척 흥미가 있긴 하지만 제게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
“.......”
우선 그런 나의 거듭된 거절에 결국 카를로스와 멜리나는 무거운 얼굴을 하고 응접실을 빠져 나갔다.
그리고 응접실을 빠져나가는 그들을 보며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분명 지금의 선택이 후회스럽지는 않지만 포기한다는 것이 여간 아쉬운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결정을 내렸기에 그 아쉬움을 빠르게 털어냈다.
며칠 뒤.
그날도 평소처럼 아침 일찍 ‘Revival Legend’에 접속해 사냥을 했고 잠깐 휴식을 위해 로그아웃을 할 찰나 귓속말이 울렸다.
바로 석인수 실장에게.
[석인수 : 막내 도련님. 대화 가능하신가요?]
[lumen : 네. 말씀하세요.]
[석인수 : 며칠 전 명진 쉘터에 왔었던 아르헨티나의 탈라가파 길드를 아실 겁니다.]
[lumen : 네.]
당연히 알 수밖에 없었다.
분명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간간이 그들에게 나 혼자라도 함께 이동을 하겠다고 말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으니까.
그만큼 그들의 제안은 마음이 혹할 정도로 매력적이었고.
그리고 그런 내 대답에 석인수 실장의 다음 귓속말이 울렸다.
[석인수 : 방금 들어온 소식으로 그들이 심판의 열쇠를 사용한 것 같습니다. 그들도 감추고 싶었는지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였지만 로드리고 길드장을 비롯해 최상의 간부들 몇몇이 공식 석상에서 갑자기 사라진 것으로 봐서는...]
[lumen : 결국 이동을 했군요.]
[석인수 : 네.]
[lumen :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마 그들이 30일 뒤에 안전하게 전원 복귀를 한다면 땅을 치고 후회를 할 것이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
하지만 그 후회를 하는 와중에도 해야 할 일은 있었다.
바로 그들에게 그곳의 정보를 알아내는 것.
경험만큼 확실한 정보도 없으니까.
그래서 그들이 언제 출발을 했는지 파악을 하고 있어야 했다.
“흠...”
그나저나 그들이 출발을 했다는 연락에 만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물론 정보를 위해서라도 그들이 성공을 해야 했다.
그러나 실패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분명 있었다.
아니, 솔직히 후자가 전자보다 더 컸다.
내가 먹지 못하는 감은 남도 못 먹었으면 좋겠고 그래야 내 선택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이 될 테니까.
하지만.
절레절레.
순간적으로 고개를 빠른 속도로 저었다.
“됐어! 없어도 돼! 없어도 되니까 위험할지도 모르는 선택을 하지 않은 거고! 그들이 그 보상을 10배 이상을 받아와도 내 상대는 절대 될 수 없으니까!”
만약 그들이 그 보상을 받음으로써 나보다 더 강해진다?
죽을 확률이 50%가 넘어도 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절대로 불가능했다.
분명 30일 동안 그곳에 머묾으로써 주어지는 보상이 꽤 크긴 했지만 나는 그것보다 더 큰 보상을 지금까지 몇 번이나 받아왔으니까.
그래서 거절이라는 선택을 한 거고.
우선 그와 함께 극히 편협한 생각을 털어냈다.
대신.
“행운을 빌지. 하지만 30일 뒤에는 꼭 보자고.”
그들이 돌아오기를 빌었다.
당연히 수많은 정보와 함께.
그리고 곧장 몬스터에게 달려들었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날려버리기에는 몬스터 사냥만큼 제격인 것은 없으니까.
다음날.
“후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아르헨티나의 탈라가파 길드 때문에?
아니다.
그것은 이미 그들이 심판의 열쇠를 사용함으로써 더 이상 내가 관여할 수 없게 된 이상 모든 것을 훌훌 털어냈다.
즉, 숨을 길게 내쉬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보물 상자.
무려 1만 명과 함께 이동했다고 주어진 특별 보상.
더욱이 그간 보물 상자를 딱 2번 열어봤다.
그리고 첫 번째 보물 상자에서는 업그레이드된 뿌리를 얻었다.
두 번째 보물 상자에서는 직접적으로 ‘올 버프 올 디버프가’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나오게끔 했던 특성 조각들이 나왔었고.
그만큼 그간 보물 상자에서 획득한 것들은 말 그대로 보물들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획득한 보물 상자를 개봉하기 직전 긴장된 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었다.
“그래. 어차피 이건 덤이야. 덤. 그전에 이미 얻은 것들이 너무 많았고. 그러니까 여기서 정말 하등 쓸모없는 것이 나와도 무조건 이득인거지.”
우선 그렇게 자기 최면에 가까운 말을 내뱉고 이미 질질 끌만큼 끌었기에 곧장 보물 상자를 열어젖혔다.
펑.
그러자 보물 상자에서 엄청난 빛이 새어나왔고 곧 하나의 아이템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주문서가.
“.......”
물론 주문서가 나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이미 신화 등급의 아이템 확장 주문서로 남들과 다르게 반지를 무려 2개를 더 착용하고 있으니까.
그 효과는 이미 톡톡하게 보고 있고.
그런데 솔직히 주문서보다 다른 것을 원했다.
분명 더 좋은 것은 많으니까.
하지만 우선 어떤 주문서인지 알아야 했기에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아이템 확인.”
[쿨타임 제거 고대 주문서 3장. (전설)
-주문서를 사용시 현재 적용중인 쿨타임을 제로로 만든다.
만약 2개 이상의 쿨타임이 존재한다면 하나만 선택이 가능하다.]
“.......”
순간 멍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좋아서?
아니면 기대 이하라서?
전부 아니었다.
말인즉슨.
“이런 멍청이! 이미 2장을 갖고 있는데 그걸 이용하면 심판의 열쇠를 사용하고 얻는 30일의 쿨타임을 없앨 수 있잖아!”
이미 수중에는 쿨타임 제거 고대 주문서 2장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것은 100레벨 한정 강화 퀘스트 때 얻은 100% 강화 성공 주문서와 함께 얼음황제 수호검은 한 번에 15강화로 만들기 위해서 보관 중이었다.
하지만 3000개의 잔여 스탯포인트와 3만개의 코인 그리고 30억의 골덴링을 위해서라면 1장 정도는 사용할 의향이 있었다.
더욱이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분명 그쪽으로 이동해서 적들을 처리하면 포인트라는 것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포인트로는 코인은 물론이고 귀하디귀한 경험치와 잔여 스킬포인트 등을 구입하는 것이 가능했고.
즉, 무조건 가야 했었다.
나는 혹여나 있을지 모를 위험한 상황을 벗어날 히든카드가 존재했으니까.
그러나 그때는 거기까지 생각을 하지 못했고 이미 탈라가파 길드는 열쇠를 사용해 떠난 상황.
“.......”
한동안 나의 무지함에 멍하니 허공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양손에 3장의 쿨타임 제거 고대 주문서를 들고서.
잠시 후.
이미 물 건너 간 상황.
그래서 후회를 하고 또 해도 방법이 없기에 아쉬움을 꾸역꾸역 밖으로 토해냈다.
대신.
“그래. 1장을 아낀 거야. 더욱이 이번에 3장을 얻었으니 15강화 얼음황제 수호검이 멀지 않은 거고.”
아마 보물 상자에서 쿨타임 제거 고대 주문서가 1장이 나왔다면 무척이나 아쉬웠을 것이다.
보물 상자라는 이름값을 감안하면 1장은 적어도 너무 적었으니까.
하지만 1장도 2장도 아니고 무려 3장이 나왔다.
그래서 직전의 2장을 포함하면 총 5장의 쿨타임 제거 고대 주문서와 1장의 100% 강화 성공 주문서를 보유했고 즉, 얼음황제 수호검을 9강화만 만들면 그 즉시 강화의 끝인 15강화로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
그것도 1강화짜리도 없다고 소문난 신화 등급의 무기를.
“그럼 현재 7강화니까 두 번만 강화를 시도하면 되는 건가?”
부르르.
순간 15강화 얼음황제 수호검을 떠올리자 살짝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7강화인 지금도 명백하게 사기였는데 강화 수치가 올라갈수록 그 옵션의 증가폭이 커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15강화는 사기 수준이 아니라 밸런스 자체를 붕괴시킬 무기가 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래서.
“그래! 잊자. 잊어!”
30억 골덴링도 3000개의 잔여 스탯포인트도 그리고 3만개의 코인도 15강화 얼음황제 수호검 앞에서는 분명 명함도 못 내밀 것들이 분명했기에 후회와 아쉬움을 날려버리고 다시 사냥에 집중했다.
그 후 일주일 뒤.
1500레벨 사냥터 타이탄의 대지.
퍽. 퍽. 쾅. 쾅.
평소처럼 타이탄의 대지에서 연신 사냥에 집중하는 와중 갑자기 메시지가 울렸다.
[안녕하세요. ‘Revival Legend’입니다.
-변경 사항이 있어 안내해 드립니다.
1. 현재의 40개 구역이 조만간에 하나의 구역으로 합쳐집니다.
2. 100레벨 이하 접속 금지에 이어 조만간 200레벨 이하 접속 금지 페널티가 활성화 됩니다.
3. 40개의 구역이 합쳐져 하나의 구역으로 변경되고 나서는 모든 사냥터에서 몬스터가 주는 경험치가 증가하며 더 높은 수준의 사냥터가 새롭게 등장합니다.
4. 하나의 구역으로 합쳐지기 직전 계획된 이벤트가 빠르게 시작됩니다.]
“?”
물론 그간 지금처럼 공지사항에 가까운 메시지는 종종 울렸었다.
하지만 이번 메시지는 그전의 메시지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 느껴졌다.
바로 뭔가 서두른다는 느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간 2~5개 사이의 구역이 차츰차츰 합쳐져 현재의 40개의 구역이 형성됐다.
내가 속한 대한민국만 하더라도 1차로 일본과 몽골 그리고 2차고 중국, 인도, 베트남 이런 식으로 구역이 합쳐졌고.
그리고 그걸 감안하면 40개의 구역이 한 번에 하나의 구역으로 합쳐지는 것보다 10개에서 15개 사이로 합쳐지는 것이 오히려 더 합당해보였다.
더욱이 그 밑의 200레벨 제한은 그렇다 쳐도 모든 사냥터에서 코인에 이어 경험치가 증가한다는 것이 그걸 뒷받침해줬고.
그런데 문제는.
“왠지 이유를 알 것 같다는 거지.”
물론 심증.
당연히 근거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왠지 ㅇㅇㅇ라는 이름도 제대로 표시되지 않은 그곳으로 떠난 그들 때문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바로 아르헨티나의 탈라가파 길드.
그리고 그때 ‘4번. 하나의 구역으로 합쳐지기 직전 계획된 이벤트를 빠르게 시작됩니다.’ 라는 것을 제대로 지킬 요량인지 메시지가 더 울렸다.
[‘각 구역 최강자를 찾아라.’ 이벤트에 이어 계획된 이벤트 ‘각 구역 최강 길드를 찾아라.’가 곧장 시작됩니다.
-진행 방식.
: 앞으로 3일간 각 도시나 성의 중앙 광장에 설치된 표지판을 통해 ‘구역 최강 길드 선발전’에 대표자가 참여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 팀의 구성에는 최대 30명까지 가능하며 3일 동안의 참여 신청이 마감되면 그 다음날부터 랜덤으로 각 길드의 매칭이 이루어집니다.
(참여 길드 수에 따라 무작위로 1024강, 512강의 토너먼트 형식으로 대진표가 짜입니다.)
: 최종 1등부터 16강 진출 길드까지 차별적인 보상이 주어집니다.
또한 40개의 구역에서 최종 1등한 길드는 따로 모여 진정한 최강 길드를 뽑는 왕중왕전이 진행됩니다.
단, 이 이벤트는 1000레벨 이상부터 참가 가능합니다.
: 이벤트 특성상 결투의 패배로 인한 페널티는 없습니다.]
내가 우승을 차지했던 ‘최강자를 뽑아라.’ 이벤트.
당연히 내가 속한 11번 구역은 물론이고 왕중왕전에도 우승을 했었다.
그리고 지금의 이벤트는 ‘최강자’를 ‘최강 길드’로 바꾸면 그것의 판박이였다.
물론 좋았다.
또 1등을 할 테니까.
당연히 11번 구역은 물론이고 왕중왕전에서도.
하지만 그럼에도 마냥 좋지 못한 이유는 명백히 이 빠른 흐름이 과연 우리에게 아니, 적어도 나에게 유리할지라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탈라가파 길드의 제안을 거절한 근본적인 이유도 어차피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사이라면 나중으로 미루고 싶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에 더더욱.
물론 그 생각은 거기에서 멈췄다.
어차피 고민을 거듭해도 알 수 없었고 최강자에 이어 최강 길드를 뽑는 이벤트에서 내가 1등을 하는 것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
홍주영이 공지 사항에 가까운 메시지를 보며 여러 생각을 하는 사이.
ㅇㅇㅇ영역.
“우리는... 잘못된 선택을 한 거야.”
“젠장. 젠장! 이럴 거면 미리 말을 해주던가!”
“여기에... 여기에 오는 것이 아니었어.”
이제 5명밖에 남지 않은 탈라가파 길드원들은 그렇게 절망에 가까운 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도망치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저들이 아니, 적들이 자신들을 순식간에 죽일 수 있음에도 죽이지 않고 가지고 논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
< 서두름. > 끝
< 예견된 수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