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나중을 대비한 1인 2역.
서울 외곽에 위치한 꽤 큰 별장.
그곳에 일단의 무리들이 거주했다.
바로 명진에서 떨어져 나온 김성한과 그 김성한을 따르는 자들로.
그리고 김성한은 별장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응접실에서 몇몇 인물과 대화를 나누었다.
“미래나 대성, 구산에서 우리를 받아 줄까?”
“.......”
“.......”
김성한의 질문에 응접실에 순간적으로 정적이 자리했다.
하지만 그 정적은 길지 않았다.
응접실 맨 끝자리에 앉은 젊은 남자가 무슨 그런 뻔한 질문을 하냐는 듯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음으로써.
“그 3곳은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겁니다. 그들은 눈앞의 전력 향상에 스스로 위험을 자초할 정도로 멍청한 자들이 아니니까요. 더욱이 대장도 알다시피 우리는 주인을 물었습니다. 주인을 한번 문 개는 또 물게 돼 있는 법이죠.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모르지 않을
테고요.”
“흠...”
맨 끝자리의 젊은 남자가 표현한 주인을 문 개.
하지만 김성한은 딱히 화를 내지도 분노를 표하지도 않았다.
사실이니까.
그리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또 물 생각이고.
여하튼 그 말에 잠시간 침음을 내뱉던 김성한은 이번엔 다른 곳을 들먹이며 입을 열었다.
“후우. 결국 대유뿐인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미래, 명진, 대성, 구산, 대유라는 5개의 재벌가.
게임 내에서도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한 곳이 바로 그 5곳이었다.
물론 대유는 확실히 나머지 4개에 비해 처지는 곳이긴 했다.
더욱이 중국 쪽으로 고개를 숙이고 그 밑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이 들통나 게임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하지만 김성한이 봤을 때 그나마 잠시 몸을 의탁할만한 곳은 대유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미래, 대성, 구산은 절대로 자신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답한 젊은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 현재는 대유가 최선의 선택이라 보입니다. 벽이 허물어지기 전까지는 결국 명진과 한 공간에서 지내야 하니까요.”
끄덕끄덕.
김성한은 그 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좋아. 대유에 연락을 취해라. 이미 중국의 품으로 들어간 상태니 제깟 놈들도 중국의 양화그룹을 통한 연락은 거절치 못할 것이다. 그리고... 대유의 알맹이를 빼온다. 내 특성으로.”
“흐흐흐. 대장 이러다 대유를 집어 삼키시겠습니다.”
“맞습니다.”
대유로 들어가기로 결정을 내리자 조용히 침묵을 유지하던 자들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들의 말에 김성한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대유가 문제일까. 만약 홍상만과 석인수 그놈들이 눈치만 빠르게 채지 않았다면 진즉에 명진을 내 것으로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대유의 서대영 회장은 명진의 홍상만 회장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인물로 소문이 났으니까요.”
“쯧쯧. 명진보다 못한 대유. 괜한 쭉정이는 필요 없다. 이번에는 알맹이만 챙긴다.”
그렇게 김성한과 김성한 패거리는 목적지를 대유로 정했다.
음흉한 속내를 숨기고.
버려진 나무 들판.
“.......”
“.......”
“.......”
침묵은 꽤 오랫동안 유지됐다.
물론 충분히 이해는 갔다.
왜냐하면 엄마는 아니더라도 아빠나 형, 누나는 명진의 간부다.
그것도 최상위층의 간부.
그렇기에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소속 길드원들의 상태창을 봐왔을 것이다.
상태창만큼 그 사람의 현재 수준을 명확하게 드러내주는 증표는 없으니까.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수많은 상태창을 봐왔기에 현재 눈앞에 떠 있는 상태창이 오히려 믿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 상태창의 주인이자 항상 보던 나도 가끔씩 그러니까.
그리고 그때 누나가 가장 먼저 떠듬떠듬 입을 벌리며 말을 내뱉었다.
“마... 마술인가? 우와. 우리 막내 대단하네. 하하하. 너무 진짜 같아서 깜빡 속을 뻔 했잖아. 하하하.”
마치 로봇처럼 웃으며 말하는 누나.
누나의 말에 펼쳐진 상태창을 닫았다 다시 열었다.
당연히 방금 전과 똑같은 상태창이 펼쳐졌고.
“아무래도... 좀 과하죠?”
아마 적당히 강한 상태창이라면 가장 하단의 특성 옆에 적힌 아이스 맨, 동반 성장, 강화의 신을 보고 화들짝 놀랐을 것이다.
그 특성의 등급을 떠나 우선 특성이 3개라는 뜻은 1차, 2차, 3차 클로즈 베타 당시 전부 최대 레벨을 달성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자랑이 아니라 거기까지 시선이 가기도 전에 내 상태창은 놀랄 것들이 너무 많았다.
가령 5개의 호칭과 100만이 훌쩍 넘는 생명력과 마나량 그리고 지력과 체력, 정신력을 필두로 어마어마한 양의 스탯포인트들까지.
물론 아이디가 2개라는 것까지는 아직 파악을 못한 것 같지만.
어쨌든 약간이 시간이 흐르자 어느 정도 충격이 가신듯 아빠를 필두로 한마디씩 꺼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믿기 힘들어도 눈앞에 떡하니 존재하는 것까지 부정할 정도로 아빠나 형, 누나는 바보가 아니니까.
“자... 잘했구나.”
“그런데 주영아 호칭이... 나 혼자 만렙 클베 유저 외에 4개면 총 5개가 있는 거야? 혼자서?”
“야! 홍주영! 얼른 그간의 모든 것을 털어놔! 감히 이 누나에게 이것을 숨겼다고? 이 어마어마한 일을?”
“아들. 엄마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아들이 남들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이 좋아.”
“특성 공개. 아이스 맨, 동반 성장, 강화의 신.”
특성. 우선 특성부터 공개했다.
오늘 상태창을 공개하기로 마음먹은 시발점이 바로 특성이기에.
물론 장황하게 이야기를 할 껀덕지는 없었다.
그냥 ‘Forgotten Legend’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1차, 2차, 3차 클로즈 베타를 열심히 했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으니까.
실제로 그러했고.
하지만 덤덤한 내 말과 달리 가족들의 표정은 그 특성의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다시 한 번 경악으로 물들었다.
“옵션이 이정도면 도대체 등... 등급이 뭐야?”
그 경악 속에 누나가 말을 더듬으며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덤덤하게 대답했다.
“아이스 맨과 동반 성장은 S등급 그리고 강화의 신은 SS등급.”
“.......”
“.......”
“.......”
나에게 이런 재주가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바로 가족을 놀래켜 말문을 막히게 하는 재주가.
물론 충분히 이해는 됐다.
나도 처음 특성을 받았을 때 저랬으니까.
밸런스 걱정까지 하며.
여하튼.
“모든 호칭 공개.”
연이어 형이 궁금해 했던 호칭들까지 공개했다.
상태창에는 총 5개의 호칭을 나 혼자 만렙 클베 유저 외 4개라는 표현으로 끝이었기에.
[-현재 보유 호칭.
: 나 혼자 만렙 클로즈 베타 유저.
: 허수아비 파괴자.
: 강화 나만큼 해봤어?
: 하락하지 않는 자.
: 영광된 이름.]
10분 뒤.
털썩.
누나가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으며 입을 열었다.
“나... 지금 꿈꾸고 있는 것 같아. 엄마 나 볼 좀 꼬집어줘. 얼른 이 꿈에서 깨어나게.”
누나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난 반응.
물론 아빠와 형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이 모든 것을 조합해도 상태창의 스탯포인트들이 많아도 너무 많구나.”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다.
나 혼자 만렙 클베 유저를 포함해 여러 호칭 외에도 3차 클로즈 베타 당시 나 혼자 유일하게 최대 레벨 달성자라며 여러 보상과 함께 무려 1000개의 잔여 스탯포인트를 받았으니까.
그 이후에도 잔여 스탯포인트를 얻을 기회는 많았고.
그래서 이런저런 설명을 하던 와중에 누나가 벌떡 자리에 일어나며 외쳤다.
“사냥! 나 사냥 하는 것 보여줘. 아무래도 이곳이 주영이 네가 사냥을 하는 곳 같은데. 한번 보여줘. 과연 그런 상태창을 가진 243레벨이 어떤 방식으로 사냥을 하는지 보고 싶어!”
갑작스런 누나의 요청.
그리고 그 요청에 한 팔 거드는 형의 말이 있었다.
“이곳 버려진 늪지대에 등장하는 몬스터는 긴 뿌리 나무. 적절 레벨은 400~450레벨. 아니, 500레벨까지 사냥 가능. 하지만 그 레벨에 아무도 이곳에서 사냥을 하지 않아. 긴 뿌리 나무는 그 특이한 공격 방식도 방식이지만 정말 강하거든. 그래서! 주영아 나도 보고 싶
다. 과연 243레벨이 이곳에서 혼자 어떻게 사냥을 하는지.”
말 그대로 버려진 사냥터.
그래서 누나도 이곳이 어떤 사냥터인지 몰랐지만 형은 알고 있었다.
곧이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빠와 엄마의 모습에 결국 파티를 맺었다.
그리고 그때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가 울렸다.
[현재 lumen과 아시란테라는 2개의 아이디를 보유중입니다.
-파티시 사용할 아이디 선택이 가능합니다.
: lumen.
: 아시란테.]
“.......”
당연히 알고는 있었다.
내 아이디가 2개가 됐다는 것을.
그리고 이미 친구 추가와 귓속말로 테스트를 끝냈고.
그런데 파티시에도 이런 선택창이 뜰 줄은 몰랐다.
“주영아 왜?”
파티를 받지 않는 내 모습에 누나가 왜 그러냐고 질문을 던졌다.
“어 그게...”
이미 상태창을 공개한 상황.
그래서 내가 아이디가 2개라는 말을 할 찰나 아빠가 먼저 치고 나왔다.
“주영아 그러고 보니 아이디가...”
정확히 상태창의 이름 옆에는 ‘lumen, 아시란테’로 적혀 있다.
물론 ‘lumen아시란테’라면 하나의 아이디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아이디 중간에 띄어쓰기나 아니면 쉼표를 붙이는 것이.
“흠. 흠. 그게 어쩌다 보니 아이디가 2개가 됐어요.”
“?”
“?”
“?”
사실대로 말했다.
하지만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냐는 듯한 눈빛이 쏟아졌다.
“그게 원래 아이디는 lumen 하나였어요. 그리고 아빠도 알 테지만 명진의 3군과 4군이 개척자들의 도시로 옮기면서 그곳의 이름이 아시란테로 변했고 저도 lumen 외에 아시란테라는 새로운 아이디가 생겨났어요.”
“어떻게?”
“왜?”
당연히 들 수밖에 없는 의구심.
하지만 정확히는 나도 모른다.
물론 얼핏 그 퀘스트를 받은 키한나에게 최초로 나를 소개할 때 아시란테로 해서 그렇다고 유추만 할 뿐.
어쨌든 가족들에게 또 하나의 커다란 파문을 남기고 세이프티 존을 벗어나 긴 뿌리 나무 몬스터가 출몰하는 곳으로 들어섰다.
곧 모습을 드러내는 긴 뿌리 나무 몬스터.
항상 그렇듯 나 아니, 우리를 파악하자 땅 속에서 긴 뿌리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그것은 우리를 향한 공격이고.
그래서 하던 대로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아이스 필드. 그리고 중첩 살얼음.”
가족들 앞이라고 특별한 방식?
필요 없다.
이미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알기에.
콩! 콩! 콩! 콩!
곧 긴 뿌리 나무들의 뿌리들이 땅 밑에서 아이스 필드를 뚫기 위한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울려왔다.
하지만 안다.
저 공격에 실금은커녕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데 형과 누나를 비롯한 가족들에게는 그것보다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온 것 같았다.
“허... 243레벨 즉, 2레벨 아이스 필드. 그렇게 이렇게 두껍다고? 아무리 살얼음이 중첩 됐다고 해도?”
“오빠. 두께도 두께지만 펼쳐진 범위도 장난이 아니라고.”
내 아이스 필드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형과 누나.
하지만 그 놀람에 반응하기에는 그와 엇비슷한 말을 들어도 너무 많이 들었다.
일부러 의도치 않았지만 어쨌든 전투를 벌였던 수많은 적들에게.
“쏟아지는 우박. 아이스 스피어, 다연발 아이스 애로우.”
곧 뿌리가 아이스 필드에 막혀 멍하니 서 있는 긴 뿌리 나무들에게 다른 광역 스킬과 단일 스킬을 퍼부으며 한 마리씩 빠르게 정리해 갔다.
그리고 그 모습에 누나가 형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빠. 여기 500레벨도 오지 않는 사냥터라며?”
“.......”
의도치 않게 형을 거짓말쟁이로 만든 상황.
하지만 형도 한마디는 했다.
“500레벨도 500나름이지. 너도 봤잖아. 주영이의 상태창을.”
30분 뒤.
온 가족이 함께 버려진 나무 들판의 세이프티 존에서 로그아웃을 했다.
그리고 접속하기 직전의 지하 서재에서 온 가족이 눈만 뻐끔거렸다.
그러다 누나가 먼저 자리에 일어나며 말을 꺼냈다.
“파티! 아빠, 엄마 아무도 모르게 우리 가족끼리만 파티를 하자고요! 오늘 같은 날 파티를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어요.”
“그러죠. 아버지. 저도 오늘은 그냥 넘기기에는 너무 아쉬운 것 같네요.”
“...그러자.”
누나와 형 그리고 아빠의 말에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 서재에 약한 도수의 위스키와 여러 음식들이 준비가 됐다.
물론 그 와중에 누나와 형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아빠도 내심 궁금한지 옆에서 한참을 조용히 들었고.
그리고 한참을 있다 아빠가 입을 열었다.
“주영아 아이디가 2개인 것이 말이다.”
“네.”
“네 말대로라면 lumen은 이곳에 있는 우리만 알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아시란테로 알려져 있단 말이냐?”
“네. 맞아요.”
내 원래 아이디인 lumen 누나만 알고 있었다.
이번에 온 가족이 알게 됐지만.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 외의 자들은 아예 아이디를 모르거나 혹은 아시란테로 알고 있었다.
“그럼 이렇게 할 생각은 있느냐?”
“어떻게요?”
“일부러 아시란테라는 아이디를 대외적으로 더 알리는 것이지. 가령 대한민국 내에서 가장 강력한 자로. 그리고 lumen이라는 아이디는 명진 그룹의 막내아들이자 게임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홍주영으로 알리고.”
“.......”
아빠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
1인 2역을 하라는 것이니까.
씨익.
그리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재미있겠네요.”
가족을 나 몰라라 내팽개치고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 생각은 없다.
가족을 위한 약간의 손해? 희생? 감수할 수 있다.
이미 그 이상의 것을 받았으니까.
아빠와 엄마 그리고 형, 누나 모두에게.
그래서 이렇게 모든 것을 밝힌 것이고.
그리고 나도 명진의 소속.
내 활약으로 우리 가족이, 명진이 더 커진다면 충분히 그럴 용의가 있다.
그리고 사실이었다.
정말로 재미있을 것 같다는 말은.
< 나중을 대비한 1인 2역. > 끝
<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기회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