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또 다른 단서.
21세기판 중국의 황제.
바로 내 앞의 시 주석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만약 세상이 이렇게 변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세상이 이렇게 변해도 ‘Revival Legend’가 없었더라면 아무리 내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재벌가의 직계라 하더라도 그를 독대는커녕 마주하는 일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처음 언급한 대로 그는 21세기판 중국의 황제였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가정이고 지금 이 상황은 현실이기에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그를 마주한 채 입을 열었다.
“축하드립니다. 1등을 못했을 뿐이지 16강에 무려 9명이나 올려놓지 않으셨습니까? 그 와중에 시 주석님은 무려 2등이시고요.”
아무리 발악을 하더라도 결국 1등은 내 몫이라는 선전포고에 가까운 도발.
당연히 시 주석도 그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마디 말을 더 내뱉었다.
“그나저나 16강에 무려 9명이라... 훌륭한 인재들을 그만큼이나 품에 안고 계시다니 정말로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명백히 시 주석을 떠보기 위해 내뱉은 말.
물론 꼭 통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시 주석이 저 자리에 오르기까지 결코 평탄한 길만 걸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더더욱.
다만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더 손해라는 생각에 도발 섞인 말들로 그의 신경을 긁었다.
그러자.
“후후후. 티가 많이 났습니까? 의외로 어렵더라고요. 만능도 아니고. 더군다나 아무리 조작을 해도 통하지 않는 존재도 있었고요.”
아무래도 대뜸 인정하는 모습을 보니 시 주석은 애초에 비밀로 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았다.
하긴 그걸 우리만 발견했다고 확신하는 것은 오만일 것이다.
16명 중에 무려 9명이 중국 쪽 인사였고 더군다나 그 9명 마저 손색이 있지만 그래도 표면상 중국 정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양화 길드나 화신 길드가 아닌 전부 시 주석 휘하의 인물이라는 것은 단순히 그러려니 하고 넘길 일은 절대 아니었으니까.
순간 김이 팍 샐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티내지 않고 시 주석과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다 시 주석이 얼굴을 굳히며 전과 달리 낮은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아시란테님은 이 끝을 어떻게 보십니까?”
“.......”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내뱉은 시 주석.
잠시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설령 안다 해도 말을 해줄 필요가 없었고.
가령 얼마 전에 미국 홀드렛지를 통해서 알게 된 NPC에 관한 것들에 대해서.
그런데 그런 내 반응을 익히 예상했다는 듯이 시 주석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미국 뉴욕을 갔다 오셨더군요. 그럼 마치 대단한 거라도 되는 양 우쭐대며 말하는 그들에게 NPC에 대해서도 들으셨겠군요.”
“.......”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하기 위해 애썼다.
물론 표정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판단이 안 섰지만.
하지만 시 주석은 여전히 그런 나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이제는 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시란테 아니, 홍주영님 정도면 가상현실에 대한 모든 원천 기술을 보유했던 브텐이 사라지며 남긴 말은 알겁니다. 명진이 동네 구멍가게는 아닐 테니까요.”
알 수밖에 없었다.
아빠에게 처음 듣고 나도 꽤나 충격적이었으니까.
바로.
[4차는 현실로 구현이 된다.]
그리고 실제 현실로 구현이 됐다.
그 후 계속된 시 주석의 말.
“그럼 당연히 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대략 모든 자들은 이렇게 생각을 할 겁니다. [아! 이제 ‘Revival Legend’의 세상과 하나가 되는 거구나!] 라고요.”
“.......”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
하지만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 몬스터도 현실에 아니, 정확히는 지구에 모습을 드러냈고 현실 구현률이라는 것으로 ‘Revival Legend’의 능력과 스킬 거기에 코인을 사용해 아이템까지 구현을 했으니까.
그러다 이제는 NPC까지 모습을 드러냈고.
“후후후.”
순간 웃음을 토해내는 시 주석.
그 모습에 살짝 짜증 아니, 조바심이 났다.
나는 모르고 시 주석은 아니까.
그리고 시 주석은 마치 처음에 내가 했던 도발에 복수라도 하듯 그 우위를 유감없이 드러냈고.
하지만 그렇기에 안달하지 않고 묵묵히 있었다.
오히려 여기서 내가 조금이라도 궁금해 하는 액션을 취한다면 시 주석을 기쁘게 만드는 행동이 될 테니까.
그러다 전과 달리 시 주석이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홍주영님은 상당히 침착하네요.”
“그런가요?”
“네. 나이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요.”
그전과 달리 이번에는 적절하게 응대를 했다.
이게 사실이던 거짓이던 어쨌든 더 많은 이야기를 이끌어 내야 하니까.
하지만 쉽사리 본론에 들어갈 생각이 없는지 시 주석이 다른 말을 꺼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홍상만 회장이 참으로 부럽군요. 이렇게 훌륭한 아들이 있다니... 든든하시겠습니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얼른 본론을 꺼내라고 재촉하고 싶었다.
거기에 멱살이라도 움켜쥐고 싶었다.
하지만 살짝 입가에 미소를 짓는 것으로 행동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그런 내 행동이 정답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꽝은 아니었는지 시 주석이 손뼉을 치며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아무래도 대화의 물꼬는 제가 텄으니 마무리도 지어야겠죠?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온 신경을 시 주석의 입가에 집중했다.
“미국에서 자신들만 안다고 착각하며 꽁꽁 싸매고 있는 NPC에 대한 정보는... 잘못됐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NPC가 아니니까요.”
“?”
당연하지만 순진하게 홀드렛지에서 몬스터뿐만 아니라 NPC라는 존재도 지구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말인즉슨 영상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NPC라는 존재의 목소리도 녹음이 되어 있었고.
더욱이 직전의 일.
영상은 물론이고 그 NPC라 여겼던 존재가 미군 속에서 죽어가면서 외치던 그 말들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바로.
[[email protected]##$%%^&* %%#!*^!]
[감히 우리의 영역을 침범하다니! 모조리 죽여주마!]
[%#%!%!!^$^& @$*&^!#%!]
[크윽! 나는 여기에서 죽지만 우리는 절대로 네놈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분명 외관상 지구와 ‘Revival Legend’의 세상이 합쳐져 가는 상황.
그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그의 말은 그의 정체를 NPC라고 유추할 수밖에 없이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 시 주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의 유쾌한 만남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보너스를 더 드리겠습니다. 하나가 아닙니다.”
“?”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말.
하지만 시 주석은 나를 이해시킬 생각이 없었는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
“그럼 1등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오늘 저의 선의에 의한 정보 제공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 결투에서 기권한다.”
자신의 말만 하고 기권을 해버리는 시 주석.
하지만 그 상황에 눈앞에 뜬 메시지를 바라보는 것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상대방이 결투를 포기했습니다.
-축하합니다. 11번 구역 내의 최강자를 뽑는 이벤트에서 1등을 하였습니다.]
그 순간 눈앞의 시 주석이 사라지고 나 혼자만 남았다.
물론 그 와중에도 메시지는 계속 울렸다.
[lumen, 아시란테님의 11번 구역 1등 달성을 축하합니다.
-그에 대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 30억 골덴링을 획득합니다.
: 2만개의 코인을 획득하니다.
: 400개의 잔여 스탯포인트를 획득합니다.
: 2개의 스킬포인트를 획득합니다.]
2만 개의 코인.
거기에 무려 2개의 스킬포인트를 준다는 것은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보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이 가득했기에 그 보상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나? 하나가 아니라고? 뭐가?”
우선 당장에 NPC가 NPC가 아니라는 것은 어쨌든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가 아니라는 것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11번 구역의 최강자임을 증명하였습니다.
-차후 진행되는 총 40개 구역의 최강자들중 진정한 최강자를 뽑는 이벤트에 출전 하시겠습니까?]
“출전한다.”
우선 고민을 거기서 멈추고 출전하는 것을 선택했다.
안 할 이유가 없으니까.
[왕중왕전 출전을 선택하였습니다.
-차후 진행시 메시지가 울립니다.
-10초 뒤 원래의 위치로 이동합니다.]
“.......”
꽤 길었던 이벤트의 끝.
물론 쉬웠다.
솔직히 역경이나 고난이라고 할만한 상황 자체도 없었고.
아니, 그나마 역경과 고난을 뽑으라면 128강에서 누나를 만났다는 것 정도?
하지만 마지막에 만난 시 주석으로 인해 고민이 한가득 생겨버렸다.
‘그래. 하나가 뭔지는 지금 당장 모르니까 나중으로 미룬다 쳐. 그런데 NPC가 NPC가 아니면 뭔데?’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 어딘가로 몸이 끌려가는 느낌을 받았고 곧 직전에 사냥을 하던 1500레벨 사냥터 타이탄의 대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평상시처럼 곧장 사냥을 이어가지는 않았다.
분명 시 주석의 말이 100% 진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 혼자 알고 넘길 일은 아니니까.
그날 저녁.
명진 쉘터 소회의실.
이제 대놓고 말할 수 있다.
나 스스로 멍청하지 않다고.
그래서 시 주석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새어나올 때부터 곧장 기억의 구슬을 작동시켰다.
그리고 그것을 이벤트가 종료되자마자 타이탄의 대지 밖으로 빠져나와 곧장 석인수 실장에게 건넸다.
그 후 몇 시간이 지나 이렇게 아빠를 비롯해 몇몇 인물들과 이렇게 소회의실에 모였고.
우선 그렇게 모여 다시 한 번 기억의 구슬을 작동시켰고 영상 말미에 석인수 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흠. 흠. 우선 주영군이 가져온 기억의 구슬을 전략부에서 여러 번 플레이를 시키면 몇 번이고 확인을 했습니다. 그리고 시 주석의 말이 거짓 정보는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시 주석은 대화 말미에 선의에 의한 정보 제공을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전략부는 이것이 철저하게 의도된 것인지는 확실
치 않지만 만약 거짓이라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아무리 시 주석이라도 해도 아시란테라는 이름의 뒷감당을 하기에는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요.”
“.......”
“.......”
“.......”
석인수 실장의 그 말에 아무도 반박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빠가 입을 열었다.
“그럼 그 말의 신빙성은 충분하다는 뜻인가?”
“네. 물론 100% 믿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성질의 말은 아니라고 판단이 됩니다.”
“그렇다면 NPC가 NPC가 아니고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
끝을 흐리는 아빠의 낮은 목소리.
하지만 나를 포함해 아무도 그 말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로 몰랐으니까.
여하튼 그날의 회의는 그렇게 수많은 의문을 남기고 종료가 됐다.
명진 쉘터에서 한창 회의가 이어지는 사이.
중국 베이징.
“굳이 아시란테에게 그 귀한 정보를 밝힐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맞습니다.”
“특히나 아시란테의 뒤에는 그를 뒷받침해줄 명진이라는 든든한 조력자가 존재합니다.”
시 주석이 아시란테에게 살짝이나마 정보를 공개했다는 말에 수하들은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씩 했다.
하지만 시 주석은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것도 생뚱맞은 주제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보석이 뭐지?”
“대체적으로 다이아몬드를 가장 가치 있는 보석으로 치지 않겠습니까?”
“그래?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럼 만약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다이아몬드를 내가 갖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다른 자들은 다이아몬드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한 채 말이야.”
“그야...”
“.......”
“.......”
시 주석의 그 말에 이번에는 수하들 대부분이 어물쩍거렸다.
그것을 모를 정도로 멍청했다면 이 자리에 있을 수도 없었으니까.
“그래. 아무런 쓸모도 없는 짐밖에 안 되겠지. 그 가치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까. 정보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시장에 단서가 깔려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정보를 얻기 위해 움직이는 자들이 나온다. 그 와중에 정보는 가치는 올라가는 것이고.”
그 말을 끝으로 시 주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였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정보의 시발점으로 아시란테면 충분하지 않겠나? 더군다나 아시란테가 그 정보에 헤매다 길을 잃거나 느려지면 그것 자체로도 충분하고.”
“네.”
“알겠습니다.”
수하들은 시 주석의 그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다음날.
코툼성 중앙광장.
[현재 습득 가능한 스킬이 존재합니다.]
[현재 업그레이드 가능한 아이스 계열 스킬이 존재합니다.]
어제의 일은 꽤나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털어냈다.
분명 당장 궁리해도 모를 일이 확실했고 그 말인즉슨 거기에 신경을 쓰는 것이 손해라는 뜻이었으니까.
더군다나 그런 궁리를 전문적으로 할 자들이 있었고.
그래서 더 이상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발걸음을 이곳으로 정했다.
새롭게 획득한 2개의 스킬포인트를 사용해 습득할 스킬이 꼭 있었으니까.
< 또 다른 단서. > 끝
< 최소한의 자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