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기생충.
1500레벨 사냥터 타이탄의 대지.
퍽. 퍽. 쾅. 쾅.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로 몬스터를 모아 곧장 아이스 필드를 사용하고 블리자드를 포함한 아이스 계열의 스킬들을 퍼부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멈추지 않고 계속 하자 메시지가 울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로써 목표로 하던 1200레벨에 한 발짝 가까워진 셈.
하지만.
“블링크. 블링크. 블링크.”
멈추지 않고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를 사용하며 또다시 몬스터를 모았다.
반복에 반복.
그 반복을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
그리고 그때 귓속말이 울렸다.
[초절정미녀 : 홍주영. 언제까지 하려고? 너 벌써 로그아웃 안 한지 15시간이 훌쩍 넘어갔다고!]
[lumen : .......]
누나의 귓속말에 딱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누나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 형 거기에 석인수 실장에게도 귓속말이 연달아 울렸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대답을 했다.
[lumen : 조금만 더. 이제는 로그인 하는데 하루는 기본이잖아. 어쩌면 영원히 로그인이 안 될 수도 있고.]
[초절정미녀 : .......]
[아들둘딸하나 : .......]
[홍상만 : .......]
[홍기영 : .......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이 무덤덤하게 대답을 했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하지만 거기까지 내가 신경 쓸 여력이 없기에 다시 몬스터 무리로 파고들었다.
상황이 어찌됐든 1200레벨이 멀지 않았으니까.
4시간 뒤.
거의 20시간에 가까운 풀타임 접속 상태.
아무리 가상현실 접속기가 일정부분 생체리듬을 조정해 준다지만 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로그아웃을 권하는 메시지가 연달아 울렸고.
하지만.
“내가 내 입으로 내뱉어서 그런지 몰라도 왠지 이번에 로그아웃을 하면... 더 이상 접속을 못할 것 같단 말이지.”
그때는 접속하는 데만 하루를 넘김으로써 그냥 별 의미 없이 내던진 말이었지만 지금은 왠지 그렇게 될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그렇기에 로그아웃 하는 것을 머뭇거리는 것이고.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로그아웃을 미루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로그...”
그런데 그때 번뜩이며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로그아웃을 멈추고 인벤토리를 열어 한 가지 아이템을 꺼내들었다.
바로.
[별자리 사냥꾼의 뱃지. (신화)
-과거 우주의 별을 사냥하며 모든 별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이름 없는 사냥꾼의 뱃지이다.
-뱃지를 가슴팍에 착용시 모든 스탯포인트와 모든 스킬이 별자리 사냥꾼에 맞춰져 임의로 변경이 된다.
-뱃지 사용은 총 3회 사용이 가능하며 한번 사용시 최대 7일간 유지된다.
-유지기간이 끝나면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며 그 즉시 영구적으로 민첩 1000이 증가한다.
: 현재 남은 횟수 2/3]
“흠...”
스탯과 스킬 거기에 보유한 아이템마저 변화 시키는 별자리 사냥꾼의 뱃지.
아니, 그걸 떠나 아예 아이디마저 lumen, 아시란테에서 별자리 사냥꾼으로 바뀌기에 완전 새로운 인물로 탈바꿈시켜주는 아이템이라 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러했고.
“될... 려나?”
물론 이걸 사용한다고 뭐가 바뀔 거라는 그런 확신은 없었다.
그저 막연한 생각.
그 생각만이 머릿속을 감돌았다.
하지만 썩은 동아줄이라도 눈앞에 있다면 잡아야할 상황.
조심스럽게 별자리 사냥꾼의 뱃지를 가슴팍에 가져다 댔다.
[별자리 뱃지 사냥꾼의 착용 제한을 충족하였습니다.
-별자리 사냥꾼의 뱃지를 착용하시겠습니까?]
“착용한다.”
[lumen. 아시란테님이 별자리 사냥꾼으로 변경됩니다.
-현재 보유한 스탯포인트들이 별자리 사냥꾼에 맞춰 임의로 변경이 됩니다. (별자리 사냥꾼의 유지 기간이 종료되면 원래의 스탯포인트로 돌아옵니다.)
단, 호칭으로 획득한 스탯포인트들은 변경되지 않습니다.
-현재 보유한 모든 스킬이 삭제되며 보유한 스킬 포인트만큼 별자리 사냥꾼이 가졌던 스킬들로 대체됩니다. (별자리 사냥꾼의 유지 기간이 종료되면 원래의 스킬들로 돌아옵니다.)
-현재 착용중인 모든 아이템의 착용이 해제되며 별자리 사냥꾼의 무기, 방어구, 악세사리로 교체됩니다.]
그 뒤로 연달아 울리는 메시지는 무시한 채 곧장 입을 열었다.
“로그아웃.”
그리고 그렇게 로그아웃을 하고서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다 피로를 풀고 잠자리에 들었다.
확인삼아 곧장 다시 접속하는 것?
하지 않았다.
미리 알 필요는 없으니까.
솔직히 두렵기도 했고.
다음날 아침.
원래라면 1200레벨이 멀지 않았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밥을 먹은 후에 곧장 ‘Revival Legend’에 접속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들과 둘러않은 식탁에서 느긋하게 아침밥을 먹었다.
그 뒤로 소파로 이동해 따뜻한 커피까지 마셨고.
물론 그런 내 모습에 가족들이 걱정 섞인 아니, 걱정을 넘어 불안한 시선으로 나를 봤지만 모른 척 했다.
그리고 그런 휴식 아닌 휴식을 점심 이후까지 지속했다.
늦은 오후.
“후우.”
떨리는 손으로 가상현실 접속기를 착용하고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접속.”
홍주영이 접속하는 사이.
‘Revival Legend’ 내의 코툼성 외곽의 허름한 여관.
부들부들.
한 사내가 몸을 떨어댔다.
분명 어제 기생충에게 100% 잠식을 달성했고 그로인해 아시란테가 로그아웃만 하면 그 몸을 자신이 차지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기생충이 잠식을 시작합니다.]
사내는 처음 그 메시지를 확인하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100% 잠식을 끝낸 상태였으니까.
그 말인즉슨 다시 잠식을 시작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고.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다.
[잠식 가능한 대상이 아닙니다.
-잠식을 통해 자양분을 획득하는 기생충이 잠식을 하지 못함으로써 스스로를 자양분으로 삼기 시작합니다.]
“?”
기생충이 스스로를 잠식해 자양분으로 삼는다는 메시지.
그 뜻은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스스로를 좀먹는다는 뜻.
즉, 자체적으로 죽어가는 중이고.
“아... 안 돼! 안된다고! 이게...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사내는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꿈에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고 기생충이 죽는다는 것은 지금껏 자신이 했던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된다는 뜻이니까.
벌떡.
그렇게 사내는 자리에서 났다.
어떻게 해서든 기생충이 스스로 죽기 전에 아시란테의 몸을 터치해 기생충을 빼와야 했으니까.
로돈성 비밀 안가.
시간 확인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걸 확인시켜 주는 존재도 있었다.
“10초...”
지극히 정상적인 접속 속도.
물론 웃지는 않았다.
별자리 사냥꾼으로의 변신은 정확히 일주일만 가능했고 그 뒤로는 다시 lumen, 아시란테로 돌아가니까.
뭐 뱃지의 나머지 한 번을 더 인도의 시다트 길드를 위해 쓰겠다는 약속을 저버리면 2주일로 늘어나겠지만.
여하튼 나의 정상적인 접속 속도에 환호성을 내지르는 엄마와 누나에게 별 말은 하지 않았다.
굳이 미리 언급을 해서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으니까.
그래서 그저 살짝 입가에 미소를 띠며 움직였다.
1500레벨 사냥터 타이탄의 대지로.
그리고 그렇게 타이탄의 대지에서 사냥을 시작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5시간 후.
솔직히 사냥을 하면서도 시험 삼아 로그아웃을 하고 싶었다.
분명 한번 됐으니 또 될 거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안했으니까.
그런데 그때 귓속말이 울렸다.
[석인수 : 막내 도련님!]
[별자리사냥꾼 : 네.]
[석인수 : 아가씨로부터 이야기는 전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완벽한 해결이 아닌 것을 알기에 조용히 있었고요.]
이미 인도에서 일주일간 변신 상태로 있었다는 것을 아는 석인수 실장이기에 그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뒤이은 말에는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석인수 : 현재 명진 길드 본거지에 한 명의 남자가 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막내 도련님에게 기생충을 심었고 다시 그걸 가져갈 수 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별자리사냥꾼 : ...기생충이요?]
[석인수 : 네.]
[별자리사냥꾼 : 곧장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두근두근 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곧장 움직였다.
명진 길드 본거지.
별자리사냥꾼으로 변해도 특출나게와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는 사용이 가능하기에 금세 명진 길드 본거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우선 곧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멈춰 서서 옷을 단정하게 정리했다.
마치 전혀 다급하지 않은 것처럼.
그 후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자 명진 길드 소속 유저들에게 삥 둘려 마치 죄인처럼 쭈그려 앉아있는 한 명의 남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내가 다시 가져가겠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두 번 다시 아시란테님을 노리지 않겠습니다!”
지금의 내 모습은 lumen도 아시란테도 아닌 별자리 사냥꾼.
하지만 그 남자는 명진 길드 본거지 안으로 들어오는 나를 정확히 지목해서 말을 내뱉었고 순간 그가 진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후로도 그 남자의 말은 계속 됐다.
“제가 아시란테님의 몸을 한번만 터치하면 다시 기생충을 가져오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아시란테님은 물론이고 명진 길드에 적대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제발 기생충을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거의 울듯이 오열하는 남자.
그 모습에 스쳐가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내 손에 죽은 스미스.
그도 그랬다.
먼저 나에게 적대해놓고 나중에는 목숨을 구걸했으니까.
지금 저자는 기생충을 구걸중이고.
물론 여전히 자세한 내막은 모르는 상황.
하지만 이정도 상황만으로 대충 짐작은 가능했다.
분명 저자가 나에게 심은 기생충이 내가 별자리사냥꾼으로 변하자 잘못 됐다는 것.
그렇기에 저렇게 돌려달라고 울부짖는 것이고.
물론 내심 지금 당장 저자에게 다가가 내 몸 안의 기생충이라는 것을 가져가라고 말하고 싶었다.
오열하는 모습이 거짓 같지도 않았고.
하지만.
“내가 왜 나를 적대한 너의 부탁을 들어줘야 하지?”
속마음과 달리 겉으로는 태연하다 못해 오만함을 드러내 마치 기생충 따위는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듯이 말을 내뱉었다.
“그건...”
순간 내 말에 버벅대는 남자.
하지만 뒷말을 기다리지 않고 처음처럼 오만함을 유지하고 말을 내뱉었다.
“명진 쉘터가 어디 있는지 알겠지? 그곳으로 와라. 현실에서 실제로 모습을 드러내면 네 부탁을 들어주겠다. 당연히 아무런 위해도 가할 생각은 없고.”
내뱉은 말과 달리 위해를 가할 생각이 있었다.
그간 내가 겪은 짜증과 울분, 분노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이런 괴상한 것은 사라지는 것이 나았다.
그래서 지금 당장 저 자에게 내 몸의 기생충을 빼가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참고 또 참으며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하지만...”
아마 저자도 생각이라는 것이 있으면 현실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쯤은 알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머뭇거리는 거고.
그러나 꽁꽁 정체를 감추고 있다가 이렇게 나를 직접 찾아왔다는 것은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기생충이 현재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
어쩌면 소멸을 걱정할 정도로.
그렇기에 나를 찾아와 기생충을 돌려달라고 울부짖은 것이고.
즉, 현재 칼자루는 내가 쥔 상태였다.
물론 1주일 아니, 최대 2주일만 들 수 있는 불안 불안한 칼자루지만.
하지만 그런 티를 절대 내지 않았다.
[.......]
[.......]
우선 그렇게 한동안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아... 알겠습니다!”
결국 나의 승리.
그 말을 끝으로 몸을 휙 돌렸다.
여기서 더 말을 꺼내놓으면 나도 모르게 지금 불안 불안한 패를 들고 레이스를 했다는 것을 들킬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그날 저녁.
그나마 대충 어떤 상황인지 이제는 알았기에 살짝 마음이 놓이기는 했다.
물론 그가 진짜로 모습을 드러내야 하지만.
그런데.
[기생충을 잡아먹었습니다.
-아래의 보상을 획득합니다.
: 그간 기생충이 축적한 3471개의 잔여 스탯포인트를 획득합니다.
: 그간 기생충이 축적한 수많은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현재 뿌리를 보유중입니다.
-기생충의 잔재물을 뿌리가 흡수함으로써 뿌리가 한층 더 강력해집니다.]
[현재 ‘별자리사냥꾼’으로 변신중입니다.
-별자리사냥꾼이 해제돼야 보상 수령이 가능합니다.]
꽤 많이 울린 메시지들.
그 메시지를 확인하고 ‘Revival Legend’ 내의 명진 길드 본거지에서 회의를 진행 중인 아빠를 비롯한 가족들과 석인수 실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 남자는... 오지 않을 것 같네요.”
순간 내 말에 그게 무슨 뜻이냐는 시선에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마저 입을 열었다.
“기생충이 방금... 죽었거든요.”
물론 그 자에게 기생충이 또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다.
없다고.
만약 또 다른 기생충이 있다면 모습을 드러낸 채 그렇게 오열하면서 기생충을 돌려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역시나 스스로 자신의 무덤이 될지도 모르는 곳에 온다는 말도.
< 기생충. > 끝
< 1200레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