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금.
강철 송곳니 스밀로돈 서식지.
“아이스 필드. 그리고 중첩 살얼음.”
파사사삭.
아이스 필드가 펼쳐진 얼음의 대지 위로 항상 사용하던 스킬을 사용했다.
“아이스 스톰. 쏟아지는 우박.”
퍼버버벅. 퍽! 퍽!
후두둑. 후두두둑.
분명 선택 가능한 사냥터는 많았다.
특히나 700레벨은 그간 기대하고 기대하던 4강화 얼음황제 수호검의 착용이 가능한 레벨이었고 또 직전의 퀘스트로 얻은 것이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내 선택은 강철 송곳니 스밀로돈 서식지였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몰이가 가능한 사냥터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다 경험치를 많이 주는 몬스터는 일반적으로 강력한 몬스터라는 뜻이고 그런 강력한 몬스터를 몰이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유저도 강력해야만 했다.
몬스터 몰이를 하다 죽는 것만큼 허무한 죽음도 없으니까.
그런데 그런 강력한 대상을 단순히 몬스터 몰이로만 쓴다는 것은 그 유저에게도 그 유저가 속한 길드에도 손해일 수밖에 없다.
솔직히 노력해서 그만큼 성장을 했는데 몬스터 몰이꾼이라는 대우를 받는 유저도 마음이 좋을 리가 없고.
그래서 700레벨 달성으로 직전보다 월등히 능력이 상승했음에도 이곳 강철 송곳니 스밀로돈 서식지로 왔다.
원체 재빠른 스밀로돈이라 몰이를 하는데 그만큼 시간이 적게 걸렸고 아직까지는 충분히 매력적인 경험치를 줬으니까.
더군다나 나에게는 추가적으로 100%의 경험치를 더 획득하는 경험치 추가 획득 보석과 고작 5%지만 그래도 4주년 이벤트 우승자라는 호칭도 있기에 나름대로 아쉽지는 않았다.
여하튼 그렇게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를 사용하며 계속 사냥에 열중했다.
2주 뒤.
‘대유를 닦달할까?’
2주 동안 오로지 사냥 하나에만 매달렸다.
그리고 그 시간은 전혀 무의미하지 않았고 지루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재미있었다.
다만 2주 만에 780레벨을 달성하자 그 이후부터는 살짝 노동력 대비 얻는 것이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인즉슨 아직까지는 분명 사냥할만한 메리트가 있는 곳이긴 했지만 그래도 원활한 레벨업을 위해서는 경험치를 더 많이 주는 새로운 사냥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우선 생각한 것은 명목상 현재 내가 소속된 대유를 닦달할까라는 것이었다.
그나마 차후 내 정체가 밝혀져도 가장 무난한 대상이 대유였으니까.
그걸 노리고 대유의 피를 빨아 먹기 위해 접근하기도 했고.
하지만.
‘흠. 분명 더 이상의 지원을 할 생각이 없다는 말을 하긴 했는데...’
대유의 서대영 회장은 내 생각보다 맺고 끊음이 더 철저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항상 서대영 회장이 생각하는 그 이상을 보여줬기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 살리마루 도적단의 퀘스트를 단 한 번에 클리어 함으로써 그 생각에 방점을 찍게 만들어줬고.
그 이후 분명 서대영 회장이 나를 대하는 모습이 달라졌었다.
분명 그 이전까지는 나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마치 그런 노력을 해도 절대 나를 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듯이.
물론 조금 아쉽긴 했다.
하지만 고작 서대영 회장의 눈을 가리기 위해 사냥과 살리마루 도적단의 퀘스트를 설렁설렁하거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살짝 아쉬울 뿐 후회는 없고.
‘그냥 가서 들이대는 것도 가능한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아무리 대유에 피를 빨아먹기 위해서 접근을 했다지만 굳이 피를 빨아먹는 수준이 아니라 상처를 내고 그 상처를 후벼 팔 필요까지 있나라는 생각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아직까지는 차후 대유가 모든 것을 알아도 ‘당했다.’라는 생각을 할 정도의 범위지만 한발 더 나아가면 원수가 될 가능성도 있고.
그런데 그때 귓속말이 울렸다.
[초절정미녀 : 동생아, 지금 대화 가능해?]
[lumen : 응. 가능해.]
누나의 귓속말에 곧장 대답했다.
[초절정미녀 : 미래 길드에서 너에 관해서 연락이 왔어.]
[lumen : 대유가 아닌 명진으로?]
미래에서 연락이 온 것은 크게 대수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대유가 아닌 명진으로 왔다는 것은 분명 대수로운 일이었다.
현재 내가 대유 소속이라는 것을 알만한 자들은 다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미래는 그 알만한 자들에 속하는 곳이고.
[초절정미녀 : 어. 아무래도 주영이 네가 명진 소속의 사냥터에서 사냥을 한다는 것을 미래에서 아는 것 같아.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유가 아닌 명진에 연락을 한 것은 의외지만.]
[lumen : 그런데 왜?]
확실히 누나 말대로 미래라면 그 정도 정보는 캐치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초절정미녀 : 우리 보고 너와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하더라고. 아주 중요한 일이라면서. 그만큼 미래도 다급했나봐. 만남을 주선하는 대가로 꽤나 탐나는 선물을 가져왔거든.]
누나의 말에 잠시 미래의 현 상황을 떠올려봤다.
그 누구보다 늦게 시작한 ‘Revival Legend’.
하지만 미래는 미래였다.
금세 그 격차를 따라잡았다.
물론 지금은 대성과 구산의 혈연으로 맺은 동맹으로 그 위치가 흔들리고 있지만.
여하튼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누나의 귓속말이 울렸다.
[초절정미녀 : 하지만 당연히 거절했어. 명진이 아닌 대유에 연락을 하라고 하기도 했고. 그런데 그쪽에서 그러더라고. 왠지 대유가 아닌 명진에 요청을 해야 꼭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물론 그럼에도 거절을 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주영이 너한테 말을 꺼내봐야 하겠더라고. 어쩌면 이
것이 주영이 너한테 득이 될 일일지도 모르니까.]
[lumen : 음...]
[초절정미녀 : 당연히 선택은 주영이 네 몫이야. 아빠도 네가 알아서 하라고 했거든.]
[lumen : 만날게. 미래가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초절정미녀 : 알았어. 그럼 정확히 약속 날짜가 잡히면 그때 다시 귓속말할게.]
[lumen : 응.]
누나와 그렇게 귓속말을 종료했다.
“미래라...”
우선 확실히 미래가 남다르긴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엄청나다는 생각은 없었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에는 조금 부끄럽지만 오히려 내가 더 엄청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생각마저 들었으니까.
다만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바로 연보라.
내가 아무리 멍청하다 할지라도 물론 지금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것이 눈치가 없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눈치는 그 누구보다 좋았다.
똑똑하고 잘난 형과 누나 밑에서 스스로 못났음을 알고 그래서 절대로 형과 누나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깨우치고 나서 느는 것은 오로지 눈치뿐이었으니까.
“왜지?”
내가 가족들에게 언급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몰랐다.
하물며 가족들도 그런데 남들은 단 1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여전히 내가 서울대학교를 그것도 전체 수석으로 입학한 것이 전부 사기였다라고 믿는 자들이 태반이었고.
그런데 연보라만 달랐다.
분명 내가 가만히 있음에도 연보라는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거기에는 걱정도 있었고 관심도 있었다.
“에이. 됐어.”
하지만 곧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그 생각을 털어냈다.
미래가 무슨 말을 할지는 모르지만 연보라 때문에 그런 만남을 거절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우스운 이야기니까.
더군다나 아무도 내 정체를 모르고.
여하튼 빠른 시일 내로 몰이사냥이 가능한 새로운 사냥터 확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사냥에 열중하는 사이 생각보다 누나의 귓속말을 빨리 왔다.
그리고 그 말은 미래가 생각보다 다급하다는 뜻이고 나에게는 미래를 상대로 배짱을 부려도 된다는 뜻이기도 했기에 우선은 마음이 편했다.
별 생뚱맞은 말을 하면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나올 생각도 했고.
다음날.
“이동. 용의 무덤.”
[용의 무덤으로 이동합니다.]
그간 한 번도 간적이 없던 릴리아성으로 이동해서 거기서 또다시 용의 무덤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사전에 누나로부터 용의 무덤이라는 곳이 미래가 철저하게 관리하는 사냥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래 길드 소속이라고 마음대로 왕래가 불가능할 정도로.
물론 그런 곳을 무턱대로 들어온 것은 아니다.
아니, 솔직히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신경이 쓰였던 것 같았다.
그래서 명진에서 자신들이 직접 미래 길드와 아시란테의 만남을 주선한 만큼 끝까지 옆에서 지켜보겠다는 언급을 했고 미래가 그런 제안을 수용했다고 했다.
그 후 아빠에게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을 하긴 했다.
만약 미래가 그런 멍청한 짓을 한다면 미래는 현재 대한민국 내에서 가장 처진다고 평가받는 대유보다 더 처지게 만들 자신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아빠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수긍을 했다.
여하튼 곧 모습을 드러낸 용의 무덤.
상당히 컸다.
더욱이 관리가 잘된 듯 무척이나 깔끔하고.
그리고 그때 일단의 무리가 나에게 다가왔다.
물론 몇 번 보기는 했다.
실제로 4주년 이벤트 당시에는 함께 한 적도 있고.
“안녕하세요. 아시란테님. 연정환이라고 합니다. 저번에 뵙고 오랜만에 뵙는군요.”
“네. 반갑습니다.”
당연하지만 게임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종종 마주했다.
단, 최대한 공손하게.
하지만 4주년 이벤트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어깨를 쫙 펴고 연정환 회장을 대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연정환 회장을 필두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속은 어쩔지 몰라도 겉으로는 확실히.
여하튼 연정환 회장도 익히 그런 내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저희의 요청을 이렇게 수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그나저나 대유를 통해 요청을 하셔도 될 텐데 굳이 명진을 통해서...”
“하하하. 왠지 이게 더 확실하다는 느낌이 들지 뭡니까. 그나저나 미래의 문도 활짝 열려있는데... 아무래도 명진이 일처리가 뛰어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미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글쎄요. 대유가 워낙 저에게 잘해줘서.”
연정환 회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충분히 알기에 적절하게 응대하며 화제를 돌렸고 곧 연정환 회장을 따라 한쪽에 마련된 자리로 이동했다.
당연히 명진이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곳으로.
우선 그렇게 나를 비롯해 연정환 회장과 더불어 4명의 인물이 자리했고 그 4명의 인물에는 연보라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나를 뻔히 쳐다보는 연보라.
그래서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분명 누군가 쭉 주시를 하는데 오히려 가만히 있다는 것이 더 이상하니까.
“왠지 추궁당하는 것 같이 기분이 언짢네요.”
정말로 불쾌하다는 티를 내면서 내뱉은 한마디.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분명 나를 초대한 것은 이들이니까.
여하튼 연보라의 시선이 사라지자 다른 한명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아시란테님 반갑습니다. 저는 유성엽이라고 합니다. 우선 제가 어째서 아시란테님을 이곳에 모셨는지 이야기를 진행해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솔직히 나도 그게 궁금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그런 내 말에 유성엽이라는 자가 누가 들을까 무섭다는 듯이 이미 꽉 막힌 곳임에도 한차례 주변을 살피고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저희 미래 길드가 무척이나 특별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네?”
당연하지만 무언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게 퀘스트일 수도 있고 보스 몬스터 사냥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에게 도움 요청을 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말에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성엽이라는 자는 개의치 않다는 듯이 계속 말을 내뱉었다.
“저희는 그 특별한 것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시란테님이 그 특별한 것을 한번 봐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해결이 가능하다면 해결까지 도요.”
“.......”
유성엽이라는 자의 두루뭉술한 말.
잔뜩 의문을 담아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시선을 눈치 챘는지 유성엽이라는 자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단언컨대 아시란테님에게 절대로 위험한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저희 미래는 아시란테님 같은 분이 이 대한민국에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절대로 아시란테님을 속이거나 위험에 빠트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더군다나 밖의 명진을 놔두고요.”
“흠... 좋습니다.”
당연하지만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미래의 연정환 회장이 나설 정도로 특별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궁금증이 일었다.
물론 그건 표면적인 것이고 사실은 다른 이유가 존재했다.
바로 연보라.
현재 lumen이라는 이름은 원래의 뜻과 달리 재벌가 사이에서 뒤처지고 덜떨어진 상태를 뜻하는 대명사로 통했다.
대성과 구산의 결혼식때 나 스스로 왕초보임을 시인하면서 더더욱.
그런데 연보라는 그런 lumen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솔직히 무언가 안 좋은 일을 당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미래 길드도 연보라도 내 영역 밖으로 완전히 내칠 수 있을 테니까.
20분 뒤.
저벅저벅.
저벅저벅.
용의 무덤 안으로 걷고 또 걸었다.
물론 진즉에 그 특이한 것이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듣기는 했지만 갈수록 의심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30분을 더 움직이고 나서야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로 미래가 말한 특별한 것을.
바로 거대한 금.
용의 무덤의 영역 끝을 뜻하는 벽에는 거대한 금이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특별히 이상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거대한 금에서는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가장 앞장서서 이곳을 안내한 유성엽이라는 자가 입을 열었다.
“분명 아시란테님도 아실 것입니다. 하나의 서버에 각 국가마다 채널 혹은 벽이라 불리는 것에 가로 막혀 있다는 것을요.”
“.......”
우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성엽이라는 자도 내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이 곧장 입을 열었다.
“그리고 여기가 바로 그 채널 혹은 벽의 문이기도 합니다. 공유. 다른 구역으로의 탐험.”
유성엽이라는 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메시지 하나가 울렸다.
[미래 선발대로부터 ‘다른 구역으로의 탐험’을 공유 받았습니다.
-수락시 미래 선발대에 포함이 됩니다.]
< 금. > 끝
< 벽 너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