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위로.
결국 서지혜의 말은 간단했다.
바로 끝을 내고 싶다는 것.
하지만 김율정에게 종속된 관계로 스스로 끝을 보지 못하기에 자신을 종속시킨 대상인 김율정을 처리해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를 그냥 처리해 달라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자신은 김율정이 죽는 순간 그에게 종속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같이 죽을 운명이기에 그 대가로 자신의 모든 것을 준다고 했다.
더 이상 아까울 것도 없다면서.
그리그 그 와중에 조금이라도 내가 편하게 김율정을 공격하는 쪽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그에게 협박 혹은 인질로 잡힌 가족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지옥 속에 살아가는 자들이 무수히 많다는 언급을 했지만 솔직히 그것은 나에게 김율정을 공격할 근거가 되지는 못했다.
분명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자들이 김율정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거기에 분명 지옥인 것을 앎에도 그 지옥 속에서라도 살고자 하는 자들도 꽤 많았고.
그런데 그때 서지혜가 입을 열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종속된 상태이기에 그의 소환에 불응할 능력 자체가 없으니까요.”
사전에 이미 언급을 했던 부분이기에 그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종속이 너무 강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속된 상대방을 완전 노예로 아니, 노예 그 이상으로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남는 의구심에 서지혜에게 한마디 말을 건넸다.
“그나저나 김율정 그자에게 스탯 옮기기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너의 모든 것을 넘겨줄 생각은 하지 않았나? 만약에 그렇게 되면 ‘스탯 옮기기’가 사라진 너의 가치는 0이 될 거고 그럼 김율정 그자는 더 이상 너를 거들떠보지 않을 것 같은데.”
하루에 무려 10개의 스탯포인트를 얻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서지혜.
나 같아도 종속이라는 능력이 있다면 썼을 것이다.
그게 없다면 애지중지하면서 온갖 수를 다 써서라도 내 수중에 붙잡아 놓을 것이고.
그러나 만약 그 능력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더 이상 애지중지할 필요가 없어진다.
홀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고.
즉, 그렇게 되면 굳이 나에게까지 와서 이런 부탁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때 그런 내 질문에 서지혜는 당황하기는커녕 입가에 작은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만약 그럴 가능성이 1%라도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김율정 그는... 기껏 종속시킨 저의 쓰임새가 사라졌다며 오히려 분노를 할 겁니다. 자신이 직접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허락도 없이 거위가 스스로 배를 갈랐다면서 더더욱요.”
입가에 짓고 있는 미소와는 전혀 매치되지 않는 말.
물론 그 와중에도 서지혜의 말은 계속 됐다.
“거기에 아마 계속 고통을 가할 겁니다. 그 고통에 못 견뎌 자살이라도 했다 치면 죽은 저를 살리기 위해 천명을 계속 죽일 거고요. 그리고 그 모습을 저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또 죽어보라고. 만 명, 십만 명을 죽이고 또 죽여서 저를 다시 살려내겠다는 협박과 함께요.”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냐고 말이 새어나올 찰나 그 말을 내뱉는 서지혜의 얼굴을 보자 그 말이 목구멍 속으로 쑥 들어갔다.
“흠.”
우선 그 말까지 듣자 한편으로는 서지혜가 이해가 가기도 했다.
종속으로 인해 김율정이라는 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방법이 아예 없었으니까.
죽음이라는 최후의 막다른 골목에서조차도.
그리고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말인즉슨 만약 서지혜가 저런 능력을 갖고 김율정에게 종속되지 않고 프리한 상태로 있었다?
온갖 재물을 가지고 서지혜를 영입할 자들이 널리고 널렸다.
그 속에는 당연히 명진도 있을 테고.
그래서 아쉬움에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김율정을 협박해 더 이상 너에게 터치를 하지 말라고 한다면?”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종속을 푸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한번 맺은 종속 관계는 해제가 불가능합니다.
-종속된 자는 물론이고 자신에게 종속 시킨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속된 서지혜는 물론이고 서지혜를 자신에게 종속시킨 김율정도 한번 설정한 종속 관계를 해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런 내 말에 서지혜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홍주영님 정도면 김율정을 굴복시키는 것이 가능할겁니다. 하지만 저는 혹시나 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살 자신이 없습니다. 더욱이 김율정은 지금 당장은 고개를 조아리겠지만 결국 자신을 굴복시킨 홍주영님에게 복수를 위해 온갖 수를 다 준비할 자입니다. 그래서 이건 저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홍주영님을
위해서 말을 하자면... 죽이려면 확실히 죽이고 그렇지 않다면 아예 아무런 접전을 만들지 않는 것이 나을 자가 바로 김율정입니다. 그는 은혜는 쉽게 잊어도 복수는 절대 잊지 않는 자니까요.”
우선 그 말 뒤로 약간의 침묵의 시간을 가졌고 서지혜를 향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좋아. 그렇게 해주지. 단!”
당연하지만 미리 받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지혜가 반색을 하면서 말을 내뱉음으로써 굳이 그 말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저는 지금 당장이라도 드릴 생각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꼭 서지혜의 스탯포인트가 욕심이 나서는 아니었다.
솔직히 없어도 됐다.
그게 없더라도 내 강함은 지금도 충분하다 못해 철철 흘러넘쳤고 앞으로도 쭉 그럴 테니까.
다만 서지혜를 이곳 명진 쉘터로 데려와 놓고 가만히 내버려 둔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명진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정보망을 활용해 김율정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과거라면 북한의 지도자를 조사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겠지만 지금의 명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세계에서 알아주는 수준이기에 자체적인 조사는 물론이고 정보를 구할 곳이 꽤 됐다.
그 후 5일간의 조사를 하고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바로 김율정 본인은 물론이고 그 세력이 강해지는 것이 썩 유쾌하지 않다는 것.
그만큼 김율정은 무자비한 폭군에 가까웠다.
더욱이 서지혜가 했던 말 이상으로 일반인은 물론이고 상당수의 ‘Revival Legend’ 유저의 고혈을 짜 자신과 자신의 최측근만 성장시키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거기에 지금까지 서지혜를 활용해 매일매일 10개의 스탯포인트를 수급했을 것이고.
물론 그래봤자 그의 성장이 나에게 두려움을 주지 못할 거라는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그가 남들보다 빠르게 성장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성향상 남의 밑에 들어갈 자도 아닐뿐더러 적이 되면 적이 됐지 아군이 될 가능성 자체도 없었고.
그러나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미리 싹을 치는 것은 분명 스미스 일행이 나를 향해 했던 것과 엇비슷한 행동.
그게 마음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5일간의 시간이 걸린 것이고.
하지만 결국 결정을 내렸다.
공격을 하자고.
왜냐하면 몰랐으면 몰랐을까 실정을 알게 된 상황에 찝찝함을 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자가 계속 강해지도록 수수방관할 정도로 내 마음은 넓지 않았다.
그날 저녁.
명진 쉘터 내 3번 서재실.
아빠와 형, 누나 거기에 석인수 실장 등을 비롯해 몇몇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모두를 향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미 서지혜를 명진 쉘터로 들인 순간 이야기를 했기에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얼추 상황은 알고 있었으니까.
“서지혜의 요청을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그럼?”
내 말에 곧장 반응하는 아빠의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김율정 그자를 처리할 생각입니다.”
“김율정 그자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김율정의 뒤에는 북한이 존재했다.
당연히 김율정은 그 힘을 사용하려 할 테고.
“괜찮겠어?”
그때 나를 향한 누나의 괜찮겠냐는 말.
짧았지만 그 속에 함축되어 있는 여러 가지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진짜 괜찮겠냐부터 분명 이번 움직임은 그간 방어를 하면서 보인 행동과 달리 100% 공격을 위한 움직임이었으니까.
더욱이 상대는 평범하지 않았고.
하지만 이미 수많은 심사숙고 끝에 결정을 내렸기에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응. 괜찮아. 영웅이 되어 세상을 밝게 만들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겸사겸사 나쁜 놈을 처리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뒤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진행했다.
그리고 대화 말미에.
“아니요. 저 혼자 가겠습니다. 명진이 움직이면 김율정 VS 홍주영이 아닌 북한 VS 명진의 싸움이 될 테니까요.”
현재 명진에 적대적인 움직임을 보였던 강기정 대통령이 더 이상 수작을 부리지 않고 조용히 있는 것은 이미 봤기 때문이었다.
바로 내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를.
즉, 이번에도 가급적 조용히 처리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목표는 북한의 붕괴가 아니라 김율정 하나였고.
여하튼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서재실에서 진행된 회의를 종료했다.
물론 이 행동이 나중에 후회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은 있었다.
특히나 시 주석으로부터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들었고 어쩌면 그 와중에 강제로라도 김율정과 한배를 탈 가능성도 분명 있었고.
하지만.
‘그런 가정에 기대기에는... 언짢은 구석이 많은 자니까!’
흔들리는 마음을 확실히 다잡았다.
다음날.
서지혜와 마주했다.
그리고 내 손을 붙잡은 서지혜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내 모든 스탯포인트를 상대방에게 넘긴다.”
그 후 나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상대방의 모든 스탯포인트를 넘겨받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동의한다.”
그 순간 메시지가 울렸다.
[상대방으로부터 14239개의 스탯포인트를 건네받았습니다.
-힘 445, 민첩 631, 체력 2577, 정신력 3315, 지력 7271이 영구적으로 증가합니다.]
무려 14239개에 달하는 스탯포인트.
한순간에 얻었다기에는 말도 안 되는 양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마디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김율정이 알면 땅을 치고 후회하겠군.”
“그렇습니까? 그 말을 들으니까 기쁘네요.”
이제는 일반인보다 더 못한 신세가 된 서지혜.
하지만 그녀가 내 말에 오히려 미소를 띠는 모습에 김율정이 무척이나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지혜 정도의 능력을 가졌다면 잘 대해줘도 모자랄 판에 철천지 원수지간으로 만들었으니까.
물론 종속을 믿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영원히 자신의 수중에 가둘 자신도 있었을 테고.
여하튼 그 와중에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가진 동반 성장으로 체력과 정신력에 제한이 있었으니까.
‘상태창 확인.’
[레벨 : 1247
죽인 횟수 : 11492, 죽은 횟수 : 0
칭호 : 나 혼자 만렙 클베 유저 외 10개.
생명력 : 5,877,000(now) / 5,877,000(max)
마나 : 4,108,000(now) / 4,108,000(max)
힘 : 8474 민첩 : 10431 체력 44570
정신력 : 31649 지력 : 59847
잔여 스탯포인트 : 0
잔여 스킬포인트 : 0
특성 : 아이스 맨, 동반 성장, 강화의 신.]
“.......”
아이템과 스킬의 영향을 받지 않는 체력과 정신력.
그 외 호칭이나 보상 등으로 주어지는 모든 스탯포인트는 적용이 됐었다.
그리고 지금도 적용이 됐다.
특히나 6만에 달하는 지력도 지력이지만 항상 1/2의 증가를 아쉬움을 느꼈던 정신력도 3만을 넘어섰고.
“그럼 이제 제 부탁을 들어 주시는 건가요?”
“그래야지.”
그간 해왔던 많은 고민들.
하지만 직접 증가한 양을 보니 어쩌면 그간 해왔던 고민들이 헛된 고민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라면 설사 상대가 김율정이 아니라 시 주석이라고 공격을 해야 할 정도였으니까.
물론 받았으니 나 몰라라 할 수도 있는 상황.
더욱이 서지혜는 모든 것을 잃었고.
하지만 죽음을 갈망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서지혜이기에 왠지 더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그렇게 모든 것을 끝내고 서지혜와 함께 위(UP)로 목표로 움직였다.
< 위로. > 끝
<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