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던전 (3).
시련의 던전 내부.
아직 시간은 꽤 남았기에 딱히 어떤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와 달리 무척이나 바쁘게 움직이는 아니, 대화를 나누는 자들은 있었다.
“더 기다릴까?”
“그러자! 혹시나 더 들어올지 모르잖아! 그래도 아직 4일은 남아 있고.”
“그런데 마냥 기다린다고 좋은 건 아니야.”
“맞아. 만약에 1분을 남겨놓고 결국 수정탑을 깰 자를 정했는데 그가 변심으로 수정탑을 깨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우리 모두는 그냥 죽는 거라고!”
“그렇지. 혼자 죽을 바에 다 같이 죽자는 그런 선택을 안 할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어.”
“거기에 또 사람이 온다 해도 내가 걸릴 확률이 낮아지긴 하지만 그만큼 보상을 나눠가질 자들도 증가한다는 뜻 아니겠어?”
“그건...”
사람이 80명이듯 생각도 불안, 걱정, 욕망, 탐욕 등이 한데 뒤섞인 80개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다음날 그 다음날도 이어졌다.
물론 그 와중에 혹시나 저들이 놓친 것은 있지 않을까 하고 이곳저곳을 다 둘러봤지만 결국 개미 새끼 한 마리 드나들 구멍도 발견하지 못했다.
즉, 이곳을 나가는 방법은 수정탑을 깨는 단 하나의 방법.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았다.
이틀 뒤.
“이제... 정하자. 더 이상 이곳에 올 자를 기다리는 것도, 그렇다고 수정탑을 파괴할 자를 미루는 것도 좋은 선택 같지는 않다. 누구의 말대로 최후의 순간까지 미루다가 수정탑을 파괴하기로 한 자가 파괴하지 않으면 정말 엿 같은 일이 벌어지는 셈이니까.”
“.......”
“.......”
“.......”
이곳 80명의 대장이자 처음 나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던 베르디라는 자의 말에 말 많던 나머지 전부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렇다고 반대를 하는 자도 없었고.
그러다.
“이봐. 그쪽도 이리로 오지. 분명 자네도 수정탑을 깰 수 있는 자격이 있고 차후 다른 자에 의해 수정탑이 파괴되면 보상을 받을 자이기도 하니까.”
정확히 나를 향해 내뱉은 말.
저벅저벅.
그 말에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고 그들 무리로 움직였다.
그의 말대로 나도 여기에 들어온 이상 전혀 무관한 자가 아니게 됐으니까.
우선 그렇게 한데 뭉쳐진 81명.
그 후로도 계속 그의 말이 이어졌다.
“다시 한 번 확실히 짚고 넘어가겠다. 누가 걸리든 간에 걸린 자는 그 즉시 무조건 수정탑을 파괴한다. 괜히 시간을 더 달라는 등의 말을 내뱉지 마라. 생각이 많아지면 두려움도 많아지는 법이니까. 대신 여기에 가족이든 연인이든 누군가를 써라. 충분히 남아 있는 자들에게 보답은 하겠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기어들어가는 듯한 대답.
베르디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모두들 한명씩 똑바로 크게 대답한다!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네!”
“알겠습니다!”
결국 나까지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 후 준비된 80개의 동그라미가 그려진 쪽지와 엑스가 그려진 1장의 쪽지.
하지만.
“새로 쪽지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총 81명 중에 명백히 나는 외부인.
저들 입장에서는 내가 걸리는 것이 최고의 시나리오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은연중에 그런 티를 내기도 했고.
그렇기에 사전에 준비된 저 81개의 쪽지?
믿지 않았다.
믿을 수도 없었고.
그리고 그런 내말에 베르디를 포함해 인상을 찌푸리는 80명.
그러나 개의치 않고 말을 연신 내뱉었다.
“만약 새로운 쪽지로 다시 만들지 않는다면 나는 여기에 끼지 않겠습니다. 어차피 여기는 세이프티 존이니까요. 물론 남은 2일? 목숨이 걸린 일인데 2일이야 대수겠습니까?”
“...그러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내 말에 수긍하는 베르디.
하지만 더 있었다.
그래서 베르디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말을 내뱉었다.
“동그라미가 그려질 쪽지와 엑스가 그려질 쪽지를 저 일반인 내부에서 만들었으면 합니다.”
“우리를 못 믿는 다는 건가!”
항상 침착함을 유지하던 베르디가 이번에는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러나.
“네. 설마 제가 순진하게 그것을 믿길 바란 건가요?”
“.......”
베르디의 두 눈을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
나는 어리숙하지도 멍청하지도 않으니까.
“젠장.”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
“개새끼. 살아나면 꼭 찾아가서 죽이고 만다.”
“항상 조심해라. 네 얼굴을 기억했으니까!”
주변에서 순식간에 터져 나오는 욕설들.
당연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들은 최초로 내 정체를 드러낸 스미스 일행과의 전투를 목격하기 전에 이곳 시련의 동굴에 갇힌 자들이니까.
그 말인즉슨 내가 아시란테라는 것을 모른다는 뜻이고.
“다들 조용! 알았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물론 나의 과민 반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100% 확신하건데 이미 이들은 수정탑을 깰 제물로 나를 점찍었다.
그게 나머지 친분관계가 있는 80명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최고의 시나리오니까.
잠시 후.
일반인이 만든 80장의 동그라미와 1장의 엑스.
섞는 것도 현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들이 했다.
결국 운에 상황을 맡길 수 없는 상황.
그리고 그렇게 나를 포함한 81명 모두가 한 장씩 쪽지를 집어 들었다.
“난 동그라미야!”
“나도!”
“크크크. 동그라미!”
1장을 빼고 나머지 전부는 동그라미이기에 여기저기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내가 선택한 쪽지에도 동그라미가 그러져 있었고.
그 후 환호성 혹은 최대한 기쁨을 억제하는 자들 사이로 남들과 다른 행동을 보이는 자가 있었다.
바로.
부들부들.
몸을 떠는 자.
그만큼 그 자가 엑스가 표시된 쪽지를 뽑았다는 것은 손쉽게 확인이 가능했다.
“론치.”
“.......”
“론치!!”
“?”
대장 베르디가 연속으로 이름을 부르고서야 몸을 떨어대던 론치라는 자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당장 수정탑을 파괴해라! 너의 가족들에게는 충분히 보상을 하겠다. 그리고 이건 노보 길드의 제2 공격대의 대장이자 마울라마 길드장님의 외사촌인 나 베르디가 보장을 하겠다!”
생각이 많으면 두려움이 커진다는 말.
베르디는 확실히 그 뜻을 아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곧장 론치라는 자에게 수정탑 파괴를 명했고.
하지만.
“시... 싫어! 내가 왜! 그리고 이미 정했잖아. 저 이방인에게 뒤집어씌우겠다고! 씨팔. 그런데 왜 나야? 원래부터 그렇게 하기로 했으면 그렇게 해야지! 왜 난데!”
“론치!”
“싫어. 이 개새끼야! 네가 뭔데? 뭐? 우리의 대장? 씨팔. 그렇다고 네가 죽으라고 하면 죽어야 돼?”
“이미 그렇게 하기로 모두 다 동의 했다!”
“엿 까! 하고 싶으면 네가 해. 여기는 세이프티 존. 나는 죽어도 할 생각 없어. 그럴 바에 다 같이 죽고 말지!”
세이프티 존이기에 가능한 배짱.
물론 다른 자들도 론치를 향해 말을 내뱉었다.
“론치. 분명 약속을 했다.”
“맞아. 약속을 지켜라!”
“네 희생은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니다. 숭고한 희생이다.”
그러나 눈이 벌게진 론치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숭고한 희생? 엿 까는 소리 하지 말고. 하고 싶으면 네가 해. 이 개새끼야!”
결국 한순간에 엉망이 된 상황.
그런데 문제는 더 있었다.
바로 저런 행동을 하는 론치를 제외하고 나머지 80명이 다시 제비뽑기를 한다 해도 걸린자가 론치의 행동을 똑같이 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것.
그리고 이미 선례가 있기에 안 한다고 발버둥 치면 방법이 없고.
“씨팔! 약속을 했으면 지키라고!”
“론치. 이 개새끼!”
“론치 이 새끼 여기서 나가기만 해봐. 곧장 네놈 모가지를 꺾여주마!”
우선 그렇게 나를 대신에 론치를 향한 쌍욕을 내뱉는 것으로 상황은 종결이 됐다.
아무리 그를 억제하고 구속해도 세이프티 존인 이곳에서 수정탑을 향한 강제 공격을 시키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다음날.
분위기는 험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정말로 남은 시간은 채 하루도 되지 않았고 이대로라면 결국 모두가 죽는 최악의 상황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 와중에 나를 향해 부탁을 하는 자도 있었다.
바로 론치.
“너는 이방인이잖아. 어차피 대가를 받고 여기에 들어 왔을 거고. 그러니까 이렇게 부탁할게. 그리고 여기에 너의 가족은 물론이고 친인척 혹은 애인이 있다면 적어줘. 내가 여기에서 나가면 10억? 아니, 100억 골덴링이라도 건네줄게. 더불어 원한다면 평생 지켜 줄게. 이건 하늘에 대고 맹세를 할 수 있어!”
“.......”
내 앞에 무릎까지 꿇으면서 말하는 론치.
하지만 그런 행동에 드는 생각은 ‘뭐 이런 똘아이가 다 있어.’라는 것 딱 하나였다.
그래서 무시했다.
우선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혹여나 누가 희생을 하지 않을까 서로 눈치를 보면서.
그 모습에 80명 아니, 나를 포함해 81명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인즉슨 어쩌면 소수의 인원이었다면 손쉽게 결정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81명은 꽤나 많았다.
혹여 누군가 자발적으로 희생을 할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물론이고 ‘이렇게 숫자가 많은 설마 내가?’ 라는 생각이 절로 들만큼.
그러다 이 지경까지 왔고.
잠시 후.
쓰윽.
자리에서 일어나 쭉 주변을 둘러봤다.
고개를 푹 숙이고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는 론치와 남은 자들끼리는 서로 치열하게 눈치를 보는 상황.
그 모습에 모두가 들을 정도로 크게 입을 열었다.
“개인당 10억 골덴링. 그리고 살고 싶다는 생각에 몸부림치는 론치 저놈은 자신의 입으로 말했던 100억 골덴링. 어떻습니까?”
웅성웅성.
와글와글.
아무리 앞뒤 다 빼고 말했지만 그 뜻을 모를 자들은 없기에 금세 시끄러워졌다.
하지만 그 시끄러움은 잠시였다.
“나... 나는 받아들이겠어!”
“나도!”
“나도 물론이야!”
아마 그들도 잠깐 생각을 하긴 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약속을 해도 내가 죽으면 약속을 이행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까지 갔을 것이고.
물론 그 와중에 몇몇은 ‘어차피 죽을 마당에 골덴링을 받아서 어디에다 쓸려고 그러지?’ 라는 의문도 가지긴 했을 것이다.
여기는 현실이고 그 말인즉슨 골덴링은 나중에 받아야 한다는 소리니까.
하지만 지금 당장은 살고 봐야 한다는 생각인지 그들은 그 부분에 대한 어떠한 질문도 던지지 않았다.
콕 집어 100억 골덴링으로 지목된 론치마저.
그래서 다시 한 번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현실로 구현한 기억의 구슬로 지금 장면을 전부 찍고 있습니다. 차후 부정을 하셔도 소용없습니다. 그리고 그쪽 대장은 한마디를 더 해주셔야겠습니다. 만약 여기에 있는 자들이 차후 골덴링을 내놓지 않으면 노보 길드에서 내놓는다고요.”
“.......”
내 말에 잠시 말이 없는 베르디.
하지만 어떤 결정을 했는지 베르디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알았다. 노보 길드는 총 890억 골덴링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급을 하겠다. 그런데 너의 이름은 뭐지?”
“홍주영. 홍주영입니다. 꼭 이 이름을 기억하셔야 할 것입니다. 노보 길드의 마울라마 길드장님도 제 이름을 알 테니까요.”
아마, 아시란테라고 했으면 기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래의 내 이름을 밝혀서인지 베르디를 포함해 아무도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마울라마 길드장을 안다는 내 말도 단순히 용병으로 투입되는 와중에 알고 있겠거니 판단을 한 것 같았고.
여하튼 그렇게 계약 아닌 계약을 체결하고 시선을 중앙에 떡 하니 박혀있는 수정탑으로 돌렸다.
그리고.
저벅저벅.
서슴없이 그 수정탑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물론 자살?
당연히 할 생각은 없다.
더군다나 남들은 지금을 지옥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지옥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천국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세상에 내 존재감을 뽐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솔직히 지금이 좋았다.
그렇기에 자살 따위는 단 1도 고려하지 않았다.
만약 여기에 있는 모두를 죽이고 나 혼자만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정도로.
즉, 여기서 벗어날 방도가 나에게는 있었다.
바로.
[‘위기에 대비하는 발판 3번’ 가호를 보유중입니다.
-생명력이 줄어들수록 전투력이 증가한다.
생명력이 10% 하락할 때마다 전투력이 1%씩 증가한다.
-최대 보유 생명력이 10% 이하로 하락하면 그 즉시 1회에 한해 어떤 공격을 받아도 피해량이 무조건 0이 된다.
: 쿨타임 30일.]
그간 이 녀석의 효용 가치는 거의 없었다.
지력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3만을 훌쩍 넘는 체력에 방어구도 절대 낮은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최적의 아이템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 생각이 난 것이 아니라 이미 이틀 전에 파악을 해뒀다.
그러나 아무 말 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처음부터 그들은 외부인인 내가 제물이 됐으면 좋겠다는 시선을 숨기지 않았으니까.
굳이 그것 말고도 한몫 제대로 챙길 기회를 날리고 싶지 않았고.
여하튼 생각은 거기서 멈추고 아이스 스피어를 소환해 그대로 수호탑을 가격했다.
퍼엉!
그 한방에 산산 조각나는 수정탑.
그와 함께 메시지가 울렸다.
[수호탑을 파괴하였습니다.
-물리 방어력과 마법 방어력에 상관없이 현재 생명력의 100배에 달하는 대미지를 입습니다.]
쑤욱.
그 메시지와 함께 순식간에 생명력이 내려갔다.
그리고 이 정도까지 생명력이 내려간 적이 없기에 가호의 조재를 앎에도 나도 모르게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러다 정확히 10%.
그 구간에서 메시지 하나가 더 울렸다.
[‘위기에 대비하는 발판 3번’ 가호를 보유중입니다.
-이후 받는 대미지는 1회에 한해 0으로 변합니다.
-다음 가호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30일의 쿨타임이 필요합니다.]
정확히 생명력은 10%에서 더 이상 하락하지 않았다.
“흐흐흐.”
그리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 그래도 여기는 현실이고 그렇기에 한 가닥 걱정의 끈은 어쩔 수 없었으니까.
< 던전 (3). > 끝
< 생성 불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