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홍주영 (4).
명진 쉘터 3번 메인기지 앞.
“.......”
정철진 사령관은 멍하니 전방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상황은 사전에 받은 그 어떤 명령에도 부합되지 않았으니까.
말인즉슨.
[첫 번째, 아시란테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경우 스미스 일행을 도와 홍상만 회장을 구금하고 명진 쉘터를 장악한다.]
[두 번째, 아시란테가 모습을 드러낼 경우 마지막으로 회유를 시도하고 만약 아시란테가 회유에 넘어오지 않을 시 스미스 일행의 손에 죽게 내버려둔다. 그 후 첫 번째 계획대로 홍상만 회장을 구금하고 명진 쉘터를 장악한다. (혹여 회유에 넘어온 아시란테를 스미스 일행이 공격하여 죽인다 하더라도 개입하지
않을뿐더러 그에 대해 어떠한 문제 제기도 하지 않는다.)]
정철진 사령관은 사전에 위와 같은 명령을 받았었다.
그래서 미리 준비도 했었다.
첫 번째든 두 번째든 홍상만 회장이 순순히 따르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지금 상황은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아닌 상황.
정철진 사령관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상대를 잘못 건드려도 한참을 잘못 건드렸으니까.
잠시 후.
저벅저벅.
스미스 일행을 가차 없이 죽이고 명진 쉘터 안으로 움직이는 아시란테 아니, 홍주영.
물론 아직 꽤 거리는 있었다.
명진 쉘터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인지 꽤나 멀찍이서 스미스 일행을 맞이했고 거기에서 전투를 벌였던 홍주영이었으니까.
하지만 정철진 사령관은 왠지 그 발걸음이 누구에게 향하는지 알 것 같았다.
바로 자신.
“허...”
정철진 사령관은 그 모습에 헛기침을 내뱉었다.
물론 홍주영에 대한 의심?
분명 있긴 있었다.
다른 재벌가의 쉘터도 그렇겠지만 명진 쉘터도 명진 그룹에서 사활을 걸고 추진하던 곳이었고 그곳을 모두에게 능력을 인증 받은 장남인 홍기영과 장녀 홍수영이 있는 와중에도 홍주영을 총 책임자로 앉힌 것은 절대 자연스러운 모습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정철진 사령관은 거기에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오히려 홍상만 회장이 악수(惡手)를 두었다는 생각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누가 보더라도 그 당시 홍주영의 대외적인 인식은 하자 투성이였으니까.
여하튼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과거의 생각을 이어가던 정철진 사령관.
하지만 곧 그 생각을 멈춰야 했다.
예상대로 홍주영의 목적지는 자신이었고 이제 남은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 정철진 사령관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홍주영이 너무 거대하다고 느꼈다.
홍주영이 한발자국 한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스미스 일행을 너무나 손쉽게 제압했던 거대한 뿌리를 닮은 그것들이 마치 홍주영을 경호하듯 같이 움직여서인지 더더욱.
거기에 홍주영이 걸음을 내딛으면서 밟았던 그 부분에서는 꽃이 피어오르듯 뿌리를 닮은 그것들이 솟구쳤다 순식간에 다시 땅으로 스며듦으로써 마치 생명을 관장하는 죽음의 신이 다가오는 것 같기도 했고.
그렇게 정철진 사령관은 부들부들 떨면서 자신의 앞에 당도한 신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정철진 사령관 앞.
“.......”
부들부들.
거만.
정철진 사령관이 항상 내 앞에서 보였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거만했던 정철진 사령관이 사정없이 몸을 떨어댔다.
당당함이 가득했던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한가득이었고.
그래서인지 그 전에 나에게 모욕을 줬던 모습을 생각하면 실소가 새어나올 수밖에 없는 광경이긴 했다.
그러나 내 입에서 실소 같은 것은 새어나오지 않았다.
그 누구라 하더라도 이게 당연했으니까.
물론 나에게 줬던 모욕을 되갚는 것?
나 스스로 이해심이 넓은 사람이 아니기에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죽일 생각은 없었다.
스미스 일행은 분명 죽여야 했고 죽일 가치가 있는 자들이었지만 정철진 사령관을 비롯해 일반인으로 구성된 군부대는 죽일 가치가 없는 자들이니까.
더 죽여 봤자 오히려 이래저래 역효과만 발생할 것이 뻔하기도 했고.
그리고 솔직히 정철진 사령관이 나에게 줬던 모욕에 크나큰 분노 같은 것을 느끼지는 않았다.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나대는 하룻강아지의 행동에 일희일비하기에는 하룻강아지가 너무 하찮았으니까.
물론 굳이 그런 티를 내지 않고 입을 열었다.
“아쉽겠어. 스미스 일행과 했던 작당모의가 실패로 돌아갔으니.”
“.......”
정철진 사령관은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대답을 기대하고 말한 것이 아니기에 곧장 다시 입을 열었다.
“선택권을 줄게. 여기에서 전부 죽느냐. 아니면 떠나느냐.”
“...떠나겠습니다.”
살짝 대답이 늦긴 했지만 정철진 사령관의 대답은 후자였다.
그리고 그 대답이 나올 줄 알고 있었기에 다음 말을 이었다.
“좋아. 떠난다는데 굳이 붙잡지는 않을게. 대신 그간 명진 쉘터에서 먹고 자고 한 값은 치러야겠지?”
“?”
“아, 놀라지마. 그렇게 비싸게 받을 생각은 없으니까. 음... 팬티 한 장을 제외한 전부? 이정도면 충분히 싼 가격이 아니겠어?”
처음 정철진 사령관이 명진 쉘터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가져온 것도 상당했다.
탱크만 60대에 1500명 이상의 군인을 옮긴 수십 대의 군용 트럭이 그 후에도 쉴 새 없이 명진 쉘터와 외부를 왔다 갔다 했으니까.
더군다나 스미스 일행과 함께 거사를 치른다고 수많은 물자를 비밀리에 더 들였다는 것을 알고 있고.
즉, 그 모든 것을 합치면 어마어마한 양일 수밖에 없다.
물론 탱크의 운용?
이미 경비대의 임정대 대장을 통해서 확인을 했다.
경비대 소속으로 있는 자들 중에서 탱크의 운용 및 유지 보수가 가능한 자들이 꽤 있다는 것을.
거기에 어떠한 상황에도 대비하기 위해 명진 쉘터 내에 여러 인원을 선별하면서 탱크에 관한 전문가도 꽤나 있었고.
여하튼 이들을 죽이는 것보다 팬티 한 장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압수하는 것이 더 이득이기에 그렇게 말을 내뱉었다.
그 후 내 말에 별다른 대답이 없는 정철진 사령관.
하지만 독촉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의 선택은 하나니까.
그리고 내 예상대로 곧 정철진 사령관이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좋아. 1시간이면 충분하겠지? 정확히 팬티 한 장이야. 뜨거운 아니, 차가운 맛을 보고 싶지 않다면 그 이상의 것은 절대 들고 갈 생각은 하지마라고.”
그 말을 끝으로 정철진 사령관을 스쳐 지나갔다.
이후부터는 내가 할 일은 없으니까.
물론 이 배후에 있는 김기정 대통령?
아직까지는 그가 대통령이었다.
분명 대한민국을 보호 중이고.
그래서 그를 향한 직접적인 적대행위나 공격은 그가 아닌 대한민국과의 전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몰래 움직여 암살 같은 것을 할 생각도 없었다.
분명 그가 있는 곳은 모래성이고 굳이 내가 무너트리지 않아도 점차 무너져 내리고 있었으니까.
한편으로는 오래오래 살아남아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다음날.
“.......”
“.......”
“.......”
분명 난 평소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명진 쉘터에서 날 마주하는 자들은 평소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물론 그 모습에 그들이 얄팍하다거나 혹은 고깝다는 생각 따위는 단 1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보이도록 행동을 했으니까.
결국 그들은 나의 의도대로 나를 봤던 것이고.
즉, 내 뜻대로 된 것이기에 아쉬움이나 섭섭함은 물론이고 그들의 행동에 어떠한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
더욱이 이게 더 자연스러웠다.
누가 봐도 천덕꾸러기였던 자가 하루아침에 톱스타가 됐고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했으니까.
물론 변하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바로 가족들과 원래 내 정체를 알고 있던 몇몇 인물들이.
그렇다고 자연스럽게 나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아빠나 형, 누나는 나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는 나를 부여잡고 한동안 펑펑 울기만 했고.
당연히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 알기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내 행동에 한치의 후회도 없고 그때는 그래야 했으니까.
다음에도 그런 상황이라면 가차 없이 손을 쓸 테고.
그러나 그 와중에 가장 큰 변화를 보인자는 따로 있었다.
바로 이곳 명진 쉘터의 경비대의 총 책임자를 맡고 있는 임정대 대장.
특수부대 중령으로 이유를 모르지만 군에서 불명예제대를 당하고서 몇 년간 세계 곳곳에서 용병 생활을 했던 자로 꽤 오래전에 아빠가 채용을 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믿을 수 있는 자이기에 명진 쉘터의 경비대를 총괄하는 자로 임명을 한 것이고.
그런데 그 임정대 대장이 수시로 나에게 반짝이는 눈빛을 보내왔다.
그래서 그에게 왜 그러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망설임이 없으셨으니까요.”
“그것뿐인가요?”
스미스 일행 5명을 죽인 것?
기쁘지도 않았고 슬프지도 않았다.
상황이 그러했고 그래야 했을 뿐.
그런데.
“과감히 적을 죽여서가 아니라 죽일 자와 살릴자를 아는 그 냉철한 사리판단이 무척이나 놀라웠습니다. 그 5명은 필히 죽일 자였습니다. 만약 한명이라도 살렸다면 오히려 결단력이 없고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를 받았을 것입니다. 혹은 겁쟁이거나요. 반대로 군인들은 죽여서는 안 됐습니다. 그들은 죽여 봤자 전
혀 실익이 없고 오히려 막내 도련님에게 살인광이라는 흠집만 생겼을 테니까요.”
“.......”
“저는 단 한 번도 전장을 경험해 보지 않으신 막내 도련님이 순식간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임정대 대장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연신 말을 내뱉었다.
그러다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을 이었다.
“전장에서는 말입니다. 적보다 무서운 것이 아군입니다. 특히나 아군을 지휘하고 통솔하는 대장은 수백, 수천의 적보다 더 무섭습니다. 그의 선택 하나에 모두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하니까요. 그런데 저는 막내 도련님의 모습에 ‘아! 내 선택은 옳았구나! 이곳에 오기를 잘했구나!’ 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잘못된 선
택으로 개죽음은 당하지 않을 테니까요.”
임정대 대장은 그 말을 마치고 할 말을 다 했다는 듯이 곧장 몸을 돌리고 움직였다.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말을 내뱉었다.
“아, 그리고 저희 경비대에 탱크 60대는 물론이고 수많은 총기와 탄약을 선물해 주신분이 막내 도련님 아니겠습니까? 경비대 소속 대원들도 무척이나 도련님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옛날 기분이 난다고요.”
그 말을 끝으로 임정대 대장은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나도 그를 붙잡지 않았고.
다음날.
1500레벨 사냥터인 타이탄의 대지.
어제까지는 뒤처리를 한다고 이래저래 바쁘게 움직였다.
미운 오리새끼에서 백조로 거듭났기에 그리고 명진 쉘터는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얼굴을 비출 곳도 많았고.
하지만 어제로 모든 것을 끝내고 오늘은 아침을 먹고 곧장 ‘Revival Legend’에 접속했다.
아직 1200레벨을 달성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진행중인 이벤트가 있으니까.
바로.
[모든 구역에 새로운 사냥터가 전부 공개가 됐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사냥터를 기념하여 이벤트가 진행됩니다.
: 1300레벨 사냥터의 몬스터 1마리 처치시 1점 획득.
: 1400레벨 사냥터의 몬스터 1마리 처치시 2점 획득.
: 1500레벨 사냥터의 몬스터 1마리 처치시 3점 획득.
파티 사냥으로 다수가 여러 공격을 집어넣었다 하더라도 마지막 타격을 집어넣은 사람만 점수를 획득합니다.
-이벤트 기간은 총 10일이며 이벤트 기간 동안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한 순서대로 1위에서 10위까지 보상이 주어집니다.]
물론 3일을 공친 상황.
하지만 상관없었다.
아직 6일이나 남았고 그 정도면 충분하니까.
그리고 그렇게 사냥을 시작했다.
홍주영이 열심히 사냥을 하는 사이.
세계는 여전히 흥분상태였다.
물론 그게 ‘Revival Legend’에서 벌어진 전투였다면 이렇게까지 화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현실에서 벌어진 전투였고 모두다 ‘Revival Legend’ 하면서 바라고 바라던 모습이었기에 흥분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 아시란테 아니, 홍주영이 보인 능력.
그 능력은 화제의 중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가령.
미국 뉴욕.
홀드렛지 총본부.
“그래. 블링크겠지. 블링크일거야. 블링크가 맞아. 그런데 문제는 왜 쿨타임이 없냐 이거지.”
“.......”
“.......”
“.......”
최고 간부 내에서 터져 나온 말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신들도 모르니까.
그만큼 그들이 알기로 쿨타임이 없는 스킬은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정신력 수치나 스킬 쿨타임 감소와 관련된 패시브와 버프 등으로 스킬 쿨타임을 감소시킬 수는 있지만 이곳에 있는 모두가 봤을 때 홍주영이 사용한 블링크에는 아예 쿨타임이 존재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상대적으로 쿨타임이 긴 블링크.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동에 관련된 스킬에 쿨타임이 적으면 아니, 없다면 어떤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하는지 이번에 증명이 됐다.
‘어떻게 잡지?’
‘잡을 수나 있나?’
등으로.
더군다나 홀드렛지가 봤을 때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래. 그렇다 쳐. 분명 그것은 우리가 아는 블링크인 것은 확실하니까. 그런데 저것은 뭐지?”
홍주영을 호위하듯 넘실넘실 대는 것들.
“.......”
“.......”
“.......”
역시나 이번에도 침묵이 감돌았다.
그들도 처음 보는 것이었으니까.
물론 무적은 아니었다.
스미스 일행의 공격에 불에 타고 찢기고 상처가 났다.
어떤 것은 눈에 보일 정도로 크게.
하지만 문제는 워낙 많다는 것이었다.
그런 피해를 입은 부분은 땅에 다시 파고들어가고 새로 쌩쌩한 것들이 그 자리를 대체할 정도로.
거기에 꽤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던 흔들리는 대지를 무력화 시킬 정도의 능력도 보유했고.
“허. 과연 우리와 같은 ‘Revival Legend’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의심스럽군.”
그렇게 홀드렛지는 의문만 남기고 회의를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아시란테 아니, 홍주영이 보여준 것은 전부다 상식을 벗어난 것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을 홀드렛지 뿐만이 아니었다.
홍주영과 스미스 일행의 전투를 지켜본 모두의 생각이었다.
< 홍주영 (4). > 끝
< 새로운 기능성 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