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누구냐? 넌.
지금껏 ‘Revival Legend’를 하면서 단 한 번도 죽은 적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Revival Legend’이전의 ‘Forgotten Legend’라는 1차, 2차, 3차 클로즈 베타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클로즈 베타 때는 더욱더 조심을 했다.
남은 방학 기간 동안 게임에 대한 일체의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2주간 모든 것을 불태울 각오로 접한 것이 바로 ‘Forgotten Legend’였으니까.
그래서 만에 하나 죽으면 받게 되는 24시간 접속 금지 페널티는 나의 계획에 크나큰 차질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Revival Legend’는 1차, 2차, 3차 클로즈 베타 당시 최대 레벨 등을 포함한 여러 가지 업적 달성으로 죽고 싶어도 어지간해서는 절대 죽지 못하는 수준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태창에 죽인 횟수와 죽은 횟수가 새로 추가가 됐고 아빠에게도 죽지 말라는 말까지 들었기에 나름대로 신경을 썼다.
굳이 아빠의 언급이 없더라도 나도 죽은 횟수에 적인 0이라는 숫자를 1로 바꾸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런 상황에 마주한 7%의 구현률.
그 구현률이 발목을 거세게 붙잡았다.
더욱이 아이스 필드를 비롯해 여러 스킬을 사용치 못하고 딱 아이스 볼과 아이스 볼트만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 위기를 더 부채질했다.
그만큼 7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는 하필이면 원거리 유형의 몬스터였다.
즉, 한 번에 당하는 공격 횟수가 전에 비해 현격하게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멀리서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은 나에게 공격을 퍼붓기 위해 아등바등 가까이 달라붙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니까.
더군다나 문제는 덩치마저 작은 유형의 몬스터인 악동 페어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좁은 공간에 상당히 많은 숫자의 악동 페어리가 자리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렇게.
펄럭. 펄럭. 펄럭.
날갯짓을 한번 할 때마다 분명 강력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시하기에는 어려운 바람 계열의 공격이 나를 향해 몰아쳤다.
그것도 수십 개 아니, 대충 백 개가 넘는 숫자들로.
퍽! 퍽! 퍽!
물론 원래의 100%의 능력을 갖고 있다면 이깟 공격?
솔직히 안마 수준도 안 된다.
체력에 비해 낮긴 하지만 그래도 내 정신력과 마법 방어력은 어디를 가도 절대 꿀리는 수준이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꿀렸다.
더욱이 숫자도 많고.
그리고 워낙 많은 숫자들에 나도 모르게 뒤쪽으로 한 발짝 발을 떼자 그것만으로 새롭게 나를 인식한 악동 페어리가 못해도 3마리가 더 증가했다.
그 말인즉슨 나에게 들어오는 공격이 3개나 더 증가했다는 뜻이고.
물론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당연히 공격을 퍼부었다.
연신 아이스 볼과 아이스 볼트를.
그리고 그나마 다행이라면 무지막지한 몸빵을 자랑했던 6라운드의 몬스터와 달리 악동 페어리는 두세 방에 쓰러져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는데 왠지 내가 더 빨리 쓰러질 것 같았다.
‘젠장! 왜 시작이 이따위인데!’
만약 구석진 곳에서 시작을 했다면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리지는 않을 것이다.
멍청하게 앞으로 나서지 않고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조금씩 몬스터를 유인해 갉아먹는 방식의 전투를 취할 것이니까.
더욱이 몬스터가 리젠 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시작점이 몬스터 한가운데라는 것이 모든 상황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불만은 또 있었다.
바로 원거리 유형의 몬스터서 그런지 왠지 나를 향한 인식 범위가 훨씬 넓어진 것 같다는 느낌 아닌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더 많은 몬스터들이 갑작스레 등장한 나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고 한 발짝만 움직여도 순식간에 3~5마리의 몬스터가 새롭게 나를 인식했다.
그만큼 쉬지 않고 연신 아이스 볼과 아이스 볼트를 사용하고 있다지만 샌드백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
그게 지금 내 상황이었다.
“씨팔!”
그렇기에 아이스 볼과 아이스 볼트를 사용하는 와중에도 연신 욕설만 나왔다.
서울 청담동.
“주영이가 좀 늦게 온다고?”
“네.”
홍상만 회장의 질문에 홍수영이 대답했다.
그리고 홍수영은 곧장 말을 더 이었다.
“오늘 저녁에 주영이가 할 말이 있나 봐요.”
“할 말?”
“네. 그래서 더 물었는데 전화로 하기에는 조금 그렇고 직접 만나서 할 말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알았다.”
전화로 하지 못할 말이라는 것이 대충 어떤 것을 뜻하는지 알기에 홍상만 회장은 고개만 끄덕였다.
가족들이 홍주영을 기다리는 사이.
0번 구역 7번 스테이지.
“젠장!”
입이 썼지만 받아들였다.
변할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아이디마저 lumen에서 lumen, 아시란테로 변화는 와중에도 0을 굳건히 지키고 있던 죽은 회수가 1로 변할 것이라는 것을.
그만큼 아무리 발악을 해도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물론 멍하니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그래서.
“아이스 볼! 아이스 볼트!”
두 다리를 땅에 박아 넣고 쿨타임이 돌아오는 족족 아이스 볼과 아이스 볼트를 날렸다.
괜히 움직였다가는 더 많은 몬스터들의 이목만 끌게 되니까.
즉, 1시간 뒤의 부활을 노리는 전략으로 수정했다.
물론 내가 죽었던 자리에서 그대로 부활을 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부활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몬스터를 줄여야 한다는 것은 다음 스테이지를 위해서든 차후 보상을 위해서든 꼭 해야 할 행동이기에 죽을 것을 알면서도 악착같이 공격을 퍼부었다.
그렇게 대략 70마리 이상을 처리하고 30마리 내외만 나에게 공격을 하는 상황.
그만큼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분명 나에게 여유로워졌지만 초반 100마리가 넘는 악동 페어리의 공격은 꽤나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결국에는 내가 먼저 쓰러질 거라는 것이 뻔히 보였고 만약 구현률이 7%가 아닌 8%만 됐더라도 왠지 버텨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나저나 꼭 이 자리에서 부활을 해야 하는데...’
꼭 이 자리여야 했다.
그걸 위해서 이렇게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악착같이 악동 페어리들을 처리했으니까.
그렇지 않고 만약 새로운 자리에 또다시 백 마리 이상의 새로운 악동 페어리를 마주 한다면 어쩌면 7스테이지에서는 한두 번 죽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여하튼 씁씁함과 아쉬움이 교차되는 상황에 죽음을 인지하고도 계속 공격에 박차를 가할 찰나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스으윽.
악동 페어리의 날갯짓?
바로 내 앞과 옆 그리고 뒤에도 수많은 악동 페어리가 자리했다.
그리고 그것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내 귀가 멀지는 않았다.
더욱이 어디선가 들어봤던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시선을 좌우로 돌렸다.
몸과 눈이 돌아가는 모양새로는 새로운 악당 페어리가 나를 인식하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소리는 계속 들림에도 보이지 않았다.
‘별 것 아닌가?’
아무래도 이번이 첫 번째 죽음이라는 사실에 내가 생각보다 더 많이 과민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돌릴 찰나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콰지직.
악동 페어리는 당연하지만 공중형 몬스터다.
공중에 떠서 날갯짓을 하고 그 날갯짓에서 나를 향한 바람 계열의 공격이 뿜어져 나오는 그런 유형의 몬스터였다.
그런데 악동 페어리가 자리한 땅 바로 밑에서 갑자기 꽤 긴 무언가가 치솟아 올라 그 악동 페어리의 몸을 순식간에 몇 바퀴 감쌌다.
그리고 악동 페어리를 조르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 무언가의 조름에 아등바등 몸부림치는 악동 페어리.
하지만 몇 바퀴나 감싼 그 무언가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고 결국에는 악동 페어리가 날갯짓을 멈추었다.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 악동 페어리.
황당했다.
분명 1스테이지도 2스테이지도 그리고 전의 3, 4, 5, 6스테이지에서도 무조건 한 종류의 몬스터만 나왔으니까.
거기에 같은 몬스터끼리 싸운다는 것도 처음 봤다.
아니, 저 무언가가 몬스터인지도 확신이 가지 않았다.
얼핏 봐서는 기다란 검은색 줄로만 보였으니까.
그런데 황당한 일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내가 죽이지 않은 악동 페어리.
분명 저 검은색 줄이 마치 뱀이 쥐 같은 것을 몸으로 감싸 질식사 시키듯이 공격을 했고 죽였다.
즉, 명백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메시지가 울렸다.
마치 내가 죽였다는 듯이.
[75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17000골덴링을 획득하였습니다.]
“.......”
순간 그 메시지에 다른 악동 페어리에게 아이스 볼과 아이스 볼트를 날려야 한다는 것을 잊었다.
뜬금없어도 너무 없으니까.
그리고 그 뜬금없는 일은 그 한번으로 멈출 것 같지 않았다.
스스스.
한 마리의 악동 페어리를 졸라 죽인 그 검은색 줄이 다시 땅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모습에 순간 나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것이 나를 공격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하지만 내 생각은 기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푹! 콰지직!
그것은 내가 아닌 다른 악동 페어리 밑에서 솟구쳐 올라 처음 악동 페어리에게 한 행동을 그대로 답습했다.
그리고 점차 조이기 시작하더니 얼마 안 있어 처음 악동 페어리와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황당함의 연속.
그리고 그 황당함은 메시지로 방점을 찍었다.
[76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15500골덴링을 획득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잡던 악동 페어리와 절묘하게 죽는 타이밍이 겹쳐서 메시지가 울린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나는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으니까.
물론 쭉 멍하니 그것의 움직임을 쳐다만 보지는 않았다.
“아이스 볼! 아이스 볼트!”
우선 그것이 적인지 아군인지는 모르지만 아니, 적은 아닌 것 같지만 확실한 적은 있었으니까.
바로 악동 페어리.
그 후 얼마 걸리지 않아 남은 악동 페어리 전부를 정리하는 것이 가능했다.
당연히 그것이 한팔 거듬으로써 죽지도 않았고.
그렇게 인식 범위 밖에 위치한 악동 페어리를 제외하고 공격 거리 안에 그 검은색 줄을 담은 괴상한 것과 나만 존재했다.
혹여나 나를 향해 달려들지 않을까하고 온 신경을 그것에 집중했다.
아이스 볼과 아이스 볼트를 사용할 준비를 하고서.
하지만.
스으윽.
그것은 천천히 땅속으로 다시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전히 몸을 감추었다.
1분, 2분, 3분 그리고 4분.
우선 땅바닥에 뭔가 기어가는 소리라도 들리지 않을까 하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몇 분 가량을 가만히 있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구냐... 설마 내편이냐?”
[.......]
내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소리도 없었다.
그리고 순간 얼핏 이런 장면을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긴 뿌리 나무.
그 녀석들의 공격 수단이 방금과 같은 뿌리였다.
물론 내 살얼음이 중첩된 아이스 필드에 막혀 나에게 제대로 된 뿌리 공격 한번 하지 못한 비운의 몬스터였지만.
하지만 확실히 공격 방식이 방금과 유사했다.
그러자 하나의 기억이 더 떠올랐다.
바로 긴 뿌리 거목이라는 보스 몬스터에게서 획득한 뿌리라는 아이템.
분명 설명에는 먹으면 뿌리 하나를 획득한다고 적혀 있었지만 먹고 나서 별 난리부르스를 다쳐도 뿌리는 소환되지 않았다.
그 후 뿌리에 관심을 거두었다.
딱히 뿌리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 기대야 할 정도로 내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정확히 없어도 그만.
그게 내 상황이었다.
“뿌리냐?”
[.......]
“소환 뿌리. 나와라 뿌리. 확인 뿌리.”
[.......]
뿌리를 불러내기 위해서 이런저런 말을 내뱉었지만 그때처럼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흠.”
물론 죽은 횟수를 여전히 0으로 쭉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좋았다.
더욱이 든든한 조력자의 존재는 언제나 환영이다.
특히나 7%라는 능력 제한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거기에 대미지도 썩 나빠 보이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데?”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보아 그 뿌리로 짐작되는 무언가가 나를 향해 공격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뿌리가 몬스터를 죽였음에도 나에게 포인트와 골덴링이 들어온다는 것은 우선 적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했다.
우선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래. 우선 악동 페어리부터 정리하고 보자.”
당장 뿌리와 교감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았기에 그것은 나중으로 돌렸다.
지금은 눈앞에 닥친 악동 페어리가 더 급했다.
저벅.
한발자국을 내딛었다.
펄럭. 펄럭. 펄럭.
그러자 순식간에 3마리의 악동 페어리가 나를 인식하고 곧장 공격을 시도해왔다.
처음의 100마리에 비하면 가소로운 수준.
아이스 볼과 아이스 볼트로 손쉽게 정리를 했고 한발자국씩 더 움직이면서 점차 나의 영역을 넓혀갔다.
나의 영역이 넓혀진다는 것은 그만큼 악동 페어리의 영역은 좁아져갔고.
그렇게 5시간 정도를 투자해 한쪽 구석에 10마리 내외의 악동 페어리를 남기고 모든 악동 페어리를 정리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혹시나 등장하지 않을까 기대했던 뿌리는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흠... 내가 위험한 상황이라 등장을 한 건가?”
분명 위험한 상황이었다.
아니, 위험한 수준이 아니라 죽음은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또 나오겠네.”
이번 라운드는 어쨌든 무사히 넘겼지만 당장 다음 라운드에서 또다시 죽을 위기에 직면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래서 10마리 정도 남은 악동 페어리를 상대로 시험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굳이 하지 않았다.
왠지 일부러 위험을 자초하는 그런 상황에서는 반응이 없을 것 같다는 느낌 아닌 느낌에.
우선은 그렇게 10마리 정도의 악동 페어리를 남겨놓고 로그아웃을 했다.
오늘 본가에 가는 날임에도 벌써 한밤중이니까.
그래서 지금 10마리 정도의 악동 페어리를 정리하고 8스테이지로 넘어가면 오늘은 본가에 가지 못할 것 같았다.
여하튼 그렇게 마지막으로 내가 밟고 있는 땅 밑에 시선을 주고 ‘Revival Legend’를 종료했다.
< 누구냐? 넌. > 끝
< 30일 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