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서지혜.
명진 쉘터 외곽에 난민에 가까운 모습으로도 수많은 자들이 자리를 잡은 이유는 딱 하나였다.
바로 그곳이 그나마 안전하다는 것.
그만큼 살고자 하는 욕구는 모든 인간이 가진 욕구 중에 무조건 1순위라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세 손가락 안에는 들어가는 그런 욕구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살려달라는 것도 그렇다고 명진 쉘터 안으로 거둬달라는 것도 아닌 최소한 스스로 죽을 수 있는 자유를 원한다던 그자 아니, 더 정확히는 그녀의 말에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3일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최소한의 자유?”
명진 쉘터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 무릎을 꿇으며 내게 말을 건넨 그녀에게 되물었다.
지금껏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고자 하는 자들은 많이 봤어도 스스로 죽고자 하는 자는 보질 못했으니까.
그러자 그녀가 무릎 꿇은 자세 그대로 입을 열었다.
“네! 세상은 무섭고 두렵게 변했습니다. 가족이 죽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으며 희망도 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몬스터를 법의 심판대에 세울 수도 없으며 그렇게 해줄 자들도 없고요. 즉, 아무리 더 한 지옥이 있다 하더라도 당장 이 지옥을 벗어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죽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
딱히 그녀의 말에 어쨌든 살고는 봐야한다. 그래야 어둠이 가고 빛이 오는 것을 볼 수 있다는 말이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실제로 죽어보지를 않아서 정말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나은지를 모르겠고 결정적으로 빛이 오는지를 모르겠으니까.
더욱이 내 본심을 아는 이라면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겠지만 솔직히 나는 지금 세상이 좋았다.
본래의 아이디인 lumen의 뜻 그대로 아시란테에 이어 홍주영이라는 이름을 이제는 거의 모르는 자가 없게 됐고 아직까지 세상의 중심이 나라고는 확답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중심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기에 다른 말을 내뱉었다.
“그럼... 죽으면 되지 않나?”
분명 살고 싶어도 살지 못하는 세상인 것은 맞지만 죽고 싶은데 죽지 못하는 세상은 결코 아니었다.
즉, 마음만 먹으면 죽는 것은 과거보다 무척이나 쉬울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말릴 사람도 그렇다고 과거와 같은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나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가 입을 열었다.
“죽을 수가 없습니다.”
“왜지?”
저절로 나온 의문.
그리고 그 ‘왜지?’라는 말을 내뱉으면서 눈앞의 이 여자가 꽤나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는 그녀가 원한대로 내가 관심을 갖고 질문을 던졌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궁금증이 더 컸기에 그것에 대해 내색하지 않고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자 그런 나의 질문에 그녀가 대답대신 앞을 향해 무언가 손짓을 했고 그러자 메시지 창 같은 화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 종속된 상태입니다.]
“종속이라...”
종속이라는 뜻을 모르지는 않았다.
더욱이 완벽하게 똑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한창 아시란테로 이름을 날리던 와중 나에게 ‘루시아’라는 길드에 가입을 하라는 제안을 했던 자가 있기도 했고.
그리고 나에게 그런 제안을 했던 자가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았기에 어지간하면 가입을 하려고 했었다.
상대방의 정체를 알아야 나중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쓸 테니까.
하지만 결국 가입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가입 제의와 동시에 울린 메시지가 있었는데 바로 한번 가입을 하면 내 의사로 탈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즉, 가입을 하는 순간 나 스스로 내 목에 목줄을 거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
그래서 그때의 그런 경험이 있다 보니 대충 종속이 뭔지는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 남아있는 것이 있기에 다시 질문을 던졌다.
“좋아. 대충 종속은 알겠는데 어떤 거지? 널 자신에게 종속시킨 자가 죽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건가? 그래서 죽지 못하는 거고.”
“아닙니다.”
“그게 아니면 설마 진짜로 죽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
죽지 못한다는 말은 안 죽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하고 그것은 결국 불멸이라는 단어로 표현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것은 종속이 된 자나 종속을 한 자나 전부 사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닙니다.”
“허. 스무고개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럼 뭐지?”
“저는 이미 한 번 죽었습니다.”
“한 번... 죽었다고?”
“네.”
한 번 죽었던 자.
그 순간 언데드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상대방은 전혀 언데드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몬스터로도 보이지도 않았고.
그런데 그때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고 곧장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부활 같은 건가?”
“...거창하게 부활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따지고 보면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신 1000명의 제물이 필요했지만요.”
1000명의 제물.
물론 많았다.
더욱이 제물이라고 무조건 죽음과 연결 지을 필요는 없겠지만 여자의 표정으로 보아 1000명의 목숨 값일 것이 분명했고.
하지만 그 순간 솔직히 1000명의 목숨 값보다 어쨌든 1명을 죽음에서 부활시키는 것이 더 대단하고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을 티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눈앞의 여자만 바라볼 뿐.
그리고 그런 나의 시선에 그 여자가 계속 입을 열었다.
“아쉽게도 제물은 ‘Revival Legend’를 하고 있는 고레벨 유저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일반인들로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제 주인은 무척이나 손쉽게 1000명을 죽여 저를 다시 자신의 곁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말했습니다. 두 번 다시 죽을 생각을 하면 1000명이 아니라
만 명, 십만 명을 죽이겠다고요. 바로 저 때문에요.”
“.......”
우선 그 말에 잠시 별다른 말을 내뱉지 않았다.
그러다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그 주인이라는 자가 누구지?”
“김율정입니다.”
현재.
명진 쉘터.
“그녀를 불러와주세요.”
“서지혜를 말씀이십니까?”
“네.”
“그럼 마음의 결정은 하신 겁니까?”
석인수 실장의 질문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대충요.”
그리고 그런 내 반응에 석인수 실장은 아무런 말없이 밖으로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스스로 죽을 최소한의 자유를 원한다고 말했던 그녀 서지혜를 데려왔다.
“.......”
우선 아무 말 없이 나를 빤히 주시하는 서지혜.
그런 그녀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를 이곳에 데려와 놓고 정작 5일을 방치했으니까.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녀를 만나기 전에 이미 명진 쉘터에서 미래, 대성, 구산과의 저녁 만찬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만찬이 열리게 된 계기에 내가 있었기에 절대로 빠질 수가 없었고.
물론 솔직히 어떤 행동을 취할지 결정을 하지 못한 것이 크긴 컸지만.
그러나 지금은 대충 결정을 내렸기에 빤히 나를 쳐다보는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건 정말 궁금해서 그런데... 죽고 나서 저승은 어때? 이런 말이 있잖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아니, 실제로 저승이 있나?”
“.......”
솔직히 이게 가장 궁금했다.
실제로 죽어봤다니까 더더욱.
그런데 서지혜는 내가 분위기를 잡고 내뱉은 첫말이 설마 그런 말 일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무표정이 깨지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렸다.
정말로 궁금했으니까.
그리고 서지혜도 내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제 목을 파고드는 차가운 송곳니와 그것가 반대로 뜨거운 날숨이 전부였습니다. 그 후에 눈에 보이는 것은 어째서 피하지도 반항하지도 않았는지 책망하던 김율정의 얼굴이었고요.”
“조금 아쉽군. 혹시나 기대를 했는데 말이야.”
정말 아쉬웠다.
물론 그 와중에 그녀의 말을 다 믿는 것?
원래라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혹여나 함정일 수 있으니까.
그만큼 지금까지 강하다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꽤나 많은 자들의 타깃이 되었었고.
그래서 처음부터 1200레벨을 달성하기까지 정체를 드러내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었다.
물론 정체를 숨긴 나를 넘어 명진까지 위협해오는 스미스 일행으로 인해 조금 빨리 정체를 드러내긴 했지만.
여하튼 우선 당장은 그녀를 믿어도 된다는 판단을 내린 근거는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고.
말인즉슨.
3일전.
“너를... 어떻게 믿지?”
김율정이라는 꽤나 유명 인사를 주인으로 언급한 서지혜에게 되물었다.
그러자.
“한정 스킬 공개.”
[한정 스킬 : 스탯 옮기기.
-한쪽의 스탯을 다른 한쪽으로 옮길 수 있다.
-스탯 옮기기를 하기 위해서는 양측이 모두 동의를 해야 한다.
-스탯을 양도한 쪽은 영구히 그 스탯을 잃으며 스탯을 양도받은 쪽은 영구히 그 스탯이 증가한다.
: 하루 최대 10포인트까지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
“.......”
조금 당황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향해 서지혜가 입을 열었다.
“10개의 스탯포인트를 영구히 잃을 자를 데려오면 즉시 옮겨드리겠습니다.”
물론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양.
아니, 분명 많았다.
10개라면 무려 1레벨을 올려야 획득할 수 있는 양이니까.
더욱이 레벨은 오르면 오를수록 그 1레벨의 무게감은 어마어마하게 증가했고.
그런데 그때.
“제가 해보겠습니다.”
대뜸 말을 내뱉은 석인수 실장.
우선 그런 석인수 실장을 말렸다.
석인수 실장은 명진 내에서도 꽤나 중추적인 위치에 있는 자이기에.
하지만.
“10개 정도면 충분히 감안할 수 있는 양입니다.”
물론 뒤에 석인수 실장 말고도 명진 소속의 200명에 달하는 현실 구현률을 올린 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말을 꺼내자마자 자발적으로 나설 자들이 분명 있겠지만 나중에 안 좋은 말이 나올 가능성이 있긴 있었다.
그래서 최상위 간부인 자신이 시도하겠다는 석인수 실장의 그 말에 어쩔 수 없이 서지혜 앞에 나란히 섰다.
그러자 대뜸 내 손과 석인수 실장의 손을 붙잡은 서지혜.
그 후 석인수 실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10개의 스탯포인트를 상대방에게 넘기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동의한다.”
석인수 실장의 대답 이후 서지혜가 이번에는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10개의 스탯포인트를 상대방으로부터 넘겨받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동의한다.”
딱히 속임수나 말장난은 없었기에 동의한다는 말을 내뱉었고 그 순간 메시지가 울렸다.
[상대방으로 10개의 스탯포인트를 건네받았습니다.
-영구적으로 민첩 수치가 10 증가합니다.]
“.......”
물론 대놓고 눈앞에 공개한 한정 스킬.
즉,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잠시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 석인수 실장이 입을 열었다.
“10개의 민첩 스탯포인트가 영구히 잃었다는 메시지가 울렸습니다.”
석인수 실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서지혜를 향해 한마디 말을 내뱉었다.
“우선 명진 쉘터로 가지.”
하루에 10개?
1년이면 3650개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게 계속 누적이 되면 나중에는 어마어마한 양이 될 테고.
특히나 서지혜가 말한 주인인 김율정.
어째서 1000명을 죽여 서지혜를 부활 시켰는지 알 것 같았다.
솔직히 나라도 그러 했을 테니까.
특히나 김율정의 위치를 생각하면 10개의 스탯포인트를 헌납할 자는 주위에 널리고 널렸을 테고.
현재.
“저는 모든 것을 말했습니다. 또한 저의 주인인 김율정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비밀도 말했고요.”
“물론 알지.”
확실히 그 비밀은 엄청났다.
어째서 김율정에게도 비밀로 했는지 알 것 같았고.
“홍주영님이 스스로 정체를 감추지 않고 드러낸 순간 그리고 그 위용을 유감없이 펼친 순간 저는 제 끝을 내줄 자는 홍주영님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지혜가 말한 끝.
처음에도 서지혜는 종속을 풀어달라고 하지 않았다.
죽음을 원했지.
말인즉슨 김율정과 서지혜 사이의 종속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바로 주인인 김율정이 죽으면 그에 종속된 서지혜도 죽는 것으로.
물론 그렇기에 1000명의 제물이 필요하긴 했지만 종속된 자를 부활시키는 것도 가능했던 거고.
더욱이 서지혜가 말한 비밀.
그것은 전부 공개하지 않은 한정 스킬 ‘스탯 옮기기’에 숨겨져 있었다.
[한정 스킬 : 스탯 옮기기.
-현재 자신의 스탯을 전부 상대방에게 옮길 수 있다.
하지만 사용 즉시 한정 스킬 ‘스탯 옮기기’는 삭제된다.]
김율정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부분.
서지혜는 그걸 나에게 공개했다.
자신에게 죽음을 주는 대가로 나에게 준다면서.
“분명 죽고자 하는 것은 제 욕심입니다. 하지만 김율정 밑에는 가족을 빌미로, 거짓된 희망을 빌미로 하루하루를 지옥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아는지 모르지만 난 내가 먼저 나서서 남을 공격한 적이 없다. 즉, 내가 먼저 남을 공격한다는 것은 꽤나 다양한 말들이 터져 나올 것이다. 특히나 그 대상이 현 북한의 지도자 김율정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홍주영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 서지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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