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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한 클로즈베타-58화 (58/271)

58화. 내일은 집에 오지 마.

“또 와. 난 당분간 여기에 쭉 있을 테니까. 아이스 스피어.”

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여전히 분노 섞인 눈빛을 지우지 않는 적의 리더를 향해 무심하게 한마디 말을 내뱉고 그대로 아이스 스피어를 날렸다.

퍽!

적의 리더는 이미 나에게 몇 번이나 공격을 허용한 상태였기에 그 마지막 한방으로 끝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내뱉은 마지막 말은 진심이기도 했다.

즉, 전처럼 마찰이 생기면 자리를 피했던 것과 달리 당분간은 여기에 쭉 있을 생각이다.

자신감 때문에?

물론 적이 얼마나 몰려오든 상대할 자신감이 있다는 것도 한몫했지만 결정적으로 이들이 나를 찾은 것은 운이나 우연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아마 이들에게는 나를 찾는 무언가 특별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스킬이라기보다는 가령 특성 같은 것으로.

그래서 내가 어디를 가든 이들이 찾아올 마음만 있다면 찾아올 수 있을 거라는 판단하에 먼저 선수를 쳤다.

최대한 무심하게 그래서 얼마가 오든 상관없다는 듯이.

물론 내뱉는 말과 달리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사냥에 열중해야 하니까.

휘이잉.

그렇게 마지막 남은 적의 리더가 죽자 휑한 주변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다 죽이지는 못했다.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치는 적까지 잡기에는 아직 무리였으니까.

하지만 왠지 모르게 한 번에 가장 많이 상대했던 700명보다 더 많은 적과 상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그렇듯이 이겼지만.

‘그나저나 이정도면 첫 번째 동반 성장할 스탯으로 체력을 선택한 것이 영 잘못된 선택은 아닌 것 같네.’

처음으로 생명력과 체력을 바탕으로 전투를 벌였다.

‘Forgotten Legend’의 1차, 2차, 3차 클로즈 베타뿐만 아니라 모든 게임에서.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위력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여하튼.

“아이스 필드.”

그전의 모든 전투를 통틀어 나름대로 가장 치열했던 전투를 뒤로하고 다시 아이스 필드를 사용하며 긴 뿌리 나무에게 달려들었다.

아직 휴식을 취하기에는 쌩쌩하기에.

그날 밤.

저녁 시간에 맞춰 로그아웃을 하고 밥을 먹고 간단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다시 게임에 접속할 찰나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 액정에 표시된 이름은 바로 누나.

“내일 집에 가는 날인데 무슨 전화지?”

우선 궁금증을 뒤로하고 전화를 받았다.

“어. 누나 왜?”

“너 내일은 집에 오지 마.”

“.......”

대뜸 집에 오지 말라는 누나.

내가 1주일에 한 번씩 집에 오는 것을 가장 반기고 환영하는 사람은 두말할 것 없이 엄마지만 누나도 그에 못지않았다.

더군다나 군대를 전역후 서울대에 복학하지 않아 집에서 반강제로 쫓겨나 원룸에 살 때도 바리깡을 자기 머리카락에 들이밀며 나를 챙겼던 것이 누나였다.

그런데 뜬금없이 내일 집에 오지 말라는 말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아무 일도 아냐. 하여튼 알았지? 바빠서 끊는다.”

뚜. 뚜. 뚜.

뭐가 그리 바쁜지 누나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나는 한참 그 끊긴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아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까.

그리고 만약 과거의 나라면 아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앎에도 그냥 누나의 말대로 집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관심도 갖지 않고.

하지만.

“내일 가야겠네. 꼭.”

물론 이런 심경변화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는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명진과 대성 그리고 구산의 경영자 모임을 가장한 회동에서도 그리고 미래 그룹의 연보라가 주최한 또래의 모임에서도 언급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새로운 인재상의 출연.

그만큼 단순히 게임을 잘하고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거대 그룹에서 서로 모셔가는 인재 풀이 생겨났다.

그리고 자랑은 아니지만 그 인재 중에 가장 첫손에 꼽는 것은 나.

솔직히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아이스 맨과 동반 성장 그리고 강화의 신에 나 혼자 만렙 클베 유저라는 호칭을 처음부터 갖고 시작한다는 것은 사기에 가까웠으니까.

나 스스로 밸런스 붕괴를 걱정할 정도로.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 내가 예상했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그때는 허수아비 파괴자라는 호칭부터 강화의 신의 사용으로 인한 레벨 하락으로 약 50레벨 가까이 중복으로 잔여 스탯포인트를 획득할거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거기에 이번의 A등급 퀘스트의 클리어와 영광된 이름이라는 호칭까지.

즉, 자신감이 생기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상황.

아무래도 거기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누나의 일을 더 나아가 가족의 일을 나도 알고 싶고 그래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주고 싶다는 그런 자신감과 넉넉함이.

“우선 게임 접속.”

괜히 아빠나 형, 엄마에게 따로 물어보기 보다는 집에서 직접 알면 된다는 생각에 우선 게임에 접속을 했다.

그리고 곧장 인벤토리를 열었다.

인벤토리에는 ‘Forgotten Legend’의 1차, 2차, 3차 클로즈 베타를 전부 합쳐도 더 값진 아이템들이 몇 개 존재했다.

2억에 가까운 골덴링도 골덴링이지만 바로.

[인벤토리 목록.

-100% 강화 성공 사용권. (등급, 레벨, 현재 강화 수치 상관없이 사용시 즉시 강화 수치가 한 단계 증가함.)

-스킬 최대 레벨 증가석.

-귀함에서 전설 등급 사이의 악세사리 1종이 나오는 랜덤 상자.

:]

100레벨 한정 강화 퀘스트로 얻은 100% 강화 성공 사용권은 나중에, 정말 나중에 얼음황제의 수호검에 대한 강화의 신 쿨타임이 수백일 이상일 때 사용하기 위해 인벤토리 한쪽에 고이 모셔놨었다.

마찬가지로 그 밑의 스킬 최대 레벨 증가석도 나중에 스킬의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꼭 필요한 상황에 사용하기 위해서 한쪽 구석에 놔뒀었고.

그리고 위의 2개에 비하면 확실히 처지지만 ‘살테 일족에게 희망의 등불을 밝혀라.’의 A등급 퀘스트로 받은 전설 등급까지 나오는 랜덤 상자를 그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개봉하지 않았다.

혹여나 귀함 등급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물론 귀함 등급이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현재 내가 착용중인 스콜피온 킹의 반지와 귀걸이도 귀함 등급이다.

하지만 맥시멈이 전설인 상황에 왠지 귀함 등급이 나오면 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여태 인벤토리에만 보관하게 됐다.

하지만.

“이제 개봉해야겠지? 언제까지나 묵혀 둘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1 얼음황제의 수호검에 강화를 시도하기 전에 어떤 악세사리가 나오든 강화를 해둬야 하고.”

0에서 1강화를 시도하는데 14일의 쿨타임을 필요로 했던 얼음 황제의 수호검.

당연히 이번에는 더 많은 쿨타임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그전에 어떤 악세사리가 나오든 강화 시도를 위해서라도 지금 개봉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의 전투로 어떤 아이템이 나오든 크게 상관없다는 확신에 가까운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부끄럽지만 나 스스로가 이미 신화 등급 아니, 신화 등급 그 이상이기에.

여하튼 인벤토리에서 꺼낸 랜덤 상자를 곧바로 열어 젖혔다.

그러자 노란색 섬광과 함께 메시지가 울렸다.

[투사의 팔찌(전설)를 획득하였습니다.]

“.......”

어떤 아이템이 나오든 상관없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래서 자신감 있게 열었다.

하지만 그래도 내심 바랄 수밖에 없었다.

기왕이면 전설급으로 그리고 마법사용 아이템으로.

그것마저 아니면 지력을 올려주기라도.

물론 전설 등급이긴 했다.

하지만 왠지 아이템의 이름 자체에서 마법사용도 그렇다고 지력을 올려줄 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템 확인. 투사의 팔찌.”

우선 아이템 확인에 들어갔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안고.

[용맹한 투사의 팔찌 (전설)

-모든 전투에 있어 물러서지 않고 용감하게 돌진하는 투사의 정신이 깃든 팔찌이다.

: 힘 150 증가.

: 민첩 150 증가.

: 격투장에서의 전투력 10% 증가.

-물리방어력 : 150 증가, 마법방어력 : 50 증가.

-내구력 : 655000/655000]

반전은 없었다.

혹시나는 역시나가 됐다.

하지만 영 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꽤 높은 수치인 150씩 증가하는 힘과 민첩이 아니라 바로 격투장에서의 전투력 10% 증가 때문에.

물론 10%를 높다고 보기에는 힘들다.

하지만 10을 가진 자에게 10%라면 1일지라도 100, 1000, 10000 그리고 그 이상을 가진 자에게 10%가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바로 나 같은 경우에.

“그나저나 결투장이라... 당연히 할 생각이지만 이건 더 열심히 하라고 부추기는 건가?”

당연히 아니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그날도 새벽 1시까지 긴 뿌리 나무들을 사냥하고 곧장 잠에 들었다.

아침 일찍 집에 가기 위해서.

다음날 아침.

3세대 고급형 가상현실 접속기만 가방에 챙겨들고 원룸을 나섰다.

그리고 버스와 택시를 이용해 청담동 본가에 오전 10시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항상 조용했었다.

한적하고.

우리 집뿐만 아니라 이 청담동 일대는 소문난 부촌이고 거주자의 면면이 꽤나 화려했기에.

그래서 과거에는 이 부촌으로 들어서는 입구를 경비원까지 세워가며 통제를 했었다.

물론 도로까지 막아서는 부자들의 갑질이라는 말이 나오고 사라졌지만.

여하튼 항상 조용하고 한적했던 골목과 집 앞에는 일단의 무리와 7대의 고급 승용차가 줄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다가서는 나를 확인한 그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신문 배달인가?”

“몰라? 그 있잖아. 이집의 막내아들.”

“아~ 그 서울대 수석? 그런데 돌연 군대에 갔다가 머리가 획 돌아서 미쳤다는 소문이 돌지 않았어? 그래서 정신 병원에 수감 됐다는 말이 있었잖아.”

“그래? 내가 알기로는 그 천재인 척 한 것이 들통나서 잠수를 탔다고 하던데.”

“에이. 테스트를 몇 번이나 했는데. 정말 똑똑한 것은 사실 아냐? 한창 텔레비전에도 나왔잖아.”

“야. 그걸 믿냐? 다 조작이지. 조작. 하여튼 내가 아는 바로는 집에서 거의 내놨다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저렇게 초라하게 다니는 거지. 내비 둬. 어차피 우리가 신경 쓸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 그나저나 혹시 알아? 우리 대장이 저놈의 매형이 될지.”

“크크크. 그럼 저놈에게는 좋겠네. 든든한 매형이 생기는 거니까.”

“그렇지! 어딜 가서 우리 대장처럼 완벽한 사람을 매형으로 맞이하겠어.”

특출나게 귀가 밝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들을 수 있었다.

저들이 굳이 감출 생각이 없었기에.

물론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떡하니 대문을 막아서고 있는 저들의 행태는 가끔씩 봐왔던 전형적인 불량배의 포스를 물씬 풍겼기에.

그리고 그걸 떡하니 방치한 집에 상주하는 경호원들도.

저벅저벅.

이미 내 정체를 알고 있어서인지 그들은 나를 막지 않았다.

나도 그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무시했다.

곧 그들 사이를 지나쳐 열려 있는 대문을 밀고 들어섰다.

정원에는 오랫동안 봐온 집사 할아버지가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나를 발겨나자 화들짝 놀라는 기색을 띠며 입을 열었다.

“아니, 도련님!”

“뭔가 어수선하네요.”

그런 집사를 향해 음정의 높낮이 없이 입을 열었다.

나까지 호들갑 떨 필요는 없으니까.

특히나 매형이라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말을 내뱉는 무례한 자들 앞에서는.

“그게...”

내 말에 선뜻 답을 못하는 집사 할아버지.

따로 추궁하거나 답을 독촉하지는 않았다.

직접 알아보면 되니까.

그렇게 집사 할아버지는 지나쳐 거실 안으로 들어섰다.

사전 정보도 없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황.

하지만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양측으로 갈라선 두 무리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것쯤은.

그리고 그때 가장 상석에 앉은 내가 지금껏 봐왔던 모습 중에 가장 굳은 얼굴을 한 아빠가 말을 내뱉었다.

반대편에 앉아 있는 중년의 남자에게.

“알고 있나? 나는 충분히 자네를 배려했건만 자네는 지금 선을 넘고 있다는 것을.”

처음 들어봤다.

아빠의 분노가 그대로 녹아든 목소리를.

하지만 그 아빠의 말과 목소리가 반대편에 앉아 있는 중년의 남자에게는 큰 위압감을 전하지 못한 것 같았다.

오히려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웃으며 입을 열었기에.

“하하. 저를 발굴하고 이만큼 키워주신 회장님의 배려를 어찌 제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회장님 반대로 저 같은 인재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기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 이래 봬도 상당히 잘 나갑니다. 오라는 곳도 많고요. 감히 명진 따위가 발톱을

드러내지 못하는 곳에서요.”

아빠 앞에서 명진을 명진 따위로 폄하하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중년의 남자.

더욱이 그는 함께 내뱉었다.

아빠가 발굴하고 아빠가 키웠다고.

즉, 명진 소속의 인물.

물론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

정말 능력 있는 그를 아빠 혹은 석인수 실장이 아니면 명진이라는 이름으로 홀대하고 막대해 무척이나 섭섭함을 느끼는 만들었을 가능성 같은 것을.

하지만 그렇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 절로 들었다.

그의 눈에는 숨기지 못한 욕심과 욕망이 그대로 표출이 됐기에.

< 내일은 집에 오지 마. > 끝

< 고름을 째고 나서 드러난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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