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생각보다 빠른 만남.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운이 무척이나 좋다고.
그렇지 않다면 클로즈 베타를 진행하는 수많은 게임 중에서 콕 집어 ‘Revival Legend’를 아니, 정확히는 ‘Forgotten Legend’를 선택하지 못했을 테니까.
물론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방학 기간 클로즈 베타를 진행하는 게임을 찾을 때 때마침 가장 일찍 시작 하는 게임이 ‘Forgotten Legend’였고 혹여나 당첨되지 않을까 다른 클로즈 베타를 진행하는 게임에도 응모를 했지만.
여하튼 상황이 어찌됐든 ‘Forgotten Legend’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로 나는 운이 무척이나 좋다고 말할 수 있고 그 운은 분명히 ‘Revival Legend’를 하면서도 쭉 이어졌다.
가령 살리마루 도적단의 퀘스트를 하기 직전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를 얻은 거나 파블로 때문에 0번 구역으로 가기 전 1200레벨이 아님에도 현실 구현을 할 수 있는 미리 보기를 획득한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마치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대비하듯 운 좋게 딱딱 맞아떨어진 상황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가 울림으로써 이번에도 내가 무척이나 운이 좋다는 것을 증명할 일이 눈앞에 벌어졌다.
[특성 ‘퀘스트 강탈자’로 700레벨 한정 퀘스트를 강탈해 간 요시프를 발견하였습니다.]
벽에 막혀 더 이상 추적이 불가능하다던 메시지.
그런데 그 요시프를 발견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상당한 숫자를 자랑하는 무리 속에 있던 한명의 머리 위로 빨간색 원이 반짝반짝 빛을 냈다.
당연히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상대방도 나와 같은 종류의 메시지를 받았는지 나를 바라봤다.
화들짝 놀라듯이 당황한 표정을 짓고서.
“흐흐흐.”
순간 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물론 복수를 다짐했었다.
절대로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는 결의를 수십 번, 수백 번 되뇌었고.
하지만 이렇게 빠른 시기에 그것도 이런 곳에서 만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요시프를 향해 아주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들릴지 모르겠지만 ‘반가워.’라는 말을 내뱉으며.
“.......”
요시프는 설마 이런 곳에서 아시란테를 마주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렇기에 무척이나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곧바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간 경험이 적지 않을뿐더러 스스로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정도로 형편없는 실력을 보유하지는 않았으니까.
아니, 오히려 요시프는 상대가 누구든 자신이 있었다.
그간 강탈한 퀘스트가 수백 개에 달했고 그 퀘스트를 전부 클리어 하지는 못했고 순위권 달성도 못한 것이 수두룩했지만 그래도 얻은 것이 적지는 않았으니까.
그래서 루시아 길드 같은 곳에서 자신을 영입하기 위해서 파블로를 이용해 그 지랄을 한 것이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시프는 눈앞의 아시란테는 괴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시란테는 여러 활약상을 통해 자신의 강함이 진짜라는 것을 몇 차례나 모두에게 증명을 했고 결정적으로 자신은 파괴하지 못한 파블로의 벽을 아시란테는 그대로 박살을 내버렸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순순히 당해줄 생각은 없기에 요시프는 재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아시란테가 속한 일족이 어디인지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가장 숫자가 적었고 그렇다는 것은 잘츠 일족이라는 뜻이니까.
순간 요시프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아시란테가 가장 약한 그래서 10명의 전투 인원을 참가시킨 잘츠 일족이 아니라 90명 혹은 80명의 전투 인원을 참가시킨 한츠 일족이나 알츠 일족이었으면 문제가 상당히 커졌을 테니까.
우선 그렇게 상황 파악을 끝내자 요시프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굳이 모두가 피아구분 없는 개싸움을 벌일 필요가 있을까요? 현재 이곳에는 100명, 90명, 80명, ······, 30명, 20명, 10명으로 총 10개의 일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전투에 참여한 인원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세력이 약한 일족이라는 뜻이기도 하고요. 즉, 10개의 일족이 7개
일족으로 줄어들어야 한다면 그 세력이 약한 일족이 사라져야 하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요시프는 말을 하면서 자신이 있었다.
자신의 말은 사리에 한치의 어긋남도 없으니까.
웅성웅성.
와글와글.
요시프의 말은 이 자리에 있는 총 550명중에서 최소 490명은 원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었다.
물론 찬성하지 않는 나머지 60명은 내가 속한 잘츠 일족을 비롯해 9순위 일족의 20명, 8순위 일족의 30명일 테지만.
여하튼 요시프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에서 웅성웅성 대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왔다.
대체로 동조하는 소리로.
그리고 그때 요시프가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여전히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약하면 도태되고 도태되면 사라지는 것이 자연스런 흐름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저 잘츠 일족에는 그 아시란테가 버티고 서 있습니다. 아마 어느 정도 정보에 밝은 분들이라면 아시란테에 대해 모두 들어봤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빠르게 짓밟아야 합니다!”
정확히 나를 향한 저격.
그 저격에 순식간에 시선들이 나를 향해 쏟아졌다.
몇몇은 몸을 돌려 방어 자세를 취하기도 했고.
물론 요시프가 저렇게 주도적으로 떠들기 전에 블링크를 활용해 요시프에게 달라붙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어떤 공격이 쏟아지더라도 나불거리는 요시프의 저 주둥이를 박살낼 능력도 됐고.
하지만 참았다.
이 전투에서 사라질 3개의 일족 중에는 현재 요시프 저놈이 속한 로츠 일족이 무조건 포함되어야 하니까.
그래서 요시프를 아니, 정확히는 로츠 일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로츠 일족과 잘츠 일족 간의 100 대 10의 싸움은 어떤가요? 숫자 차이는 무려 10배입니다.”
이곳에서 세력이 가장 큰 일족이 바로 로츠 일족이었다.
그리고 로츠 일족을 제외하고 그것을 반길 자들은 아무도 없다.
더군다나 약한 순서로 10순위인 잘츠 일족을 포함해 9순위, 8순위 일족이 다른 일족에 흡수되어 사라져봤자 애초에 몸통이 작은 일족들.
하지만 만에 하나 로츠 일족이 여기서 패배하기라도 하면 엄청난 먹거리가 생기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내 말이 끝나자마자 로츠 일족 다음으로 세가 큰 한츠 일족과 알츠 일족에서 큰 웅성거림이 생겨났다.
그래서 한 번 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입을 열었다.
“누가 이기더라도 가장 세력이 큰 로츠 일족의 숫자가 줄어든다면... 모두의 이익이 아니겠습니까?”
가장 큰 세력을 향한 선전포고.
그렇기에 로츠 일족을 제외하고 나머지 일족은 전부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가장 강한 세력이 고꾸라지면 아니, 흠집이라도 생기면 나머지 일족들이 절로 한 단계씩 세력 순위가 올라가는 거니까.
“아니! 아시란테 저놈은 강자로 모두가 힘을 합쳐...”
물론 그것을 원치 않는 요시프는 발악하듯 외쳤지만 이미 분위기는 바뀌었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한명이 뒤로 물러나자 그 움직임은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100명의 로츠 일족과 나를 포함한 10명의 잘츠 일족만이 공터에 자리했다.
순간 멍한 표정을 짓는 요시프.
물론 굳이 이런 상황을 만든 이유는 있었다.
바로 시작 전 단 1명이라도 남아 있으면 그 일족은 사라지는 3개의 일족에 포함이 되지 않는다는 메시지.
그렇기에 만약 피아구분 없이 개싸움이 벌어진다면 나 스스로 100명이나 되는 로츠 일족을 처리하는 와중에 사라질 3개의 일족이 결정되는 그런 불상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살짝 고민을 했는 고맙게도 요시프가 먼저 나서줬다.
나는 그걸 이용해 상황을 나에게 유리하게 만들었고.
‘그나저나 특출나게는 조금 있다 써야겠지?’
만약 내가 초반부터 엄청난 위용으로 로츠 일족을 압박하면 갑자기 로츠 일족을 돕는 자들이 나올지도 모른다.
현재의 강자인 로츠 일족의 세력이 확 꺾이길 바라지 새로운 강자를 원할 자들은 이곳에 없으니까.
그래서 초반에는 적당한 수준으로 맞불을 생각이었다.
우선 그렇게 전투 방법을 정하고 내 뒤에 있는 9명의 잘츠 일족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나에게 힐과 버프를 주지 마.”
당연히 로츠 일족에게는 내가 1순위 타깃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힐과 버프를 주는 힐러와 서포터가 있다면 1순위 타깃은 그들로 변경이 될 수밖에 없다.
그건 단체 싸움에서 아주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물론 이들이 죽어도 나와 하등 상관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죽음을 방관할 생각은 없기에 그런 명령을 내렸다.
“네!”
“알겠습니다!”
이미 내 명령에는 무조건 따르기로 말이 되어있기에 아무도 반박을 하지 않았다.
여하튼 그것을 끝으로 괜히 시간을 끌 필요는 없기에 내가 먼저 달려들었다.
당연히 아이스 필드와 살얼음을 시작으로.
“마... 막아!”
“파이어 필드!”
“들끓는 대지!”
“불의 정령의 분노.”
약 20명.
100명의 로츠 일족 속에는 요시프를 포함해 약 20명 정도의 유저가 보였다.
나머지는 전부 로츠 일족 소속의 NPC고.
물론 그것이 전투에 유리하게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500레벨 한정 퀘스트로 결투장에서 유저를 포함해 다수의 NPC와 전투를 하면서 NPC들이 어지간한 유저들보다 더 전투를 잘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감했으니까.
그렇다고 20명의 유저들이 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 곧장 반격을 해왔다.
내가 깐 장판을 파괴할 목적으로 똑같은 장판을 깔아 옴으로써.
더욱이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옭아매라! 끈끈한 뿌리여!”
“터지는 화염!”
“고통의 가시.”
“윈드 스톰!”
“춤추는 불꽃.”
퍽. 퍽. 퍼버버퍽.
유저건 NPC건 확실히 고레벨들.
그렇기에 나에게 쏟아지는 공격부터 남달랐다.
물론 그 와중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는 것은 있었다.
바로.
[+4 얼음황제 수호검을 착용하고 있습니다.
-태양신도 녹이지 못한 얼음황제의 결의로 파이어 계열의 스킬로 입는 피해량이 30% 감소합니다.]
솔직히 없어도 됐다.
현재 내 정신력은 1만이 넘고 방어구들도 최상급 수준이니까.
하지만 분명 무기이면서 파이어 계열에 한하지만 방어구 역할까지 하기에 나름대로 만족스럽긴 했다.
여하튼 그 공격들에 신음을 내뱉었다.
“크윽.”
마치 강력한 공격에 당한 것처럼 뒤로 살짝 뒷걸음질 치기도 했고.
“좋다. 계속 공격을 퍼부어라!”
“아시란테 이놈도 결국은 사람이다!”
주변의 반응으로 보아 그런 나의 연기는 완벽하게 통한 것 같았다.
물론 나도 공격을 퍼붓기는 했다.
“아이스 스피어. 다열발 아이스 애로우. 그리고 아이스 웨이브!”
우선 아이스 스피어와 다연발 아이스 애로우로 간을 봤고 그 다음에는 순간 대미지 만큼은 그 어떤 스킬보다 강력한 아이스 웨이브를 사용했다.
“크억!”
“컥!”
그리고 가장 앞쪽의 2명을 즉사시키기에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물론 겉으로 봤을 때는 여전히 적들이 유리하고 나는 최선을 다해 발악을 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것이다.
그렇기에 2명이 쓰러졌음에도 아무도 거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향해 더 많은 공격을 집어넣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훤히 보였다.
‘그나저나 확실히 강하긴 하네.’
체력이 1만 7천이 넘고 나름대로 최상급 아이템을 착용했음에도 생명력이 쭉쭉 빠져나갔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기본 생명력이 높다보니 여전히 쌩쌩하다는 것이지만.
우선 그렇게 아이스 쉴드까지 사용하며 악착같이 버티는 모양새를 연출했고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는 전략으로 전투를 이어갔다.
로츠 일족과 잘츠 일족이 전투를 벌이는 사이.
“흠.”
한츠 일족 소속으로 이번 퀘스트에 참여한 앙투안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전투를 보며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앙투안도 처음에는 아시란테가 무척이나 불리하다고 봤다.
아무리 아시란테가 소문난 강자이지만 그 앞에 있는 자들이 절대로 약한 자들이 아니고 하다못해 NPC들마저도 죄다 1000레벨 이상이었으니까.
그래서 아시란테의 악착같이 고군분투 하는 모습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질적인 피해는 분명 로츠 일족에서 입고 있었다.
말인즉슨 여전히 공세를 취하는 것은 로츠 일족이었지만 벌써 10명이 죽어나갔고 90명밖에 남지 않았다.
반대로 10명이던 잘츠 일족은 여전히 10명을 유지했고.
즉, 아시란테가 포함된 잘츠 일족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상황.
물론 홀로 고군분투하는 아시란테가 쓰러지면 잘츠 일족은 순식간에 모래성마냥 주저앉겠지만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아시란테는 쓰러지지 않았다.
‘설마... 아니겠지?’
앙투안 본인도 프랑스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길드의 길드장이었기에 나름대로 보는 눈은 있다고 자부했지만 설마 아시란테가 일부러 연극을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4주년 이벤트 당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아시란테의 모습이 떠오르자 점차 그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그래서 순간 로츠 일족을 도와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만약 아시란테의 저 모습이 연극이라면 결국 아시란테의 손가락질 하나로 로츠 일족 다음으로 사라질 일족이 정해지는 거니까.
그리고 만약 그 사라질 일족에 자신이 소속된 한츠 일족이 포함이 되면 퀘스트 보상은 물 건너 가는 것이고.
스윽.
앙투안은 그렇게 시선을 좌우로 돌려 상황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도 아시란테에 행동에 의심을 하지 않는 자들.
그 모습에 앙투안은 나서지 않기로 결정을 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 보상을 위해 괜히 아시란테와 적이 될 필요는 없다는 판단을 내렸으니까.
70명?
남은 로츠 일족은 그 정도로 보였다.
여전히 많이 남은 상황.
하지만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대화로 보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자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충분히 이해는 갔다.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했지만 결국에는 쓰러지지 않았으니까.
대신 그 사이에 벌써 30명에 가까운 적들이 사라져갔고.
그래서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특출나게 사용.”
[현재 lumen, 아시란테님이 보유한 힘, 민첩, 체력, 정신력, 지력 중에서 가장 특출난 스탯은 지력입니다.
-현재 보유한 지력 수치: 21850.
-30분간 지력 수치가 43700으로 변경됩니다.
-특출나게의 유지 시간이 종료하면 10일의 쿨타임이 발생합니다.]
“아이스 필드! 그리고 중첩 살얼음!”
파사사삭.
특출나게는 사용하고 새롭게 아이스 필드를 깔았다.
그리고 곧장 사용치 않던 광역 스킬을 흩뿌렸다.
“블링크.”
적진의 안으로 파고들면서.
“크억!”
“컥!”
“도대체 무슨 대미지가...”
아비규한.
전과 확연히 달라진 공격 방법과 대미지 순식간에 전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여전히 시야에는 요시프를 놓치지 않았다.
요시프는 무척이나 중요한 인물이니까.
여하튼 그렇게 제 2라운드를 시작했다.
< 생각보다 빠른 만남. > 끝
< 어쩌면 산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