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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한 클로즈베타-111화 (111/271)

111화. 여전히 강함 (3).

“좋아. 손님 대접은 영 꽝이지만 이야기는 들어보도록 하지. 하지만 가급적 빨리 했으면 좋겠어. 이래봬도 내가 상당히 바쁜 몸이거든.”

처음 선택지는 두 개였다.

전부터 그러했듯이 곧장 공격을 감행하는 것과 상황을 살피는 것.

그런데 이번의 내 선택은 다른 때와 달리 상황을 살피는 것이었다.

이런 사방이 꽉 막힌 음침한 곳으로 날 소환했다는 것은 분명 좋지 않은 의도일 확률이 높지만 그래도 이곳이 어딘지 모르고 결정적으로 상대방의 오인을 곧장 해소해 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말인즉슨 눈앞의 남자는 내가 ‘자기 자신 따라잡기’라는 이벤트에 참여 중이라는 것을 애초에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에 소문난 강자인 내 앞에서 저렇게 당당한 것이고.

그래서 상황도 살필 겸 장단을 맞춰주자는 선택을 내렸다.

지금의 나는 직전의 600레벨에 비춰볼 때 전혀 약하지 않으니까.

아,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는 빼고.

여하튼 당당함을 그대로 드러내며 눈앞의 남자에게 얼른 본론을 꺼내라고 재촉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재촉에 그 남자가 곧장 입을 열었다.

“아, 현재 ‘자기 자신 따라잡기’를 진행 중이었지? 설마 순위권에 도전 중이었나? 그러면 무척이나 미안한데 말이야.”

“도전 중인 것은 사실인데. 그렇게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이런 벌써 포기한 건가?”

“글쎄...”

당연히 포기하지 않았다.

다만 어느 정도 아니, 상당히 많은 여유가 있을 뿐.

하지만 굳이 그런 언급은 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흠. 이런 사소한 이야기를 하자고 나를 부른 것은 아닐 테고. 도대체 무슨 말을 꺼내려고 이렇게 서두가 긴지 모르겠군.”

물론 내심 나쁘지는 않았다.

본론을 꺼내기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도 긴장되고 부담감을 느낀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그때 내 압박이 통했는지 이번에는 눈앞의 남자가 전과 달리 표정을 굳히고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우선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곳은 내 특성 죽음의 링이라는 곳으로 이 안에 존재하는 둘 중에 한명이 죽기 전까지는 절대로 이 밖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호오.”

살짝 내뱉는 말과 달리 그렇게 큰 감흥은 느껴지지 않았다.

솔직히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으니까.

나가는 방법도 간단했고.

하지만 상대방의 말을 끊을 생각은 없기에 그런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러자 상대방도 계속 말을 이었다.

“나와 손을 잡자. 아시란테 너에게 절대로 손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손해 수준이 아니라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마어마한 이득을 안겨줄 수 있다!”

“흠.”

솔직히 처음 상대방의 반응으로 얼추 예상은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나에게 전혀 적대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호감을 표하는 모습이 언뜻언뜻 보였으니까.

그와 함께 내가 유명해져도 너무 유명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벽 뚫기라는 굉장히 특이한 능력에 이어 솔직히 죽음의 링은 모르겠지만 소환이라는 벽 뚫기에 비해 전혀 모자라지 않는 능력이 나를 위해 펼쳐졌으니까.

그래서 상대방을 향해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열었다.

“손을 붙잡는 거야 무척이나 쉽지.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하지만 그런 제안을 하는 것 치고는 장소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군. 더군다나 말뿐이 아닌 실제로 나를 혹하게 할 정도의 능력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길드에 가입하는 것? 손을 붙잡는 것? 무척이나 쉽다.

실제로 파블로가 루시아라는 길드에 가입 제의를 했을 때도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다.

그 빌어먹을 자발적인 길드 탈퇴 불가능이라는 제약만 없었다면.

그와 함께 아무래도 눈앞에 있는 남자는 그 루시아라는 길드와 관계가 없는 자 같았다.

만약 루시아 길드였다면 내가 파블로라는 자와 있었던 일을 모를 리가 없으니까.

여하튼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떠보듯이 내뱉은 말.

그 말에 상대방이 반색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나는 가능하다. 아시란테 너뿐만 아니라 네가 원한다면 너의 가족, 친구 모두에게 어디에서도 본적 없는 완벽한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선사해주겠다!”

번뜩.

눈앞의 남자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언급.

그 한마디 말에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무리 대한민국 내에서 잘나가는 명진이라도 미국을 상대로 정보를 캐내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현재 미국은 홀드렛지, 샤이페 그리고 미국 정부라는 3개의 조직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으니까.

즉, 상대방은 홀드렛지, 샤이페 아니면 미국 정부 셋 중의 하나.

순간 루시아 길드나 파블로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내가 먼저 ‘루시아 길드냐?’라는 질문을 던졌다면 쓸데없는 소란만 만들었을 테니까.

그리고 얼추 상대방의 정체를 알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물론 티는 내지 않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 혹시나 하는 한줄기 의심도 거두지 않았고.

“흠. 아메리칸 드림이라...”

우선 그렇게 마음이 동한다는 듯이 말꼬리를 흘렸다.

아니, 실제로 손을 붙잡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누가 뭐래도 현재 ‘Revival Legend’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것이 미국이니까.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루시아 길드와 같은 상황.

당연하지만 자발적인 길드 탈퇴가 불가능하다면 상대방이 어떠한 제안을 하더라도 절대로 손을 붙잡을 생각이 없다.

나 스스로 괜한 족쇄를 만들 생각은 없으니까.

“날 믿어라. 아시란테 너만 나를 돕는다면 아니, 우리가 함께 손을 잡는다면 샤이페는 물론이고 차후 미국을 넘어 전세계를 우리가 장악할 수 있다!”

남자의 입에서 나온 샤이페.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대놓고 밝히는 것으로 봤을 때 내 반응이 꽤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단순히 말로 끝낼 생각은 없는지 곧장 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파티 초대. 그리고 맹약의 징표 사용.”

[에드윈님으로 맹약의 징표가 사용된 파티 초대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에드윈이라는 남자는 본론을 꺼내는데 주저했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속전속결로 나왔다.

파티 요청을 하는 와중에 그간 들어본 적이 없는 맹약의 징표를 언급하며.

그런데 문제는 왠지 처음 듣는 맹약의 징표라는 말이 썩 달갑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마치 파블로가 한 제안처럼.

그리고 항상 이런 것은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고 이번에도 그랬다.

[맹약의 징표 (전설)

-파티 신청시 사용 가능한 1회용 아이템으로 맹약의 징표가 사용된 파티는 사망이나 로그아웃을 포함해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절대 파티가 해체가 되지 않는다.

단, 맹약의 징표의 사용으로 자동 파티 대장이 된 자에 의해서는 해체가 가능하다.

-맹약의 징표가 사용된 파티는 파티가 유지되는 기간 ‘단단한 결속력’과 ‘등을 내줄 동료’ 버프를 적용받는다.

-파티원과 함께 전투시 대장은 파티원의 능력 일부분을 가져오는 것이 가능하다.

단, 능력 일부분을 파티 대장에게 빼앗긴 파티원은 그만큼 능력이 하락한다.]

[에드윈님의 파티 요청을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

이해가 가지 않았다.

파블로도 그렇고 지금 눈앞의 에드윈도 그렇고 영입을 한다면서 결국은 노예를 원하는 것이니까.

솔직히 동등한 대우를 해준다 해도 받아들일까 말까 하는 것은 내 심정이었다.

아니, 동등한 대우가 아니라 나를 위한 선물을 한가득 가지고 와도 부족한 것이 지금의 실정이었다.

아시란테라는 이름은 절대 가볍지 않으니까.

그런데도 이런 수작을 부린다는 사실에 이놈들이 양심이라는 것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아니면 태생적으로 상식이 없는 놈들이거나.

그와 함께 죽음의 링이라는 이 공간도 새롭게 다가왔다.

정확히 ‘자기 자신 따라잡기’를 진행함으로써 원래라면 남들처럼 약해진 나를 협박하기 위한 장소라는 뜻이니까.

처음 나에게 보인 호감은 마치 납치하고 고문에 들어가기 직전 예의상 한번 보이는 액션이고.

되면 좋고 아니면 마는.

기분이 팍 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곧장 그것을 밖으로 표출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행동을 하기 전 정말로 궁금한 것이 있었다.

“한 가지만 물을게. 만약 내가 파티에 드는 것을 수락한다면 누가 여기서 죽는 거지? 네 입으로 말했잖아. 둘 중에 하나가 죽기 전까지는 절대로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고.”

이게 정말로 궁금했다.

하지만.

“.......”

그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그래서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내가 정해줄게. 너의 죽음으로.”

그 말과 함께 그를 향해 곧장 달려들었다.

에드윈이 설치한 죽음의 링 밖.

죽음의 링 안에서는 밖을 보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밖에서는 안을 보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서 소환이라는 특성으로 아시란테를 직접 이곳에 소환한 제이콥은 쭉 안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진행 상황을 보면서 자신의 대장 에드윈이 아시란테에게 너무 쉽게 정체를 알려준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다.

괜히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죽음의 링에 대한 언급을 한 것에도 아쉬움을 느꼈고.

아시란테도 생각이 있다면 그가 이벤트 참여로 약해진 틈을 타서 강제적으로 동료를 만들고자하는 것을 모를 리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만반의 준비를 한 이쪽과 달리 아무런 준비도 없이 끌려온 167레벨의 아시란테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

다만 걱정이 되는 거라면 동료가 된 직후 이번 일로 생길 아시란테의 앙금을 어떻게 풀어줄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물론 그 고민도 길지 않았다.

이미 많은 것을 준비했고 아시란테만 완벽한 동료로 만든다면 그걸 빌미로 샤이페에서 뜯어낼 것이 많으니까.

여하튼 약해진 아시란테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기에 마음 편히 죽음의 링 안을 확인했고 그러다 아시란테가 대장 에드윈에게 달려들 때까지도 제이콥은 단 1의 걱정도 하지 않았다.

이런 반응도 예상 범위 안에 포함이 되는 것이고 그에 대한 대처도 준비를 했으니까.

하지만.

[크억!]

자신의 대장 에드윈이 아시란테의 몽둥이질 한방에 고통에 찬 신음과 함께 뒤로 밀려나는 모습에 제이콥은 두 눈을 번쩍 뜰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것도 그렇지만 아시란테의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더 놀랬다.

저런 모습은 극강의 위력을 선보였던 아이스 계열의 마법사 때도 보이지 못한 능력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이스 필드! 그리고 쏟아지는 우박!]

아시란테의 외침과 함께 죽음의 링 전체를 아우르는 얼음의 대지가 생성됐고 그 얼음의 대지로 우박들이 쏟아져 내렸다.

아시란테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공격들.

다만 아시란테는 지금 ‘자기 자신 따라잡기’ 이벤트에 참여중이기에 그 위력마저 전과 똑같아서는 안됐다.

하지만.

[씨팔! 도대체 이 대미지는 뭐냐고!]

굳이 대장 에드윈의 외침이 아니더라도 아시란테의 공격들이 어느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는지 훤히 보였다.

이미 제이콥 자신은 대장 에드윈과 파티를 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런 위력은 아시란테가 이벤트에 참여하지 않고 본연의 능력 100%를 사용해도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정도였으니까.

물론 대장 에드윈도 멍하니 있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발동. 인간 상성! 솟구쳐라. 불굴의 의지!]

그 외 전사의 포효까지 사용하며 아시란테에게 다가섰지만 그럼에도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에드윈의 생명력에 제이콥은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상 놈들에게 속은 건가?’

제이콥은 아시란테가 이벤트에 참여한다는 확신은 레벨을 통해서 파악했다.

이미 직전에 500레벨 한정 결투장 퀘스트를 진행한 아시란테가 갑자기 167레벨이 될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중심에서 멀어졌다지만 자신의 대장 에드윈은 샤이페의 한 자리를 차지한 대간부이고 그런 샤이페의 대간부를 농락할 멍청한 정보상들이 아니기에 제이콥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더욱이.

‘어떻게 저런 힘하고 움직임이 가능하지?’

아시란테에 관한 영상은 이곳저곳에 풀렸고 당연히 제이콥도 수십 번이고 확인했다.

전형적인 아이스 계열의 마법사.

물론 그 앞에 극강이라는 단어와 탱커보다 더 강력한 방어력을 갖춘 이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그래도 지금 보이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힘과 민첩이 대장 에드윈보다 더 높아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만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대장 에드윈의 경악에 찬 함성으로.

[도대체 이게 뭔데? 그래. 내가 멍청하게 정보상 놈들에게 속았다고 할 수 있어. 하지만... 하지만... 이런 능력은...]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나는 말투에 제이콥도 할 말을 잃었다.

머릿속에 괴물을 건들었다는 생각만이 자리했다.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하나 걱정도.

하지만 그 고민을 길게 할 수는 없었다.

아시란테의 현란한 몽둥이질과 여러 아이스 계열의 마법에 대장 에드윈이 궁지에 몰리다 못해 죽을 위기에 처했으니까.

그래서 제이콥은 당장 외쳤다.

“젠장! 소환 해제!”

[아시란테에 대한 소환을 해제합니다.

-소환 대상자를 쿨타임 이전에 소환 해제하였습니다.

그로 인한 패널티로 소환 특성이 3년간 잠금 상태로 변합니다.]

애초에 여러 제약이 존재하는 특성이었다.

그만큼 뛰어난 효율을 자랑했고.

하지만 그 패널티를 감수하고 곧장 아시란테의 소환 해제를 선택했다.

이 일은 샤이페의 그 누구도 모르게 진행을 한 일이니까.

하지만.

[현재 아시란테가 죽음의 링에 위치해 있습니다.

-죽음의 링이 해제되면 소환이 해제됩니다.]

“.......”

급한 나머지 제이콥도 잊고 말았다.

현재 아시란테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사이에 제이콥은 멍하니 대장 에드윈이 죽는 것을 지켜만 봐야했다.

죽음의 링이 해제되자 순식간에 사라지는 아시란테의 모습도.

< 여전히 강함 (3). > 끝

< 예견된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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