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규격 외 (1).
일본 미쓰야 길드에서 보내준 오사카로 가는 비행기 안.
그냥 갈까라는 생각도 했다.
내가 있는 강원도에서 오사카까지는 800킬로미터가 채 안 되는 거리였으니까.
그리고 그 정도 거리면 플라이를 펼치고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를 사용한다면 그렇게 문제가 되는 거리도 아니었고.
특히나 아이스 계열의 마법사이기에 내 주력 스탯은 지력일 수밖에 없었고 블링크도 어쨌든 지력의 영향을 받는 스킬이었다.
그래서 4레벨임에도 한 번에 이동 가능한 범위가 여타 다른 블링크를 습득한 아니, 습득하다 못해 6레벨로 업그레이드한 마법사와도 현격한 차이가 존재했다.
솔직히 내가 이만큼 대단하다고 뽐내고 싶다는 생각도 분명 있었고.
하지만 굳이 뽐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런 능력을 선보인다는 것은 나 스스로 남에게 내 밑천을 드러내는 꼴일 수밖에 없기에 그냥 일본 미쓰야 길드에서 보내준 비행기를 탑승했다.
분명 내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를 여러 번 드러냄으로써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됐지만 그래도 800킬로미터의 거리를 순식간에 이동하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니까.
여하튼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간사이 국제공항까지 이동을 했다.
그리고 마중 나온 미쓰야 길드 소속 유저들과 함께 방어선을 구축한 오사카 도톤보리까지 빠르게 이동했다.
오사카 도톤보리.
전쟁터.
적을 안에 가두고 커다란 빌딩들을 활용해 원형 형태의 두터운 방어선을 구축한 도톤보리에 도착하고 느낀 것은 딱 그거 하나였다.
그리고 그때 한명의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현 도톤보리 방어선을 책임지고 있는 키요시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홍주영입니다.”
“이렇게 도움을 주기위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나 홍주영님의 위명은 귀가 닳도록 들었던지라 모두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그간 만나왔던 자들은 생각이 많고 그만큼 이해득실을 따지는 자들이 많았다.
물론 그런 자들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었다.
요즘 세상에서는 특히나 그래야 했다.
지금은 착하고 정직하다는 것이 더 이상 장점이 될 수가 없는 세상이었으니까.
착하고 정직하다와 조금 다르지만 우직하다는 것도.
그러나 앞의 남자는 한눈에 그런 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짜로 내 등장을 반겼고 환영했다.
그래서 나도 순수하게 그를 대했다.
이미 얻을 것은 거의 다 얻었고 더 이상 눈치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한몫 하긴 했지만.
여하튼 키요시라는 자를 따라 도톤보리 방어선으로 더 가까이 움직였다.
잠시 뒤.
“적들은 총 4명. 처음에는 단독행동을 했지만 저희의 반격이 몇 번 성공하자 현재는 4명이 꽁꽁 뭉쳐서 움직이는 중입니다. 특히 저 거대 빌딩과 저쪽 거대 빌딩이 놈들의 주거지로 파악되고 있고요.”
대충 알고는 있는 정보.
하지만 굳이 키요시의 말을 끊지 않았다.
대신 궁금한 것이 있기에 질문을 던졌다.
“아예 폭삭 무너트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예 모든 것을 박살내고 평지로 만들면 더 이상 숨을 곳이 없게 되는 상황.
더군다나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이곳까지 이동하면서 오사카 이곳저곳이 이미 박살 날대로 박살이 났고 무너질 대로 무너졌다는 것을 봤기에 여기서 몇 개, 몇 십 개가 또 그렇게 된다 해도 그다지 티도 날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내 질문에 키요시가 살짝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만약 놈들이 몬스터라면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아니,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
놈들은 몬스터가 아니라는 짧은 한마디 말.
하지만 그 짧은 말로 전부 수긍이 갔다.
직접 기억의 구슬로 보기도 했고.
그래서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빨리 시작하죠.”
그 말을 끝으로 키요시를 비롯한 이곳 도톤보리 방어선을 지키는 자들의 배웅을 받으며 그렇게 놈들을 찾아 안으로 들어섰다.
저벅저벅.
우선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천천히 부서지고 박살난 거리를 거닐었다.
물론 그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무척이나 안일하고 조심성 없다고 비춰질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여기는 내 역량을 100% 발휘할 수 있는 ‘Revival Legend’가 아닌 현실이었고.
하지만 직전에 꽤 큼지막한 것을 얻었다.
바로 10만개가 넘는 코인.
그리고 그것을 인벤토리에 꽁꽁 쟁여놓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사용을 했다.
특히나 지금의 나는 ‘Revival Legend’의 아이템을 현실로 구현시키는데 코인이 필요 없어졌기에 아낌없이 전부를.
그래서 지금의 현실 구현률은 꽤 높았다.
[1200레벨 특권 ‘현실 구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현재 lumen, 아시란테님의 현실 구현률은 85%입니다.
-81%~90%까지는 1%의 현실 구현률을 올리는데 9000개의 코인을 필요로 합니다.]
이번에 획득한 10만개의 코인에 그전에 보관중인 교환 가능한 코인까지 전부 탈탈 털어서 만든 85%의 현실 구현률.
그리고 단순히 85%까지 올린 것으로 끝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자신만만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말인즉슨 드디어 8레벨 스킬인 아이스 토네이도와 징벌 아이스의 사용이 가능해졌다.
그만큼 분명 ‘Revival Legend’ 속의 나와 비교하면 약간 손색이 있지만 그래도 얼추 엇비슷한 수준까지는 왔다는 뜻이고.
자신만만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이상한 상황.
그렇기에 당당하게 걸었다.
내 감각에 뚜렷하게 걸려든 4명이 있는 곳까지.
부스럭. 부스럭.
마치 자신들이 그곳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마냥 거침없이 내가 다가와서일까?
곧 눈앞에 시 주석은 분명 NPC가 아니라고 했지만 NPC로밖에 의심이 가지 않는 영상속의 그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
우선 그들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
“.......”
“.......”
“.......”
4명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
혹여나 내 말을 못 알아 듣는 것?
절대 아니다.
이미 미국 홀드렛지에서 건네준 영상에도 그리고 이번의 영상에서도 일반인은 불가능했지만 ‘Revival Legend’를 했던 유저들은 대화가 통한다는 것이 밝혀진 상태였다.
그런데 그때 4명중에 가장 덩치가 큰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것도 떠듬떠듬.
“너... 너는 뭐지? 어떻게... 너에게서 그분들의 아우라(Aura)가 느껴지는 거지?”
일본 미쓰야 길드 본거지.
류세치 회장을 필두로 미쓰야 길드 수뇌부들은 한쪽에 설치된 대형 화면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그러다 류세치 회장이 입을 열었다.
“알고 간 건가? 아니면 우연인가?”
그만큼 류세치 회장은 처음 홍주영의 움직임을 단순히 무의미한 걸음이라고 판단했다.
분명 그래 보였고.
하지만 떡하니 홍주영의 발걸음이 멈춘 곳에 모습을 드러낸 4명의 적.
류세치 회장 입장에서 알고 간 건지 아니면 단순히 얻어걸린 건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
“.......”
“.......”
류세치 회장의 질문에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류세치 회장도 돌아오지 않는 답변을 닦달하지 않았다.
왠지 후자 같았으니까.
그리고 뭔가 대화 같은 것이 이루어지는 듯한 모습에는 모든 신경을 그 영상에 집중했다.
당연히 류세치 회장도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죽이고 모든 것을 파괴해주마!’라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오사카 도톤보리 내부.
분명 서로 말귀는 알아먹는 상황.
하지만 실제로 대화가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나도 반신반의였다.
미국 홀드렛지에서 건넨 영상에서도 그리고 여기 오사카에서 발생한 영상에서도 저들이 보이는 모습은 한결같이 분노와 파괴 본능이 전부였으니까.
그러나 다짜고짜 죽이기에는 작은 단서라도 얻고 싶은 생각이 컸기에 말을 걸었고 어쨌든 대답이 새어나오자 좀 더 다가가 입을 열었다.
“그래? 아우라라... 뭔가 듣기는 좋네. 그나저나 차라도 한잔 마시며 대화 좀 나눴으면 좋겠는데.”
아우라가 무조건 좋은 뜻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나쁜 뜻은 절대 아니기에 그렇게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젠장! 모두 여기서 죽는다고 생각해라. 우리는 절대 우리의 것을 빼앗으러 온 적에게 타협을 하지 않는다!”
“네!”
“알겠습니다!”
그들은 대화를 할 의도가 없어보였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재빨리 몇 마디 말을 더 건넸다.
“이봐. 나는 지금까지 너희들 것을 빼앗은 적도 없고 빼앗을 생각은 단 1도 없어. 그러니 대화. 대화를 해보자고.”
“이미 침범을 시작해 놓고서 거짓말하지마라! 솟구쳐라. 불굴의 의지!”
“적에게 깃들어라. 전투력 약화!”
“이곳에 강림하여 적에게 지옥을 선사하라. 배척자의 대지!”
[‘올 버프, 올 디버프’를 보유중입니다.
-전투력 약화에 걸리지 않습니다.]
[‘올 버프, 올 디버프’를 보유중입니다.
-특수 스킬 배척자의 대지의 배척자로 지목되었지만 그 효과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
“.......”
무용지물.
정신력에 의해 그 효과의 범위가 결정되기도 전에 아예 실패해서인지 전투력 약화와 배척자의 대지라는 처음 보는 디버프를 사용한 두 명이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들의 리더이자 탱커로 보이는 덩치 큰 남자는 마치 그것을 예측이라도 한 듯이 당황하기 보다는 얼른 큰 목소리로 외쳤다.
“눈앞의 적을 그분들 급으로 상정해라! 즉, 살 생각을 버려라. 그래야 0.01%라도 가능성이 있다!”
“아... 알겠습니다!”
“네.”
아무래도 대화는 나중으로 미뤄야할 것 같았다.
더욱이 첫 타깃을 누구로 삼아야 할지 알 것 같았고.
바로 리더인 덩치 큰 남자.
아무래도 그가 이들과 격리되거나 혹은 죽어야 나머지 자들과 최소한의 대화가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곧장 그 남자를 향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징벌 아이스.”
콰아앙!
“크억!”
낮은 레벨의 스킬로 간을 보는 것?
혹은 7강화 얼음황제 수호검을 사용하는 것?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다.
손쉬운 방법이 있는데 괜히 돌아서 갈 생각은 없고 분명 필살기는 가장 먼저 쓰는 것이 정답이니까.
그렇다고 징벌 아이스가 내 필살기라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 징벌 아이스가 박혀든 상황.
털썩.
내 징벌 아이스에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긴 쓰러졌다.
그런데 그 리더인 탱커가 아닌 그 뒤에 서있는 한손검을 쥐고 있던 남자가 쓰러졌다.
물론 내가 실수로 탱커가 아닌 한손검을 쥐고 있는 남자에게 징벌 아이스를 사용 했거나 혹은 그 한손검을 든 자가 탱커 대신에 자신이 징벌 아이스를 맞았다면 가능한 일.
하지만 내 징벌 아이스는 정확히 탱커에게 꽂혔다.
외마디 비명도 그의 것이었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비명 외에는 별다른 피해가 보이지 않는 상황.
“흠. 뭐... 대미지 공유나 링크 같은 건가?”
그전에 종종 버프 스킬의 한 종류인 스킬 쿨타임 링크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내가 사용한 스킬의 쿨타임의 일정 부분을 상대방이 대신 짊어지는 버프류 스킬.
왠지 그 스킬 쿨타임을 대미지나 피해량으로 바꾸면 지금 상황과 딱 맞아떨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으로 보아 내 예측이 맞은 것 같았다.
“젠장! 대미지 전이가...”
“하... 한방이라니!”
“어떻게 이런 강자가 있을 수 있는데!”
쓰러진 자가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모습에 그들은 놀라지도 슬퍼하지도 않고 대신 경악을 드러냈다.
물론 나도 사라지는 시체에 놀라지는 않았다.
이미 미국 홀드렛지에서 건네 준 영상 속에 남겨져 있는 모습이었으니까.
다만 걱정은 이제 남은 것이 3명뿐이고 왠지 다른 2명도 탱커와 대미지 전이로 연결되어있을 것 같다는 것뿐이었다.
만약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탱커라면 협조해줄 것 같지도 않았고.
그래서 우선 혼란스런 상황을 틈타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게 가장 궁금했으니까.
“Revival Legend. 그것에 대해서만 말을 해주면 살려주겠다.”
물론 내뱉은 말과 달리 살려줄 생각은 없었다.
저들이 항상 우리보고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했다느니 넘보지 못할 것을 넘본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느니 하지만 실제로 침략을 당한 것은 우리 아니, 더 정확히는 내가 살고 있는 지구였으니까.
< 규격 외 (1). > 끝
< 규격 외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