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루돈의 경기장.
8개의 몬스터 몰이 팀을 관리하며 항상 아시란테 옆에 붙어 그를 서포터하는 이진영 실장은 100마리가 훌쩍 넘는 몬스터를 정리하고 잠시 우두커니 서 있는 아시란테가 그다지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분명 자신에게 울린 각 구역별로 60명의 결사대 모집이 종료됐고 곧장 4주년 이벤트를 시작한다는 메시지가 아시란테에게도 울렸을 테니까.
아니, 자신과 아시란테뿐만 아니었다.
“내일부터 4주년 이벤트가 시작이라는데?”
“아니 오늘이지. 메시지에서 현 시간부터 시작이래잖아.”
“그래봤자 루돈의 결투장이라는 곳으로 가는 것은 24시간 뒤니까 결국 내일부터 시작이나 마찬가지잖아.”
“물론 그렇게 따지면 그렇긴 한데...”
이진영 실장은 7번 몰이 팀의 대화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오늘이든 내일이든 어차피 자신은 그 60명에 포함이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아시란테는 그 대상자.
그래서 저렇게 유심히 메시지를 살핀다고 생각을 했다.
혹여나 60명의 대상자라고 자신이나 7번 몰이 팀과 다른 메시지가 더 울렸을 가능성도 있고.
그런데.
“아이스 레인!”
갑작스런 몬스터를 향한 아시란테의 공격.
그것도 멀찍이서 리젠된 고작 1마리를 향해 사용된 광역 스킬에 이진영 실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차피 다음 8번 몰이 팀에서 100마리가 넘는 몬스터를 몰아놨고 지금까지 아시란테는 고작 1마리 때문에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응? 아이스 스톰도 아니고 아이스 필드도 안 깔아 놨는데 한방에?”
“저거 아이스 레인 맞지?”
“당연하지. 아시란테님이 쓰는 아이스 스톰하고 쏟아지는 우박은 저거랑 완전히 다르다고.”
“그런데 전과 달리 아이스 레인이 왜 한방인데?”
“...그야 나도 모르지.”
7번 몰이 팀의 쑥덕거리는 대화.
이진영 실장은 그 대화에 아시란테에게 진절머리가 나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얼추 안다고 생각했는데 또 아시란테의 색다른 모습이 튀어나왔으니까.
물론 진절머리가 나는 것과는 별개로 곧장 기억의 구슬을 사용했다.
아시란테에 관한 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영상으로 찍어 남겨 놓으라는 지령을 받았으니까.
그것을 위해 자신이 아시란테 옆에 항상 붙어 있는 것이고.
“호오.”
30%의 전투력 증가.
아이스 필드가 깔리지도 않았음에도 아이스 레인 한방으로 죽어 나가는 몬스터로 그 위용을 한눈에 체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진영 실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얼른 다음 몰이 팀으로 가죠!”
정확히 이벤트 기간에만 적용되는 버프.
그래서 적용되는 기간 최대로 활용을 해야 하기에 이진영 실장을 독촉했다.
23시간 뒤.
밥도 먹고 잠도 자고 휴식도 취하면서 게임을 했다.
중요한 이벤트를 앞두고서 30%의 전투력 증가에 들떠 정작 진짜로 중요한 것을 놓치는 그런 바보 같은 행동을 할 생각은 없기에.
그리고 그 사이에 서로 모르는 척하는 것을 골자로 아빠와 형, 누나와도 긴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거기에 생각지도 못한 미래의 연보라까지.
[kali : 난 아직도 홍상만 회장님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겠어.]
[lumen : 뭐. 내 능력이 4주년 이벤트에 참여하기에 부족하니까...]
연보라의 아이디는 kali(칼리).
저번 모임에서 아이디를 교환해서 종종 귓속말도 하는 사이였기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받아넘겼다.
[kali : 글쎄. 모르겠어. 진짜 그 이유뿐인지.]
[lumen : .......]
예전부터 그랬지만 연보라에게는 무언가 예리한 구석이 있었다.
[kali : 어쨌든 이번 일이 홍주영 너의 발전에 지장이 없었으면 좋겠어. 나는 너의 성장을 적극 응원하는 입장이거든.]
[lumen : 응. 고마워.]
그렇게 연보라의 걱정 아닌 걱정을 끝으로 대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동시에 아주 어릴 적 기억이 어렴풋하게 살아났다.
소꿉친구.
그것도 둘도 없는 소꿉친구였다.
언제부터 멀어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절레절레.
하지만 곧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상념을 떨쳐내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 상태로 루돈의 경기장으로 입장했다 실수로라도 연보라에게 아는 척을 하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해서는 안되니까.
“상태창 확인.”
그렇게 상념을 떨쳐내고 대유의 서대영 회장이 집결 장소로 정한 노쓰우드 성의 중앙 광장 카페로 이동하기 전 마지막 점검을 위해 상태창 확인에 들어갔다.
[이름 : lumen, 아시란테
레벨 : 453
죽인 횟수 : 1284, 죽은 횟수 : 0
칭호 : 나 혼자 만렙 클베 유저 외 5개.
생명력 : 1,873,000(now) / 1,873,000(max)
마나 : 1,467,500(now) / 1,467,500(max)
힘 : 1740 민첩 : 1740 체력 10930
정신력 : 6425 지력 : 13280
잔여 스탯포인트 : 0
잔여 스킬포인트 : 0
특성 : 아이스 맨, 동반 성장, 강화의 신.]
“...역시 호칭이야.”
물론 레벨업의 효과도 컸다.
더욱이 내 동반 성장은 그 레벨업으로 획득한 스탯포인트를 2.5배로 뻥튀기 해줌으로써 도저히 453레벨로 보기 어려운 스탯포인트를 만들어 줬고.
하지만 그전의 다른 호칭도 그랬지만 한 번에 모든 스탯포인트를 300씩 올려주는 이런 호칭은 시선이 더 갈 수밖에 없었다.
레벨업이라는 남들과 공평하게 주어진 방식에서 얻은 것이 아니니까.
여하튼 상태창 점검을 마지막으로 서둘러 노쓰우드 성으로 움직였다.
명백히 나는 아직 대유 소속이고 그렇기에 서대영 회장보다 늦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함께 하는 4명의 재야 고수 앞에 서대영 회장의 위신을 깎아 내리는 꼴이니까.
그만큼 대유에서 함께 하는 동안은 대외적으로나마 서대영 회장의 뜻대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노쓰우드 성의 중앙 광장 카페에는 서대영 회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8명이 미리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곧장 자리에 착석했다.
격한 환대를 받으며.
그만큼 서대영 회장을 대장으로 한 3번 결사대를 향한 도전은 많았고 그 도전을 뿌리치는 와중에 내가 보여준 것이 꽤 많았다.
물론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사냥을 하는 와중에 몇 번이고 불려가는 상황이 마뜩찮았기에 과감하게 움직였다.
어차피 외관상 내 아이디는 아시란테고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를 제외하고 모든 것을 보여줘도 충분히 내 전력의 30%는 감춘다고 생각을 했으니까.
그만큼 쿨타임 제로의 블링크의 위용은 엄청났다.
여하튼 정확히 루돈의 경기장으로 입장하기 20분을 남기고 서대영 회장이 일단의 무리를 이끌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 후 최선을 다하자는 그래서 최소한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자는 언급을 제외하고는 별 말은 없었다.
그리고 그때 메시지가 울렸다.
[4주년 이벤트를 위해 각 구역별로 선발된 60명은 루돈의 경기장으로 이동됩니다.]
슝!
그 메시지와 함께 어딘가로 몸이 끌려가는 느낌이 들었고 곧 어마어마한 크기의 원형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각 도시나 성의 북쪽에 위치한 결투장은 장난감으로 보일 정도로.
하지만 그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바로 시스템이 말한 구역 즉, 채널이나 벽으로 막혀 서로 왕래가 불가능했기에 단 한 번도 마주하지 못한 외국의 ‘Revival Legend’ 유저들이 주변에 자리했다.
더욱이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Где, черт возьми, это?”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初めて向き合うのか?” (처음으로 마주 하는 건가?)
“It's amazing.” (신기하군.)
“Peut-être que les plus grandes puissances de chaque pays sont rassemblées.” (아마 각 나라에서 손에 꼽히는 세력들이 모인 거겠지.)
“Apakah Anda mencoba bersaing dengan mereka.” (이들과 경쟁을 하라는 건가.)
“但 你 为 什 么 听到 这 个 对话?” (그런데 어째서 대화가 들리는 거지?)
여전히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영어와 중국어 러시아어 등은 안다.
하지만 전혀 알지 못하는 언어로 나누는 대화까지 정확히 들려왔다.
그리고 그것은 나뿐만이 아닌 듯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함에도 막힘없이 대화가 이루어졌다.
물론 양측이 서로 상대방의 언어를 알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게 한두 명이 아니었다.
전부.
분명 기겁하고 놀라 자빠질 일인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펄쩍 뛰듯이 놀라는 이들은 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즉, 얼추 이 ‘Revival Legend’에 대해 알고 있는 자들이라는 것.
물론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 자리한 60명은 각 국가에서 내로라하는 자들일 테고 그만큼 아는 것이 많을 테니까.
그리고 그 와중에 메시지가 울렸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각 구역별로 선발된 60명의 결사대에 경의를 표합니다.
-60명의 결사대에 뽑힌 것으로 우선 모두에게 2,000개의 코인이 주어지며 10위권 이내의 기록을 달성한 구역에는 순위별로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정확히 1분 뒤에 각 구역별로 선발된 60명의 결사대는 자신들의 영광의 탑이 위치한 곳으로 이동되며 그 영광의 탑을 끝까지 사수해야 합니다.
-최종 한 개의 구역이 남을 때까지 진행됩니다.]
1분 뒤에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
그 순간 1000명쯤 되어 보이는 자들 속에서 몇몇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유의 서대영 회장은 물론이고 아빠마저도.
물론 나는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끝까지 가만히 있지는 못했다.
바로 중국 양화 그룹의 장치앙린 회장이 나에게 다가옴으로써.
“반갑습니다. 영상으로만 보다 이런 기회에 마주하게 되는 군요.”
분명 중국어로 내뱉는 말이지만 정확히 귀에 들어왔다.
그래서 나도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대답했다.
“네. 회장님 반갑습니다.”
“이거 아시란테님이 있는 한국 팀이 부럽군요. 솔직히 두렵기도 하고요.”
“별말씀을요.”
그렇게 1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장치앙린 회장과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고 차후를 기약했다.
그리고 1분이 지나자마자 또다시 어디론가 이동되는 것을 느꼈다.
“이건 마치 100미터 육상 경기장 트랙 같군요.”
“확실히 그러네요.”
100미터 육상 경기장 트랙을 처음 언급한 자의 말처럼 생각보다 꽤 널찍했지만 양 옆이 막힌 길게 뻗은 직선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우리의 뒤에는 영광의 탑이라 불리는 그렇게 크지 않은 탑이 자리했고.
“뭐. 간단하고 좋네요. 결국 저 앞쪽에서 뛰쳐나오는 몬스터로부터 이 탑만 지키면 된다는 거니까.”
“잘해봅시다. 어차피 이제는 여기 60명 모두가 한 팀이니까요.”
잘해보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최선을 다 할 생각이다.
어쩌면 보상으로 쿨타임 제거 고대 주문서를 획득할 수 있으니까.
그만큼 쿨타임 제거 고대 주문서만 넉넉하다면 지금 당장 몇 배나 강해질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몽트의 퀘스트가 끝나자마자 아빠를 비롯해 석인수 실장에게 쿨타임 제거 고대 주문서에 대한 문의를 했다.
분명 교환이 가능했으니까.
하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다.
물론 알았으면 당장 나에게 줬을 것이다.
이미 아빠는 물론이고 석인수 실장 등은 내 특성 ‘강화의 신’에 대해서 알고 있으니까.
어쨌든 쿨타임 제거 고대 주문서를 희망하며 그렇게 전의를 불태웠다.
나를 주시하는 미래, 명진, 대성, 구산 소속의 인물들의 시선은 무시하며.
당연하지만 명진에서 나를 주시하는 것은 의도된 연출이었지만.
여하튼 나름대로 준비를 하는 사이 메시지가 울렸다.
[1라운드를 시작합니다.]
“쿠오오오!”
“취익. 취익.”
난이도의 기준점이 되는 1라운드.
그리고 1라운드의 출몰 몬스터가 오크인 것을 확인하자 몇 명이 입을 열었다.
“어쩌면 꽤나 긴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러게요.”
나도 허약한 몬스터의 대명사인 일반적인 오크의 등장에 꽤나 라운드가 길 것 같다는 예측이 됐다.
“아이스 스톰.”
“파이어 레인!”
“살을 에는 칼바람.”
“대지의 분노.”
“울부짖는 메아리.”
나름대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5개 길드의 최고 전력들.
그래서인지 300마리 가까운 오크들은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마치 증발하듯이 사라졌다.
그 모습에 앞으로 뛰쳐나가 오크들을 전부 내손으로 처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400레벨 정기 퀘스트인 ‘스콜피온 킹을 저지하라.’에서도 기여도에 따른 추가 보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눈치가 너무 많이 보였다.
내가 생각한 것을 이들도 생각하지 말란 법도 없었고.
그리고 그런 아쉬움을 느낄 때 대성 그룹의 김정한 회장의 목소리가 한쪽에서 흘러나왔다.
“흠. 아무래도 서로 경쟁적으로 몬스터를 잡기 위해 초장부터 힘을 빼는 것은 좋은 선택으로 보이지 않군요. 현재 이곳에 있는 것은 3개의 팀. 우선 한 팀씩 돌아가며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러다 어느 한 팀에서 막기 벅찬 순간이 나오면 다른 팀에서
도움을 주고요. 어차피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3개의 로테이션으로 몬스터를 막자는 김정한 회장의 말.
나로서는 내심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현재 나는 대유 소속이고 그 대유는 딱 10명뿐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내 몫으로 떨어진 몬스터가 많다는 뜻이고.
하지만 김정한 회장의 말에 불쾌한 기색을 보이는 자도 있었다.
바로 서대영 회장.
왜냐하면 김정한 회장이 딱히 대유를 지목하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곳에 자리한 모두가 알 수 있을 정도로 가장 먼저 벅찬 상황에 마주할 곳은 대유라는 뉘앙스로 말을 했다.
물론 대유가 10명이라는 가장 적은 숫자인 것도 한몫 했을 테지만.
여하튼 아무도 김정한 회장의 말에 반박을 하지 않았고 2라운드부터는 각 라운드마다 명진&미래 연합, 대성&구산 연합 그리고 대유로 로테이션을 돌기로 결정이 됐다.
그래서 곧 대성&구산 연합과 함께 뒤로 몸을 뺐다.
그 후로는 31라운드까지 3개의 팀이 완벽하게 몬스터를 틀어막았다.
나도 최선을 다해서.
32라운드에 그것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 루돈의 경기장. > 끝
< 32라운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