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한 클로즈베타-100화 (100/271)

100화. 0번 구역 (1).

처음 대면한 파블로라는 자는 애초에 밉상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1200레벨 달성을 위해서는 한시가 급했다.

더욱이 코인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여전히 9만개 이상을 소지한 마당에 7%에서 더 이상 현실 구현률을 올리지 못한다는 것은 꽤나 답답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래서 예전에도 그랬지만 다시 한 번 사냥에 모든 것을 불태우겠다는 열의를 가지고 찾은 스밀로돈 서식지에서 본격적인 사냥을 해보기도 전에 예고 없이 등장한 파블로라는 자는 명백히 달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거기에 달갑지 않은 손님이 자신의 조직으로 들어오라는 제의.

우선 받아들일 의향은 있었다.

굳이 어려운 일도 아니고 파블로라는 범상치 않은 자가 속한 ‘루시아’라는 길드가 살짝 궁금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직접 제의를 받자 어려운 수준이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것을 파악했다.

그래서?

“얼음 감옥!”

쿠우웅!

물론 이전에 분명 통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전과 다른 점은 분명히 있었다.

바로 파블로라는 자의 존재가 정확히 내 감각 안에 걸쳐져 있다는 것.

솔직히 스밀로돈 9마리를 처리하고 내 오른쪽을 향해 모습을 드러내라는 말을 내뱉은 것은 진담 반, 농담 반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오른쪽은 아니지만 어쨌든 왼쪽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자 티는 안 냈지만 꽤 놀라기까지 했다.

이상하게 누군가 있는 것 같은 꺼림칙한 느낌에 혹시나 하고 내뱉은 말이었으니까.

여하튼 이번에는 뭔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의 처음과 달리 파블로가 정확히 내 감각 안에 들어왔기에 거리낌 없이 얼음 감옥에 이어 똑같이 아이스 필드를 필두로 여러 광역 스킬을 사용했다.

하지만 분명 내 감각 안에 들어왔던 파블로라는 자의 존재가 공격을 퍼붓는 와중에 마치 처음처럼 갑자기 흐릿해졌다.

즉, 무언가 수를 쓴 상황.

순간 이번에도 왠지 실패한 것 같다는 생각에 입맛이 썼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온갖 공격들이 펼쳐진 자리에 파블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과 달리 이번에는 옷깃이 구겨지고 살짝 엉망인 모습으로.

하지만 아무리 많은 피해를 입혀도 결국 죽이지 못했다는 것으로 내 공격은 실패일 수밖에 없었다.

“휘유. 진짜 장난 아니군. 만약 1초만 늦었다면 죽을 뻔했어. 그리고 벽이 사라지기 전까지 영영 이곳 53번 구역에 얽매일 뻔했고.”

파블로가 말한 53번 구역.

4주년 이벤트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을 뜻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말인즉슨.

“너... 이곳 53번 구역 소속이 아니었군.”

만약 파블로가 눈앞에 없다면 스스로 내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좁은 대한민국에 미래, 명진, 대성, 구산, 대유의 시야를 벗어나 ‘루시아’라는 비밀 조직이 있을 수는 없다.

가뜩이나 명진, 대유뿐만 아니라 미래, 대성, 구산도 없는 위대한 길드라는 호칭까지 갖고 있는 길드는 더더욱.

즉, 파블로가 53번 구역이라는 언급을 하기 전에 미리 알아봤어야 했었다.

“뭐 그게 중요하나? 아시란테 네가 내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그런 의미로 벌을 줘야겠어.”

“벌?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 벌?”

물론 파블로를 죽이지 못한 것은 인정한다.

그것도 2번이나.

하지만 그것이 내가 패배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파블로는 한껏 거드름을 피우면 대답을 함으로써 무척 자신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 벌. 우선 30일짜리야. 아, 사실은 잘난척하고 싶지만 원래 30일짜리밖에 없어. 그러니까 30일 동안 그곳에서 잘 버텨보라고. 그리고 도중에 마음이 바뀌어도... 그래도 잘 버텨. 도중에 벽을 뚫고 불러들이는 것은 불가능하거든.”

파블로가 중간 중간 언급하는 벽.

당연히 각 나라를 구역이라는 이름으로 가로 막는 채널을 뜻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더욱이 이쯤 되니까 파블로 저놈의 능력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숨길 의도도 없어 보였고.

여하튼 분명 채널 혹은 벽이라 불리는 그것을 뚫고 구역을 넘나드는 능력을 보유한 파블로.

문제는 그 벽속에 숨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내 공격을 피했던 것이고.

그래서 내 대처 반응은?

“블링크. 블...”

우선 후퇴하는 것을 선택했다.

오늘만 날이 아니기도 했고 적은 나를 잘 알고 있는데 나는 적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니까.

더욱이 괜히 고집도 객기도 부릴 생각도 없다.

그런데.

[파블로님의 특성 ‘벽 뚫기’로 53번 구역에서 현재 파블로님이 뚫어놓은 0번 구역으로 강제 이동됩니다.

-lumen, 아시란테님은 53번 구역 소속으로 0번 구역에 머무는 기간은 30일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30일 뒤에는 강제로 53번 구역으로 이동됩니다.]

“씨팔.”

분명 늦지 않았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자마자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를 숨길 생각도 없이 곧장 자리를 떴지만 파블로의 ‘벽 뚫기’라는 특성의 적용 범위는 너무 넓었다.

슝!

그렇게 욕설을 내뱉는 와중에 무언가가 내 몸을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곳은 당연히 0번 구역일 테고.

홍주영 아니, 아시란테가 0번 구역으로 빨려 들어가는 사이.

털썩.

“후우. 정말 500레벨이 맞긴 한 거야?”

시종일관 당당한 표정을 유지했던 파블로는 아시란테가 모습을 감추자마자 언제 그런 표정을 지었냐는 듯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럴만한 것이 파블로는 정말 끔찍한 경험을 했다.

바로 그간 무적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벽 뚫기’로 만든 공간이 금이 간 것도 모자로 군데군데 부서져 내림으로써 파괴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리고 만약 그 공간이 파괴된다면 아시란테에게 죽은 목숨인 것은 당연했고 한동안 ‘벽 뚫기’를 사용 못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니, 한동안이 아니라 어쩌면 몇 년에서 평생.

“젠장! 너무 싸게 받아 들였어! 이정도 강자였다면 더 받아야 했다고!”

그렇기에 파블로는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더욱이 자신의 경솔함에 반성했다.

그만큼 이곳에 오기 전에 아시란테를 절대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들었지만 파블로는 무시했다.

자신에게는 벽 뚫기로 만들어 놓은 절대적인 보호공간이 존재 했었으니까.

물론 이번에 그 절대적인 보호공간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고.

“그나저나 아시란테 그놈은 무조건 같은 길드원으로 만들어야해. 그래야 최소한 적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어디 30일간 고생좀 해보라고. 아직 1200레벨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뜻은 0번 구역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뜻이니까.”

파블로는 특성 ‘벽 뚫기’로 그간 여러 구역을 넘나들었다.

물론 어떤 구역을 넘나들지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로지 운으로 정해졌다.

그리고 그 와중에 0번 구역이라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처음에 파블로는 그 0번 구역도 수많은 구역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구역의 시작은 1번부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0번 구역에서 파블로는 모든 능력을 잃었다.

현실 구현률이 0%라면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당시 파블로는 1200레벨을 달성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1200레벨 특권-현실 구현을 갖지 못했었다.

여하튼 0번 구역에서 모든 능력을 잃은 파블로는 30일간 죽고 죽고 또 죽었다.

그만큼 무능력자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후우. 그런 면에서는 천만다행이지. 만약 아시란테 그놈이 1200레벨을 달성한 상태였다면...”

부르르.

파블로는 한차례 몸을 거세게 떨었다.

아시란테는 4주년 이벤트 우승으로 2만 2천개의 코인에 이정도의 능력을 보유했다면 분명 상당히 많은 코인을 갖고 있을 것이 뻔했으니까.

여하튼 파블로는 30일 뒤를 기약하며 스밀로돈 서식지에서 몸을 감출 찰나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이것 참. 최소 하루에 12시간을 접속하고 있어야 하루가 지나간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군. 뭐... 계속 죽다보면 알게 되겠지.”

그 말을 끝으로 파블로는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자신이 있었다.

이 방법으로 가입을 거절한 자들은 한명도 빠짐없이 전부 ‘루시아’ 길드로 영입을 했으니까.

“음...”

시야에는 광활한 들판밖에 보이지 않았다.

몬스터? NPC? 유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허. 정말 별의 별일을 다 겪네.”

당연하지만 이런 상황은 단 한 번도 예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곧바로 정신을 수습했다.

어차피 여기도 다른 국가의 ‘Revival Legend’ 채널일 테고 내 능력이라면 어디를 가든 대접을 받을 수준은 되니까.

물론 그 와중에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있었다.

바로 귓속말.

[초절정미녀 : 누나.]

종종 귓속말을 하는 사이이기에 곧장 누나에게 귓속말을 시도했다.

하지만 누나는 귓속말을 받지 않았다.

아니, 받지 못했다.

그리고 메시지는 왜 받지 못하는지 아주 친절하게 알려줬다.

[다른 구역에 존재하는 대상에게는 귓속말이 불가능합니다.]

“흠...”

물론 안 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하기는 했다.

내가 있는 곳은 0번 구역이고 누나가 있는 곳은 53번 구역이니까.

‘그나저나 로그아웃은 당연히 되겠지?’

파블로는 정확히 30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30일 동안 로그아웃이 안 되면 당연하지만 현실의 나는 영양실조로 사망할 수밖에 없다.

여하튼 로그아웃의 여부가 무척이나 중요하기에 곧장 로그아웃을 시도할 찰나 메시지가 울렸다.

[0번 구역에 발을 딛었습니다.

-0번 구역은 1200레벨 특권: 현실 구현을 보유한 자들을 위한 비공개 테스트 구역입니다.

-lumen, 아시란테님은 1200레벨 특권: 현실 구현을 보유한 적합한 테스트 대상자입니다.

0번 구역의 테스트를 진행합니다.

-30일간의 테스트 기간 동안 뛰어난 적응력으로 높은 점수를 기록시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

메시지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내가 활동하던 53번 구역 같은 그런 구역이 아니라는 뜻이니까.

하지만.

씨익.

맨 마지막의 특별한 보상이라는 말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물론 내 현실 구현률은 고작 7%에 사용 가능한 것이라고는 아이스 볼과 아이스 볼트 2가지밖에 없다.

하지만 누구냐에 따라 그 7%가 천차만별의 위용을 자랑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랑은 아니지만 내 7%는 어지간한 수백레벨 유저에 필적한 위용을 보인다.

“그래도 우선 로그아웃!”

아무리 그래도 로그아웃 여부가 가장 중요하기에 곧장 로그아웃부터 외쳤고 정상적으로 ‘Revival Legend’ 밖으로 빠져 나왔다.

그 후 곧장 휴대폰을 들어 누나에게 전화를 걸 찰나.

“흠... 그래. 아무래도 유, 무선으로 전달하기에는 조금 그렇지.”

이미 휴대폰 통화까지 조심하기로 했다.

대신 ‘Revival Legend’를 이용하기로 했다.

얼핏 말이 안 된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그래도 가장 안전한 대화는 ‘Revival Legend’내에서 이뤄지는 대화니까.

여하튼 과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조심을 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Revival Legend’에 접속했다.

홍주영이 ‘Revival Legend’에 접속 하는 사이.

러시아 북극해에 가까운 이레불리치섬에 일단의 무리가 자리했다.

그리고 상석에 앉은 자가 반대편에 앉은 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시란테를 0번 구역에 보냈다고?”

“네.”

상석에 앉은 자의 질문에 직접 아시란테를 0번 구역으로 보낸 파블로가 대답했다.

“첫 번째 제의를 거절한 것은 아쉽지만 어쨌든 30일간 아무것도 못하고 죽기만 하다보면 결국 마음을 돌리겠지.”

파블로의 답변에 상석에 앉은 자가 만족스런 미소를 띠며 말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살짝 인상을 찌푸린 자들도 있었다.

자신들이 그렇게 당했으니까.

1200레벨만 됐다면 그래도 반항이라도 해봤을 텐데 맨손으로는 도저히 오크 한 마리 잡기도 어려운 것이 그곳이었다.

여하튼 단 한번도 0번 구역으로 30일간 유배를 보내는 전략이 실패한 적이 없기에 ‘루시아’길드 간부 모두는 아시란테도 결국 자신들의 수중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

“아, 그리고 대한민국의 모든 유, 무선 도청과 인터넷 해킹은 하고 있겠지?”

루시아 길드는 아시란테를 완벽하게 지배하기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제 아시란테의 신병 확보가 필요했고 0번 구역으로 보낸 것도 그 일환중의 하나였다.

그만큼 아무런 능력도 없는 현실의 평범한 몸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0번 구역.

어지간한 감심장도 두려울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혹시나 하고 유, 무선 혹은 인터넷에 0번 구역 혹은 자신의 경험담을 언급할 수 있다고 판단을 내렸다.

“네. 많은 비용이 들었지만 현재 한국에서 모든 유, 무선과 인터넷에 0번 구역이라는 단어나 파블로, 벽 뚫기에 대한 내용이 올라오면 즉각적으로 알 수 있게 작업을 해놨습니다.”

“좋아. 비용 따위는 상관없다. 아시란테만 우리 수중에 들어온다면 우리는 이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루시아 길드의 회의가 종료됐다.

< 0번 구역 (1). > 끝

< 0번 구역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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