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짐(2).
“.......”
“.......”
“.......”
침묵의 현장.
그러나 사과 아닌 사과로 분위기를 한순간에 침묵 속으로 몰아넣은 보르네슈 길드의 부 길드장 안드레이라는 자는 개의치 않다는 듯이 그 뒤로도 말을 계속 내뱉었다.
[혹여나 저의 말로 언짢음을 느끼신 분이 계시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여기는 현실로 ‘Revival Legend’가 아닙니다. 그 말인즉슨 여기서 사망시 그대로 끝이라는 뜻이고요. 그런데 여러분도 그걸 알고도 여기 온 것 아닙니까? 어떻게든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더 빨리 강해지기 위
해서요. 특히나 일본 오사카에서 벌어진 일은 다들 아실 겁니다.]
돌려 말하기는 했지만 결국 요지는 바쁜 우리가 굳이 일반인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이 있겠느냐? 아니,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 는 말. 그리고 그 말이 시발점이 되었다.
스윽. 스윽.
벌떡. 벌떡.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던 자들이 앞 다퉈 일반인 무리를 빠져나와 현실 구현률을 올린 자들이 뭉쳐진 곳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그만큼 직전의 안드레이의 말은 꽤나 과격했고 분명 같은 사람에게 함부로 내뱉을 성질의 말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슬슬 눈치를 보며 머뭇거린 자들이 꽤 있었고.
하지만 그들도 결국 목숨을 걸면서까지 이곳에 온 이유는 남들보다 더 많이, 더 빨리 강해지기 위해서 온 자들.
당연히 안드레이의 말에 동조될 수밖에 없었다.
안드레이는 영리하게 그 부분을 정확히 꿰뚫어 본거고.
그 후 안드레이드는 일반인 무리에서 빠져 나와 뭉쳐져 있는 현실 구현률을 올린 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나오신 모든 분들은 ‘Revival Legend’ 내의 레벨과 현재의 현실 구현률 거기에 현실로 구현한 아이템이 있다면 그 아이템에 대한 정보까지 전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절대 나쁜 의도로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진 능력만큼 대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설마 10의 능력을 가진 자와 100의 능력을 가진 자
끼리 공평한 대우를 원하시는 것은 아니시죠? 더욱이 저희의 능력도 모두 공개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탱커와 딜러, 힐러, 서포터로 구분해 가장 안전한 대형을 구축할 수 있을 테니까요.]
우선 안드레이의 그 말에 현실 구현률을 올린 자들끼리 뭉친 곳에서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소리는 길지 않았다.
분명 파티를 구성함에 있어 개인의 능력에 따라 부여되는 역할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가령 힐러와 서포터를 맨 외곽에 세워 몸빵을 시킬 수 없듯이.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안드레이가 다시 내가 속한 일반인 무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혹여나 아직도 여린 마음으로 결정을 하지 못한 분이 있으시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저희는 인원을 꾸려 이곳을 떠나면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합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나 스스로의 능력에 자부심이 있는 분이나 인지도가 있는 분은 적극 환영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만
큼의 대우를 해드릴 의향도 있고요.]
마지막 통보에 가까운 말.
그러자.
스윽.
스으윽.
정확히 5명이 밖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중에서는 나도 아는 인물이 섞여 있었다.
바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오를레앙 길드의 길드장.
[아이고! 이런 분이 계신 줄을 모르고 제가 못 볼 꼴을 보인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전과 확연히 다른 안드레이라는 자의 행동.
확실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프랑스를 넘어 유럽 내에서도 인정을 받는 곳이 오를레앙 길드이기에 당연히 인지도가 있는 인물일 수밖에 없었다.
나도 알 정도이니까.
그 후 오를레앙 길드의 길드장을 포함해 총 5명을 마지막으로 일반인 무리에서는 더 이상 밖으로 나오는 자가 없었고 안드레이는 그 즉시 시선을 거둬들이고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예 방치.
그리고 그것은 원래의 보르네슈 길드원들도 마찬가지였고 일반인 무리에서 빠져 나간 약 500명 정도의 현실 구현률을 올린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
“이대로 여기서 버림받아 죽는 건가?”
“젠장! 이렇게 죽으려고 그렇게 악착같이 버틴 것이 아닌데!”
“엄마...”
“아빠...”
부들부들.
흑흑.
당연하지만 일반인 무리에는 남녀 할 것 없이 성별은 물론이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한데 뒤섞여 있었다.
그렇기에 한쪽에서 시작된 분명 분노가 내제된 설움은 일반인 무리 전체를 휘감았다.
그러자.
[탐험대에 합류하신 모든 분들은 입구 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마치 더 이상 남은 자들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다른 곳으로 이동을 시도하는 안드레이.
그 후 안드레이는 내가 있는 일반인 무리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물론 우리를 따라와도 좋습니다. 따라올 수만 있다면요.]
일반인이 현실 구현률을 올린 자들을 두 발로 따라 움직인다?
불가능하다.
절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현실 구현률을 올렸다는 것은 1200레벨을 달성했다는 뜻이고 그 상태에서 1%의 현실 구현률만 올려도 체력을 비롯한 모든 것이 일반인의 범주를 벗어나니까.
하다못해 체력이 가장 낮은 마법사 계열 마저도.
더욱이 이제는 1200레벨 달성자가 예전에 비해 흔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고레벨인 것은 맞고 그만큼 성장을 하면서 얻은 코인이 못해도 수천 개는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때 절망에 빠진 일반인 무리를 향해 안드레이가 위로랍시고 마지막 한마디 말을 더 건넸다.
[그래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곳 출발지에 설정된 세이프티 존은 앞으로 1주일간은 더 유지 될 테니까요.]
“.......”
“.......”
“.......”
그러나 전혀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분노가 내제된 슬픔과 설움은 더더욱 깊어져갔고.
물론 그 와중에 여전히 내가 일반인 무리에 속해 있는 이유?
당연히 여러 가지 이유가 존재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안드레이의 말대로 마음이 여려서 차마 이들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솔직히 안드레이의 말은 과격했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은 절대 아니었다.
과거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분명 일반인인지 혹은 ‘Revival Legend’의 계정을 보유했는지 아니면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1200레벨 달성으로 현실 구현률을 올렸는지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달랐으니까.
그래서 안드레이는 물론이고 안드레이를 따라 거의 1만 정도 되어 보이는 일반인들을 버리고 가는 그들을 욕할 생각도 굳이 없었다.
여하튼 그들 무리에 굳이 참여를 하지 않은 이유는 이곳에 이동하는 순간 울렸던 메시지가 있었다.
바로.
[‘보르네슈 탐험대’의 퀘스트에 참여하였습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보르네슈 탐험대. 하지만 보르네슈 탐험대는 탐험을 하는 와중 제 2차 관문을 앞두고 탐험을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1차 관문에 비해 무척이나 강력한 문지기의 존재.
그래서 보르네슈 탐험대는 시작점으로 되돌아와 1차 문지기를 처치하고 얻은 당시에는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던 ‘지원군을 부르는 피리’를 사용했다.
: 신대륙을 탈출하라.
-아무리 보르네슈 탐험대에 소속이 되어 있다 하더라도 직접 탈출을 완료해야 보상이 주어집니다.
-탈출 순서에 따라 차등적인 보상이 주어집니다.]
말 그대로 이곳 신대륙을 탈출하라는 퀘스트.
그리고 말미에 탈출 순서에 따라 차등적인 보상이 주어진다는 메시지.
물론 합류를 하고 내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 당연히 처음 탈출은 내 몫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내가 첫 번째로 탈출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막는 자가 있다면 무력으로라도 뚫고 나갈 자신도 있고.
그래서 분명 처음에는 합류할 의사가 있었다.
안드레이의 말대로 1만 명에 달하는 일반인들의 목숨보다 내가 더 중요했으니까.
하지만 그때 내 눈에 들어온 2명의 남녀.
솔직히 왜 하필이면 주변을 살폈을까 하고 조금 후회가 되기도 했다.
몰랐으면 몰랐을까 아는 마당에 그들을 버리고 갈 수는 없으니까.
바로 형수의 아버지와 어머니인 사돈어른들을.
우선 그들에게 다가가 두 손을 낚아챘다.
순간 화들짝 놀라는 두 명.
그러나 나를 확인하고는.
“사돈총각!”
“어째서...”
그 물에 대답 대신 검지를 입술로 가져다 됐다.
그리고는 외곽 쪽으로 자리를 옮기고 내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여기에 오신건가요?”
형수를 좋아한다.
당연히 가족으로서.
왜냐하면 형수는 무척이나 현명하고 신중하며 사리분별에 뛰어났다.
그리고 어째서 형수가 그런 성격을 가졌는지는 사돈어른들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말인즉슨 내 앞에 있는 사돈어른들은 이제는 명진 내에서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치에 올라섰다.
하지만 그분들은 그 모든 것을 거부했다.
분명 메인기지 1번에 마련한 다른 곳보다 안전하고 넓은 공간보다 원래 자리했던 2번 거지에 쭉 상주하는 것을 선택했다.
딸이 명진에 시집을 갔다는 것을 자랑은커녕 외부에 발설하지도 않았고.
혹여나 명진에 누가될까봐 스스로 무척이나 조심하는 모습.
그래서 정말 버리고 갈 수가 없었다.
나중에 사라진 사돈어른들 때문에 형수는 물론이고 형수와 친하게 지낸 누나까지 눈물콧물 흘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물론 내 능력이 안 된다면 버렸을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내가 우선이니까.
그런데 능력이 됐다.
여하튼 그런 내 질문에.
“나는 명진 쉘터에 위치한 도서관에 있었네. 소일거리로 도서관을 맡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어딘가로 끌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눈떠보니 여기였네.”
전직 대학 교수.
그래서 명진 쉘터 내에 위치한 도서관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집에서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이 양반처럼 어딘가로 끌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역시 눈을 떠보니...”
두 분 다 똑같은 현상.
우선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혹여나 보르네슈 탐험대에 참여하겠다는 메시지 같은 것을 들으셨나요?”
“아닐세. 그런 메시지 같은 것은 일절 없었네.”
“저도 그래요. 사돈총각.”
“음...”
역시나 안드레이 말대로 일반인들은 자발적인 참여가 아니라 강제로 끌려온 상황.
“좋습니다. 그럼 두 분은 저랑 같이 움직이시죠. 제 이름이면 두 분 정도는 충분히 탐험대에 포함을 시킬 수 있습니다.”
물로 나 혼자서 두 명 정도는 완벽하게 케어하며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지만 그래도 무리에 포함시키는 것이 더 안전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이곳에 있던 보르네슈 길드원이 500명 정도에 추가적으로 합류한 현실 구현률을 올린 자들이 500명이 됐으니까.
즉, 총 1000명 정도.
더욱이 정말로 내 이름이면 일반인 두 명 정도 포함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
“그렇게 할 수 없네. 여기에 있는 자들 모두는 나처럼 아무런 이유 없이 끌려온 자들. 아무리 이들과 내가 아무런 연관이 없다 한들 어찌 나만 산다고 이들을 버리고 가겠나. 물론 사돈총각이 책임을 지라는 말은 전혀 아닐세. 사돈총각도 알지 못했던 일이고. 그러니 사돈총각은 어서 빨리 그들을 따라 움직이게
나.”
“.......”
솔직히 이 상황을 얼추 예측하기는 했다.
사돈어른의 성향과 성격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화도 안 났고.
대신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그 말씀 진심이십니까?”
“물론일세. 다만 자네 형수인 은지만 잘 부탁하네. 굳이 여기서 있었던 일은 말하지 말고. 자네와 우리는 만난 적이 없던 거야. 그러니 자네도 이일로 절대 자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네. 저들 말대로 여기는 목숨이 걸린 일. 자네만 생각하게나.”
“흑흑.”
사돈어른의 똑 부러지는 말.
하지만 형수 어머니는 눈물을 내비쳤다.
그러자.
“어허. 왜 울어! 하나있는 딸내미 시집 잘 보내놓고 그간 이 난리인 세상에 잘 살아왔잖아! 사돈총각은 여기는 내버려 두고 얼른 그들을 쫓아가게나.”
난 무척이나 강하다.
세상에서 내 이름을 아는 자보다 모르는 자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로.
하지만 사돈어른은 그런 내 강함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 알긴 알 것이다.
모를 리가 없다.
특히나 명진 쉘터에 거주한다면 더더욱.
그러나 자신들 때문에 내가 목숨이 걸린 이곳에서 혹여나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그게 여실히 느껴졌다.
“그래요. 사돈총각. 얼른 그들을 쫓아가요.”
눈물을 흘리던 형수의 어머니까지 나에게 그런 말을 내뱉자.
“후우...”
조금 창피했다.
나는 두 분을 버릴 생각이 분명 있었으니까.
아무리 형수의 아버지 어머니라 할지라도 분명 내 아빠와 엄마가 아니기도 했고.
물론 지금이라도 두 분을 양쪽 어깨에 짊어지고 강제로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쯤 되자 다른 선택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바로 사돈어른들을 포함해 짐이라고 버림받은 이들 전부를 다 살려보겠다는 것.
분명 남들은 미친 짓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럴 능력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로 인해 어쩌면 처음으로 1등이라는 순위와 보상을 날리게 되겠지만 한 번쯤은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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