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아시란테가 누구야? (2)
“아이스 필드. 그리고 중첩 살얼음.”
파사사삭!
항상 하던 대로 사냥에 열중했다.
그것도 사냥터를 옮기지 않고 긴 뿌리 나무 몬스터가 나오는 여기 버려진 나무 들판에서.
더욱이 성창과의 그 일이 있은지 벌써 3일이 흐른 상황.
그렇지만 한산했다.
아니, 한산하다는 수준이 아니라 여전히 이곳 버려진 나무 들판에는 나 혼자만 존재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래서 분위기로만 봐서는 ‘아시란테’라는 아이디를 띠우기 작전은 실패한 것 같았다.
하지만 딱히 조급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50명.
정확히 50명 전부가 기억의 구슬을 사용했다.
그리고 성창이 그 50명이 촬영한 영상을 전부 컨트롤 한다?
절대 불가능하다.
사람의 욕심은 컨트롤 가능한 범위 안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쏟아지는 우박! 다연발 아이스 애로우!”
후두둑. 후두두둑.
그래서 사냥에 열중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아시란테’라는 이름은 널리 퍼질 테니까.
그리고 아빠를 비롯해 가족들과 상의한 진짜 ‘아시란테’ 이름을 퍼트릴 계획은 아직 시작도 안 했고.
대성 길드 본부.
“그놈이 맞지?”
“네. 분명합니다.”
대성의 김정한 회장의 물음에 장인수 비서실장이 한치의 의심도 필요 없다는 듯이 다부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 대답에 김정한 회장이 어금니를 깨물며 입을 열었다.
“아시란테 이 개잡놈의 새끼. 감히 운영자를 사칭해 우리를 농락해?”
누더기 복장을 한 아이스 계열의 마법사.
대성은 한때 그 누더기 복장을 한 아이스 계열의 마법사를 찾았던 적이 있었다.
본인 입으로 운영자라는 언급을 했기에.
물론 김정한 회장을 비롯해 대성의 수뇌부도 쉽사리 믿지는 않았지만 그 누더기 복장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의 강자가 누더기 복장을 착용할리도 없지만 설사 착용을 했다 하더라도 그런 저레벨 사냥터에서 사냥이나 하고 자빠질 리가 없으니까.
더욱이 차후 확인한바 시비는 자신들의 길드원이 먼저 걸었었고.
“그나저나 이정도면 이제는 정말 운영자라 해도 믿을 것 같습니다.”
“.......”
“.......”
김정한 회장의 분노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한쪽에서 새어 나온 나지막한 말.
그 말에 회의실은 언제 그렇게 시끄러웠냐는 듯이 침묵이 감돌았다.
방금 전까지 분노를 과감 없이 드러낸 김정한 회장마저도.
그만큼 비밀리에 입수한 영상속의 그는 정말로 말도 안 되게 강했다.
꼭 대성으로 영입을 하고 싶은 만큼.
그리고 운영자 같다는 말을 내뱉어 침묵을 만들어낸 장본인인 대성의 에이스들만 따로 모아 구성한 특별대의 수장 마길두가 연이어 입을 열었다.
“과거의 인연이 어찌 됐든 알게 된 이상 놓쳐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저런 어마어마한 보석을요. 만에 하나 저자가 미래나 명진, 구산, 대유에 들어간다면... 저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김정한 회장은 마길두를 바라보며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마길두는 어깨를 으쓱하며 장난스런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 같은 몸을 쓰는 자가 어찌 알겠습니까? 그건 회장님을 필두로 여기 계신 똑똑한 분들이 해야 하지요.”
구산 그룹.
“그자의 이름이 아시란테군.”
“네. 그리고 저자가 1차, 2차를 넘어 3차 클로즈 베타까지 최대 레벨을 달성했을 가능성이 가장 농후한 자고요. 아니, 이 영상을 보니 확실히 알 것 같습니다. 아시란테 저 자는 1차, 2차, 3차 전부 최대 레벨을 달성한 자 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도저히 저 능력을 설
명할 길이 없으니까요.”
정운기 회장의 말에 이태선 실장이 곁들어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시란테로 이름이 밝혀진 그 아이스 계열의 마법사와 스콜피온 킹 퀘스트 때 대면한 적이 있는 정석영이 입을 열었다.
“강해졌네요. 고작 131레벨 때도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더요. 물론 131레벨 때의 능력을 감안하면 그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레벨을 올렸겠지만 그래도 저자의 1레벨은 남들의 10레벨 혹은 100레벨 그 이상 같습니다.”
정석영의 넋두리에 가까운 말.
하지만 그 말에 아무도 반박을 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렇게 보였으니까.
“그나저나 저렇게 대놓고 정체를 드러냈다는 것은...”
스콜피온 킹의 퀘스트 때 30번 참가자로 끝까지 아이디를 공개하지 않았던 아시란테.
그런데 이번에는 정체를 드러냈다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어쩔 수 없이 드러낸 것이 아닌 마치 대놓고 자신을 드러낸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리고 그것을 이 자리에 모인 모두는 충분히 유추할 정도의 능력은 있었다.
“일종의 시위 아니겠습니까? 자신의 몸값과 가치를 선보이는 쇼케이스 같은 시위요.”
“흠...”
이태선 실장의 말에 정운기 회장이 침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태선 실장은 정운기 회장의 침음을 확인하고 연이어 말을 내뱉었다.
“아마 아시란테 저 자도 서둘지는 않을 겁니다. 기껏 선보인 쇼케이스를 제대로 된 손님이 오기 전에 장사를 마무리 짓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래. 좋아. 어쨌든 잡아야해. 저 아시란테라는 존재는 이 좁은 대한민국을 넘어 차후 벽이 사라졌을 때 가장 필요한 존재일지 모르니까. 특히나 어떻게든 대한민국을 물어뜯고 싶어 하는 중국과 일본을 막기 위해서라도.”
“네. 알겠습니다.”
“최대한 방법을 강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이미 한차례 아시란테 더 정확히는 lumen(루멘)과 접촉이 있었던 대성과 구산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두르지는 않았다.
성창에 보인 행동으로 보아 아시란테 그자는 조급함도 그리고 당장에 움직일 기미 자체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괜히 서둘다 나쁜 인상만 줄 수 있고.
물론 미래와 대유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품을 가능성이 낮다 해도 두 손만 빨고 가만히 있기에는 아시란테라는 존재는 너무나 매력적이었기에.
특히 미래의 연보라는 그 영상을 확인하고 한명의 존재를 떠올랐다.
로브를 뒤집어쓰고 마스크까지 착용했음에도 왠지 모르게 소꿉친구인 홍주영이.
하지만 곧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왜냐하면 명진 입장에서 저런 어마어마한 보석을 집 밖의 초라한 원룸에 내팽개쳐놓는다?
연보라는 명진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 ‘Revival Legend’가 어떤 의미를 게임인지 그 누구보다 더 잘 아는 명진이기에 더.
그렇게 연보라는 왠지 아시란테라는 자에 겹쳐 보이는 홍주영을 지우기 위해 고개를 더 크게 저었다.
물론 명진?
움직였다.
하는 척만 아닌 실제로 꽤나 심도 있게.
그만큼 홍상만 회장은 작은 구멍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이 된다는 것을 아주 잘 아는 인물이었다.
버려진 나무 들판.
‘이건 신중해도 너무 신중한 것 아닌가?’
벌써 1주일째.
나에 대한 이야기가 충분히 퍼질 만큼 퍼졌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 조용했다.
마치 나에 대한 관심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물론 누나를 통해서 미래나 대성, 구산, 대유 등이 나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어쨌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사냥에 대한 끈은 일절 놓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언제 들어도 정겨운 메시지가 하나가 울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오. 상태창 확인.”
[이름 : lumen, 아시란테
레벨 : 299
죽인 횟수 : 1137, 죽은 횟수 : 0
칭호 : 나 혼자 만렙 클베 유저 외 4개.
생명력 : 1,387,000(now) / 1,387,000(max)
마나 : 1,042,500(now) / 1,042,500(max)
힘 : 1320 민첩 : 1320 체력 6950
정신력 : 4255 지력 : 7970
잔여 스탯포인트 : 350
잔여 스킬포인트 : 0
특성 : 아이스 맨, 동반 성장, 강화의 신.]
성창의 보스 몬스터 레이드에 참가할 때의 레벨이 정확히 264레벨 이었다.
그 후 1주일 동안 정확히 35레벨을 올렸다.
그리고 이제 1레벨만 더 올리면 드디어 3차 클로즈 베타 당시 달성했던 300레벨과 동률인 상황.
뿌듯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뿌듯함과 별개로 지력에 눈이 쏠렸다.
거의 8000.
물론 아이템의 효과가 컸다.
바로 반지, 귀걸이, 목걸이에 다른 옵션도 옵션이지만 각각 지력 250씩이 붙은 전설 등급의 신성한 만년설의 기운이 깃든 악세사리들.
내가 직접 착용해보니 어째서 좋은 아이템에 목숨을 거는지 알 것 같았다.
우선 더 긴 뿌듯함은 1레벨을 더 올려 300레벨 때 만끽해도 충분하기에 350개의 잔여 스탯포인트를 지력에 전부 투자하고 상태창을 닫았고.
그리고 이번에는 인벤토리에서 하나의 아이템을 꺼냈다.
“아이템 확인.”
[뿌리 (일반)
-먹으면 뿌리 하나를 획득한다.]
긴 뿌리 거목에게서 얻은 아이템.
여러 게임을 하면서 이렇게 불친절하고 두루뭉술한 표현은 처음 봤다.
당연하지만 아빠와 형, 누나에게도 물어봤다.
내가 긴 뿌리 거목나무를 사냥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성창에서 그때 보스 몬스터가 드랍한 모든 것을 나에게 양보를 했다는 것도.
하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다.
석인수 실장마저도.
물론 최하위 등급인 일반 등급.
거기에 아이템에 대한 설명도 고작 한줄.
그렇기에 유추해보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은 갔다.
재료 아이템이라 비교가 조금 그럴지 몰라도 돌 다람쥐의 소화 되지 않은 광물 덩어리가 11줄이 넘는 긴 설명을 자랑했다는 것에 비춰보면 더욱더.
“흠.”
내 새끼손가락만큼의 길이에 말라비틀어진 고사리 같은 그 뿌리를 잠시 내려다봤다.
“고작 일반 등급. 그리고 이게 가치가 있는 거라면 성창이 그렇게 모든 것을 나에게 주지는 않았겠지.”
성창은 내게 드랍한 모든 것을 주기로 하고서 그 드랍 아이템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마치 나와 봤자 뻔 한 아이템밖에 없다는 것을 직감이라도 한 듯이.
더욱이 희귀만 됐어도 성창에 질문을 할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고작 일반 등급.
그 쓰임새와 효능에 대해 일주일 넘게 고민을 하기에는 솔직히 너무 하찮았다.
그래서.
질겅질겅. 꿀꺽.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고무마냥 질긴 그것을 몇 번 씹다 목구멍 속으로 넘겼다.
1분, 2분, 3분 그리고 5분.
우선 조금 기다렸다.
혹시나 하고.
하지만 5분이 지나도록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뭐야? 소환수 목록 확인.”
[소환수 목록.
-현재 소환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환수 스킬을 습득하고 사용 가능합니다.]
“테이밍 몬스터 목록 확인.”
[테이밍 몬스터 목록.
-현재 테이밍한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테이밍 몬스터 스킬을 습득하고 사용 가능합니다.]
“.......”
아무 것도 없다는 메시지.
그 메시지를 확인하고 오른발을 땅에서 떼 봤다.
연이어 왼발도.
그리고 이번에는 점프도 해봤다.
왜냐하면 뿌리라는 것은 대체적으로 땅속에 파묻혀 수분과 영양분을 흡수하고 결정적으로 그 몸통을 유지하는 근원이 되는 부분이기에.
그래서 땅에 맞닿아 있는 발 혹은 발바닥에 뭔가 있나 싶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동시에 두 발을 땅에서 떼는 점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허.”
물론 딱히 큰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게 아무리 보스 몬스터가 드랍을 했다 해도 고작 일반 등급이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아무런 일도 발생시키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먹었다는 사건이 발생했고 그 사건으로 인한 어떤 식으로든 결과가 발생해야 하는 것이 보통의 수순이니까.
하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고민을 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기에.
우선 내일은 집에 가는 날이기에 시간부터 확인 했다.
정확히 새벽 1시가 살짝 넘은 시간.
곧바로 버려진 나무 들판의 세이프티 존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곧바로 로그아웃을 했다.
몇 시간 더 사냥을 해서 300레벨을 맞추고 싶지만 어차피 집으로 출발하기 전 아침에 일어나서 해도 충분하기에 괜히 생활리듬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
당연하지만 항상 그렇듯 로그아웃을 하고서 양치질을 하고 곧장 잠에 들었다.
내일 300레벨을 찍고 새로운 스킬과 새로운 아이템을 구비할 생각을 하고서.
홍주영이 잠이 든 새벽 시간.
뽈록.
무언가 홍주영의 발바닥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새끼 손가락만한 검고 쭈글쭈글한 무언가가.
그리고 홍주영 주변을 애벌레마냥 스멀스멀 기다가 다시 홍주영의 발바닥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씻지도 그렇다고 씨리얼로 아침을 해결하지도 않고 곧장 게임에 접속했다.
집에 가기 전까지 300레벨은 꼭 찍고 싶어서.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사냥을 해서인지 채 4시간이 되기도 전에 300레벨을 달성할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300레벨 달성으로 인한 스킬포인트 3개를 받았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300레벨 달성을 자축할 상황.
새로운 스킬을 습득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전보다 더 강해진다는 뜻이기에.
하지만 이번에는 하나 더 기다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아시란테라는 이름을 널리 알릴 계기가 될 300레벨 한정 퀘스트.
그리고 이게 원래 목적이었다.
성창과 함께한 보스 몬스터는 애초부터 계획에 없었고.
어쨌든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버려진 나무 들판의 세이프티 존으로 이동해 로그아웃을 하고서 곧장 씻었다.
배는 고팠지만 따뜻한 집밥을 먹을 생각에 밥은 건너뛰었고.
그리고 양말을 신기 위해서 침대에 걸터앉은 순간 발견했다.
“응? 웬 구멍이지?”
침대 다리맡 쪽에 작지만 구멍 하나가 있었다.
“원래 있었었나?”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워낙 작은 구멍이기에 원래 있었던 것을 내가 발견치 못했을 확률이 높아보였으니까.
우선 그렇게 3세대 가상현실 접속기를 챙겨들고 원룸을 나섰다.
< 아시란테가 누구야? (2) > 끝
< 300레벨 한정 퀘스트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