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짐 (3).
보르네슈 탐험대가 떠난 후.
“흑흑.”
“으아아앙.”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아...”
“왜 하필 나야. 왜 하필 나냐고!”
“보르네슈 이 쓰레기들!”
“복수할거야! 죽어서라도 꼭 복수할거야!”
보르네슈 탐험대가 모습을 감추자 분노가 잔뜩 내포된 설움과 억울함이 점차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내버려뒀다.
지금은 스스로 원하지 않았음에도 강제로 위험한 곳에 소환된 것만으로도 억울한데 그대로 버려졌다는 사실에 여러 감정들이 한창 복받쳐 오를 타이밍이니까.
괜히 먼저 떠나간 자들을 쫓겠다고 지금 당장 이들을 수습해봤자 아이와 노인까지 포함된 이 무리로는 절대 따라 잡는 것이 불가능했고.
아니, 건장한 성인들로만 구성됐다 하더라도 그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보르네슈 길드의 부 길드장이라는 안드레이는 따라올 수 있다면 따라와보라고 했지만 정작 이 일반인 무리를 절대로 반기지 않을 것이다.
분명 남들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강해지겠다는 열망 하나로 스스로 위험한 이곳에 오는 것을 선택했지만 그래도 무려 1만 명에 달하는 일반인들을 사지에 버리고 떠나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자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실제로 일반인 무리 밖으로 빠져 나가는데 머뭇머뭇 거리는 자들도 꽤 있었고.
즉, 안드레이 입장에서 일반인 무리는 백해무익한 짐 이상의 존재.
그래서 울고불고하는 일반인 무리를 가만히 내버려뒀다.
속에 있는 온갖 감정을 다 토해내고 나면 남은 것은 대체적으로 침착함이니까.
몇 시간 후.
대충 눈물을 흘린 만큼 흘린 것 같기에 그들 사이를 가로질러 처음 안드레이가 위치했던 단상으로 움직였다.
그 후 의아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는 모두를 향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아. 아. 안녕하세요. 우선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명진 길드의 홍주영이라고 합니다. 아시란테라고 불리기도 하고요.]
“어?”
“홍주영?”
“아시란테?”
“설마 이번 일본 오사카에서 발생했던 일은 처리했던...”
“그것뿐이게? ‘Revival Legend’ 내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잖아!”
“맞아! 나도 들어봤어. 분명 지구 내에서 가장 쎈 사람이라고 했는데...”
웅성웅성.
와글와글.
내 정체에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상황.
하지만 내버려뒀다.
이미 1등에 대한 욕심을 버렸기에 급할 것도 없고 1주일간 유지되는 세이프티 존 인만큼 서두를 필요도 없으니까.
잠시 후.
당연하지만 1만 명에 달하는 무리인 만큼 분명 현명한 자도 있지만 어리석은 자도 있을 것이다.
눈치가 빠른 자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느린 자도 있을 것이고.
그런데 다행히 이 무리는 전자가 많아서인지 마치 나에게 무언가를 맡겨놨다는 듯이 아니면 내가 자신들을 무조건 구해야하는 임무라도 있다는 듯이 마냥 살려달라고 악다구니를 쓰며 소리만 꽥꽥 내지르는 자들이 점차 줄어들어갔다.
물론 그럼에도 이들을 구하긴 구할 것이다.
아니, 이제는 무조건 구해야만 했다.
아예 시작을 안 했으면 모를까 내 정체를 드러내고 이들에게 일말의 희망을 준 순간 여기서 발을 뺀다면 그전까지 보르네슈 길드를 향한 온갖 비난과 욕설이 나로 바뀔 거라는 것은 너무나 명약관화했으니까.
더욱이 그 행동에 기분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지금 이들은 깊은 물에 빠진 상황이고 그렇기에 지푸라기라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들의 눈치를 봐야할 이유는 단 1도 없는 상황.
그래서 분명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아니, 살짝 오만한 눈빛으로 일반인 무리를 훑었다.
“.......”
“.......”
“.......”
순식간에 잠잠해진 현장.
그 모습에 처음처럼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정확히 5일 뒤에 출발하겠습니다. 그러니 그간 마음을 추스르며 충분한 휴식을 취함과 동시에 최소 열 명을 시작으로 그 열 명이 뭉쳐 백 명, 그 다음에는 백 명이 뭉쳐 천 명, 마지막으로 그 모든 조를 아우르는 만 명으로 조를 짜시기 바랍니다. 단 그 조를 짜는데 억압이나 협박이 존재할 시에는 그 자는 버려
두고 갑니다. 그리고 가급적 어린아이와 노인을 위해 밸런스 있게 조를 짜는 현명한 자가 조장이 됐으면 합니다. 도중에 제가 짜증이 나서 전부를 버리는 그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요.]
분명 좀 더 나긋나긋하게 말할 수도 있었다.
오구오구 하며 칭찬과 격려를 할 수도 있었고.
하지만 1만 명을 데리고 즐거운 소풍을 가는 것이 아니라 몬스터가 득실득실 거리는 이곳에서 탈출을 해야 하는 상황.
그렇기에 차라리 이런 접근이 더 낫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 후 그들에게 관심을 거두었다.
이정도 말이면 충분히 알아듣게 설명을 했으니까.
만약 부족하면 행동으로 보여주면 되고.
5일 후.
1만 명에 달하는 일반인 무리는 내 생각보다 굉장히 빠릿빠릿했다.
더욱이 내 말대로 알아서 10명, 100명, 1000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1만 명으로 이뤄진 조를 결성했고 혹여나 낙오자가 없게 각 조마다 성인 남녀와 아이, 노인을 적절히 분배했다.
물론 그 와중에 나는 가만히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와 플라이를 이용해 보르네슈 탐험대 모르게 종종 그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염탐도 진행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염탐은 1차 관문에서 멈춰야 했다.
왜냐하면 1차 관문을 지키던 문지기를 처리하고 그 과문을 넘어간 보르네슈 탐험대.
나도 곧장 그 관문에 다가갔다.
그러자.
[1차 관문 통과시 2번 스테이지로 이동됩니다.
-2번 스테이지로 이동 후 다시 1번 스테이지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5일간의 쿨타임이 존재합니다.]
그간 보르네슈 탐험대가 시작 지점에서 1차 관문까지 이동하는데 걸린 시간은 약 2일.
그리고 만약 내가 그들을 따라 1차 관문을 넘어 2번 스테이지로 이동한다면 다시 시작 지점이 위치한 1번 스테이지로 이동하는 쿨타임이 5일 이었다.
즉, 분명 시간상 출발지의 세이프티가 유지되는 1주일에 딱 맞긴 하지만 5일간이나 그것도 세이프티 존의 유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막바지까지 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리 내가 설명을 잘해도 그들에게 불안감을 넘어 공포심을 줄 수밖에 없었다.
혹여나 내가 자신들을 버리고 갔다고 생각할 가능성도 컸고.
그래서 그냥 거기에서 포기를 했다.
여하튼 나름대로 질서정열하게 서 있는 자들.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모두 이동한다!]
“네!”
“알겠습니다!”
5일간의 시간이 그렇게 헛되지 않았는지 1만에 달하는 자들이 크나큰 목소리로 화답을 했다.
잠시 후.
아무리 서로 다닥다닥 붙어 이동한다 하더라도 1만이라는 숫자는 꽤나 큰 몸집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로 무리의 앞, 뒤, 양옆 360도를 전부 커버하는 것이 가능하다 해도 굉장히 수고로울 수밖에 없었고.
물론 그 수고로움?
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 수고로움을 대신해줄 존재가 있었으니까.
바로 뿌리.
푹. 푹.
“꾸엑!”
“켁!”
그 시각 일반인 무리.
“우와.”
“몬스터가 한방에...”
“도대체 저게 몇 개야?”
“10개가 넘을 것 같은데?”
“아냐. 아까 저쪽에서 100마리가 넘는 늑대같이 생긴 몬스터들이 달려들었는데 한번에 20개가 넘는 것이 땅에서 솟구치더니 그대로 박살을 냈어.”
“그래? 그나저나 나무인가?”
“땅에서 나왔고 색깔도 그렇고... 뿌리 아냐?”
“맞아. 확실히 뿌리지. 바 봐.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다시 땅으로 파고들잖아.”
“어쨌든 와... 나 솔직히 걱정을 많이 했거든? 우리는 만 명이고 우리를 지켜주는 사람은 1명이어서. 그런데 이렇게 안전할 줄이야.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것 같은데?”
“야! 내가 말했지! 지구에서 제일 강하다니까! 미국? 중국? 그쪽에서 항공모함을 끌고 와도 홍주영님 손가락 튕기는 것 한번이면 그대로 침몰할걸.”
“거짓말 마. 너도 어제는 한숨도 못 자고 걱정했잖아.”
“내가 어... 언제! 나는 홍주영님을 믿었다고!”
모습을 드러냈다 치면 무조건 한방.
더욱이 한두 개가 아니라 수십 개가 넘는 뿌리들이 자신들이 밟고 있는 영역을 든든하게 지켜준다는 생각에 모두들 입가에 함지박만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종종 그 미소를 띤 상태로 자신들의 머리 위에 떠있는 홍주영을 마치 자신들을 지켜주는 신이라도 되는 양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봤다.
1만 명의 일반인들의 머리 위 공중.
“흠.”
인원이 인원이다 보니 아무래도 시야 확보를 위해서는 공중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분명 비행한다기보다는 단순히 몸을 공중에 띄우는 효과를 가진 플라이지만 6만에 달하는 지력 아니, 이제는 6만을 훌쩍 넘는 지력의 효과인지 나름대로 비행이 가능하기도 했고.
물론 아쉬운 점은 생각보다 느린 이동 속도.
더욱이 간간히 휴식도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무리에는 어린아이와 노인도 포함이 되어 있으니까.
“그래. 뭐 이 정도는 충분히 허용범위니까.”
애초에 꽤나 느릴 거라는 예상을 했었기에 조바심 따위는 저 멀리 날려버렸다.
특히나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푹. 푹.
“크억!”
“켁!”
나조차 땅속에 뿌리가 몇 가닥이나 존재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엄청난 수령을 가진 나무가 오랫동안 넓은 범위에 뿌릴 내린 것처럼 많다는 것만 알 뿐.
그러나 확실한 것은 기생충을 흡수하고 다른 뿌리에 비해 유독 통통하고 긴 아니, 그냥 거대한 하얀색 뿌리가 생긴 이후로 다른 뿌리도 조금이나마 덩치가 커졌고 수도 많아졌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방에서 달려드는 달려는 몬스터를 굳이 내가 처리할 필요는 없었다.
푹. 푹.
원샷원킬로 뿌리가 알아서 처리를 함으로써.
“그나저나 만약 뿌리가 없었으면...”
부르르.
나도 모르게 살짝 몸을 떨었다.
정말로 뿌리가 없다면 지금 이렇게 공중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편안히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동분서주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 와중에 어느 정도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고.
여하튼 그렇게 든든한 뿌리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1차 관문을 향해 나아갔다.
며칠 후.
“오늘은 여기서 밤을 보낸다.”
“네!”
“알겠습니다!”
출발지에서 단 2일 만에 1차 관문에 도달했었던 보르네슈 탐험대.
하지만 일반인 무리로는 2일이 아니라 4일이나 흘렀음에도 아직 반도 돌파하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대략 30%정도 이동한 상황.
그래서 조금 마음이 싱숭생숭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들 없이 보르네슈 탐험대와 같이 아니, 보르네슈 탐험대고 나발이고 나 혼자서 움직였다면 어쩌면 지금 벌써 이번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1500레벨 사냥터 타이탄의 대지에서 사냥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러나 굳이 그걸 표정에 드러내지 않았다.
이들을 구하기로 하고 진행을 한 상황에 이제 와서 짜증을 내는 것은 가장 멍청한 짓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걸 겉으로 드러냄으로써 괜히 해주고도 욕먹는 상황은 멍청함으로도 포장할 수 없는 최악의 행동이고.
여하튼 그렇게 하룻밤 묵을 곳을 정하자.
쿵. 쿵. 쿵. 쿵.
우선 해가 지고 난 다음이 가장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도 조금 걱정을 했고.
하지만 그런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뿌리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땅에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마치 1만 명을 전부 감쌀 듯이 에워싸기 시작했다.
물론 1만 명을 전부 감싸는 것이 힘들었던지 시간이 갈수록 땅에서 솟구쳐 오르는 뿌리는 크기도 두께도 줄어들고 속도도 점차 느려졌다.
그런데 그때.
쑤우우욱.
분명 다른 뿌리들보다 거대한 하얀색 뿌리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 순간 다시 땅에서 솟구쳐 오르는 갈색 뿌리들이 원래의 크기와 두께로 돌아갔다.
솟구쳐 오르는 속도도 빨라졌고.
그 후 상당히 작아진 하얀색 뿌리.
하지만 1만 명을 에워싸는 든든한 뿌리 벽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첫날 저녁은 난리가 났다.
이미 뿌리의 위력을 봤고 그런 뿌리의 벽으로 거의 세이프티 존 같은 곳이 만들어 졌으니까.
당연히 나를 연호하는 소리는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여하튼 그렇게 만든 뿌리 벽을 등지고 나도 휴식을 취했다.
다른 자들처럼 시작지점에 있던 곳에서 골덴링을 사용해 구입한 음식을 섭취하며.
물론 일반인들에게 나눠진 음식은 전부 내 골덴링이 사용이 됐다.
그러나 이래저래 워낙 많은 골덴링을 보유했기에 생색을 내기에는 티도 나지 않았고.
홍주영과 1만의 일반인들이 이른 휴식을 취하는 사이.
신대륙 2번 스테이지.
처음에는 500명 규모였던 보르네슈 탐험대.
그 인원으로도 2번 스테이지에서 무난한 탐험이 가능했었다.
다만 3번 스테이지로 가는 2차 관문을 막고 있던 문지기가 너무 강력했을 뿐.
하지만 이제는 그 인원의 2배인 1000명.
탐험대의 대장을 맡고 있는 안드레이를 필두로 보르네슈 탐험대는 훨씬 수월하게 2번 스테이지를 해쳐나갔다.
그리고 2번 스테이지가 너무 수월해서인지 안드레이는 시작 지점에 남겨 놓고 온 1만 명의 일반인들이 떠올랐다.
‘분명 현실 구현률을 올린 불특정 다수에게 참여 메시지가 울린다고 했는데... 왜 일반인들이 온 거지?’
솔직히 일반인들의 등장에 그 누구보다 많이 당황한 것은 안드레이였다.
본인이 직접 ‘지원군을 부르는 피리’를 사용하기도 했고.
그래서 안드레이는 잠깐이지만 고민도 했다.
다는 아니지만 몇몇 일반인을 데려갈 생각도 했고.
하지만.
‘됐어. 어차피 함께 움직여봤자 짐밖에 안 될 자들. 더군다나 고작 1%의 의문점으로 그들을 보호하며 움직이는 것은 너무 효율이 나빠.’
그렇게 안드레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그 생각을 털어내고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어차피 이젠 다시 되돌아 가기에는너무 늦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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