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잠식(蠶食).
알 수 없는 접속 딜레이 현상.
물론 하찮은 일이라면 하찮은 일이긴 했다.
5분 30초도 충분히 허용 가능한 범위의 시간이기도 했고.
그런데 문제는 이 ‘Revival Legend’가 그저 그런 평범한 게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문제는 더 있었다.
바로.
“이상함을 느끼고 누나와 함께 첫 번째로 시간을 재고 3시간 후에 다시 쟀을 때는 7분 21초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3시간 뒤에 쟀을 때는 9시 57초였고요.”
만약 5분 30초로 고정이 됐더라면 이렇게까지 불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접속하는데 걸리는 딜레이는 눈에 띠게 늘어만 갔다.
그리고 그런 내 말에 석인수 실장이 입을 열었다.
“주영군과 수영양의 최초 보고 이후 곧장 무작위로 명진 내의 2만 명을 차출하여 확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2만 명 모두 ‘Revival Legend’에 접속하는데 딜레이는 없었습니다.”
“.......”
“.......”
“.......”
2만 명의 표본.
그 표본 내에서 나와 동일한 현상이 없다면 결국 이 딜레이 현상을 나 혼자만 겪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소회의실 내부에 있는 아빠나 형, 누나 거기에 석인수 실장 등을 비롯한 모두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내 존재는 명진과 때려야 땔 수 없는 그런 관계기에 더욱더.
그리고 그때 입을 여는 아빠.
“언제 그걸 느꼈느냐?”
“그게...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대략 어제? 그냥 뭔가 찝찝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에요. 그래서 그 찝찝함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누나와 동시에 접속을 시도했고요.”
“그럼 그전에 뭔가 이상한 일은 없었고?”
우선 아빠의 말에 기억을 과거로 돌렸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전혀 없었다.
딱히 누군가를 만난 것도 아니고 그저 코툼성에서 ‘징벌 아이스’ 스킬을 습득하고 곧장 타이탄의 대지로 이동해 사냥을 한 것이 전부니까.
“없었어요.”
“흠.”
그런 내 말에 아빠가 침음을 내뱉었고 소회의실 내부에서도 무거운 침묵이 자리했다.
그러다 아빠가 이번에는 내가 아닌 석인수 실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2만 명이 아니라 명진 내에 있는 모두를 조사하게나. 그리고 넌지시 미래 길드나 몽골의 투갈 길드 등에도 주영이와 동일한 현상을 보인자가 없는지 한번 물어보고. 물론 주영이는 언급하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처음 겪는 현상.
그렇기에 그 뒤로도 한참을 더 머리를 맞댔지만 그저 나와 같은 현상을 겪는 자도 또 있는지 알아보는 것 빼고는 어떠한 해결책도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
“35분 17초.”
함께 접속을 시도한 누나의 말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접속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 늘어만 갔으니까.
물론 로그인과 달리 로그아웃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즉시 발동으로 똑같았다.
오로지 접속하는데 걸리는 시간.
그것만 점차 늘어갔다.
“후우...”
그래서 누나의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이유라도 알면 좋을 텐데 미래나 투갈 길드에서도 그런 류의 현상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해왔으니까.
그저 그런 일을 겪는 자가 누구냐고 물어왔을 뿐.
물론 당연히 그 질문에 나라는 언급을 하지는 않고 길드원 한명이 겪는 일이라고 둘러댔다.
그리고 그때 내 한숨에 누나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차라리 전 세계에 공표를 해버릴까? 어쩌면 아는 자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하지만.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왜냐하면 이번 일은 밝혀져서 좋을 일은 절대 아니었다.
특히나 그 대상이 나라면 더더욱.
우선 그렇게 누나와 짤막한 대화를 나누고 나보다 더 죽을상을 하고 있는 누나를 지나쳐 1500레벨 사냥터인 타이탄의 대지로 움직였다.
물론 현 상황을 파악하는 것?
당연히 어제 하루 종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것도 나 혼자만이 아니라 가족은 물론이고 석인수 실장을 비롯해 전략부 소속 모두와.
하지만 답은커녕 티끌만한 단서하나 찾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고민만 거듭하다 보니 나중에는 왜 이런 엿 같은 일이 나에게 벌어졌는지 억울하다 못해 화가 솟구쳤다.
운영자가 있다면 그에게 찾아가 멱살이라도 잡고 따지고 싶었고.
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일.
그래서 결정을 내렸다.
이유를 모르면 그냥 평소 내가 하던 대로 하겠다고.
또한 딜레이가 과연 어디까지 증가하는지 한번 보겠다고.
1500레벨 사냥터 타이탄의 대지.
“아이스 필드!”
파사사삭.
“블리자드! 아이스 토네이도!”
퍽. 퍽. 퍼버버벅. 퍽.
[크억!]
[컥!]
“징벌 아이스! 쏟아지는 우박! 죽어! 죽으라고!”
굳이 징벌 아이스나 쏟아지는 우박을 사용치 않아도 상관없지만 사용했다.
거기에 다른 스킬들까지 전부.
하지만 그럼에도 내 몸을 가득 채운 짜증은 단 1%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움직였다.
최소한 정말 최소한 1%의 짜증이라도 털어내기 위해.
그리고 그런 악에 바친 행동은 다음날 그 다음날까지도 계속 되었다.
3일 뒤.
“4시간 58분 31초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접속하는데 딜레이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거의 5시간.
그만큼 남들보다 5시간을 손해 본다는 뜻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내일이면 6시간 아니, 증가하는 속도를 보면 8시간이 될 수도 있고.
“.......”
“.......”
“.......”
그렇기에 회의실 내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자리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면 나중에는 접속하는데 하루를 넘어 그 다음에는 접속이 아예 안 되는 그런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우선 그런 무거운 분위기 속에 석인수 실장의 말은 계속 되었다.
“조사 시점을 1200레벨 정기 퀘스트 이후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주영군의 행적을 시간 단위에서 분 단위로 또 거기에서 초 단위로 나눠 면밀하게 검토를 했습니다.”
당연하지만 석인수 실장을 비롯해 전략부에 소속된 모두에게 몇 번이고 내 행적에 대해 말을 했다.
혹시나 내가 놓친 부분이 있지 않을까 2번, 3번, 4번, 5번을 넘어 계속.
그리고 지금까지는 전략부에서 딱히 어떤 결론을 내놓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분명 그 당사자인 내가 봐도 내 행동에 특별한 일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찾았다는 듯이 석인수 실장이 계속 입을 열었다.
“전략부는 그 중에 가장 가능성이 있는 부분은 코툼성이라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꽤나 많은 유저들이 존재했던 코툼성. 그로인해 스킬 습득을 위한 중앙 광장으로 이동하면서 주영군은 몇몇 유저들과 부딪치기까지 했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 모습은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그 상황을 빼고는 도저히 단
서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석인수 실장의 말이 끝나자 아빠가 곧장 입을 열었다.
“그럼... 그때 부딪친 자들 중에서 주영이기에 무언가를 했다는 건가?”
“네. 그 부분을 빼고는 의심될만한 부분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Revival Legend’의 버그나 오류는?”
“그 부분도 고려를 했지만 배제를 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물론 그걸 배제했다 하더라도 결국 직접적인 원인을 찾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지만요.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막내 도련님.”
“.......”
“.......”
“.......”
석인수 실장의 말에 나도 나를 제외한 모두도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이미 일주일 전의 일이기도 했고 그곳에 있던 무수히 많은 불특정 다수를 특정 하는 방법도 없었으니까.
설령 있다 해도 이런 수를 써온 자가 순순히 모습을 드러낼 일도 없고.
그래서 그런지 그날의 회의는 침묵 속에 종료됐다.
이틀 뒤.
“19시간 48분 37초.”
“와우.”
누나의 말에 실소에 가까운 감탄을 터트렸다.
가속도라는 것을 이번만큼 실감한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그 실소를 감추지 않은 채 농담하듯 말을 내뱉었다.
“내일? 아니, 조금 더 쓰면 내일 모레면 24시간을 넘기겠는데? 크크크. 접속하는데 24시간 걸리는 게임이라... 역시 이 ‘Revival Legend’는 어마어마 한 것 같아.”
“.......”
하지만 그런 내 농담이 재미가 없었는지 누나는 웃지를 않았다.
오히려 괴로운 표정을 지을 뿐.
우선 그 모습에 누나를 스쳐 지나갔다.
목적지는 1500레벨 사냥터 타이탄의 대지.
그곳 빼고 갈 곳은 없었다.
물론 도중에 다른 곳을 가긴 했었다.
바로 석인수 실장을 비롯한 전략부에서 이번 일의 시발점이 되는 어떤 접촉이 있을 것으로 점찍었던 코툼성.
바글바글.
와글와글.
그때처럼 코툼성은 여전히 수많은 유저들로 우글우글 거렸다.
그 모습에.
꽈악.
주먹을 꽉 쥐었다.
세이프티 존이기에 실질적인 피해를 입히지는 못하지만 난동을 부리고 싶기도 했고.
하지만.
터벅터벅.
그때 걸었던 그 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툭. 툭. 툭.
확실히 많은 자들이 있기에 그때처럼 지나가는 몇몇 유저와 몸을 부딪쳤고.
물론 이 행동으로 나에게 일어난 일이 다시 사라질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럴 가능성도 없고.
하지만 아무리 몬스터를 잡아도 사라지지 않는 짜증과 분노가 그때와 똑같은 행동을 함으로써 조금이나마 풀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걸었지만 짜증과 분노는 단 1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증폭될 뿐.
그래서 곧장 다시 타이탄의 대지로 움직였다.
그리고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노를 몬스터를 향해 그대로 표출했다.
홍주영이 타이탄의 대지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사이.
코툼성 외곽에 위치한 허름한 여관.
“흐흐흐.”
한 명의 남자가 눈앞의 메시지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
뒹굴뒹굴.
“크크크!”
그 남자는 차마 웃음을 참기 힘들었던지 침대 위로 몸을 내던지고 이리저리 뒹굴뒹굴 거리며 전보다 크나큰 웃음을 토해냈다.
그러다 웃음을 전부 토해냈는지 침대에 똑바로 누워 공중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아시란테 걱정 마라. 내가 네 몸뚱어리를 잘 써 줄 테니까. 물론 홍주영 네 가족 행세도 잘 해줄 테고. 명진 정도면 쓸데가 많으니까. 크크크.”
그 말과 함께 그 남자는 다시 시선을 한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하나의 메시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생충 잠식 진행중.
: 84.57%]
벌떡.
그 메시지를 확인한 남자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마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 귀한 몸뚱이를 나에게 바치고 대신 이 몸뚱이를 차지할 아시란테를 위한 선물을 준비해 둬야겠군.”
그 말을 내뱉은 남자는 여관 밖으로 움직였다.
다음날.
“24시간 11분 48초...”
기어코 접속하는데 하루라는 시간을 넘겨버렸다.
게임을 하는 시간보다 게임에 접속하는 시간이 더 큰 기형적인 상황.
하지만 상황이 이쯤 되자 오히려 무덤덤해졌다.
그래서 누나의 이제는 울먹이는 말투를 무시하고 그대로 밖으로 움직였다.
목적지?
나에게 갈 곳이라는 고는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1500레벨 사냥터인 타이탄의 대지.
그곳으로 가서 묵묵히 사냥을 했다.
전처럼 악에 바쳐 하는 사냥?
그런 사냥을 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효율적인 전투.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런 전투를 하고 또 했다.
한참을 계속.
코툼성 외곽의 허름한 여관.
“됐어!”
한 남자는 눈앞에 뜬 메시지를 바라보며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기생충 잠식 진행중.
: 100%]
[기생충 잠식이 완료되었습니다.]
“크크크. 아시란테 이제 네놈이 로그아웃만 하면 그 몸뚱이는 내 것이 될 것이다! 물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네놈에게는 이 몸뚱이를 대신 줄 테니까. 물론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지만.”
그 남자는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흥분에 차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안절부절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제 곧 아시란테가 로그아웃만 하면 그 몸을 차지할 테고 그렇게 되면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자가 되는 것이니까.
< 잠식(蠶食).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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