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하지 마.
3차 관문을 뚫고 4번 스테이지에 진입한지 일주일째.
푹. 푹.
[크억!]
[컥!]
분명 1번, 2번, 3번 스테이지보다 등장하는 몬스터가 강하긴 했지만 역시나 뿌리에 원샷원킬이 나는 것은 마찬가지인 상황.
그래서 그전의 스테이지처럼 나름대로 느긋하게 이동하는 것은 가능했다.
물론 그 와중에 유독 강했던 아니, 유독이라는 표현보다 압도적으로 강했던 2차 관문의 리치가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아무리 고민을 해도 답은 나오지 않기에 훌훌 털어냈다.
다음 관문에 리치보다 더 강력한 문지기가 나와도 이길 자신이 있기도 했고.
그런데 그때.
“응?”
분명 시야 안에는 몬스터 외에는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멀찍이서 꽤나 큰 무리가 이곳을 향해 이동하는 것이 명백하게 느껴졌다.
그것도 꽤나 다급한지 빠른 속도로.
물론 몬스터 무리일 수도 있었다.
그게 가장 합리적 의심이었고.
그러나 이곳을 향해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무리에게는 분명 몬스터에게 느낄 수 없는 그런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몬스터 무리가 아니라면 정답은 딱 하나니까.
바로.
“왜 보르네슈 탐험대가 다시 뒤로 돌아오는 거지?”
***
그 시각 4번 스테이지 내의 보르네슈 탐험대.
“젠장! 4차 관문에서 너무 시간을 많이 보냈어!”
“하지만 애초에 5일간의 쿨타임이 발생한다고 했었으니까 그건 어쩔 수 없잖아.”
“맞아. 대신 앞의 관문에는 5일의 쿨타임이 사라졌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아야지.”
역으로 스테이지를 이동할 때 발생하는 5일간의 쿨타임.
그래서 4차 관문 앞에서 하루 이상을 발만 동동 굴리며 기다렸던 보르네슈 탐험대였기에 모두들 전속력으로 움직였다.
전원 생존해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현재 일반인들의 상태를 모를뿐더러 혹여나 간발의 차로 몰살을 당하지 말라는 법이 없었으니까.
물론 그 와중에 낮은 소리로 속닥속닥 거리는 무리도 있었다.
“똑같이 N분의 1로 분배를 하겠지?”
“당연히 그래야지!”
“맞아. 개인당 일반인들을 최소한 10명? 아니지, 12명 정도로 나눠야지.”
“그런데 그게 될까?”
“.......”
“.......”
“.......”
‘Revival Legend’ 내에서 최소 1200레벨을 달성하고 거기에 현실 구현률을 올렸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런저런 경험이 많은 자라는 뜻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솔로 플레이 같은 개인적인 활동보다 길드나 단체 등에 소속된 자일 확률이 높았고.
즉, 여기에 있는 모두가 그랬다.
그래서 간부나 지휘관 혹은 강한 자에게 더 많은 몫이 돌아가는 것을 수없이 봐왔다.
그렇기에.
“그럼 한 5명?”
“그건 너무 적지!”
“맞아! 못해도 7명? 8명은 정도는 돌아가야지!”
“그런데 그걸 저쪽 앞에 있는 자들이 동의할까?”
한명의 말에 모두가 가장 앞에 서 있는 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연히 현 보르네슈 탐험대의 대장을 맡고 있는 안드레이를 필두로 프랑스 오를레앙 길드의 길드장 로렌.
거기에 몇몇 이름난 자들을 비롯한 원래 보르네슈 탐험대의 간부들.
그 후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한명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젠장! 그래도 난 개인당 최소한 7명씩은 분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나도!”
“더군다나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
“맞아. 솔직히 일반인들을 데리고 갈 수도 있었잖아?”
결국 비난의 화살은 일반인들 전부를 버리자는 최초의 언급을 했던 안드레이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아무도 큰 목소리로 말하지 않았다.
그저 작은 목소리로 구시렁거릴 뿐.
여하튼 그렇게 모두들 보상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빠르게 4번 스테이지 내부를 질주했다.
눈앞에 짐이라 생각해서 버렸던 하지만 이제는 금덩이로 변한 1만 명에 달하는 일반인 무리를 마주할 때까지.
***
“흠.”
공중에 떠 있기에 그 누구보다 먼저 확인이 가능했다.
그리고 당연히 놀라지 않았다.
시야에 들어오기 직전부터 대충 그 존재를 짐작 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문제는 왜 그들이 다시 역행을 해서 이동을 하느냐 이것이었고.
물론 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왠지 어떤 이유인지 알 것 같았다.
바로 일반인들.
“그래. 오면 확실히 알겠지.”
우선 플라이를 종료하고 블링크로 일반인 무리의 끄트머리로 이동했다.
그들이 어떤 행동과 모습을 보일지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
잠시 후.
“?”
“?”
“?”
안드레이는 물론이고 보르네슈 탐험대 모두는 당황 아니, 당황 정도가 아니라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1번 스테이지의 시작 지점에 있어야 할 일반인 무리들이 무려 4번 스테이지에 그것도 한가운데에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 와중에 급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안드레이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일반인 무리를 보호한다!]
“네!”
“알겠습니다!”
분명 일반인 무리를 가차 없이 버렸던 안드레이.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자도 분명 있을 테지만 어쨌든 안드레이와 함께 일반인 무리를 버리는데 동의한 탐험대.
하지만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안드레이의 명령에 사방으로 촤악 퍼지며 일반인 무리를 보호하듯이 감쌌다.
그 후 안드레이는 무척이나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일반인 무리를 보호해서 끝까지 이동을 한다! 물론 이동 속도는 일반인들에게 맞추도록 해라!]
“네!”
“알겠습니다!”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자기 할 말만 하는 안드레이.
그리고 그 안드레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보르네슈 탐험대.
그렇기에 일반인 무리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을 사지에 버리고 간 자들이 바로 안드레이와 보르네슈 탐험대였으니까.
더욱이 그간 홍주영의 어마어마한 능력을 직접 눈앞에서 목격한 일반인들.
아무리 ‘Revival Legend’에 대한 경험이 없다 할지라도 보는 눈과 귀는 있었다.
그래서 홍주영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굳이 이제 와서 보르네슈 탐험대의 보호를 받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리고 그때 안드레이는 일반인들의 그 모습에서 자신들을 반기지 않는다는 것은 금세 눈치 챌 수 있었다.
하지만 안드레이는 그 일반인들의 불쾌해하는 표정이나 못마땅스러운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어차피 일반인들 따위가 발악을 해봤자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수준이었으니까.
다만 일반인 무리를 여기까지 데려온 자들.
안드레이는 바로 그자들을 찾기 위해서 일반인 무리 전체를 빠른 속도로 스캔했다.
그만큼 일반인들이 여기까지 왔다?
그것도 자력으로?
안드레이는 멍청하지 않았다.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했으니까.
그 말인즉슨 이들을 여기까지 끌고 온 자들이 있다는 뜻이고.
‘누구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2차 관문의 리치를 생각하면 절대 소수는 아닌데...’
처음에는 일반인 전체를 차지할 생각이었다.
물론 혼자서 차지 한다는 것이 아니라 보르네슈 탐험대 모두가.
하지만 4번 스테이지 한가운데서 일반인 무리를 발견하고 분명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파악하자 결국 계획을 변경했다.
분명 상대는 2차 관문의 리치까지 격파한 만큼 절대 약자들은 아닐 테니까.
그러나 결국 그들도 자신들의 ‘보르네슈 탐험대’라는 퀘스트로 이곳에 온 자들.
그렇기에 최소한 5천명의 일반인들은 받아내야 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안드레이는 일반인 무리 이곳저곳을 살폈지만 결국 눈에 들어오는 자들이 없자 크나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특히나 일반인들을 여기까지 데려온 자들이 이번 퀘스트는 일반인들이 보상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기 전에 협상을 끝내야 했으니까.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미 제 소개는 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이제 그쪽에서 소개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안드레이는 혹여나 튀는 행동을 하는 자가 있지 않을까하고 이곳저곳을 살폈지만 그런 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말에 대답하는 목소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도 공중에서.
“굳이 소개를 해야 하나? 이미 따로따로 움직였는데 각자 갈 길을 가면 되는데 말이지.”
***
이들의 행동을 보고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에 오자마자 한다는 말이 염치도 없이 사지에 버려두고 갔던 일반인 무리를 보호한다는 것이었으니까.
물론 정말 0.00001%의 가능성이긴 하지만 갑작스레 일반인 무리가 가여워져서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다.
절대 아니라고.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하기에는 1주일간 유지되는 세이프티 존을 감하면 늦어도 너문 늦었고.
즉, 분명 이들은 끝에서 무언가를 확인했을 것이다.
일반인들이 이곳에 그것도 강제로 끌려온 이유를.
그렇기에 이렇게 버리고 갈 때는 언제고 이제와 보호한답시고 저 난리를 치는 것이고.
그리고 그때 나를 찾는 안드레이.
이제 대충 저들의 의도는 파악했고 더 이상 숨을 필요는 없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블링크로 공중으로 이동해 천천히 내려오면서.
***
안드레이는 아니, 안드레이뿐만 아니라 오를레앙 길드의 길드장 로렌을 필두로 꽤 많은 자들이 공중에서 느긋하게 내려오는 자를 보고 곧장 누군지 파악할 수 있었다.
바로 아시란테.
아니, 홍주영.
그래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괴물 그 자체가 바로 홍주영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때 내뱉어진 홍주영의 말.
“표정을 보아하니 굳이 내 소개를 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군. 하지만 그래도 예의란 게 있으니까. 홍주영이다.”
“.......”
안드레이는 이제는 1000명이 되진 않지만 그래도 수백 명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여유 만만한 모습을 보이는 홍주영의 모습에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물론 홍주영이 건방지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홍주영은 그럴 능력을 지녔으니까.
홍주영의 모습에 어째서 1만에 달하는 일반인 무리가 4번 스테이지 한 가운데에 있는지 충분히 납득이 갈 정도로.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는 일.
더군다나 홍주영도 정확히 자신들의 퀘스트에 동참을 한 것이고.
그래서 안드레이는 침을 꼴깍 삼키며 입을 열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간 소문으로 많이 듣던 모습을 이렇게 뵈다니 영광입니다.”
“뭐... 나도 반갑군.”
홍주영의 명백하게 달가워하지 않는 인사에도 안드레이는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저희가 미처 챙기지 못한 일반인 무리를 이렇게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드레이는 아직 홍주영이 이번 보상에서 일반인들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모르기에 최대한 그 부분을 활용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물론 1만에 달하는 일반인 무리를 전부 요구할 생각은 없었다.
이곳에서 홍주영을 속아 넘겨도 결국 그의 분노를 이끌어내면 현실에서 어떤 해코지를 당할지 몰랐으니까.
그래서 애초 목표로 했던 5천명도 포기했다.
최소한 3천명.
그 정도면 차후 일반인들이 보상의 중추라는 것을 홍주영이 알아도 좋게 좋게 넘어갈 마지노선으로 잡았다.
하지만 그때.
“이봐. 말은 똑바로 하자고. 챙기지 않은 것이 아니라 버리고 갔잖아. 설마 챙긴다와 버린다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
안드레이는 홍주영의 그 말에 어쩌면 크나큰 낭패를 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갖은 고생은 다 했지만 결국 알맹이는 남에게 빼앗기는 그런 낭패를.
그러나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기에 안드레이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
심증은 있었고 안드레이의 대화로 그 심증을 확신으로 바꿀 수 있었다.
분명 이 끝에는 짐으로 치부되던 일반인들의 가치를 급상승시켜주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당연히 보상일 확률이 99%겠지만.
그래서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같이 일반인들을 보호하며 움직이자며 살살 양보를 언급하는 안드레이를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는 하지 말자고.”
확실히 과격한 대응.
하지만 일부러 과격한 대응을 선택했다.
여기서 이들과 실실 웃으며 대화를 할 필요도 없고 만약 그렇게 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어느 정도 양보를 한다는 뜻이니까.
물론 양보를 해도 됐다.
나 혼자 전부 독차지하기에는 분명 손가락 빨고 있을 자들이 꽤 많았으니까.
바로 안드레이를 비롯해 눈앞의 보르네슈 탐험대 전부가.
그러나 여기까지 꽤 많은 노력 아니, 노력은 아니고 시간을 들여 데리고 온 것은 나였고 끝까지 데려갈 자도 나였다.
그래서 안드레이를 향해 말을 내뱉었다.
“그나저나 좀 비켜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설마 막을 생각은 아니지?”
그리고 그 순간.
슝. 슝. 슝. 슝.
일반이 무리와 보르네슈 탐험대 사이로 수많은 뿌리들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위협적으로 넘실넘실 거렸다.
그 모습에 방금 전보다 더 위압적인 모습으로 안드레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빨리 선택해 줬으면 좋겠어. 아직도 갈 길이 무척이나 바쁘니까.”
싸움?
피할 생각은 없었다.
피해야할 필요도 없었고.
그런데 그때.
“저는 홍주영님과 함께 가겠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죽더라도 홍주영님 곁에서 죽겠습니다!”
“나도!”
“저도 홍주영님을 따르겠습니다!”
“홍주영! 홍주영!”
뒤에서 나를 연호하는 함성이 일었고 그 함성 소리는 주변을 가득 매울 정도로 커졌다.
우선 그 함성 소리에 개의치 않고 고개를 까딱거리며 안드레이의 답변을 촉구했다.
비키던지 아니면 싸우던지 둘 중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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