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32라운드.
펑! 펑! 쾅! 쾅!
“크헥!”
“컥!”
20명으로 이루어진 대성&구산 연합의 공격으로 루돈의 경기장 내에는 몬스터들이 죽어가며 내는 비명 소리만 크게 울려 퍼졌다.
솔직히 그럴만한 것이 우선 나를 빼고 결사대로 선발된 59명 모두는 평상시보다 더 강한 상태일 것이다.
명진만 해도 아빠와 형, 누나를 비롯해 15명의 장비를 최고로 맞추기 위해 명진 내부를 탈탈 털었다고 했으니까.
혹은 일부 더 좋은 장비를 보유한 길드원이 있다면 양해를 구하고 그 길드원의 장비를 빌리기까지 했고.
그리고 당연하지만 그것을 명진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뭉뚱그려 60명의 결사대라지만 서로서로 어디 소속인지는 뻔히 알고 있기에 결국 누가 더 강한지 자존심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더욱이 만약 생각보다 높은 순위에 도달하지 못하면 누구의 활약이 가장 뒤쳐졌는지도 가려야 했고.
여하튼 그렇게 서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참여해서인지 30라운드까지 30명으로 구성된 명진&미래 연합의 1번 팀도, 20명으로 구성된 대성&구산 연합의 2번 팀도 그리고 내가 속한 10명의 3번 팀도 완벽하게 몬스터를 막아냈다.
특히나 가장 먼저 이 로테이션을 제안했던 대성의 김정한 회장이 대유를 깔보는 듯한 뉘앙스를 풍김으로써 서대영 회장은 나에게 적극적으로 움직여 달라는 당부를 했고 정말 최선을 다해서 움직였다.
그것은 오히려 내가 바라던 바였으니까.
그리고 대성&구산 연합에 이어 우리 몫인 31라운드를 손쉽게 끝내고 다시 1번 팀인 명진&미래 연합과 자리를 바꾸기 위해 뒤로 움직였다.
물론 그 와중에 50명 아니, 같은 대유 소속의 9명까지 포함하면 총 59명의 나를 주시하는 시선이 있었지만 무시했다.
왜 그런지 아니까.
바로 30%의 전투력 증가.
당연하지만 이미 아빠와 형, 누나 그리고 석인수 실장에게 전부 물어봐다.
혹여나 나처럼 전투력 증가 메시지를 받았나 해서.
하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명진의 15명이 전부 받지 못했다면 미래나 대성, 구산, 대유 소속의 그 누구도 받지 않았을 공산이 컸다.
즉, 나 혼자만 그 전투력 30% 증가 버프를 받고 있는 상황.
그래서 원래도 강력했지만 더 강력해진 내 한방 한방에 몬스터들이 그대로 휩쓸려 감으로써 생각보다 더 남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만들었다.
그만큼 누가 보더라도 확연한 위력차이가 존재 했으니까.
어쨌든 그렇게 우리 몫의 31라운드를 끝내고 곧 명진&미래 연합 차례로 시작된 32라운드.
쿵!
그전까지 31라운드까지 내내 몬스터만 출몰을 했기에 당연히 몬스터가 출몰을 할 것이라 예상을 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
그런데 뜬금없이 몬스터가 아닌 마치 제단 같이 생긴 그렇게 크지 않은 단상의 등장에 어리둥절할 수박에 없었다.
“뭐야? 저 단상에서 몬스터라도 뛰쳐나온 다는 건가?”
“그러기에는 너무 작은데.”
“혹시 파괴 하라는 것 아냐?”
“돌 아니, 대리석 같아 보이는데 파괴가 될까?”
“글쎄...”
생뚱맞게 등장한 단상에 모두를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 나를 포함해 모두가 들을 정도로 크나큰 목소리가 울렸다.
[32 라운드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합니다.
-제물은 현재 남은 60명의 인원 중에 1명의 목숨 값이며 제물로 선정된 자는 아래와 같은 불이익을 받습니다.
: 참여 보상으로 모두에게 주어진 코인 2,000개의 획득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 제물로 선정된 페널티로 최소 10레벨에서 최대 100레벨까지 랜덤으로 레벨이 하락합니다.
: 제물로 선정된 페널티로 300일간 ‘쓸모없는 자’라는 호칭을 보유하게 됩니다.
: 만약 10위권 이내의 기록 달성으로 특별 보상 구역의 대상자가 되더라도 제물로 선정된 자는 그 보상을 받지 못합니다.
-30초 안에 제단 위에 제물로 바쳐질 1명이 존재하지 않으면 53번 구역(대한민국)의 4주년 이벤트는 32라운드에서 실패로 종료됩니다.
: 남은 시간 : 30초, 29초, 28초...]
“.......”
“.......”
“.......”
분명 방금 전까지는 나름대로 분위기가 좋았다.
32라운드 전까지 각 팀별로 단 한 번도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뜬금없이 발생한 제물이 필요하다는 음성.
분위기가 싸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감당하기 어려운 불이익 때문에 더.
그만큼 여기에 자리한 자들은 몇몇을 빼고는 기본적으로 1000레벨 이상.
최소 10레벨의 하락이라도 클 수밖에 없었다.
100레벨은 말할 것도 없고.
더군다나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쓸모없는 자’라는 호칭은 도저히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28초를 지나 27초, 26초가 흘러갈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52번 구역(일본)의 경기장.
당연하지만 이곳도 32라운드를 앞두고 똑같은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음성을 확인한 미쓰야 길드의 류세치 회장은 단 1초의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힐러 한명이 나서라!”
류세치 회장은 31라운드까지 진행을 하며 그다지 난이도가 높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힐러를 뽑았다.
31라운드까지 진행하면 힐러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
“.......”
“.......”
물론 일본을 거의 장악했다시피 한 류세치 회장의 말이기에 딱히 반박하는 말은 새어나오지 않았다.
다만 누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누구는 낯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졌을 뿐.
저 페널티를 받는다는 것은 악착같이 여기까지 올라왔지만 결국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뜻이니까.
그렇게 힐러가 아닌 자들은 힐러들을 쳐다봤고 힐러인 자들도 서로 눈치만 봤다.
류세치 회장이 누구를 딱 지칭한 것이 아니라 힐러 중에 한명이 나서라고 했으니까.
즉, 힐러들은 자신이 안 걸리기를 빌고 빌었다.
“쯧쯧. 거기 3시 방향의 탱커 뒤에 숨은 너! 그래. 네가 제물이 돼라!”
다들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에 마땅치 않았는지 류세치 회장이 직접 손을 들어 한쪽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힐러를 가리켰다.
그러자 류세치 회장의 손가락에 지명을 당한 힐러가 곧장 입을 열었다.
류세치 회장의 성격상 페널티를 받아 나락으로 떨어진 자신을 구제해줄 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회장님! 저는 여기 있는 다른 힐러보다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간 미쓰야 길드를 향해 항상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니 제발...”
거의 빌다시피 외치는 제물로 지목당한 힐러.
하지만 그는 끝까지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류세치 회장이 마치 날파리를 쫓아내듯 휘젓는 손짓에 자신에게 다가온 자들로.
그리고 비루 맞은 개처럼 질질 끌려 결국에는 단상위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러자 류세치 회장을 필두로 59명이 전부 들을 수 있는 커다란 함성이 울렸다.
[제물이 받쳐졌습니다.
-52번 구역(일본)의 4주년 이벤트가 계속 이어집니다.]
그렇게 일본은 한명이 줄어든 59명으로 32라운드를 맞이했다.
당연하지만 아무도 그 제물로 받쳐진 힐러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자신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전부 일본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101번 구역(파푸아뉴기니 독립국)의 경기장.
“제가 제물이 되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제물이 되겠습니다. 분명 이 자리에 위치한 60명 중에서 제가 제일 약한 것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제가 제물이 되는 것이 합당합니다.”
“흠... 좋다. 구스티를 제물로 선택을 하겠다. 다만 제물로 선택됨으로 구스티가 받는 불이익은 전부 보상을 할 것이고 구스티가 원래의 실력을 되찾을 때까지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다. 다들 구스티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전해라.”
분명 일본과 달리 자발적인 제물이 되겠다는 상황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 수는 극히 적었다.
물론 다른 유형도 있었다.
34번 구역(멕시코)의 경기장.
정보에는 발이 없고 그렇기에 거리의 제약을 타지 않는 속성이 있지만 그래도 미국 바로 아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멕시코는 나름대로 많은 정보를 주워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4주년 이벤트에 그 어떤 나라보다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엎치락뒤치락하며 겨우 60명을 선발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1번 팀, 2번 팀, 3번 팀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였고 다만 보상을 위해서 일시적으로 힘을 합치는 상황이었다.
즉, 32라운드의 제물을 바치라는 메시지에 싸움이 나는 것은 당연지사.
물론 그 싸움이 1번 팀, 2번 팀, 3번 팀의 삼파전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이들은 멍청하지 않으니까.
바로 약육강식.
더욱이 철저한 이해득실에 따라 30명으로 구성된 1번 팀과 20명으로 구성된 2번 팀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10명의 3번 팀을 압박하고 공격을 퍼부었다.
제물 1명을 내놓으라고.
그게 그들이 봤을 때 가장 합리적이었으니까.
그리고 1번 팀과 2번 팀은 상황에 맞게 움직였고 3번 팀은 반항했다.
순순히 제물 1명을 넘겨줄 바에 아예 모두 실패를 겪는 것이 낫다는 각오로.
곧 발생한 50명과 10명의 싸움.
당연히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50명의 승리로.
다만 문제라면 30초 내에 제물을 바쳐야만 하는 상황.
그렇기에 3번 팀의 대장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버텨! 무조건 30초만 버텨라! 이 개새끼들한테 절대 좋은 일은 시켜줄 수 없다!”
“네!”
“알겠습니다!”
만약 1분?
아니, 30초가 아닌 10초만 더 주어졌다면 어쩌면 1번 팀과 2번 팀의 작전이 성공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30초는 상당히 짧았다.
그래서 결국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60명은 똑같은 메시지를 들었다.
[30초 내에 단상 위에 제물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34번 구역(멕시코)은 32라운드에서 실패하였습니다.
-루돈의 경기장에서 모두 쫓겨납니다.]
“씨팔!”
“개새끼들!”
“한명만 희생을 했으면 됐을 텐데 이 머저리 같은 새끼들아! 니들 대가리에는 똥만 찼냐! 어? 이 이기적인 새끼들아!”
“그럼 네가 희생을 하면 됐잖아!”
“맞아. 정 급하면 지가 손해를 보면 되지! 지도 절대 손해는 안 보면서 어디서 쓰레기가 나불대긴 나불대!”
그 메시지에 멕시코의 60명의 유저는 서로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53번 구역(대한민국) 경기장.
“.......”
“.......”
“.......”
시간은 이제 15초밖에 남지 않았다.
물론 혹시나 하는 생각은 있었다.
종종 봐왔으니까.
바로 거룩한 희생이니 혹은 숭고한 결단이니 하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항상 주인공의 몫이었고 결국 전화위복이라고 차후 그것이 되려 큰 이익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뇌리에 자리 잡은 혹시나 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선뜻 나서지 않은 이유는 상황이 그것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말인즉슨 그런 결단이 필요한 상황은 마지막의 마지막에 다다라 정말 엄청난 보물을 앞에 두고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야 극적이니까.
그만큼 함께 온갖 난관과 고생을 해가며 겨우 끝에 다다라 보물을 손에 쥘 찰나 그중에 한명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기는커녕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것만큼 아찔한 상황은 없다.
그런데 32라운드에 오기까지 솔직히 난관도 아니고 고생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실질적으로 내가 손가락만 빨며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더라도 수월하게 32라운드까지 오는 것이 가능할 정도였다.
즉, 그런 극적인 장면을 기대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더욱이 그럴 상황이 벌어질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 해도 하고 싶지는 않았다.
0이 아니라 마이너스라는 위험을 자초해가며 100이라는 보상을 노리지 않고 그냥 남들과 똑같이 50정도의 보상만 얻어도 충분하니까.
여하튼 나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주변을 살폈다.
힐끔힐끔.
기웃기웃.
아마 미래, 명진, 대성, 구산, 대유라는 5개의 조직이 아니라 하나의 조직이었다면 오히려 문제는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무려 5개 아니, 재야의 고수 4명까지 포함하면 6개의 세력이 있다는 것이 서로 눈치만 보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누군가 나서서 한곳을 콕 집어 지목을 하는 순간 나머지 사람들로부터 비정한 인간이라는 눈총을 받을 것이 확실했고.
물론 간단할지도 몰랐다.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 다수결의 원칙이니까.
하지만 이 시스템은 그걸 이미 예상이라도 했는지 고작 30초밖에 시간을 주지 않았다.
서로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내기에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시간.
그리고 그때 처음 이 로테이션을 주장한 대성의 김정한 회장이 입을 열었다.
“32라운드는 명진&미래의 차례! 그 안에서 나와야 합니다! 지금 당장요!”
김정한 회장의 그 말은 기폭제가 됐다.
“맞습니다.”
“로테이션을 돌기로 했고 32라운드는 명진&미래의 몫. 당연히 거기에서 제물이 나와야 합니다.”
“아니, 그 로테이션은 단순히 몬스터를 처리하는 순서일 뿐이고 지금 이 제물을 바치는 것은 우리 60명 전부에게 주어진 일인데 왜 그것을 명진&미래 몫으로 떠넘깁니까!”
김정한 회장의 말이 불러온 후폭풍은 거셌다.
물론 김정한 회장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어쨌든 김정한 회장이 대화의 물꼬는 텄고 그게 당연했으니까.
나조차도 분명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하고 있었고.
다만 명진&미래 연합이라는 이름이 말하듯이 거기에는 내 가족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만 아니면 돼.’에는 내 가족들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슬쩍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7초.
당연하지만 나서고 싶지 않았다.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가만히 있고 싶었다.
나쁜 악역이 되고 싶지도 않았고 선한 역할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손해라는 것을 알기에 움직였다.
제물로 삼을 대상?
당연히 대유다.
어차피 처음 접근을 한 이유가 차후 대유와는 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그때 명진&미래 연합 내에서 누군가 제단 쪽으로 재빠르게 움직였다.
< 32라운드. > 끝
< 뿌린 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