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새로운 퀘스트.
“접속.”
[Revival Legend에 접속합니다.]
곧 눈앞에 아까 낮에 로그아웃을 했던 질척이는 늪지대의 세이프티 존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척이나 한산한 모습으로.
툭. 툭.
그런데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살짝 두들기는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이곳 늪지대 세이프티 존의 한쪽 구석에서 로그아웃을 했다.
그래서 내 뒤쪽에 그것도 로그인을 하자마자 누군가 있다는 사실에 재빠르게 뒤로 돌아섰다.
아무리 세이프티 존이라 공격이 불가능해도 불쾌한 것은 사실이기에.
하지만.
“응?”
당연히 유저일거라고 생각했다.
짐작 가는 자도 있었고.
바로 종종 아는 척을 해오는 나에게 7만 골덴링에 쓰레기 같은 장화를 강매한 그자.
하지만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아닌 것만으로 당황스러운데 나와 같은 유저가 아니라 NPC라는 것에 더 당황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기에.
물론 그런 나의 당황스러움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 NPC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 질척이는 늪지대가 속한 개척자들의 도시의 주민인 키한나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일명 NPC라 불리는 존재.
당연하지만 익숙하다.
게임 그것도 MMORPG라면 게임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필수로 존재하는 것이 NPC이기에.
그리고 당연하지만 이 ‘Revival Legend’에도 NPC들이 존재했다.
상점 주인이라든지 내가 몇 번 갔었던 코툼성 광장의 나른한 오후라는 카페의 주인과 서빙을 하는 직원 등의 모습으로.
그런데 이렇게 밖에서 그리고 먼저 아는 척을 해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것도 주민 NPC가.
“우리 개척자들의 도시의 유래에 대해서 아시나요?”
뜬금없이 개척자들의 도시의 유래에 질문하는 키한나.
당연하지만 모른다.
사냥을 위한 시간도 부족할뿐더러 그것까지 확인하고 온 것이 아니기에.
그리고 그런 내 반응을 익히 예상했는지 키한나가 연이어 말을 건넸다.
“그럼 저에게 잠시만 대화를 나눌 시간을 주실 수 있나요?”
키한나의 말에 순간 퀘스트라는 단어가 스쳐지나갔다.
여타 다른 게임이라면 이미 모두에게 공개가 된 퀘스트.
더욱이 진행부터 클리어 방식까지 어지간한 퀘스트는 모두 공개가 되는 것이 여타 다른 게임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Revival Legend’는 달랐다.
없다.
그 어디에도 퀘스트를 얻는 방식과 진행 그리고 클리어까지 적힌 내용 자체가.
그리고 그것은 이번에 누나에게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퀘스트에 대한 정보를 물어보면서 확인한 내용이었다.
그렇기에 퀘스트를 얻으면 무조건 진행하고 없으면 찾아서라도 하라는 말을 또 들었고.
“네. 해보시죠.”
우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쨌든 애증마저 느끼게 만들었던 100레벨 한정 강화 퀘스트나 400레벨 제한의 스콜피온 킹의 퀘스트에서 생각보다 많은 이득을 얻었기에.
당장 또 다른 퀘스트가 눈앞에 있다면 당장 하고 싶을 정도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제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내 이름을 물어오는 키한나.
순간 lumen(루멘)이라는 언급을 하려다가 바꿨다.
“아시란테.”
얼음황제의 수호검의 주인.
[세상의 모든 것을 태우고 증발시키던 태양신 모로투에 마지막까지 대항한 얼음의 주인이자 황제인 아시란테의 마지막 결의가 담긴 검이다.]
분명 얼음황제의 수호검에는 짤막하지만 저 설명이 적혀 있었다.
“아시란테님... 정말 좋은 이름이네요. 신화속의 그분처럼요.”
모른다.
저 얼음황제인 아시란테가 키한나가 말한 신화속의 그자인지는.
하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순간 lumen(루멘) 대신 생각이 나서 내뱉은 말이기에.
어쨌든 이어진 키한나의 말.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략 간추리면 키한나를 비롯해 이곳 개척자들의 도시를 만든 자들은 전부 노예 신분.
왕에게 노예라는 신분을 벗어나는 조건으로 개척지를 만들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개척자들의 도시.
당연히 이 질척이는 늪지대도 키한나를 비롯한 개척자들의 수고가 들어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들. 그들이 들어오고 마음대로 통제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노예를 벗어난다는 희망 하나로 만든 개척자들의 도시가 아무도 찾지 않는 휑한 도시로 변하기 시작했고요.”
키한나의 얼굴에는 드리워져 있었다.
절박함과 억울함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키한나는 연이어 말을 내뱉었다.
“우리는 원해요. 개척자들의 도시에 많은 자들이 유입되기를요. 그래서 개척자들이라는 이름을 떼고 번듯한 이름을 가진 도시가 되었으면 해요. 물론 그렇게 되면 저도 제 가족도 제 친구들도 노예 신분에서 해방이 되고요.”
개척자들의 도시에서 개척자라는 딱지를 떼고 번듯한 이름을 가진 도시가 되는 것.
키한나는 그게 왕과 약속한 노예 딱지를 떼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것을 가로 막는 자들이 있어요. 바로 멋대로 이곳에 들어와 자리를 꿰차고 앉은 가화 길드요. 현재 우리에게 가진 힘이 없어요. 그래서 강자인 아시란테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거예요. 물론 공짜로 부탁을 하는 것인 아니에요. 대가. 우리는 대가를 지부할
용의가 있어요.”
“.......”
솔직히 조금 놀랐다.
왜냐하면 이 퀘스트는 단순한 퀘스트가 아니기에.
그만큼 NPC가 요구하는 것은 실제 유저끼리의 전투.
그리고 그것을 떠나 퀘스트가 마치 살아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래서 퀘스트 자체가 귀하다고 한 건가?’
우선 확답은 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을 물어봤다.
“내 뭘 보고 강자라고 하는 거죠?”
현재 내 상태는 표면상 200레벨도 되지 않는다.
거기에 아이템이라고 딱히 좋은 것을 착용한 것도 아니고.
물론 스콜피온 킹과 귀걸이는 확실히 좋긴 하지만.
여하튼 겉모습만으로 나를 강자라고 단정 지을 단서는 없다.
더욱이 이곳 개척자들의 도시를 이용한 자들이 아무리 적다할지라도 분명 그 속에는 있었을 것이다.
소문난 강자들이.
하지만.
“그런가요? 아시란테님은 강자가 아닌가요? 왜 제 눈에는 아시란테님이 강자로 보이는 거죠?”
“.......”
막상 키한나의 그 질문에는 답하지 못했다.
자존심? 긍지? 분명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왠지 그 질문에 강자가 아니라는 답을 하기에는 나 스스로 뭔가를 망가트린다는 느낌 아닌 느낌이 들었다.
더욱이 마음 한켠에 갖고 있다.
언젠가 가화 길드에게 쓴맛을 보여줄 생각이.
“흐흐흐.”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좋아. 좋아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닙니다. 3일. 3일 뒤에 확답을 하도록 하죠.”
만약 흔하디흔한 몬스터 처리라던가 혹은 무엇을 가져와라 같은 퀘스트였다면 두말 않고 수락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퀘스트 자체가 꽤나 의미심장했다.
그리고 3일.
3일이면 충분했다.
200레벨을 달성하는 것이.
그리고 가화 길드에 나름대로 조금 알아볼 시간도 필요했고.
더욱이 나에게는 그것을 알아봐줄 명진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존재했다.
“알겠습니다. 아시란테님 같은 강자에게 부탁을 할 수 있다면 그래서 승낙을 받아낼 수 있다면 3일은 긴 시간이 아니니까요. 그럼 3일 뒤에 뵙겠습니다.”
키한나는 그 말과 함께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네고 걸음을 옮겼다.
주민 NPC답게 마치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왔다 갔다 하는 모양새로.
“시간 확인.”
[현재 시간은 23시 24분입니다.]
약간 애매했다.
당장 누나 방으로 건너가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그래서 우선 늪지대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3일 안으로 200레벨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시도 시간을 낭비할 수 없기에.
그리고 새벽 1시가 살짝 넘어서까지 늪지대 이곳저곳에 아이스 필드를 깔아놓고 사냥에 몰두했다.
다음날 아침.
온 가족이 둘러앉아 아침 식사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아빠와 형이 함께 회사에 출근하는 것을 배웅하고 거실에 누나와 앉았다.
“그나저나 아빠가 누나도 회사 출근하라는데 왜 안 나가는 거야?”
물론 회사 일을 배우라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회사 내에 존재하는 ‘Revival Legend’를 관리하는 석인수 실장을 옆에서 보고 배우라는 것이었지.
“쯧. 동생아 가봤자 일밖에 더하겠니? 그 시간에 몬스터 한 마리 더 잡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낫지. 어차피 그런 일을 하라고 첫째 오빠가 있는 거야. 너나 나나 고마워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대신 저렇게 바빴을 테니까.”
종잡을 수 없는 누나.
하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슬쩍 어제 일을 물어봤다.
“혹시 누나 개척자들의 도시라고 알아?”
“개척자들의 도시? 모르겠는데.”
‘Revival Legend’는 엄청 넓다.
그래서 개척자들의 도시에 대해 모른다는 누나의 말이 크게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럼 가화 길드는?”
이번에는 다른 것을 물어봤다.
“그 길드도 처음 듣는데? 왜? 무슨 일 있어? 딱 보니까 개척자들의 도시에서 가화 길드랑 트러블이 있었나 본데?”
“아니, 아직은.”
아직은 없다.
곧 그럴 예정이지만.
“그럼 누나 혹시 NPC가 유저들끼리 싸움을 붙이기도 해?”
이게 가장 궁금했다.
“너! 퀘스트 받았구나?”
그리고 내 말에 누나가 소파에 늘어진 몸을 바로 세우고 되물었다.
“어.”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라도 누나에게 감출 생각은 없었기에 곧장 대답했다.
“이야. 우리 막내 나름대로 인정을 받나 보네? 유저끼리 싸움을 붙이는 퀘스트는 어지간해서는 정말 안 나오는데.”
누나의 말로는 있긴 있는 것 같았다.
다만 내가 질문을 잘못해서 유저와 유저의 싸움으로 받아들였다.
분명 키한나는 가화 길드라는 단체와의 싸움을 요청했는데.
“해. 무조건. 혹여나 조력자의 도움 없이 1대1로만 싸워야 한다는 제약이 있어? 그 제약만 없다면 말해. 이 누나가 가서 해결해 줄 테니까.”
“아니, 아직 그런 것은 아닌데. 그런데 그게 가능해?”
1차, 2차, 3차 클로즈 베타 당시에는 NPC의 역할 자체가 아예 없었다.
그냥 있는 둥 마는 둥의 존재들.
그만큼 없어도 됐었다.
대장간 같은 경우는 안에 들어가면 절로 메시지가 떴고 경매장도 그러했으니까.
“그렇지? 신기하지? 마치 상황에 딱 맞게 NPC들이 퀘스트를 들고 나오니까. 처음에는 그래서 혹시나 그 대상들이 NPC가 아닌가 하는 의심도 했었어. 하지만.”
“하지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끊는 누나에게 곧장 다음 말을 졸랐다.
“하지만 알 수 없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이 ‘Revival Legend’를 운영하는 곳도 모르는데.”
“에이.”
싱거운 누나의 답변.
그리고 누나는 그걸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어쨌든 그 가화 길드라는 곳의 누군가와 싸움을 붙이는 퀘스트를 받은 것 같은데. 그래. 누나가 한번 알아볼게. 가화 길드가 어떤 곳인지.”
“응. 고마워.”
2층 자신의 방으로 움직이는 누나를 확인하고 나도 2층으로 올라가 짐을 챙겼다.
그리고 엄마가 챙겨준 반찬 같은 것을 한가득 챙겨들고 집 밖으로 나왔다.
물론 그런 나를 보고 엄마나 누나도 한마디 했다.
왜 집나가서 고생 하냐고.
하지만 그 말에 씨익 한번 웃어주고 나왔다.
아무래도 모든 시간을 게임에 할애하기 위해서는 혼자가 더 편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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