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한집에 두 집 살림.
“안녕하세요. 명진 쉘터의 총 책임을 맡고 있는 홍주영입니다.”
무려 별 3개를 달고 있는 사령관.
사단장이 별 2개인 것을 감안하면 거의 군단장급.
그것으로 이곳에 어느 정도의 관심을 갖고 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더군다나 군용 트럭과 탱크에서 내리는 군인들.
계급장에 일병, 이병, 상병, 병장의 마크를 달고 있는 자들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하사, 중사, 상사 혹은 소위, 중위, 대위 표시를 달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 말인즉슨 단기든 장기든 대부분 직업군인이라는 뜻이고.
‘허. 이건 조금 과한데...’
그 모습에 절로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의도가 너무 뻔해서.
더욱이.
“흠... 홍상만 회장은 없나?”
물론 50대로 보이는 상대방.
하지만 곧장 하대에 악수를 위해 내민 내 손은 쳐다도 보지 않고 하는 말에 기분이 조금 언짢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처음 내 소개를 할 때 이곳 명진 쉘터의 총 책임자라고 나를 소개 했으니까.
즉, 나이 어린 나에게 하대를 하긴 하더라도 내 악수는 받아줘야 했다.
그게 최소한의 매너이기도 했고.
스윽.
우선 민망해진 손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현재 아버지가 공사가 다망한 관계로 현재 이곳 명진 쉘터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가? 그 양반 참으로 바쁜 양반이군.”
저벅저벅.
“.......”
난 분명 그의 수하도 아니고 내가 한 말도 보고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내말을 수하가 상사에게 하는 그런 보고로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 말을 끝으로 나를 지나쳐 움직임으로써.
더욱이.
“총인원 1050명이 머물 공간을 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기와 저기는 각각 탱크 15대씩 배치할 것이고 그 건물을 저희가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명진 쉘터는 品자 형태의 메인기지 3개와 그 메인기지 3개를 중앙에 두고 멀찍이서 원을 두르고 감싸는 형식의 약 5층 높이의 건물 20개가 띄엄띄엄 존재했다.
처음에는 아예 두꺼운 벽을 치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과 여건이 되지 않았기에 최소한으로나마 3개의 메인기지를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솔직히 외곽의 20개의 건물만 철저하게 막아서면 3개의 메인기지는 물론이고 상당히 넓은 공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고.
그런데 정철진 사령관 뒤에 서있던 보좌관으로 보이는 자가 그렇게 중요할 수밖에 없는 거점을 당연한 것을 요구하듯이 말을 했다.
더군다나 문제는.
“오! 군대다.”
“이곳을 지키기 위해 군대까지 투입 된 건가? 역시 명진은 명진이네.”
“명진과 군대가 합심해서 이곳을 지킨다면... 분명 다른 곳보다는 안전할걸!”
“엄마. 군인아저씨들이 왜 온 거야?”
“그야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서 온 거지.”
그들을 지켜주는 것은 군대가 아니라 명진이었다.
그러나 일반인의 시선으로 봤을 때는 명진이라는 기업보다 탱크를 끌고 온 군대가 더 믿음직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인지 그런 군대를 열렬히 환영하기 시작했다.
결국 모든 준비는 명진에서 다 했지만 숟가락 하나 올리고 영광은 전부 군대에서 가로채가는 형국이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의 의도도 명확했고.
하지만.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슬쩍 내 뒤에 서있는 이길산 사장에게 시선을 줬다.
현재 분명 내가 총 책임자이긴 하지만 이들을 적절하게 분배하고 안내하는 데는 처음부터 명진 쉘터와 함께한 이길산 사장만큼 적임자는 없으니까.
더욱이 이들의 사령관이라는 자가 나를 무시한 상황에 총책임자라고 소개한 내가 그들을 직접 안내하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 후 1번 메인기지 안.
당연히 3개의 메인 기지 중에서 가장 안전하고 공을 들인 1번 기지로 정철진 사령관과 군부대를 들이지 않았다.
다행히 밖에서 볼 때 3개의 메인 기지는 다 똑같아 보였기에 딱히 그들도 자리 배정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고.
“어때?”
엄마와 누나까지 밖으로 나가서 굳이 군대를 맞이할 필요성은 느끼지 않았기에 안에 머물도록 했고 그렇기에 누나가 궁금증을 담아서 질문을 건넸다.
“내가 너무 어려서 그런지 상대도 안 해주더라고. 그리고...”
“그리고 뭐?”
살짝 말꼬리를 흐리는 내게 누나가 채근하며 되물어왔다.
“목표가 너무 확실했어. 이곳을 갖고 싶다는 의도도 숨기려도 하지 않았고.”
분명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즉, 달갑지 않은 손님.
그런데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고생하며 수고한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래서인지 갑(甲)인양 무척이나 당당했고.
“그나저나 미래에도 손을 뻗었다며?”
당연하지만 명진만 콕 집어 이런 수작을 부렸다면 부아가 치미는 수준이 아니라 열불이 터졌을 것이다.
그 순간 나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고 가까운 중국이나 혹은 미국에 손을 내밀 것이고.
나의 가치는 결코 낮지 않으니까.
하지만 정부는 확실히 욕심을 제대로 부릴 생각인 것 같았다.
명진은 물론이고 미래, 대성, 구산에까지 전부 손을 뻗음으로써.
그리고 이어진 누나의 대답.
“어. 그런데 대성과 구산 연합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생각인가 보더라고. 뭐. 제주도는 워낙 크지 않겠어? 대성과 구산 연합은 그런 제주도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싶어 하고.”
“쳇. 그럼 제주도나 갈 것이지.”
여하튼 마음에 들지 않는 자들.
하지만 지금 그들은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온 자들이기에 당장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표면적으로는 아직 음흉한 속내도 들어내지 않았고.
여하튼 그날은 그렇게 찝찝함을 안고 ‘Revival Legend’에 접속을 했다.
분명 28%도 높은 수치기이긴 하지만 아직 나에게는 넉넉한 양의 코인이 남아 있으니까.
교활한 뱀파이어 주둔지.
“아이스 필드! 그리고 중첩 살얼음!”
파사사삭!
“쏟아지는 우박. 아이스 레인!”
후두둑. 후두두둑.
퍽. 퍽. 퍼버버벅. 퍽.
뱀파이어들을 향한 반가움은 어제로 끝났다.
그렇기에 오늘은 가차 없이 뱀파이어들을 향해 온갖 스킬들을 난사했다.
더욱이.
“왜 이리 정철진 사령관 그놈하고 닮은 거야! 이거나 더 먹어라!”
푹.
물론 교활한 뱀파이어와 정철진 사령관은 외모적으로는 닮지 않았다.
하지만 교활한 이라는 수식어만큼은 닮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더욱더 진심을 담아 공격을 퍼부었다.
분명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하는 격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직 분란을 일으키지 않은 군부대를 상대로 화풀이를 할 수 없으니까.
홍주영이 열심히 사냥을 하는 사이.
미국 뉴욕에서 제 3회 NW(New World) 정기회의가 열렸다.
그리고 회의의 가장 큰 주제는 항상 똑같았다.
바로 몬스터.
하지만 애초에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어떻게 가능한지 근본적인 이유조차 모르고 여러 이해득실이 얽혀있었기에 그전의 1회, 2회와 마찬가지로 뚜렷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다른 쪽으로 답을 구하기 위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떻게 해야 이 현상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할 것인가 하는 그런 해답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그 답을 의장국인 미국이 가장 먼저 꺼내들었다.
“호들갑 떨 필요가 있습니까? 제가 봤을 때 결국 이것도 일종의 재해, 재난에 해당이 되니까요. 마치 화산 폭발, 해일, 태풍, 지진 같은 재해요. 그리고 그 재난으로 수만, 수십만의 사상자가 난 일은 역사적으로 허다했습니다.”
나름대로 열변을 토하는 미국측 대표.
그러다 슬쩍 좌중을 살피더니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더 열정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굳이 자연적인 재해뿐만 아니라 인위적인 재해라 할 수 있는 전쟁은 또 어떻습니까? 수만 명은 애교로 볼 정도의 인류가 죽어나간 전쟁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즉, 몬스터의 등장? 저는 여타 다른 재해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어차피 이제 숨기지 못할 것 공개를 합시다. 다만 인식만 바꿔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놀랄 필요가 없는 우리가 익히 봐왔던 흔하디흔한 재해, 재난의 일종이라는 인식으로요.”
“하지만... 그게 가능할지...”
“아무리 그래도 혼란이 발생할겁니다.”
“그런 재해, 재난은 온갖 영상 매체와 책을 통해서 미리 접하기라고 했지 이것은 그전에 없던 새로운 재해, 재난입니다. 과연 쉽사리 받아들일까요?”
미국측 대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자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의문을 제기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의문을 제기하는 자들을 보며 미국측 대표는 득의만만한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혼란? 있겠죠.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금세 수그러들 것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요. 아시잖습니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것을요. 마치 Boiling frog(끓는 물속의 개구리)처럼요.”
“.......”
“.......”
“.......”
이번에는 전과 달리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의 주도하에 어떻게 몬스터의 등장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공표할지 심도 깊은 이야기가 진행됐다.
미국측 대표가 말한 대로 살 사람은 사는 방향으로.
NW회의 말미.
“제가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장장 2시간에 걸친 회의가 끝나갈 무렵 인도 총리 자크리 라잔이 마이크를 잡고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말에 아무도 딱히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인도도 분명 NW의 창립 멤버니까.
“흠. 흠. 모두들 아실 겁니다. 현실의 몬스터를 처치지 골덴링과 극소량의 코인을 주되 아이템과 경험치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요.”
이미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아는 사실.
그렇기에 모두는 의아한 시선으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꺼내느냐는 눈빛을 보냈다.
물론 그 눈빛을 예측이라고 했던지 라잔 총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무시하고서 다시 입을 열었다.
“즉, 레벨을 올리고 아이템 수급을 위해서는 계속 ‘Revival Legend’에 접속을 하고 플레이를 해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서 강해져야 최소한 현실에 무엇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에 벽이 허물어짐으로써 남의 구역을 동의 없이 침범하고 약탈하고 빼앗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물론
누구라고는 지칭하지 않겠지만요.”
두루뭉술한 라잔 총리의 말.
하지만 이곳에 모인 모두는 라잔 총리가 말하는 곳이 어딘지 알고 있었다.
바로 중국.
현재 인도와 벽이 허물어진 곳이 베트남과 중국이니까.
그리고 중국이 원래 베트남 구역이었던 곳을 강압적으로 빼앗는 와중에 인도와 마찰이 생기기도 했고.
그렇기에 중국측 대표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지긴 했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불구경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싸움 구경이니까.
여하튼 그런 분위기속에 라잔 총리는 계속 말을 내뱉었다.
“결국 ‘Revival Legend’는 생존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곳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곳을 마음대로 빼앗는다?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현실에 핵전쟁이 일어나도 이상치 않을 정도로요.”
“.......”
“.......”
“.......”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 정적에 쐐기를 박는 말이 라잔 총리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미래를 빼앗긴 마당에 뭘 못하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약 30초 후.
아무리 봐도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라잔 총리의 말에 침묵이 감돌았던 회의실 내에 그 침묵을 깨는 고함 소리가 한쪽에서 터져 나왔다.
“마찰이 생긴 곳은 베트남이오! 결국 인도가 뜬금없이 베트남 편에 서서 마찰이 생기는 것이 아니오! 혹시 우리 중국이 먼저 움직여서 부러워서 그러는 것이오? 더군다나 이일은 분명 ‘Revival Legend’내에서 벌어지는 일이오. 이걸 현실로 가져오는 것은 합당치 않소.”
당연하지만 NW 회원에 베트남은 없었다.
분명 그럴 깜냥도 능력도 되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중국은 베트남을 노린 것이고.
여하튼 중국측 대표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는 자들도 있었지만 고개를 살짝 흔들며 동조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도 중국처럼 똑같이 하고 있으니까.
다만 중국처럼 과격하고 그리고 아예 적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움직이지 않기에 아직까지는 큰 분란이 생기지 않는 것이고.
“허. 현실의 일이 아니라고요? ‘Revival Legend’가요? 오늘 제가 살면서 가장 웃기는 말이군요.”
중국측 대표의 말에 라잔 총리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그 후로도 한참 설전이 이어졌다.
인도와 중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도.
왜냐하면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차후 강대국과 벽이 해제되면 베트남 같은 꼴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것을 몇몇 국가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물론 반대로 강자생존을 들먹이는 자들도 있었고.
여하튼 그렇게 제 3회 NW 정기 회의도 인류의 생존에 대한 범방위적인 대책이 아닌 항상 그렇듯이 각자의 혹은 소속 단체의 이익을 지키고 확장하기 위한 내용으로 열띤 회의가 진행했다.
교활한 뱀파이어 주둔지.
퍽. 퍽. 쾅. 쾅.
언제 화풀이를 했냐는 듯이 지금은 노심초사하면서 사냥을 이어갔다.
지금 당장이라도 교활한 뱀파이어에게 포식자로 인식됐다는 메시지가 울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니까.
전에도 대충 이 타이밍에 울리기도 했고.
그리고 그런 내 예상은 전혀 벗나가지 않았다.
[교활한 뱀파이어가 lumen, 아시란테님을 포식자로 인식했습니다.
-교활한 뱀파이어가 lumen, 아시란테님에게 선제공격을 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수치가 낮아져 교활한 뱀파이어에게 인식된 포식자가 풀립니다.
-다른 몬스터 사냥시 포식자가 빠른 속도로 풀립니다.]
슝. 슝. 슝. 슝.
방금 전까지 나에게 순간 이동을 활용해 악착같이 달라붙던 뱀파이어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곧장 내 곁에서 전부 멀어졌다.
“후우...”
그 모습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다 곧장 누군가에게 귓속말을 시도했다.
[lumen : 혹시 있어?]
종종 귓속말로 대화를 나누었지만 내가 먼저 연락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돌아오는 귓속말에는 놀람이 조금 섞여있었다.
< 한집에 두 집 살림. > 끝
< 부엉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